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백귀야행 1
이마 이치코 지음 / 시공사(만화) / 1999년 3월
평점 :
8권을 다 읽었지만 아직도 질리지 않는다. 덕분에 지금까지 약 2주간 출퇴근 시간을 몽땅 귀신 이야기에 홀려 보내야 했지만... 예쁜도야지님은 모두가 다 자는 한밤중에 이 책을 읽어야 몇 배 진하게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고 일러 주었지만 또록이를 재우려하다 늘 내가 먼저 잠자기 때문에 실현불가다. 그래도 상쾌한 아침 출근길에 귀신 이야기 읽는 재미도 나름대로 쏠쏠하다.
귀신을 소재로 한다지만 그렇게 엽기적이거나 공포 코드로 풀리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순정만화, 휴만드라마처럼 되어 있다. 어떤 에피소드들은 영화 이상의 구성과 감동을 주기도 한다. 회가 거듭될수록, 자신이 혼령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영령들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만일 이 작품을 보고 영화 '식스센스' 를 만났더라면 콧방귀도 안 뀌었을지 모른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요소는 일본의 전설, 민담이다. 주변의 자연물과 집, 가구 등 인간이 아닌 모든 것에 혼을 불어넣고 의인화하는데 애니미즘이 이런 것이구나 싶을 정도다. 우리에게도 분명 그런 인간중심적인 설화, 야화, 전설 등이 풍부하게 있었을 텐대 지금껏 살아남은 것은 빈약해 보인다.
이 만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이 뿐만이 아니다. 이 만화를 보면 성불하지 못한 원혼, 원귀들도 인간하고 거의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다. 원한, 질투, 사랑, 애증 이런 과잉된 감정, 에너지?, 기운? 이런 것들이 살아있는 우리를 괴롭히기도 하고 돕기도 한다는 대목에 이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야기만 놓고 보았을 때 주인공인 리쓰와 할아버지의 관계도 아주 흥미롭다. 아버지가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이거나 빈약하게 그려지면서 할아버지와 손자가 밀착된 이런 관계는 별로 본 적이 없다. 여기서는 할아버지가 리쓰에게 Super Ego 같은 존재가 된다.
반면 아버지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고 그 육신의 껍데기를 아오아라시는 요괴가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 전혀 '아버지'답지 못하고 인간의 모습만 했지 완전히 굶주린 아귀다.
무병장수하라고 남자아이를 여장하여 길렀다는 점도, 순정만화의 단골인 동성애/양성애적인 요소로 장치되어 있다. (실제로는 성한 리쓰를 여자로 착각하고 남자귀신이 장가 들러오는 에피스드에서만 활용되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 일상에서도 판타지가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백귀야행을 읽으면서 아주 잘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