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퀼로스 비극 오레스테이아(오레스테스 이야기) 3부작 중 [아가멤논]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을 읽었다.
이 두극에서 가장 강렬한 인물은 역시 클뤼타임네스트라다.
그녀는 아가멤논의 아내이자 오레스테스의 어머니다.
그녀는 또한 트로이아 전쟁의 계기가 된 헬레나와 자매이다.

그녀는 그리스군 총사령관으로 전쟁터로 나간 남편 아가멤논이 신의 미움을 받아 바다에서 역풍을 만났을때 제물로 딸 이피게네이아를 바치자 남편에게 복수를 할것을 결심한듯하다.

정부 아이기스토스와 함께 전쟁터에서 돌아온 아가멤논을 살해한다.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의 살인이 정당함을 주장한다.
아가멤논과 클뤼타임네스트라 두 가문에 얽힌 기가막힌 그야말로 막장의 행태는 기함할 지경인데 여튼 신과 인간이 뒤섞여 난장을 벌이던 시대로 생각하고 넘어가더라도 이 여인은 거의 남성 영웅의 모습이라 해도 별로 이상할 거 없다.

아들 오레스테스까지 팔아넘겨 추방시킨 그녀는 결국 아버지의 복수를 신탁받은 아들에게 살해 당한다.
오레스테스가 나그네로 변장해 어머니인 그녀를 만났을때 아들은 어머니에게 아들의 죽음을 전한다.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아들의 죽음의 소식을가져온 나그네를 환대하라 이르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문제는 다음에 집안에서 나오는 유모의 말이다.
유모는 자신의 손으로 기른 오레스테스의 죽음 소식에 슬퍼하며 아들의 죽음을 들은 어머니 클뤼타임네스트라가 겉으로는 슬퍼했지만 웃음을 지었다고 전한다.

[비극의 비밀] 강대진은 아들잃은 어머니의 감정이 그다지 거짓되다는 느낌은 받지 못하고 ˝아마 그녀는 아들이, 그저 자기를 위협하지만 않으면, 어디선가 잘 살기를 원했을 것이다˝고 분석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이 이해할 수 없는 엄마, 딸 이피게네이아의 죽음에대해 그렇게도 원한 맺혔던 엄마가 아들 오레스테스와 딸 엘렉트라에게는 모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게 대했다는 점도 선뜻 이해가 안된다. 자식차별인가?
아가멤논을 비롯한 집안과 집안에대한 문제가 자식 문제보다 더 강한 작용을 하는 인물 아닐까?
신의 제물에 복종하지 않은 여인이고, 전쟁이라는 국가사태에 아랑곳하지 않은 여자다.
갑자기 어디서 모정이 끼어들 틈이 있을지 난 잘 모르겠다.
물론 미리 처리하지는 않았다는 점, 그걸 모정이라 할 수 있을라나..
강대진 식의 해석이 클뤼타임네스트라라는 인물을 복합적이고 입체적으로 만들진 모르겠지만 이 여인은 그러지 않았을것 같다.

이 외에도 나와 다르게 보는 부분들이 있다. 강대진의 책은 처음 보는데... 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 좋은데 주석이 바로 가까이 달려 있었다면 한결 수월하게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주석도 많은데 일일이 뒤를 확인하며 읽어야한다.
380페이지 두께를 쥐고 말이다.
어느 순간 짜증이 확 밀려오는거다.
아, 내 뭣같은 성격탓인가.
비극이여.

좀 편하게 하는 독서는 안된단 말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지운 감독의 <밀정>은 김지운과 송강호 이병헌 만으로도 당장 가서 보게 만들었던 영화다. 

당혹스러운 영화다. 

차가움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너무 뜨거웠기에 실망해야 하는 건 맞지만, 국뽕스럽게도 뜨거울 수밖에,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관조하듯이 시크하게 바라볼 수 없었다. 

친일민족반역 이력을 세탁하려는 자들이 좀비처럼 움직이고 있는 지금이라는 게 함정이었다. 

쓰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린 계속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결론이었다. 

아, 쓰바,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다. 

왜 이렇게 신파처럼 울고 지롤이야, 하고 싶었다. 

왜 이정출을 저따위로 만들어놨어(송강호는 뭐 나무랄 데 없다)... 이렇게 소리지르고 싶었지만 

뜨거워도 어쩔 수 없다, 고 중얼거리며 돌아서게 하냐고. 


세계 속에는 어둠이 이해할 수 없는 

빛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이반 일리치의 말에서 따옴 - 


독립이 오겠어? 해방이 되겠어? 이 어둠의 질문에도 빛이었던 사람들의 얘기.


그런데 정직한 절망이란 어떤 것일까. 잘 모르겠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잊었었다.
우연하게 다시 마주친 박노해의 이 시집, 몇편 읽지도 않아서..
아, 쓰바, 미쳐불겄다, 좋아서, 가슴 아파서.
가끔 난 이렇게 얼척없이 무장해제된다.
아, 쓰바, ... 안읽었으면 봐.
아, 쓰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마도 내가 가지고 있는 번역서 중 천병희 선생의 번역의 책이 가장 많은 듯하다. 

어쩐지 자꾸 과거로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19세기로 가더니, 이젠 그리스신화와 비극의 세계로 가고 있다. 

예전에 그다지 마음이 가지 않던 그리스비극 작품들을. 끝내는 ... 읽어야 하는구나, 로 마음이 바뀌었다. 


이게 저 유명한 '음수사원(飮水思原)'에서 시작된 건 아니고, 호가스 출판사에서 셰익스피어 사후4백주년을 맞아 기획한 리라이팅 작품을 읽어볼까 하던 중 [시간의 틈]의 원작인 [겨울이야기]를 보려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겨울이야기]는 번역본이 몇 종 나와있지 않다. '이끌리오 달궁'이라는 출판사에서 이윤기. 이다희가 번역한 [겨울이야기]를 빌렸다 











이윤기 선생의 서문격의 글이 있는데, 선생도 [겨울이야기]를 처음 읽을 때 재미도 느끼지 못했고, 이야기 자체가 낯설었다고 한다. 흔히 고전을 읽을 때 느끼게 된다는, 읽고 나서 이게 도대체 뭔 이야기? 혹은 이게 고전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거야, 왜?... 이런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선생은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셰익스피어 작품이 고대 그리스 비극과 희극에 원류를 대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고 이후 호메로스부터 오비디우스, 베르길리우스 같은 신화 작가들, 소포클레스, 아이스퀼로스, 에우뤼피데스 같은 그리스 비극작가들, 헤로도토스, 플루타르코스 같은 역사가들로부 흘러온 길고 깊은 강(13)을 선생은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지금으로선 어렴풋하지만 어떤 주제를 향해 더듬어가는데 그리스신화나 비극을 빠뜨릴 순 없을 것 같다. 

[철학자 오이디푸스]가 이 시기에 딱 나온 건 화로에 장작더미 하나 더 보태준 느낌이다. 

오이디푸스만 하더라도 [오이디푸스]에서 오이디푸스는 자신만만한 사내였다. 답을 맞춘 사내. 결국 마지막 맞춰야 할 답이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 그 오만의 대가로 눈을 찌르고 나라를 떠나는 운명을 받아들였던 사나이. 

그런데 소포클레스가 죽음을 앞두고 쓴 마지막 작품이라는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는 자신에겐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것, 오로지 신들이 정해놓은 운명앞에서 자신은 희생당했다는 격정을 토로하고 신들에게 다시 받은 예언, 자신의 죽음을 돌보지 않는 자들과 나라에 내릴 저주를 안고 눈을 감는다. 

 

(오이디푸스)

.......

필연과는 싸우지 말자꾸나

(191행. 161)


그런데.. 무엇이 필연인지 모른다는 게 함정 아닌가? 


천병희 선생은 작품 소개에서 이렇게 결론내린다. 


       [오이디푸스 왕]에서 신들은 인간들이 예견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오이디푸스가 제 손으로 제 눈을 멀게 하지만,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는 신과 인간의 대립이 지양되어, 신은 수많은 시련을 겪게 한 뒤 인간을 긍휼히 여기고 죽음을 일종의 은총으로서 내려준다. (152)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에게 내려진 신탁의 완성의 일면을 보여준다. 

크레온에게 닥친 비극은 오이디푸스의 죽음과 그 돌봄과 관련있다. 

안티고네 말고 크레온에게 초점을 맞춘 리라이팅도 흥미있을 것 같다. 

크레온은 이후 어떻게 됐나?

크레온은 누가 위로해주지?


천병희 선생의 저 작품소개대로 받아들일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제 막 대략의 줄거리만을 파악했을 분이니. 


오이디푸스와 플로베르의 [감정교육]의 프레데릭과의 차이는 있을까.차이가 어마어마해 보인다

문득 든 생각이다. (수정하자면, 오이디푸스는 신화적 인간이다. 신탁의 결말에 끌려가는 듯 하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관철하는 명민하고 급하고 적극적인 인물이다. 반면 프레데릭은 19세기 프랑스를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는 '낭만주의적 환상'(김화영)과 몽상속에 '인생을 살지 않고 꿈꿀 뿐'(김화영)인 인물이다. 모든 게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고 사라지는 반복 속에서 삶은 관조적으로 보이며 스쳐 흐른다. 하나는 고대 정치 공동체에서 디오니소스축제 기간에 벌어지는 흐드러지는 감정 고양을 위해 상연되던 비극의 인물이고 다른 하나는 근대에 개발된 소설이라는 형식 속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달라지겠지만, 오롯이 인물만으로 보자면 강한 의지로 몰락하는 인물과 의지 박약의 몽상속에서 꿈꾸듯 '그때가 제일 좋았다', 고 말하며 전락(굴러떨어지다)하는 인물을 경험하는 거 아닐까.)   


여튼, 천병희 선생과 한동안 함께 해야 할 것 같다. 

이제 고작 비극작품 정도만 접하는 단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