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의 권유
이중재 지음 / 토네이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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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배우고 싶거나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은 오프라인 강의에 비해 비교적 시간관리가 자유로운 온라인 강좌가 인기있다 싶더니 요즘은 너나 할 것 없이 독학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선 독학이란 것에 명확한 기준이 무엇일까. 오프라인 강좌를 듣지 않고 집에서 온라인 동영상을 보는 것 까지는 독학일까? 아님 타인의 강의를 들었으니 독학이 아니게 되는것인가? 참고도서를 구매해서 공부하는 것 까지가 독학인가? 사전적의미의 독학의 의미는 [명사] 스승이 없이, 또는 학교에 다니지 아니하고 혼자서 공부함(네이버 사전 참조)을 말한다. 내 판단에는 오프라인 수업을 제외한 모든 것이 독학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하지만 방송통신대의 경우는 어쨌든 스승도 계시고 오프라인 수업은 아니지만 어쨌든 학생증도 발급되고 등록금도 납부하니 엄연한 의미에서 독학은 아닌 것이다. 독학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떠들게 되는 것은 책, 독학의 권유에 대해 내가 기대했던 바를 조금도 얻어내지 못했기에 나의 기대가 잘못된 것이었는지를 자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바는 틀리지 않았고 그렇다면 나는 '독학의 권유'를 통해 얻은게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알파벳도 모르는 전직운동선수. 4년만에 사법고시 패스. 법무사 시험은 수석으로 합격. 저자 이중재가 독학을 통해 이뤄놓은 것이다. 놀랍고 대단하고 박수쳐주고 싶은 이력이다. 대부분의 고시생들이 동강을 제외하고는 고시촌에 앉아 '독학'하는 것은 알지만 어찌되었던 이전에 그가 쌓아놓은 베이스가 다른 이들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다는 점을 두고 본다면 그는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분명 승자임에 틀림없다. 이런 그가 독학의 권유라는 책이 아니라 수기에 가까운 성공담을 위주로 글을 썼다면 더 감동했을 것이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그래 나도 더 열심히 공부하자라는 생각을 갖게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까지 나는 저자에게 실망하고 왜 하필 그가 '독학'을 책의 타이틀과 주제로 삼았는지 의아했다. 권유를 하기 위해서는 방법론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에는 자신만의 방법만 가득하다. 그는 교육자도 아니고 공교육을 포함 사교육등에 길들여진 일반적인 사람들의 오랜 습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그런 상황이 아니었음을 불리한 조건이었다는 것만 강조할 뿐 반대로 길들여져 있던 보통 독자에게 공감할 만한 방법은 제시해주고 있지 못하다. 그나마 공감할 수 있거나 도움이 될 만한 방법 또한 이미 이전에 자신들의 입을 통한 책이나 강연을 통해 익히 들어온 이야기 뿐이었다. 뿐인가. 몇가지 그가 제안했던 방법에서는 공감은 커녕 저자가 일반적인 직장인들의 일과를 전혀 모르고 있는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시간활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직장에서 밥먹으면서 같은 뜻을 가진 이와 함께 대화를 나누듯 공부법을 나누고 자신이 공부했던 내용을 반복적으로 상기시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퇴근해서 집에 올 경우 혼자사는 사람들은 벽보고 대화를 하면서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소리내어 중얼거리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된다. 저자가 아침형보다 올빼미형에 가까워 시간관리를 변경한 것처럼 직장인들도 억지스레 아침형이 되는것이지 결코 되고 싶어 되는경우는 드물다. 7시에는 일어나서 출근을 해야 월급을 받을 수 있고 독학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시하는 방법을 가지고 조목조목 반박하다 보니 책을 읽고 있는 것인지 저자의 성공에 대해 투기하고 비난하는 못난 인간이 되어가는건 아닌지 솔직히 내 자신이 안쓰러웠다.

질투일지도 모르겠다.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서 공부했던 그에게, 그를 믿고 따라준 가족들에게, 어찌되었든 4년만에 사법고시를 패스하며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그가 너무 부럽고 대학을 졸업하고 몇년 째 독학사 시험에 응시하고자 하면서도 때마다 이런저런 사유로 혹은 핑계를 대며 하지 못했던 내 자신을 책망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책에서 배운게 있다면 아마도 그것일 것이다. 나의 이런 다소 감정적인 비평아닌 부정적인 시선이 역시나 내가 저자가 강조하는 자신을 이겨내지 못하고, 환경만 탓하면서 절실한 목표를 향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게 만들어 준 것, 내가 독학의 권유를 읽고 배운것은 독학의 대한 방법론이나 학구열이 아닌 바로 그것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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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독학의 권유 - 이중재 : 반복 실행의 권유
    from 신민식 독서노트 2011-11-16 23:55 
    독학의 권유 - 이중재 지음/토네이도 합격 수기는 A4 한 장이든 책 한 권 분량이든 '동화'다. 나는 이렇게 저렇게 어렵게 힘들게 가까스로 공부해서 마침내 합격했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다. 반드시 그렇게 끝난다. 법정에 들어선 변호사는 사법 제도 자체의 모순에 의문을 제기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모든 합격 수기는 이렇게 쓰는 것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 만약 합격한 후에 사랑하진 않지만 돈만 보고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자신의 법률회사는 의뢰가 없어..
 
 
 
아이린 - 어느 기지촌 소녀의 사랑이야기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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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이 지났다. 대학 재학시절 사회문제론 강의시간에 소설 아이린의 소재가 되었던 윤금이씨 사건을 접한 후 나는 발표주제로 삼았었다. 같은 사건을 두고 학생이었던 내가 할 수 있는건 해당 강의시간에 앉아있던 80여명의 학부생들을 상대로 그저 '현실 바로 알기'정도에서 그쳐야 했고 작가 이재익은 전 국민들을 상대로 문학적 장치를 이용해서 덜 잔인하게 그렇지만 더 오래 뇌리에 남을 수 있도록 재구성 한 것이다.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난 발표이후 아에 그 사건을 덮어두려고 애썼기 때문이다. 너무 괴로웠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당시에 내 모습에 자괴감만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내가 저자처럼 소설로 써볼 생각을 했었더라면, 문학적 재능여부를 떠나서 그럴려고 노력만 했었더라면 현재까지도 일어나고 있는 불합리한 수많은 사건의 판결들을 조금 바꿔놓을 수 있었을까? 문제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과 피해자 대다수가 소수자란 이유로 제대로 보상은 커녕 가해자들에게 제대로 된 형을 내릴 수 없다는 것에 있다고 본다. 이런 시선으로 이 책을 읽게 될 것이 두려워 읽기 전에 많이 고심했었다. 읽을까? 말까? 내 선택은 보시다시피 전자였다.

 

이야기의 시작은 윤금이씨의 사건을 가상으로 재현한 듯한 장면에서 그녀를 사모해왔던 소년의 독백이다. 나중에 이 소년이 자라 어느 누가 되었는지는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밝힐 수가 없다. 파주 미소속 부대 캠프 험프리스에 카투사 신병들이 들어온다. 배경이 된 캠프 험프리스는 저자가 실제 카투사로 복무했던 곳이라니 세월이 흘렀어도 큰 변화가 없는 특정장소라는 점을 미루어 거의 흡사하게 그려냈다는 현실감을 느낄 수 있다. 양공주였던 엄마와 그런 엄마를 비난하면서도 닮아가는 누나, 그로인해 무조건 적인 성공만이 살길이라고 믿는 정태, 그와 동기란 것만 빼고는 자라온 환경이나 성격이 밝은 민성 그리고 그둘보다 먼저 입대한 승훈 등의 세사람의 카투사와 승훈의 절친 코트니, 이들의 상관 제니 마지막으로 정태를 비롯 한국이란 나라 자체를 혐오하는 마르끼즈 등이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룬다. 물론 소설의 타이틀이자 정태와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혜주-아이린이 주요인물이다. 줄거리를 대략 적으로 소개하자면 카투사와 미군들 사이에 일어나는 작은 마찰, 한국인이 아닌 미국을 비롯 해외의 보통 시민들의 시각으로 바라봤을 때의 언제 전쟁이 발발할지 모르는 종전이 아닌 휴전 국가인 한국의 모습, 그리고 나라를 위한 지키기 위해 주둔해 있는 미군의 본 모습과 그들 안에 끊임없이 생존하는 무법천지의 모습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핵심 이야기는 혜주를 그녀의 기둥서방인 로드리게즈로 부터 지키려는 정태의 모습이 그려진다. 한국의 절제되지 않는 그저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이유로 쉽게 몸을 허락하는 일부의 좋지 않은 클러버들과 그들의 문화, 어리고 부족했기에 저질렀던 젊은 시절의 악몽으로 인한 트라우마 까지 이야기는 단순하면서도 인간이 갖게 되는 감정의 여러갈래를 다루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초반에 중심이 되었던 사건이라던가 양공주들의 애환보다 오히려 정태와 혜주사이에 일어날 암울한 미래에 더 마음이 쓰였다. 이상했다. 나란 인간이 지금껏 책을 보아오면서 지나치게 사건을 확대시키거나 옆길로 빠져나가 허우적거리던 때와는 달리 오히려 소설의 등장인물들의 사건에 왜그리 목메이고 있는지를 몰랐다. 그러면서도 늘 하던 습관, 뒷페이지부터 보기도 하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았다. 미리 알고 볼 수가 없었다. 그들의 미래가 어떤지 보고나면 그 이후로 이 책을 더는 읽을 수 없을 것 같아 그냥 그대로 불안해하며 조바심 치며 읽어만 갔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결말은 내가 원하는 딱 그 정도의 선을 지켜주었다. 작가에게 이런 이유로 감사해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내게 별스런 독서행위를 하게 하고 또 그만큼 유난스러울 정도로 감정적이게 만든 소설 아이린은 때문에 쉽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추천할 수 없는 것과 읽기를 원하지 않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이린을 읽으면서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계속 떠올랐다. 그 영화는 영화자체에 대한 비평보다는 일단 많은 사람들이 봐주기를 바랬던 내용이었다. 픽션이라고 감독이 말해도 분명 그것은 논핀셕이었다. 아이린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100%픽션이길 바라지만 논픽션에 가까운 이책을 많은 이들이 꼭 읽어봐주길, 그런 내 바람이 이 리뷰에 실려져 있길 내가 바라는건 이마음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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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 앤 새디 vol.1 - 마린블루스 정철연의 미치도록 재미난 생활툰 마조 앤 새디 1
정철연 지음 / 예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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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게군의 웹페이지를 매일 같이 들락날락 거리며 그(?)와 선인장의 러블리한 스토리와 친구들과의 엽기천만한 내용을 보면서 코코아를 홀짝 거리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년이나 지났다. 차마 몇년인지는 새디양이 그러하듯 나도 밝힐 수 없다고는 해도 결국 포스팅 몇개만 찾아보면 알게될 것을 뭐 큰 비밀인 것처럼;;;

 

마조앤새디는 성게군과 그녀의 아리따운 아내의 새로운 별명이다. 참 그들과 어울리는 닉아닌가. 라고 적으면서도 벌써 등골이 오싹해진다. 만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허튼소리를 했다가는 새디양이 바로 뒤에서 야구방망이를 위아래로 팅기면서 눈을 찡긋거릴 것 만 같아. '긴장 좀 허지' 하면서 말이다. 총66개의 큰 에디소드 안에 많게는 4개 이상의 작은 에피소드가 곁들어진 구성으로 그 어느 페이지 하나 웃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다. 특히 오랜기간 혹은 함께 살아가는 커플들이나 신혼부부들이라면 그들의 이야기가 곧 우리의 이야기임을 부정할 수 없을정도로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특히 여전히 이해불가능한 피규어와 토이를 모으는 마조군의 변함없는 모습과 주부생활 3년차에 뼈속까지 100000% 아줌마스러운 모습을 갖게 된 마조의 모습은 애처롭다가도 내 남자가 아닌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때도 있었다. 살찐다며 다이어트 하는 새디님(?)의 실물은 어찌 그리 고운지 진짜 길가다 만나면 나보다 언니라고는 상상 못할 것 같다. 민낯을 못본 관계로 동안인지 어떤지의 판단은 우주별에게 맡기도 마조와 새디의 일상은 우리와 다르지 않게, 그러면서도 즐거운 일상으로 다가온다.



 

이전에 읽었던 안나리사의 가족에서 보았던 결혼생활이 동화속에 등장하는 이상향이라면 마조앤새디 만화속에 등장하는 그들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으면서도 쉽지 않은 삶의 즐거움을 갖게 해준다. 경제적으로 완벽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당장 먹을 밥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치맥에 열광하고 다이어트에 목숨걸고 때로는 명함한장에 애착을 보이는 등에 모습이 토닥토닥 해주고 싶은 현재의 나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감성에 치우칠 때면 등장하는 새디님의 폭풍 자학개그(정말 많이 웃었다. 눈물흐를 만큼. 아직도 웃기다. 말투가 이런건 웃음을 참기 위해서다. 어디선가 달려올 새디님이 무서워서 라고는 말못해!)는 두고두고 기억이 날 것 같다.

 

올컬러 책에 간간이 사진도 실려있고 살림노하우는 물론 커플간의 행동강령 까지 배울 수 있는 재미난 카툰 마조앤 새디! 블로그도 웹툰도 자주자주 들여다봐야겠다. 그동안 사는게 뭐 그리 바쁘다고 성게군이 마조로 변한것을 알면서도 인사도 못했다. 너무 잘 어울리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그 모습에서 우리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요~ 라는 가증으니 가식보다는 너도 함께 힘내서 웃자라는 동지의식이 느껴져서 참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만화 정말 웃겨서 좋다. 간만에 큰 웃음 주신 마조앤새디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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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 제21호 - Summer, 2011
아시아 편집부 엮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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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는 총 몇 개국의 국가가 포함되어 있을까? 총 48개국이다. 아시아 문예 계간지 ASIA에서 그동안 소개가 된 국가는 그 중 42개국이다. 어찌보면 지난 5년간 이번 호를 제외한 20호의 판권 중에 미처 실리지 못한 나라가 있었다는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편집인의 글을 차근차근 읽노라면 아쉬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41개국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던 것에 고마운 마음과 노고에 응원을 해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현 편집장의 의견은 둘째치고라도 선배 편집인들의 의의를 높이 살만했다. 한국에서 발행하는 만큼 한국의 문학을 좀 더 세계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골고루 편성하려고 애썼다는 점과 한국문학의 세계화 이전에 다양한 문학작품이 어떤 목적을 가졌던간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자는 것이 그랬다. 이런 모토가 있었기에 치우침 없이 한국에서도 잘 알지 못하거나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던 아시아 여러나라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던 장이 마련되었던 것 같다.

 

이번호 특집은 아랍작가의 눈으로 보는 재스민 혁명의 안과 밖이었다. 리비아 시민들의 혁명은 뉴스에서 연일 보도 될 만큼 국내 뿐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사건이었다. 결과와 상관없이 리비아 인들이 보여준 평화를 향해 투쟁하는 모습은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주변국들은 물론 못마땅한 정부와 무조건적인 진압에 시달렸던 국가의 시민들이라면 남일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A.J.토머스라는 학자의 눈에 비쳐졌던 리비아인들의 모습이 그러했던 것 처럼 누가 그들에게 그런 결단력과 단결의 힘이 존재할 거라 짐작이나 했을까. 부족국가에서 시작되어 게으르고 그저 자는것과 먹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줄 알았던 그들에게도 인간이 가지는 자유의사와 생존권은 그들이 인간이기에 당연히 주장할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A.J.토머스의 시선이 리비아인들의 긍정적인 모습과 평화적 혁명에 모습이었다면 파크리 살레에 의해 쓰여진 혁명의 모습은 좀더 현실적이고 역사속의 혁명들이 가지는 학살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권력에 의해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사상가들과 무고한 시민들의 잔혹한 죽음은 자유를 얻기 위해 희생된 사람들의 모습을 한 걸음 더 가까이 조명했다. 이어진 살와 바크르는 이집트 여성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 한사람인 만큼 여성의 입장과 문학가의 입장에서 혁명을 바라보았다. 혁명으로 얻어진 문화적 가치-여성의 지위의 하락과 문화적 참여 저조-의 새로운 탄생을 기뻐했으며 여성 뿐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p.55

타흐리르 혁명에서 새로운 것은 여성에 관련된 것만이 아니다.  타인을 존중하는 가치, 다양할 권리, 타인의 자유에 대한 이해, 가부장주의와 지나친 가족주의, 종교적 당파에서의 탈피 등도 혁명 시작 이래 처음부터 분명히 나타난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위에 열거된 아랍작가들의 눈으로 본 혁명의 모습은 문화인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이희수씨의 글로 최종 정리되는데 이 부분은 문학을 떠나서 중동 및 아랍과 관련 사회문제와 문화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정리가 잘 되어있었다. 역사적 흐름은 물론 이슬람 문화와 근세사와 아랍 민주화 혁명과 미래 청사진을 그리며 미국과 서구 중심의 가치관과 정보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가 인식의 주체가 되어 중동 이슬람 문화를 변형없이 있는 그대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이 혁명만큼이나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이 후에 안도현이 만난 이라크 작가 사무엘 시몬과의 대담 역시 흥미로웠는데 특히 헐리우드키드라는 키워드의 언급에 관련된 질답이 재밌었다. 국내에 할리우드키드의 생애라는 소설과 영화화한 작품이 있기 때문인지 몰라도 헐리웃 영화의 파급력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계기도 되었고 반미에 대한 양국 시민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었던 것도 흥미로웠다. 볼록렌즈 챕터에 실렸던 아랍문학의 아버지 나기브 마푸즈라와 가말 알 기타니와의 대화도 양쪽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하나하나 알아 가는 과정이 좋았다. 앞의 대담과 볼록렌즈가 끝나면 드디어 문예지 답게 시와 단편소설 장르의 창작물을 만날 수 있게 되는데 너무 오랜만에 문예지의 실린 작품들을 만나서인지 몇번을 반복해서 읽었는데 처음에는 개인적인 난해함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고 두번째는 작가의 시선으로 읽기 위해, 마지막 세번째 혹은 그이상 반복하여 읽은 것은 바로 작품이 실린 ASIA를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서문에 편집장의 이야기를 질리도록(반복하여 읽었음을 표현했을 뿐이다:))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들 작품 중에서 사우키 사피그의 '존재자의 갓길'이란 시가 유독 맘이 쓰였다.




Chapter 4

p.218
 
but some of them fled from my hand

All that is left are mirrors

covered with dust

because of remains

which were once called a face

                                  -The sidewalk of beings 中 에서-

시와 단편소설의 챕터를 지나면 창간 5주년 기념리뷰 브루스 풀턴의 '<<아시아>>5년을 돌아보며'가 실렸다. 나처럼 처음 아시아를 읽게 되는 독자라면 뭐랄까 횡재라도 한 기분이다. 이전 판권에도 이와 비슷한 기념리뷰가 해마다 혹은 3년 정도의 주기로 실렸을지도 모르지만 미처 다 읽지 못했던 지난 기사들과 작품들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외 현 스탠포드 대 사회학과 교수이자 동 대학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 신기욱씨의 기고문, 아시아 문화의 세계화 -'아시아' 또는 '아시아 문화'란?-글이 실려있는데 아시아라는 지역적 개념이나 문화가 서양-동서양이라는 정의 구분역시 엄연한 의미에 정석적 개념은 아니지만-에 의해 정의되고 있는 문제와 로인해 우리가 가져야 할 문제의식등을 거론하였다. 마지막 챕터는 방민호씨의 논문 '경성 모더니즘'의 개념 구성에 관하여가 실렸다.

 

한권의 잡지를 이토록 오랜 시간 붙들고 있어보긴 또 처음이었다. 아시아 문예지라고 해도 거듭 언급하는 것 처럼 지역적 한계나 우리가 흔히 접해오던 국가의 작품을 만난 것도 아닌데다 기고문, 기념리뷰, 거기에 논문까지 눈으로 한번 훑어보고 덮을만한 챕터가 단 한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거나 속도가 빠르게 읽히고 버려지는 잡지에 한계를 뛰어넘은 방대하면서 깊이있는 내용을 한 편의 리뷰안에 많이 담으려다 보니 오히려 챕터별 분량의 형평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치만 중요한 것은 관련 문예지나 작품을 여러권 본듯한 풍부한 감성이나 다양성은 둘째치고라도 무언가 집중하여 정독하는 기분을 간만에 느끼고, 앎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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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버먼의 자본론 - 과연, 자본주의의 종말은 오는가
리오 휴버먼 지음, 김영배 옮김 / 어바웃어북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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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차이점을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경제학이나 사회학을 전공으로 한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대게의 경우 미국을 포함 선진국은 자본주의이고 이미 체제가 변경되거나 소멸, 혹은 나라에 反하는 경제이론이 사회주의라고 아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명확하게 사회주의에 대해 알지 못했고 행인지 불행인지 좋고 나쁨도 없었다. 그저 아직까지 관련 마르크스를 비롯 사회주의 자들의 원서를 대출했을 경우 미국의 도서관에서는 그 대출기록이 남겨진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쉽게 말해 알려고 하기보다는 그저 자본주의와는 모든 것이 반대, 내 노동력과는 별개로 균등한 분배로 이어지며 그 속에서도 엄연히 불평등이 존재하는 이론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명제나 이론에 있어 알면서 반대하는 것과 모르면서 반대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그런점에서 휴버먼의 자본론은 반드시 관련 학문의 입문서적으로 봐 둘 필요가 있다고 느껴진다. 저자 역시 서문과 후기에 밝히는 것처럼 이 책은 전문가를 위한 어렵고 골치아픈 서적이 아니라 비전문가, 이론에 대해 좀 더 쉽고 명확하게 알려는 초보자들을 위한 책이다.
 

우선 저자가 사회주의에 대해 말하는 바를 자본주의 서적이나 해당 시대의 자본주의자들의 연설 등을 통해 보수주의자들의 의견을 토대로 했다는 것이 주목할 점이다. 이것은 자본가들 스스로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불합리와 잘못된 상황을 인정하는 셈이다.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나라인 미국의 4대 대통령 조차 심각할 만큼 급격하게 차이가 벌어지는 분배에 관해 이야기 했다. 19의 챕터로 나누어 자본주의에 대해 설명했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아주 간단하다. 자본가와 노동계급의 합일화 될 수 없는 입장과 의견차이인 것이다. 자본가는 권력과 부를 최소한의 투자로 극대화 시키길 원한다. 반대로 노동계급은 더 많은 임금과 보장내역이 더 많아지길 바라기 때문에 양측간의 대립은 심화된다. 노동계급을 이용하여 이윤을 남기는 자본가들의 부가 축적될 수록 생산하는 노동계급의 경제사정도 좋아져야 하는데 오히려 더 나빠지는 것 때문에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문제를 낳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자신이 자본가 계층인지 노동계층인지, 혹은 중간 계층이라도 되는지 등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사항들이 등장한다. 그럴 때마다 좌절하게 된다. 사회주의에 항변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본가들에 대한 사실적인 상황고백을 통한 것이라 그 좌절은 더욱더 쓸 수 밖에 없다. 그것도 경제서적이나 관련 회의를 통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출판되는 인문학자들의 시, 희극배우의 드라마 속에서도 여실히 자본주의의 폐해를 보여준다. 물론 자본주의가 그렇다고 해서 완벽하게 잘못된 이론이고 그에 반하는 것이 반드시 사회주의는 아니다. 이상적 사회주의의 경우도 몽상가들에 유토피아에 지나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가 정확하게 알아야 할 것은 '과학적 사회주의'에 대한 부분이다. 바로 과학적 사회주의에 대한 입장에서 비판한 자본주의에 대한 내용이 바로 이 책안에 들어있는 것이다.

 

책을 통해 과학적사회주의를 통한 자본주의를 분석할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된 이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조건적인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도, 반대로 사회주의자들의 추종도 아니다. 제대로 알고 비판하는 것, 그리고 현명하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속에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저자가 진정원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책을 저술한 까닭이 아닐까 싶다.

 



 

p.26 칼샌드버그<민중이여, 그렇다> 인용

 

"나는 그 사람을 해고했지.

그가  싫었기 때문이 아니라

나한테 그런 권한이 있었기 때문이지."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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