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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네테스 1
유키무라 마코토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01년 6월
평점 :
품절
프라네테스...
무슨 의미인지는 작가만이 알 듯. 작가 정보를 얻기 위해 서핑을 했지만 프라네테스 1,2에 대한 간단한 평과 표지그림 밖에는 없었다. 우리나라에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는 작가인 모양이다. 우주선과 대기물리학에 상당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든지 아니면 자료조사를 겁나게 많이 한 사람일 것이다. 이 작가에 대한 또 한가지 느낌; 죽음을 경험하거나 그 언저리까지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에 상응하는 절망의 상황을 느꼈을 것이다.
서평에 공통적으로 실린 것은 이 만화 1권의 파랗고 투명한 우주 사진과 담배 한모금을 피우기 위해 테러집단과의 전쟁을 마다하지 않는 휘의 에피소드. 1권 표지에 나온 것은 분명 하치마키이다. 나는 그 점이 더 놀랍다. 1화에 나오는 러시아 인 유리와 그 아내 에피소드 때문에 처음엔 유리가 주인공인 줄 알았다. 사실 난 2권을 읽고 나서야 하치마키가 주인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 그랬을까? 1권 2화에만 가더라도 그가 골절상으로 달 병원에 입원하는 이야기에 등장한다. 그런데도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첫째, 작가는 주인공을 절대 돋보이게 그리지 않았다. 우주쓰레기 (=데브리스)를 수거하는 한 우주선에서 하치마키와 함께 일하는 동료 -잘생긴 외국인 유리, 검은 피부에 시원시원하고 늘씬한 선배 휘, 분위기 있는 노인 할아범-에 비해 주인공은 평범한 모습이다.
껄렁하고 철없어서, 으레 다른 만화에서 그러하듯 코믹한 분위기를 만드는 주변인물로 치부하게 된다.
그러나 극이 뒤로 진행될 수록 주인공은 내용을 장악해나간다. 그리고 2권을 덮을 때 쯤에는 이 만화가 SF 형태를 취하고 우주에 대한 동경을 중심축으로 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하치마키라는 한 인물의 욕망과 자아가 주제라는 것, 생명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다. (교통사고로 도로를 벗어나 강에 빠져 죽음과 직면한 순간에 인식의 블랙홀을 경험하고, 그렇게 살아나서 '이 지구도 우주다. 우주가 아닌 곳은 없다.'라는 인디언 노인의 말 뜻을 이해하는 장면!)
한국 작가 박흥용의 '내 파란 세이버'와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과 잇닿아 있는 것도 여기다. 사실적인 세팅 안에서 주인공들이 깨지고 부닥치는 장면을 날카롭게 포착하지만 단발적인 웃음으로 그치지 않고 주인공이 계속해서 성장하는 장편만화라는 점에서. 그렇기 때문에 발랄하면서도 어느 순간 내적이고 성찰적인 분위기를 풍긴다는 점이 그렇다.
1권 다수를 차지하는 데브리스 회수선 안에서의 공동생활이 '카우보이 비밥'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복고적이면서도 쿨한 '카우보이 비밥'도 미래 도시와 우주선원들을 그리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우주'는 그저 공간적인 배경일 뿐 이 '프라네테스'에서처럼 주인공을 포함한 여러 사람을 살아있게 하는 '생의 화두'까지는 되지 않는다.
훌륭한 작가, 훌륭한 작품이다. 하지만 아직 완성된 대가는 아니다. 주인공 하치마키가 잠재력은 풍부하지만 아직 안팎으로 더 단련되어야 하는 젊은이인 것과 마찬가지로 이 작가도 치열한 자기 고민은 하지만 답을 얻지 못한 듯 하다. 아직도 '당신'의 꿈에는 '당신'이 나타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