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내가없는 이 안 > 개를 사랑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아이, 마들렌카
마들렌카의 개 베틀북 그림책 22
피터 시스 글 그림, 임정은 옮김 / 베틀북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지만 집에 있던 <마들렌카>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든다. 보관함에 넣어두고 다음에 구입할 책 목록에 올려놓았다. 이 그림책에 더 마음이 끌렸던 첫 번째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우리 아이와 내가 개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나와 아이는 개를 무서워한다. 친구들 모임을 가면 다들 강아지 하나씩을 안고 나타나는 통에 아이와 나는 늘 강아지 주인에게 단단히 주의를 기울여주기를 매번 부탁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우리와 전혀 다른 마들렌카는 개를 너무도 좋아하는 터라 벽면 하나 가득 개의 그림을 붙여놓고 슬픔이 뚝뚝 떨어질 듯한 파란 눈으로 개가 그려진 그림책을 본다. '개, 길러도 돼요?'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두 손을 뻗어 강한 반대의 몸짓을 보인다. ^^ 마치 쪼그만 개를 무서워하는 덩치 큰 어른, 나의 모습 같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가 이 그림책에 마음을 빼앗기게 했다. 보이지도 않는 개가 마들렌카에게 나타난 것이다. 마들렌카는 그 보이지도 않는 개에게 줄을 매달아 동네동네를 깡총깡총 뛰어다니며 새로 기르게 된 개를 한껏 자랑한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건, 만나는 동네 사람들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에 개성 넘치는 개를 한 마리씩 기르고 있는 것이다. 가스통 아저씨의 갓 구운 빵을 들추면 하얀 털의 개와 뛰어노는 아저씨의 어린 모습이 나타나고, 커다란 북을 열어제치면 하얗고 짜리몽땅한 개가 북 치는 아저씨의 어린 시절과 만나 있고, 꽃 가게 주인 에르아르도 아저씨의 리어카에는 커다랗고 북실북실한 곰 같은 개와 그의 어린 시절이 오도카니 들어 있는 것이다.

모두가 자기의 현재 살림도구 속에 기르고 있는 개와 그 어린 시절 모습은 무엇일까. 혹여 머리 희끗해지도록 늙어가면서도 잃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꿈과 추억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고, 곁에 없어도 마음 속에 개를 키울 수 있는 마들렌카를 이해하는 순수함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고...

그리고 마들렌카는 우습게도 보이지 않는 말을 기르는 친구 클레오파트라와 만나 그들만의 공터로 놀러 간다. 전작 <마들렌카>에서도 볼 수 있는 그들만의 비밀공터를 알고 있는 터라 공터로 놀러가자는 클레오파트라의 말에 나도 망설임없이 그 아이들을 쭐레쭐레 쫓아간다. 그 비밀의 공터에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친구가 되어 크로켓 놀이도 할 수 있고, 클레오파트라의 고향인 이집트 사람이 되어 고풍스런 피라미드 옆에서 놀 수도 있고, 마들렌카의 개와 클레오파트라의 말이 이끄는 눈썰매를 펄펄거리며 탈 수 있는 북극으로 갈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 저녁 때가 되어 집으로 돌아간 마들렌카의 뒤에는 개란 개는 몽땅 몰려들어 줄을 짓고 있다. 하루종일 별별 개를 만난 마들렌카의 즐거움이 이보다 더 경쾌하게 표현될 수 있을는지! 어른의 반대로 할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아이들 마음에서까지 하지 못하게 할 수는 없을 터. 마들렌카는 엄마 아빠의 손사래를 멋지게 반항한 셈이다. 이 그림책을 보면서 '언젠가 아이와 작은 강아지를 키워봐야겠다'는 무척 나답지 않은 생각을 했다. 나도 죽기 전에 개를 사랑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좀 우스운 발상인가? ^^

피터시스의 그림은 언제 봐도 좋다. 아직 번역되지 못한 그림책까지 몇 권 보자면 마들렌카와 같은 따스한 그림책이 있고 너무도 이질적이고 낯설어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란 느낌마저 주는 그림책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가보지 못한 곳, 알지 못하는 곳, 세계 속의 자그마한 마을을 세심히 보여주는 그의 그림이 우리 집에선 인기 만점이다. <마들렌카>처럼 책을 360도로 휘휘 돌아가며 보는 재미도 있거니와 이곳 작은 방에서 이탈리아의 피자와 피사의 사탑까지 건너다 볼 수 있는 즐거움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다. 그리고 그 낯선 다른 세상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언제든 내 집처럼 익숙해지는 그림이 피터시스 그림책의 특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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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유진과 유진"을 읽고 '이금이'라는 작가를 다시 보았다.

우리나라 어린이 문학에서 공백처럼 느껴졌던

13~15세 연령대 대상의 작품에 "유진과 유진"을 권하는 바이다.

성폭력이라는 버거운 소재를

분명한 주제의식 속에서

무게에 짓눌리지 않게, 그러면서도 탄탄하게 진행시키는 구성력이 놀랍다.



내성적이고, 순종적이면서도

자기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작은 유진이의 모습이

어렸던 나와 닮아 있었던 점도 좋았다.

친구도 없이,

사람을 두려워하면서,

자기를 가둔 작은 몸이 더 이상 맞지 않는 것을 느껴가는,

그 삐끄덕 거리는 소리 때문에 괴로움을 느끼는 유진,

그건 바로 15세 여자, 나이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밑줄을 그은 한 문장은,

오직 나한테만 와 닿는 작은 유진의 독백이었나보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용건이 담기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는 일에 서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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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랜드 미아 푸른숲 어린이 문학 5
김기정 지음, 이상규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작년 어린이도서연구회 추천도서목록에 올랐다가

이야기밥을 통한 이재복 평론가의 문제제기로 인해

논란의 중심에 섰던 작품 "바나나가 뭐예유."

부끄럽게도 난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다.

그 논란의 작가 김기정의 다른 작품 "네버랜드 미아"를

어제 지하철 속에서 읽긴 했다.


발랄하고 유쾌한 풍자라는 호평과

풍자의 화살이 부족절한 대상에게 가 있는 작품이다라는 혹평, (이것은 '바나나가 뭐예유'에만

해당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양극단에 서서 말들이 많았던 작품의 작가라는 것이 조금 이해되었다.

 

마치 채인선의 동화들처럼 신나게 내달리는 줄거리의 힘은 있다.

문장이 읽히는 속도, 사건이 전개되는 속도는

우리나라 작품들에서 흔치 않게 빠르고 흥미롭다.

그러나 그렇게 치달아간 사건이 다다른 종점에는 공감하기 힘든

생뚱맞은 진실이 있다.


이 작품 네버랜드 미아의 경우에 작품의 도입에선,

옛이야기의 도입부를 차용하여 독자를 빨아들인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걸작 환타지 "미오, 나의 미오"를 연상시키기기도 한다.

(엄밀하게 말해서는 미오보다 한참 허술한 서두이긴하지만,

제대로된 환타지의 냄새, 적어도 그 향기라도 풍긴다는 점에선 반가왔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넘어들어간 환타지 세계가 뭐란 말인가?

한참을 즐기고, 성찰없는 쾌락에 빠지게 해놓고는

후반부에서 극단적이고 사악한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가 흘러간다.

게다가 거기에 어설픈 에필로그를 덧붙여서

이야기 전체에 아우라를 덮어 씌우려고 했지만 역부족이다.

유명 배우가 나오고 활영이나 무대미술 등은 흠잡을 데가 없지만 시나리오가 허술한 한국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세련되고 매끄럽지만 정작 서사의 뼈대는 엉성하고 아귀가 맞지 않는...


린드그렌이나 로알드 달처럼 도덕과 사회를

가벼웁게 내던져 버리고 완전히 자아에 몰두하는 인간형을 그리지 못할 바에는

주인공을 그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는 네버랜드"에 남겨두지 말았어야 하는 건 아닐까?


이 작품을 '어린이들에게 권하지 말아야 한다'라며 말릴 생각까지는 없지만

작품성의 순위를 매기는 자리에서라면 나 역시 딴지를 걸고 싶어졌다.


작가의 다른 작품 "바나나가 뭐예유"와 "해를 삼킨 아이들"을 곧 사서 볼 작정이다.

도전받는 마음으로 읽어 보고 싶다.

주먹 쥐고 앙다물고 시비를 거는 작품을 사실 나는 좋아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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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이틀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 들녘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몇 수 앞을 읽는다."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었던 고매한 인격의 경감이

알츠하이머병을 앓던 아내를 촉탁 교살한 사건을 둘러씬 경찰, 검찰, 변호사, 교도관, 신문기자들의 내면을 읽는다.

자신의 자리에서 베테랑이라 불리는 자들, 그 마음속의 황량함,

인간적인 면모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바둑의 고수처럼, 진정한 타짜처럼 남의 속을 내속처럼

들락거리는 그들의 독심술에 박수를 보낸다.

소설 속에서 치밀하고 전문적인 심리전을 구사하고 싶다면

이 작품을 연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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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난 아이
사노 요코 글 그림, 임은정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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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노 요코는 항상 독자를 놀래킨다.


내가 놀란 장면에 밑줄을 긋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아직 이 책을 만나지 않았고

앞으로 이 책을 만날 독자들의 충격과 감동에

내가 찬물을 끼얹는 것이 되므로 애써 참겠노라.


사노 요코가 만들어 낸 주인공들은 대체로 무심하다.

허무하다 허무하다 못해

무심하다 무심하다 못한

이런 삶의 태도를 가진 주인공은

어린이책이나 그림책에서 흔치 않은데,

이런 이들을 악바리처럼 살게 하는 그 조그마한 계기를 만드는 것이 또 사노 요코의 힘.


음... 태어난 순간 진리를 터특하고 사방으로 연꽃 발자국을 남긴

아기 부처님을 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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來姬 2005-02-20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음... 태어난 순간 진리를 터특하고 사방으로 연꽃 발자국을 남긴
아기 부처님을 보는 듯 하다. "->이말 멋져요.

반지하bnb 2005-03-09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좋은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기쁨을 함께 할 수 있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