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이야기 - 지만지고전천줄 58
작자 미상, 이형식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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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 번 장기왕에 이어 이번에도 가볍지만 깊은 사고를 갖게 하는 작품을 고르다보니 프랑스 사제들과 어려웠던 당시시대를 풍자한 여우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대략의 작품 설명으로는 '여우'의 시각에서 혹은 꾀 많고 이기적인 여우를 빗대어 풍자한 이야기인줄로만 여겨졌는데 막상 읽어보니 서문에 밝힌 것 처럼 지나치게 외설스러운 부분이 많아 그런 적나라한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 내게는 2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던 독서시간이 다소 버겁기까지 했다. 상상하면 잔인한 장면도 꽤 많아 아동은 물론 나처럼 심리상태가 다소 불안정하다고 스스로 느끼는 독자분들은 주의가 필요하다.

대략의 내용은 '르나르'라는 여우가 벌이는 못된 짓에 대한 열거다. 처음에는 이웃 늑대 이장그랭을 괴롭히는 것으로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아에 사자노블을 밀어내고 황제에 자리에 오르기 까지 한다. 하지만 그것이 어찌 르나르만의 힘을 가능한것일까. 르나르에게 괴롭힘을 거듭 당하면서도 여전히 욕심에 눈먼 이장그랭과 남을 괴롭히고 탓하길 좋아하는 띠베르, 자신의 과오는 전혀 생각지 않고 타인의 잘못만 확대해석 하는 띠에슬랭 등이 르나르의 못된 짓을 도와준다. 물론 그들의 최후는 여지없이 목숨을 잃거나 차라리 죽음의 상태가 더 나을 정도의 불쾌한 결말을 낳는다.

처음에는 참 어리석게도 르나르에게 당하고만 있는 동물들이 만화 톰과 제리에서 제리에게 늘 당하는 톰을 떠올리게 해 안타까웠는데 책을 읽다보면 결국 제 욕심에 그리 되는 것을 보고 기가막히고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이 작품의 저자는 정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으나 작품이 쓰여진 시기와 학파에 대해서는 대략의 짐작이 가능한데 그 오래전 기근시대의 프랑스사회가 물질만능이라고 버젓이 말하는 요즘에도 어찌 이렇게나 잘 맞아떨어지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르나르를 욕하던 것에서 마지막에는 누가 누굴 욕할 수 있겠는가 싶은 생각만 들었다.

앞서 말한 것 처럼 지나치게 외설스럽거나 잔인한 묘사만 없다면 더 많은 이들이 읽을 수 있었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았다. 물론 달리 생각해보면 그렇게 여과없이 쓸 수 있었기에 풍자소설이 아니였겠는가 싶기도 하다. 외설스럽다고, 잔인하다고 말하는 내가 지나치게 속세에 물들여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을 탓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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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 철학 이야기 100 - 무위자연의 철학
왕혜천 편저자, 송춘남.송종서 옮김 / 서책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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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9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고 자신을 외부 사물과 잘 조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더 나아가 천지와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고, 그리하여 진정으로 도를 깨칠 수 있다."  

 

동양철학 이야기 시리즈 4번째는 도가철학 이야기로 다른 때보다 짧은 기간에 읽고서도 대략의 흐름이 보이는 것 처럼 느껴졌다. 이전에 알던 도가철학이라고는 장자와 나비가 전부였다. 물론 유교의 경우도 공자 왈, 맹자 왈이 전부였고 불교나 선교 사상은 그저 종교로만 알고있던 것에 비해 미약하게 나마 앎의 깊이가 깊어졌지만 도가는 그보다 실로 '깨달음'이라는게 느껴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우선 100가지 이야기 중에 가장 와닿았던 것은 역시나 겁 많고 두려움 많은 나를 염두해 두고 고른 듯한 '땅과 하늘이 무너질까 염려하여 걱정을 달고사는 이'에 대한 이야기 였다. 그의 친구가 그를 안타깝게 여기고 달래주지만 열자의 의하면 결국 땅이든 하늘이든 우리의 권한 밖의 문제라 아에 근심치 아니 하는 것이 맞다고 말해준다. 이것은 바로 앞일은 모르는 우리가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 사서 걱정하는 것에 주의를 주고 해답을 제시하는 자기계발서나 심리학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아에 생각지 말라에 가깝기에 도가는 '無'와 다름이 없는 것이다. 아내의 죽음과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태연하게 노래를 부르거나 술을 마셨던 장자와 완자의 경우도 그들이 죽음앞에서 마음을 상해하며 곡을 했다면 그동안 주장해왔던 것 과는 달리 속세에 인연과 속세의 일에 얽매였음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때문에 그들은 오히려 천명을 받아들이고 속세의 일에서 벗어나 그들의 죽음에 연연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해를 하면서도 참 대단하다고 밖에는 할말이 없었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유교 이야기에서 등장했던 효심 깊은 왕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속세에 의존하는 셈이 되는 듯 싶었다. 이런 비교자체가 도가 철학으로 판단하면 무용지물이 되긴 하지만 말이다.

 

도가철학은 이전의 철학이야기에 비해 쉽게 읽혔다. 앞서 말한 것 처럼 고개가 끄덕여지고 대략 깨달음도 있었다. 하지만 책을 막상 덮고나니 무엇을 어떻게 깨달았다고 해야하는지 이를 표현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여겨졌다. 다만 자연의 섭리를 거스리지 않는 다는 점에서는 지금까지의 시리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소 다르긴 해도 동양철학의 핵심이 바로 자연에 있음을 부정할 순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계속 깨달아야 하며 배워야 하는 다소 인위적인 서양철학과 비교했을 때 그 시작과 과정이 다르고 깨달음의 이후가 달라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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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의 연애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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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 한 문장으로 표현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소설, 이현의 연애를 읽기 전 까지 나는 단 한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나는 책을 좋아하기에 얕지도 깊지도 않은 지식을 가졌으며, 그로 인해 그대가 생각 하는 것 보다 괜찮거나 혹은 무서운 사람입니다."라고 말해왔었습니다. 더불어 영혼을 기록할 때의 이진과 그렇지 않을 때의 이진의 표정과 심리상태가 달라지듯 책을 읽을 때와 나의 표정과 심리상태도 다릅니다. 도서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가 출간되었을 때 흠칫하며 옆에 서있던 연인의 눈치를 보았던 까닭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영혼을 기록하는 이진의 삶이 평범을 완전히 벗어나 고통과 같았다는 것을 겪어보지 않고도 알 수 있지만 책을 좋아하는 제 삶도 그리 평범하거나 고통이 없지는 않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고통이 영혼을 기록하는 고통에 비해 덜 한 까닭에 제게서 살구즙 향을 맡을 수 없으며 셈을 잘 하지 못해도 그저 얼굴한번 보기위해 물건을 사줄 만큼 이성의 넋을 뺏는 아리따운 미모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진의 삶이 부럽기도 하다가 이내 사랑하는 사람과 '감정'을 나누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반드시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거부'할 수 있는 나의 삶이 나은 듯도 싶은 감정의 교차를 여러번  느꼈습니다. 더불어 이진이 기록하는 영혼들의 이야기 속에 빠져들면 들수록 힘겹고 고단하기만 했던 내 삶이 위로를 받는다고 느끼곤 했었는데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 영혼을 기록하는 이진과 같은 기록자의 시선으로는 이런 나의 느낌도 거짓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반드시 진실만이 기록된다는 전제하에 그렇습니다. 부총리의 요청에 의해 기록을 보았던 이현이 그것을 진실이라고 말해왔던 이진의 말을 믿은 것 처럼말이죠. 이현이 약속된 금기나 다름 없던 노트를 꺼내어 읽고, 기록된 페이지를 찢어버린 것 역시 이진의 말을 믿었던 까닭이니까요. 

 

그 사건으로 이진이 죽고 난 뒤에 이현은 그녀의 삶을 기록합니다. 표면적으로 그로 인해 이진이 죽긴 했지만 영혼을 기록하는 데 있어 이현의 역할은 반드시 필요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진의 엄마가 이세 공을 통해 경제적으로 안정된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 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금기를 어긴 이현 때문에 이진이 죽었던걸까요. 배신에 의한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이진이 이현을 사랑했기 때문이었을거라 생각합니다. 마음이 없는 여인을 사랑했고, 그 사랑으로 그 여인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고 믿었던 어리석음이 죄라서가 아닐겁니다. 자신의 숙명과 같은 업의 균형을 깨뜨린 이현을 용서하자면 기록되어야 할 수 많은 영혼으로 부터 스스로가 괴롭힘을 당하게 되고 하루종일 머리가 복잡해 셈도 할 수 없었던 그녀이기에 차후에는 그를 사랑하는 그 마음마저 잃을것이 두려워 스스로가 소멸하는 쪽을 택했던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소멸되어도 그녀가 말했던 것 처럼 기록으로 인해 영원히 존재하고, 다른 사람이나 또 다른 기록자가 아닌 자신을 사랑했던 이현을 통해 기록됨으로써 그녀를 사랑했던 이현도, 그녀의 어미를 사랑했던 이세 공도 모두 분명 존재했던 '사실'임을 모두에게 말할 수 있었을테니까요. 물론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접하게 된 독자들도 어설프게 정의되어왔던 사랑과 삶에 대한 진정성에 대해 배웠거나 깨닫게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단 한 문장으로 표현되지 않는 사람 이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나서 아직은 그럴 수 없지만 앞으로는 단 한 문장으로 표현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상대가 누구인지 상관없이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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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나이가 좋다 - 꿈이 있어 아름다운 88세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
이기옥 지음 / 푸르메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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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147  
 
하느님은 우리의 욕망을 어디까지 용서해주실까?

일 년에 두 번 피는 꽃에게 나는 많은 질문을 던져본다.
 
     

리뷰를 적는 것 보다 타이틀을 정하는 데에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 '나는 내 나이가 좋다'도 그 중에 포함될 줄은 미처 몰랐다. 결국 그 어떤 타이틀에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서명 그대로를 적어버렸다. 연세 드신 분들의 Bravo my life!로 정리되는 책을 이전에 읽었지만 그 때는 내년이면 예순이 되시는 엄마와 같은 또래분들의 이야기라 그저 즐겁고 신나고 엄마도 한번 이렇게 살아봐! 하며 나 혼자 신나고 했는데 여든 여덟이 되시는 어르신의 글앞에서는 섣불리 공감이 된 다거나 이 분처럼 늙고 싶다라는 말도 나오질 않는다. 아흔이 넘게 살다가신 친할머니와 저자 이기옥 할머님 보다는 아직 '젊으신' 외할머니도 계시지만  어째서인지 전혀 딴 세상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기분에 까닭모를 죄송함만 깊어졌다.
 
88세의 삶이란 것은 어떤 삶일까.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와 김애랑 작가의 '두근 두근 내인생'에서 평범하게 나이들지 않는 그 두사람의 어설픈 노년기와 불행한 삶의 한켠을 보긴했어도 진짜 나이듦에 대한 생각이 솔직히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아이들에게 줄 밥상을 손수 차리고 멋들어지진 않아도 입을 수 있는 옷을 내손으로 만드는 것은 지금도 쉽지 않은 일을 하시면서 행복을 느끼며 감사함을 느낀다는 이기옥 작가님의 글은 그야말로 따뜻하고 한글자 한글자 모두 감사하다고 고백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나이들어 가족들의 손이 그립다고, 몸이 이곳저곳 아프다고 적으면서도 한사코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도 만들고 불행하게도 만드는 것은 어느 누구도 아닌 자신의 마음가짐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오랜 깨달음은 그렇기에 송구하게도 맘에 와닿는다. 몸이 아팠던 시절 은연중에 그런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다. 나이들어 관절염이 생기고 다쳐서 아픈게 아니라 정말 기력이 약해져 거동이 힘들어질 때 아마 이런 상태가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때는 지금의 작가의 말처럼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힘겨움을 느낄 수 밖에 없고 생의 '마지막'을 위한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기에 아프다고 포기하면 그때 해야할 일을 몇 십년이 앞당겨 하게 되는 것 밖에 안되겠구나 싶었다.

 

병이 나는 것도 마음에 생채기가 생겨나는 것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중장년층에 에세이와는 무언가 다른 낮은 자세와 진정한 비움의 고백이 담긴 이 책을 나는 멀리두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침대 곁에 아주 가까운 그곳에 두고 마음의 못된 씨앗이 심어질 때면 꺼내봐야지. 내 노년의 삶이 이제와 노력한다고 저자의 모습같진 않게 되더라도 손 뿐 아니라 다른 모든 곳이 아이에 볼에 비추었을 때 흉악하게 보이지 않도록 열심히 나를 담금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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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을 읽을 권리 - 작품이, 당신의 삶에 말을 걸다
한윤정 지음 / 어바웃어북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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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다. 한 쪽 어깨에 걸쳐진 옷이 흘러내린 줄도 모르고 책에 빠져있는 모습은 언제봐도 묘하게 매력적이다. 이 책의 내용도 표지만큼이나 매력적이냐고 묻는다면 다소 모호한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꽤 진지하고 학술적인 저자 서문을 지나 펼쳐지는 명작들의 이야기는 분명 표지의 여인이 그러하듯 빠져들만한 내용이었다. 때문에 챕터 1,2를 읽을 때까지는 정말 재미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소개된 책들의 리스트를 체크하면서 그동안 읽었던 책들이 대다수 포함되어 있어 스스로의 독서량에 뿌듯함도 느껴졌다.원작소설과 영화를 비교하는 것에 더해 같은 주제를 두고 서로 다른 결말에 이르는 작품 비교도 흥미롭긴 했다.
크게 4개의 챕터로 구분지어 놓았지만 굳이 나누지 않아도 될 만큼 큰 변별력을 갖지 않는 비교분석은 책을 주제로 하는 블로거의 포스팅을 보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명작을 읽을 권리라는 대담한 타이틀 아래 포함되어진 내용치고는 아쉬운 작품이었다. 명작을 읽을 권리라는 것이 어짜피 독자에게 주어진 몫이라는 저자의 말에는 공감한다. 분명한 것은 단 하나다. 저자의 경우 작품을 바라볼 때 상당히 긍정적인 마인드와 그동안 쌓아놓은 해박한 지식을 바탕을 가졌다는 것이다. 같은 작품을 읽고서도 작품에 녹아든 역사적 배경과 저자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를 유추해서 '명작'을 읽었다는 기분을 스스로 갖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명작을 읽으면서도 보여지는 텍스트나 이미지외에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독자는 타인에 의한 명작외에는 읽을 기회를 스스로가 박탈하게 되는 것이다. 명작을 읽을 권리는 결국 그 어떤 권리이행에 앞서 책임과 의무를 가지는 것과 같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소개된 작품의 결말과 줄거리를 상세하게 소개한 까닭에 하나의 강연이나 리뷰로서의 점수는 높게 줄 수 있지만 막상 그 책을 읽고자 하는 마음은 사그라들었다. 내용을 너무 잘 알아버렸고 작가의 느낌이 마치 내 느낌이 된 것 같아 고정된 시선으로 작품을 봐야할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소개된 작품들도 이전에 다른 저자들에 의해 여러번 언급되었던 작품이라 친숙한 점이 다소 독이 되었다. 이미 많이 들어서 어느 누구보다 잘 설명할 수 있게 된 작품의 배경을 재탕한 듯했다. 재밌게 읽으면서도 뭔가 아쉬운 기분이 떠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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