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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스러운 토끼책 - 꿈을 키우는 책꽂이 6
야노쉬 글 그림, 김서정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촌스럽고 허술하다고만 생각했던 야노쉬의 그림이 텍스트에 녹아들어 있다. (그럼에도 그림이 필요 이상으로 많다는 생각은 들지만) 왜 유럽사람들이 야노쉬, 야노쉬 하는지 몰랐다. <Das grosse Panama-Album>을 아마존에서 구입했지만 슬쩍 넘겨보곤 여태 책꽂이 속에 있었다. 회사 자료실에 신간으로 <내 사랑스러운 토끼책 Mein liebes grosses Hasenbuch>가 들어와 있길래 한번쯤 읽어 보자하는 마음으로 들고 왔다. 퇴근길에 따로 들고 나온 것이 없어 기대없이 책을 펴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지 재미있었다. 아니,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이거 이거 챙겨봐야 할 작가가 늘어났잖아? 야노쉬의 이름으로 번역된 우리나라 책들을 찾아서 주문해서 사서 봐야겠다. 번거로운 일이 늘어났지만 이건 아주 기꺼이, 행복하게 해치울 수 있는 일감이겠다. 야노쉬는 참 '뻔뻔한' 화자다. 들려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단도직입적으로 들어간다. 엄청난 자신감이다. 동시에 아이들에게 먹히는 이야기 기술을 간파한 놀라운 본능이다.
야노쉬의 그림도 놀랍지만 그의 화술 또한 대가급이다. 한 페이지를 더 넘기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2인용 자전거가 좋은 건, 친구를 데리고 갈 수 있다는 거야. 나쁜 건, 그것도 역시 친구를 데리고 가야 한다는 거지.' 허걱, 뒤통수를 맞는 것 같다. 정말 쉽게 쉽게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엄청시레 계산된 말법이다.
야노쉬의 장기는 또 있다. 짧은 이야기 속에서 잠깐 등장하는 케릭터들이지만 그 성격을 아주 분명하게 설정해 놓았다는 것. 그래서 이야기는 저절로 흘러간다. 예를 들면 <토끼 엔진은 공짜>에서 친구 말은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루디가 자청해서 자전거 앞자리에 안자 생고생을 하는 것은, 루디의 성격상 자연스런 일이다. 페달을 밟느라고 너무 힘이 들어 다음날까지 누워만 있는 루디에게 슈누델이 '오늘도 튼튼한 사람이 앞에 앉아야 하는데, 어떡하니, 넌 이제 안 튼튼하잖아.'하고 약간 놀림조로 말한다. 슈누델은 이때에도 루디가 '아냐, 난 튼튼해.'하고 우기며 자리를 털고 일어날 줄 알았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루디는 '네 말이 맞아. 난 안 튼튼해. (그러니까) 내가 뒤쪽에 앉을게.'하고 한발 물러난다. 루디의 이 답은 얼핏보면 지금까지 루디가 보여준 말법과 반대인 것 같다. 하지만 루디는 늘 자기를 내세우기 위해 남의 말을 부정했던 케릭터였다. 어거지를 피우고 그렇게 자기 과시하는게 낙인 거다. 그런 식으로 자기애(自己愛)를 표현하는 애다. 그러니까 제 몸이 아픈 상황에서 무리해서 봉사를 자청할 리가 없다. 선선히 슈누델의 말을 수긍하는 척 하면서 제 몸 편한 자리에 앉겠다는 거다.
이런 식의 반전은 독자들에게 또 엄청난 즐거움을 준다. 130km를 가던 자동차가 140km로 가도 그 차이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반면 느릿느릿 움직이던 것이 단 1초만이라도 빠르게 움직이면 그 차이가 강렬한 인상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