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의 몸은 너의 것이야 - 경계존중으로 시작하는 우리 아이 성교육 부모 가이드
엘리자베스 슈뢰더 지음, 신소희 옮김 / 수오서재 / 2023년 3월
평점 :
아이를 키우며 당황스러운 순간이 참 많았지만, 그중 하나는 '너무 당연한 것까지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졸리면 자는 거야. 누워서 눈을 감아." "음식을 씹었으면 삼키는 거야. 꿀꺽." 혹은, "쉬가 마려우면 참지 말고 변기에 앉아." 같은 것들.
이 책의 제목 <너의 몸은 너의 것이야> 역시 너무 당연해서 가르쳐야만 하는, 앞뒤가 안 맞지만 어쨌든 양육자라면 누구나 고민하고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엄마인 나는 자녀에게 '잘 물어보는 것'과 '잘 대답하는 것'이 늘 어렵다. 그래서 자녀에게 직접 물어보기보다 멋대로 추측하거나 어물쩡 넘어가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몸과 감정과 성처럼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딸은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인데, 나는 지금껏 딸에게 경계와 존중을 가르치려 했다기보다는 딸이 내 경계를 침범했다고 느껴질 때 바로바로 피드백을 하는 편이었고, 이것이 의도치 않게 '교육적 효과'가 있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딸이 타인의 반응과 감정을 배려하는 만큼 자신의 생각과 느낌에 대해 얼만큼 잘 표현하고 주장할 수 있는지는 물음표로 남는다. 그래서 이 책에서 "자신의 불편감"의 옳고 그름을 의심하지 말고 자신의 느낌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부분에 깊이 공감했다.
딸이 얼마전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다가 화가 나서 집에 온 적이 있었다. 새 운동화를 신고 나갔는데 친구들이 운동화를 가져가서 모래를 뿌리며 장난을 친 것이다. 감정을 추스르고 나와 함께 다시 친구들을 만나러 갔는데, 함께 놀이터에 있던 친구 엄마가 "제가 다 보고 있었는데 별일 아니고 애들이 그냥 장난 친 거예요. 오해를 풀어주려고 했는데 화가 나서 가버리더라고요."라고 말했다. 나는 빨리 그 자리를 떠나고 싶어서 "그럴 수 있죠. 괜찮아요. 아이는 제가 잘 달랠게요."라고 말하고 돌아섰는데, 조금 떨어져서 어른들의 대화를 듣던 딸이 "나한텐 별일이라고! 별일인데 왜 별일이 아니라고 말해!"라며 소리를 쳤다.
생각할수록 맞는 말이었다. 집에 돌아오면서 딸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봤다. 그 운동화는 자기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고른 것이고 할머니가 사준 것이어서 자기에게 소중하다고 했다. 친구들에게 "하지 말라"고 했고 "다시 가져오라"고 했는데 그 말을 무시해서 화가 난다고 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뭔데 "별일이 아니"라고 함부로 단정짓나. 나는 딸에게 니 말처럼 별일인 게 맞고, 아까는 엄마가 그 자리가 불편해서 착한 척(?)을 했다고 사과를 했다. '몸'은커녕 '내 신발은 나의 것이야'조차 당당히 인정받는 게 이리도 어려운 현실이라니. (흑)
다른 이야기로, 자녀가 클수록 더 구체적으로 피드백하는 것이 중요하다. 딸은 자주 안아달라고 하는 편인데 안을 때 종종 딸의 얼굴뼈(턱뼈?)가 내 가슴에 세게 닿아서 아플 때가 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딸이 안아달라고 하면 "싫어~ 아파~"라고 피했고, 그럴수록 딸은 더 달겨들어 가슴 통증을 유발했다. 어느 날인가 딸에게 "엄마 가슴은 그냥 말랑한 살만 있는 게 아니라 안쪽에 유선이라고 젖이 나오는 통로가 있어서 세게 건드리면 아파."라고 말했고, 그날 이후로 딸이 나를 안을 때 조심하는 게 느껴졌다.
최근 딸이 가슴에 봉긋하게 멍울이 생기면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가 그때 가슴이 아프다고 했었잖아. 나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애. 나도 가슴이 조금 나오면서 어디 부딪히면 아프더라고."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이야기를, 당연한 이야기를, 설명하고 또 설명하고, 저자의 말마따나 "반복, 반복, 반복"하게 될까? 또 아이의 몸과 마음을 배려하고 존중하지 못한 것에 대해 얼마나 많이 사과를 하게 될까. 그래도 이 책 덕분에 사과할 일이 조금은 줄어들게 되지 않을런지. 가까이 두고 읽고, 읽고, 또 읽어야겠다고 다짐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