로마 산책 - 이탈리아 문학가와 함께 걷는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가와시마 히데아키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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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산책 / 가와시마 히데아키 지음




가와시마 히데아키의 <로마 산책>은 부제(이탈리아 문학가와 함께 걷는)만 보더라도 단순한 여행으로서의 로마를 거닐었던 것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랜드마크에서 사진을 찍는 것을 목표로 했던 단순한 여행자로서의 로마만 방문했던터라 여행 후 아쉬움이 정말 많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이야기가 잔득 실려있을 이 책이 읽고 싶어졌던 것이다. 저자의 집필의도 역시 아름다운 사진으로 채워진 로마는 잡지와 이미 출간된 책을 통해 쉽게 누릴 수 있기에 일부러 그런 사진들을 자제하고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과 슬라이드대신 지도 한 장을 펼쳐 과거 둘러보았던 로마를 거닐었기에 책 제목도 '로마 산책'이 되었다고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다. 그런 이유로 누군가에게는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이또한 특별해보여 옛 지도와 흑백사진들로만 구성된 것이 맘에 들었다. 꼭 어두운 밤이나 어렴풋하게 안개로 가려진 새벽 산책을 하는 기분을 들게 했으니 말이다. 


우선 이 책을 읽는 방법은 목차순이 아니다. 물론 그렇게 읽어도 되긴 하지만 저자가 특별히 <데카메론>의 방식을 인용한 만큼 기호에 따라 저자가 달아놓은 도입구절을 쫓아가보면 되는데 내가 제일 먼저 발을 들여놓은 산책길은 6번째, '즉흥시인의 광장'이었다.


메이지, 다이쇼, 쇼와의 세 시대에 걸쳐 일본인들의 마음에 이탈리아와 로마에 대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다름 아닌 모리 오가이가 옮긴 <즉흥시인>이었다. 163쪽


사실 책을 읽기 전까지 위의 발췌문에서 언급하는 '즉흥시인'이 어떤 작품인지 전혀 알지를 못했다. 바르베리니 광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곳이 정말 아름다운 분수가 있다고 적혀있다. 어찌되었든 일본인들에게 유명한 작품이기에 자신이 가르치는 대학 제자들에게 로마에 방문할 거라면 저 작품을 일독하고 가라고 했다는데 그 이유는 상하권 모두 우리가 잘 아는 이탈리아의 명소 나폴리, 베네치아, 소렌토 등이 전부 등장하기도 하기에 안내서로서도 충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치 우리가 로마를 포함한 이탈리아를 떠날 때 관련 여행가이드북을 찾는 것처럼 말이다. 단순히 여행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까닭에 주인공이 해당 장소에서 어떤 말을 하고,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며 어떤 행동을 했는지만 따라해봐도 그 여행은 얼마나 값지고 신이 났을까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그의 제자들이 부럽기 까지 했다. 트레비 분수에서 우리가 하는 거라곤 굳이 명명하지 않아도 다 아는 영화속 한 장면, 아이스크림을 먹고, 동전을 던져 소원을 비는 정도였으니 말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언어가 바뀌듯 그 이후 역서의 내용또한 조금씩 바뀌어 어쩌면 나이들어 달라진 역서를 읽고 방문했을 때는 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부모와 자녀가 혹은 스승과 제자가 한 권의 책을 가지고 떠나보는 여행도 가능할테니 생각할수록 너무나 낭만적인 여행처럼 느껴졌다.


로마를 여행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테고 실제로 그런 여행 에세이가 정말 많지만 흑백으로 가득찬 이 한 권은 책을 좋아하는, 적어도 활자를 좋아하고 지도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그 어떤 책보다 로마로 향하는 마음을 크게 움직였으리라 생각된다. 무엇보다 지도를 쫓아 내 맘대로 본문의 일부를 읽고 계속 읽을 지 넘길지를 고민하는 것부터가 신선한 재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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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기 두려운 당신에게
김여나 지음 / 더블:엔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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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부제(왜,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가)까지 완벽하게 '이거다!'싶었던 책, <다시 시작하기 두려운 당신에게>는 읽기 전의 기대를 모두 충족시켜 준 책이다. 우선 내가 왜, 다시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가를 몰라서 선택한 책은 아니었다. 내 얼굴을 알면서도 정확히 어느 부분이 어떻게 보이는지, 또 어느 부분을 가리거나 드러내고 싶은지를 알아보기 위해 거울을 보는 것처럼 읽고자 했던 책이었다. 다시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왕년에 멋있었던 내 모습 때문에'편에 등장하는 안좋은 예가 딱 나였다. 아이를 낳고 퍼진 몸을 보면서 더 바지런하게 움직이고 식이조절을 하기 보다는 과거의 사진만 들춰보며, 또 다녔던 장소를 추억만 하면서 이미 지난시간만 바라보고 있었다. 저자가 발췌한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저자의 말처럼 사라져버린 치즈를 가장 빨리 찾는 방법은 미련을 버리고 새 치즈를 찾는 것인데 그러질 못했다. 다가오는 시간마저 과거의 미련으로 다시 흘려보내고만 있었던 것이다. 저자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엄마가 한번쯤은 했을 신과의 약속, 이 부분도 격하게 공감이 되었다. 늦어도 한참 늦은 나이에 임신을 했기에 임신기간 내내 정말 여러차례 위험한 순간이 찾아왔었다. 저자는 아이를 지켜달라고 기도하며 약속을 했다지만 나는 아예 신께 맡겨드렸다. 감히 어떻게 하겠다는 약속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매일매일을 기도했던 걸 보면 어쩌면 나는 매일 기도드릴테니, 혹은 매일 기도드리니라는 전제를 약속처럼 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신과의 약속이라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지만 스스로 정한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는 말이 와닿는 까닭도 이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몇 달란트를 받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어떻게 사용했는지가 중요하다. -중략-

나의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는 것이 아니라, 배로 불려서 사용되어지고 싶다. 

이것이 내가 다시 시작해야 할 이유가 되고, 내가 해야 할 일이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소명이 된다.149쪽


서두에 부제까지 완벽했다라고 적었던 이유가 바로 위의 발췌문에 답이 있다. 내가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좋은 엄마, 아이를 바른 사람으로 성장시키기 위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것은 내게 아이를 보내신 분이 내게 주신 달란트를 잘 사용해야 한다는 것과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유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를 책을 통해 제대로 깨달을 수 있었다. 더불어 예전부터 '나를 상품으로 팔 수 있어야 한다'라는 말에 무언가 찝찝한 느낌이 있었는데 그 이유마저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나는 상품이 아닌 '작품'이었다. 물론 세상은 작품마저 여러가지 의미로 잘 '포장'해서 '팔아야'하지만 그것이 경제적 가치가 아니라면 어떨까. 팔아야 하는 작품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지켜가야 할 작품이라면 포장이 아닌 보존이 더 우선시 될 것이다. 그런면에서 타인과 비교하며 나를 바꾸거나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내 성향, 내 달란트를 잘 사용하는 것이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성경을 통해 그리고 성직자와 교인들을 통한 실례가 많이 담겨있어 비신앙인에게는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한 가지다. 다시 시작하려할 때 드는 두려움을 떨쳐내는 방법, 그것을 알고자 한다면 잠시의 부담은 견뎌보자. 저자의 말처럼 그 두려움을 걷어낸 순간 빛 속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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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취향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일은 없겠지만 - 특별한 책 한 권을 고르는 일상의 기록
나란 지음 / 지콜론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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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취향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일은 없겠지만>의 제목처럼 애초에 완벽하게 일치할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감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거나 아예 '달라도 너무 다르군'싶은 부분은 무엇일까 그것이 궁금해졌다. 목차나 본문 순서로 치자면 뒤죽박죽이겠지만 가장 공감했던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토대로 리뷰를 적을 예정이라 혹, 나의 이야기가 글의 목차와 비례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책을 읽게된 계기와 함께 미리 적는다. 그리고 가장 공감했던 책상을 가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마음을 보탠다. 저자는 안톤 체호프의 단편 <내기>, <아무튼, 서재> 그리고 재인용된 <자기만의 방>의 문장들을 언급하며 책상이 없었던 날들 정신마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했던 날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역시 사정상 내 책상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보니 나의 혼란이 저자의 말대로라면 결국 책상의 부재로 인한 것이고, 그에 대해 적극 공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책상은 없어도 노트북을 사용하다보니 노트북을 펼치는 순간 노트북이 놓이는 장소가 일시적이긴 하나 '나만의 책상'이 되어주어 잠시일지라도 심리적 안정이 찾아오는 것을 보면 역시나 책상은 사고하고 사유하는 존재라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핑계가 아니었다는 것을 왠지 누구에게라도 이야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저자와 일치하는 했던 이야기가 그렇다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은 무엇일까. 일치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그렇지만 '한 주에 한 문장'이라는 부록처럼 실려있는 문장 큐레이션에서 내가 줄친 문장이 단 한문장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저자가 소개한 책52권 중 읽지 않은 책 15권을 제외하면 그리많은 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37권 중에서 내가 잠시라도 멈칫조차 하지 않았던 문장들을 꺼내 고르다니, 북큐레이터인 그녀의 직업을 놓고 보자면 나는 잘 팔거나 편집하거나 하는 일에는 소질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의 취향이 완벽하게 독자 혹은 소비자를 만족시킨다고 할 수 없더라도 말이다. 취향의 일치를 떠나서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 피식피식 거렸던 부분이 있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리뷰에도 남겨보는데 다른 아닌 개그코드보다 더 웃긴 서점코드였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저자의 경험처럼 책제목이나 저자명을 헷갈리시는 분들을 종종만나는데 저자가 예로 든 1984 혹은 82년생 김지영처럼 연도를 착각하실 때에는 정정하기보다는 '아, 82년생 김지영씨요?'하는 정도에서 마무리짓는다. 업종이 변경되는 경우는 도서관에서는 거의 해당되지 않고 그 대신 20년 이상 오래된 건축물일 경우 회원분의 도서관과의 추억을 들어드려야 하는 경우가 꽤 많다는 것이다. 꼭 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라떼는 말이야'수준으로 바뀐 시스템이나 직원들의 서비스에 불만을 가진 경우는 대(?)화의 시간이 지연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책들을 독자에게 소개할 수 있는 내 일의 가치 역시 숫자로 추산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내가 추천한 한권의 책이, 혹은 내가 소개하는 책을 읽은 한 사람의 날갯짓이 세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

세상에는 수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도 많다. 190쪽



저자의 약력은 서른 살 이후 내가 꿈꾸던 직종이나 직업들이었기에 읽기도 전에 부러운 마음이 컸다. 특히 책과 일에 관해 자신의 이야기를 접목한 이 책을 읽다보니 아, 내가 도서관이 아니라 서점에 있었다면, 출판사 편집디자이너가 아니라 에디터였더라면 이라는 가정과 함께 상상을 맘껏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이 책이 맘에든 까닭은 책이 읽고 싶어지는 순간, 책이 정말 살아숨쉬듯 나를 위로해주는 순간들의 일치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이유로 표류중이 내게 책이, 그리고 그책과 연결된 누군가의 존재의 위엄을 느껴봤기에 더욱 그랬다. 결국 취향이 완벽하지 않아도,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한 권의 책을 참 오래도록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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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양이 카페 - 손님은 고양이입니다
다카하시 유타 지음, 안소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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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고양이인 카페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카페의 손님 뿐 아니라 점장까지도 보타이를 단 완벽한 정장을 입었던 다른 책의 소설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귀여운 고양이들을 글자로만 본다는 점이 아쉬웠는데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 오히려 세상의 모든 집사들이 알고자 분투하지만 결코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는 고양이들의 생각을 잠시나마 알것같게만드는 책이라고 해야할까.


실직한 구루미가 우연처럼 만나게 된 노부인 그리고 고양이와 그 카페의 점장이 되는 것부터가 이야기의 시작인데 그렇다. 여기서 고양이 그저 고양이기만 한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보니 예전에 내용자체는 다를 수 있지만 역시나 고양이가 사람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또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된 고양이는 고양이 특유의 습성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간직한 상태로 인간에게 다가온다. 그렇기 때문에 상당히 매력적일 수도 있고 이상하게 낯선 느낌을 지울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모습들이 활자화 되어 독자들을 설레기도 했다가 움츠리게도 만들었다가 하는 것 이다.


특히 나쁜 사람들에게 해를 당하는 부분들에 있어서는 그것이 아무리 소설일지라도 기사를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읽으면서도 마음을 졸이게 된다. 마치 스릴러물이나 형사물에서 제발 하고 간곡하게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일본 특유의 그 아기자기함과 고양이를 소재로 다양한 변주한 이력이 말해주듯 역시나 고양이의 그 살가움과 도도함 그리고 신비로움은 역시나 이 책에서도 잘 드러나있다.






내 고양이가 가끔 인간처럼 느껴질 때, 말로만 집사가 아니라 정말 내가 누군가에게 고용된 집사인 것은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되었던 독자들이라면 분명 이소설은 재미나게, 그리고 실감나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고양이가 그저 고양이로서만 귀여운 사람들에게는 또 어떨까 궁금하다. 에이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게 될 지 아니면 마치 구루미가 된 것처럼 가장 기운 없고 소외되었던 어느날 자신에게도 이런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 기대하게 될 지 궁금하다.

굳이 내 이야기를 말하자면 나는 그다지 집사는 되고 싶지도 그럴 자격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역시나 책으로 만나거나 내가 아닌 다른 집사의 고양이를 귀여워하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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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생각한다
존 코널 지음, 노승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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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생각한다 #월든 #존코널 #아일랜드





작가와 농사꾼 중 어느 하나를 택할 필요는 없다. 둘 다 될 수 있다.   

나는 농사꾼이자 작가이다.  320쪽



새끼소를 낳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산문은 마치 작가가 자신의 정체성(작가이자 농부)을 찾기 시작했음을 알린다는 점에서 탁월했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매번 아빠의 농장에 갈때마다 성별을 떠나서 무언가 보탬이 되고 싶기도 하고, 농장의 사계를 글로 적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일주일만에 아빠와 다투고 돌아오던 때가 생각나서 였을수도 있다. 자식들의 변명들에 대해 그러면서도 부모님의 노고에 대해 격하게 공감하고 싶었던 그 마음, 이었을 것이다. 다행이면서도 부러운 것은 저자는 농장에 머물렀던, 이 책의 목차이기도한 1월부터 6월까지 착실하게 버텨낸 반면 위에 적은 것처럼 나는 그렇게 긴(?)기간을 버텨내지 못했다. 가장 길었던 것이 2주였는데 그마저도 중간에서 엄마가 정말 엄청나게(수식어가 늘어난다)고생하셨다. 도망치듯 떠나와 오히려 농장일을 생각하면서 다시 구한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저자와는 다른 나의 정체성(소설가를 꿈만 꾸고 있는 직장인)을 찾았으니 말이다. 이 책은 이처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그 흥미도와 공감도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이 모든 것을 떠나 그냥 재미있으면서도 배울 수 있고 또 공감할 수도 있는 내용을 담았다라는 것이다. 가족 농장이 있는 곳은 아일랜드 시골이다. 즉 아일랜드의 문화를 알고 싶었던 사람들이라면 배울 수 있는 부분이 꽤 많은데 그것이 역사책에서 읽는 딱딱하거나 지나치게 랜드마크나 더블린 위주의 여행서도 아닌 그냥 정서자체를 읽을 수 있었다. 가톨릭 국가인 만큼 이야기 곳곳에 성서와 성호경, 그리고 생활속에 등장하는 성서를 비유로 드는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그들의 정서를 알 수 있었고 저자가 좋아하는 월든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사실 월든을 단순히 목가적인 삶, 미니얼리즘 측면에서만 보면 안되는 것이 순수한 노동과 장소는 전원일지라도 타인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사회성을 중요시하는 부분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되는데 이런 부분들이 자연스럽게 녹여져 있다는 점에서도 해당 책을 읽었던 사람이라면 함께 봐도 좋은 부분이 있었다.



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인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소는 1만 500년 가까이 인류의 동반자였기 때문이다.  29쪽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 '소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소를 기르니까 당연히 육식을 찬성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소는 가축이라는 점에서 부인할 수 없고, 소를 먹는 식생활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라 몇 만년의 역사로 이어진다. 안타까운 것은 저자가 소와 관련된 책을 찾으려 했을 때 관련 자료가 없었던 만큼 우리는 먹는 소와 먹으면 안되는 이유에 대해서만 지나치게 생각해왔던 것은 아닐까 싶다. 소를 생각한다기보다는 자연을 위해서 혹은 내 몸, 결국 인간 자신을 위해 먹었던 소를 이제는 이유는 같지만 연구결과에 따라 먹지 말아야 할 소로 판단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부분이다. 또한 농장이 배경이다보니 글의 시작이 그랬던 것처럼 생명의 숭고함을 여러 군데에서 느낄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내 가족에 대한 애정과 소중함도 베어있다는 점이 정말 좋았다. '소를 생각한다'는 다른 의미에서 '나와 내 가족을 생각한다'와 연결되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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