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릅스베데의 풍경화가들 - 지만지고전천줄 176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안문영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8년 8월
절판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시인으로 더 많이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읽은 그의 작품은 모두 장르가 시는 아니었다. 첫 완독 작품은 그의 하나 뿐인 소설 '말테의 수기'였으며 두번재 작품은 바로 이 책, 보릅스베데의 풍경화가들로 5명의 화가들을 소개하고 풍경화에 대한 그의 애정과 나름의 정의를 담은 책이다. 하지만 시인으로서의 그의 필체는 이 책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풍경화 자체를 예찬하는 도입부부터 예술가를 소개하는 각 페이지마다 예술가의 화풍이나 그들이 보릅스베데로 들어오기 까지의 과정을 한편의 소설처럼 저술했다. 물론 말테의 수기역시 파리의 암울함과 부정적인 시선으로 담아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문장 문장이 너무도 감미롭고 시적이라 멜랑콜리 해졌다기 보다 읽고 난 후 리드미컬 해졌는데 이 책은 무작정 화구통을 들고나가 무엇이든 '풍경'이란 것을 두고 그려보고 싶게 만들었다.



머리말과 책의 마지막 끝맺음에서 릴케는 연이어 강조하는 바가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소개한 다섯 화가들에 대한 독자의 평을 지양하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아직 성숙되어가는 과정이며 이전의 그들이 현재(책이 쓰여질 당시)와 다른 모습이며 마찬가지로 미래에 이들의 모습 또한 달라질 것이기에 섣부른 판단은 옳지 않다는데 있다. 이부분은 비단 이들 뿐 아니라 읽고 있는 독자도 심지어 저술하는 작가 본인을 향한 못마땅한 시선들에게도 부탁 혹은 경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소개글을 읽다보면 아이러닉하게도 예술을 바라보는 경향은 다 다르기 때문에 토를 달아도 상관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데 릴케의 시적 묘사를 읽다보면 그가 창조해 낸 새로운 작품의 등장인물처럼 화가 자체가 하나의 작품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말테의 수기가 그러했듯 이 작품에서도 편지나 에세이 등에 담아두고픈 아포리즘 문구들이 즐비하다. 저자인 릴케 뿐 아니라 화가들이 기타 보고서나 학회지 그리고 그들 나름의 어(?)록 들이 화가가 안되었다면 문장가가 되었을 만큼 멋지기 때문이다. 보릅스베데의 풍경을 그리고 싶게 만드는 가장 멋진 문장은 프리츠 오버베크가 1895년 <만인을 위한 예술>지에 기고한 글 중 일부인 다음과 같다.



"은밀한 우울의 숨결이 풍경 위에 퍼져있다. -중략-

수로들은 밝게 빛나고 뱀처럼 꼬인 허벅지 모양의 수면 위로 조용히 떠가는 검은 돛배가 신비스럽게 땅을 가로질러 간다. 그 위에 하늘이 펼쳐져 있다. 보릅스베데의 하늘이..."






책에는 화가들의 이야기 뿐아니라 그들의 작품들도 많지는 않지만 수록되어 있고 무엇보다 애착의 정도일지는 몰라도 할당된 분량도 각각 다르다. 릴케가 소개하는 화가들의 묘사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기만의 시점에서 화가를 재해석 해보는 재미도 쏠쏠한 이 책을 여행중에 함께 할 만한 책을 찾는 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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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어디에 있는가
허영섭 지음 / 채륜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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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어디에 있는가 는 대만 역사의 겉흐름만 어설프게 알고 있던내게 꼭 필요한 책이었다. 불과 3년 전만해도 난 대만이라는 나라에 대해 작은 중국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정확하게 지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 나라인지 헷갈렸었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라는 타이틀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대만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심수준이나 사실여부에 대해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내가 그나마 대만에 대해 귀를 기울이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반한류 퍼포먼스나 지나칠만큼 폭력적인 반한 대만인들의 뉴스때문은 아니었다. 대만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수와 결혼한 친구때문이었다. 내가 그렇듯 주변에서 가장 많이 그녀에게 물었던 질문은 '대만은 중국거야? 아니야?'라는 질문이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만 역사는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중국은 별도의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고 이에 대부분의 국가 역시 중국의 손을 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이런 미묘하게 건드리기 어려운 부분을 마치 사실 정보만을 전달해주는 사전의 한 페이지처럼 알려준다. 어쩌면 대만과의 수교를 단절한 국가의 국민이기에 그런 까닭일 수도 있겠지만 제3자의 눈으로 조명하는 대만이었기에 진실성을 느끼게 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나라의 지난 100년사와 비슷한 길을 걸어왔음을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 역시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감정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고들 하면서 문화, 상품, 연예 등 전반적으로 그들의 영향권아래 놓여있음을 부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실제 대만에 방문해본 소감을 말하자면 중국과 일본사회를 반씩 나눠놓은 기분이 들만큼 일본스러운 점이 많이 묻어난다. 대만의 전통시장을 방문했을 때는 삭힌 두부 냄새에 코가 괴로워지다가 미니멀한 아이템이나 섬지방 특유의 가옥형태등을 보면 일본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정도였다. 장제스(장개석蔣介石)의 독재정치 아래 있었던 경우도 독재라는 점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대만을 하나의 '나라'로써 자리매김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 또한 우리와 닮아있다.

어떤 현상이나 사회, 혹은 국가의 역사를 바라볼 때 자국내에서 보면 보이지 않던 사실들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보면 길이 보일 때가 있다. 저자가 대만이 가지고 있는 지역감정, 중국과의 정치적 문제, 군사문제를 포함한 외교활동 등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대만국민의 힘과 능력에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고 지난 역사를 반추한 뒤 내린 결론치고는 아쉬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나라의 국민성이 가지는 힘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우고 느껴왔다. 결국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해주고픈 메시지는 대만이 어디에 있는지 만큼 중요한 사실, 우리 자신이 어디에 와있는지를 깊이 생각해보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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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과 강물
마광수 지음 / 책마루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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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교수이자 작가 마광수,

그는 정말 법이 나서야 할 만큼 혹은 타인에게 명백하게 피해를 주었다고 인정될 만한 나쁜짓을 했던걸까?

외증조할머니부터 내려온 죽음에 그늘이 그로 하여금 보통사람들보다 죽음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포함되어 있어 어찌보면 맹목적인 신앙생활을 할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는 태어나 단 한번도 종교, 신앙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에게 신앙이라는 것, 혹은 믿음의 발원지가 있다면 아마도 자연일거라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흥미롭고 즐거운 꺼리는 존재할 지 몰라도 목표지향적이라거나 계획을 갖고 실천하며 살아온적이 없는 사람이다. 교수라는 직업 역시 게으르고 초,중,고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방학이 맘에 들어 택한 격이니 엄연한 의미에서의 이상추구는 아니긴 하다. 한 없이 자유롭길 원했고 그렇게 되기 위한 일정의 책임을 갖고 살아온 그에게 '즐거운 사라'사건은 여러모로 스스로를 상처입은 존재로 인정하게 만들었다.



마광수의 장편소설 세월과 강물은 자전적 이야기가 많다고 해도 픽션의 구분이 잘 되지 않을 만큼 그의 삶과 닮아있다. 등장 인물이며 사건까지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독자로서는 알길이 없다. 나중에는 이 것은 픽션일까 아닐까 하는 의문마저 사라지고 차라리 맘편히 주인공이 이름도 마광수요, 그가 하는 말은 마광수가 아닌 '인물 마광수'의 이야기라고 남은 의심마저 버려지게 된다. 우습게도 이렇게 다 놓은 상태에서야 비로소 소설로서의 세월과 강물의 맛이 느껴졌다. 기자도 아닌 내가 왜 픽션여부를 논하며 힘겹게 읽으려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읽다보니 저자의 생각처럼 독자인 나 역시 어떤 목적이나 계획을 사는 것이 아니라 게으르고 기왕이면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충실한 상태로 마음편하게 받아들이는 것, 구분짓지 않는 그 상태가 되어갔다.


어린 시절 부터 최근에 세월과 강물을 쓰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책의 결말에 해당되는 판타지로 도피하여에서의 공주 '사라'와의 만남을 통해 아직까지도 픽션과 논픽션 사이에서 헷갈려하던 독자들마저 미련을 늦추거나 오히려 이전의 이야기 모두가 사실이고 이 사실을 소설인척 하기 위해 심어둔 장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즐거운 사라를 난 읽어본적이없다. 마광수의 작품은 전부 법이 단죄할 정도로 저속하고 야하다고만 생각해왔다. 어느정도 수위가 조절 되었겠지만 이전에 읽었던 책들과 비교했을 때 어떻다고 말하자니 조심스러워진다. 왜냐면 마광수 소설을 좋게 평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짜피 타인의 평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더이상 즐거운사라 안에 마광수라는 작가가 갇혀 지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사실이다. 그 속에 갇혀 있기에 그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담백하고 겸손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p.47
여러 시련을 겪을 때마다 내가 다행스럽다고 생각한 것은, 그래도 어쨌든 세월은 강물과같이 쉼없이 흘러간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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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아이에게 배운다 - 부모와 아이가 모두 행복한 엄마 성장 에세이
김혜형 글 그림 / 걷는나무 / 2011년 10월
품절


소설이나 드라마, 혹은 영화속에서 의젓하게 철없는 부모를 챙겨주는 아이의 모습은 언제봐도 대견스럽고 기특하다. 때로 지나치게 눈치를 보는 듯한 모습에는 또래의 어리숙함과 천진함을 상실한 것 같아 불편한 맘이 들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픈 엄마를 위해 죽을 끓여보겠다고 생쌀을 물에 넣고 휘적거리는 모습을 볼 때면 나도 그런 아이가 있었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우리가 태어날 때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부모역시 아이를 선택할 수 없기에 한참 귀여울 때는 이내 잊고 미운 일곱살 이라는 둥,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을 자주 꺼내는 엄마들을 자주 만난다. 하지만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엄마는 아이에게 배운다는 사실을.



책, 엄마는 아이에게 배운다는 출판업계에서 오랜 기간 몸담고 있는 김혜영씨의 엄마 성장 에세이다. 육아 에세이라고 명명하지 않고 엄마 성장 에세이라고 이름붙인 것만 봐도 벌써 한 수 배워가는 기분이다. 책을 막상 받아보기 전까지는 이미 귀한 아이를 기르거나 다가올 겨울 엄마가 되는 친구들과 만나서 유연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사전정보를 얻기 위한 마음이 컸었다. 하지만 읽다보니 아이의 천진함이 늘 그렇듯 못난 어른, 이미 때가 많이 묻은 나이든 나에게 언성 한번 높이지 않고 일깨워주고 있었다. 어찌보면 억지인 것도 같은 아이와의 수수께기는 웃음이 나면서도 지나치게 복잡하게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깨닫게 한다. 싸움을 거는 친구의 도전에 응하기 보다는 자신을 때릴 이유가 없으니 그저 맞고만 있겠다며 상대의 맘을 상하지 않고 그만두게 만드는 현명한 아이의 모습에서는 거절이라는 것이 무조건 직설적이고 상대의 맘을 얹짢게 만드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오해를 풀리게 해줬다. 아이가 크기 싫은 이유가 뭘까? 만약 내게 넌 왜 어른이 되기 싫으냐고 물었다면 일단 돈벌기가 싫어서라고 말했을 것 같다. 하지만 아이는 말한다. 자기가 자꾸 자라 나이가 들면 할머니,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게 되고, 엄마도 할머니가 되기 때문이라고. 나의 불편함 때문에 나이먹기 싫은게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이별과 그들이 마주하게 될 불편함을 생각하는 그 마음씨가 그 어떤 성인보다 바르고 곱다.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런저런 이치를 따지며 그렇게 말했을리 없겠지만 왜 자꾸 아이의 일기에, 엄마의 에세이에 자꾸만 뜨끔거리는 걸까.



책의 내용도 내용지만 레이아웃이나 함께 실린 사진, 일러스트 등도 아기자기 하니 마음에 든다. 마치 한 권의 어른을 위한 동화나 우화집을 읽는 듯한 느낌이 처음 부터 끝까지 지속되었다. 뿐인가. 홈스쿨링에 대한 정보와 미리 경험한 선배 엄마의 조언도 함께 들을 수 있어 좋다. 하지만 아이가 없는 미혼들에게 이 책은 타이틀 때문에 다소 겁이 날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난 아직 아이도 없고, 자녀 계획을 세우기에도 너무 먼 이야기라 지나치지 말고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딱 10페이지만 읽어봐줬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당신도 이렇게 말하게 될 것 같다.

"아이야, 가르쳐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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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누구를 사랑하는가 - 세계인의 영적 스승 바이런 케이티의 혁명적 가르침
바이런 케이티 지음, 유영일 옮김 / 쌤앤파커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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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누구를  사랑하는가.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내 생각일 뿐, 내 삶이 아닙니다.







 

서문을 읽고 이 책이 완벽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모든 문제는 나의 사고에서 시작되고 그 해결방법 또한 내 스스로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은 그 어떤 해결방법보다 간단하면서도 실로 정확한 말이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이 책에서 저자가 하는 말도 전부 믿지 말며 이미 대부분의 지혜를 독자 스스로가 가지고 있고, 더 나은 지혜 역시 내면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는 말이 설득력 있었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 저술가들은 이미 성공한 누군가를 빗대거나 스스로와 견주어 독자로 하여금 무지하며 늘 실패하고, 작심삼일을 반복하며 심지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가 누군지도 깨닫지못하는게 아니라 애초에 몰랐던 바보인것처럼 말했기 때문이다. 혹은 이와 전혀 반대로 나를 상대하는 '그 혹은 그녀'가 잘못된 인격을 가졌거나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보편적 현상인 것처럼 포장하며 제대로된 현실을 마주하지 못하게 했었다. 그런점에서 바이런 케이티의 주장은 지친 독자로 하여금 힘을 내게 만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 이상의 깨달음이나 감동은 없었다. 내가 괴로워 하는 과거의 일들이나 나를 괴롭힌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만들고 그 것이 사실인지를 판단하라는 등의 자문자답을 만드는 것 까지가 더이상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누구를 사랑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상당히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섣불리 스스로를 판단내리지 말라는 충고까지도 잊지 않았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지, 그를 사랑하며 앞으로 일어날 혹은 일어나길 바라는 일들을 기대하고 있는 자신을 사랑하는지를 깨닫는 것 만으로도 상대에 짐지우던 기대를 어느정도 덜어낼 수 있고 그로인해 진실된 사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애착도 다룬다. 언젠가서부터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불안해하고 두려워 하는 나를 발견하면서 죽음을 주제로 한 심리학 혹은 치유서적에 관심이 생겼다. 물론 당장 일어나지 않을일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그것을 납득시켜주는 방법이 달랐다고 본다. 저자는 죽음에 대한 섣부른 두려움 역시 만들어낸 이야기이며 그저 삶의 또다른 모습, 삶의 연장으로 여기면 오히려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해준다. 별개의 것이며 일단 접어두고 살자라는 겉도는 식의 위로가 아닌 점이 맘에 들었다. 삶과 죽음다음에는 또 무엇이 있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직접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떼어둘 수 없는 것이 직업과 돈 그리고 가족이다. 대담하게 엄마가 딸을 반드시 사랑해야하느냐고 묻는 챕터는 이전에 읽었던 착한 딸 콤플렉스라는 책을 생각하게 한다. 이전까지의 우리의 사고는 당연히 부모는 우리를 사랑해야 했다. 문제는 우리도 언젠가는 내 아이의 엄마 혹은 아빠가된다. 그때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부모가 그러햇듯 헌신적으로 내 이상보다는 자녀의 이상을 쫓아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들어주고 지금껏 우리가 당연히 해왔던 '내리사랑'에 대한 비합리점을 상기시킨다.


 

지금,정의,깨달음, 고요함 등은 모두 소멸하는 개념이다. 상황이라는 것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나타났다가 결국은 사라지는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현상에 집중하기 보다는 지금 내가 믿는, 혹은 하고픈 그것을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여기서 또다시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상대가 존재하다가도 이내 자문하게 만드는  이책은 사고를 넓히거나 그러한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에는 분명하나 어떤 하나의 이론이나 깨달음을 구하기에는 다소 아쉬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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