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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계절 - 함께 살아있고 싶어서 쓰는 삼십 대 여자들의 이야
김진리 외 지음 / 허스토리 / 2023년 7월
평점 :
젊었을 때는 절기를 몰랐다.
계절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더우면 덥고 추우면 추운가 보다 했는데,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 수록
계절의 변화, 자연의 변화가 그대로 내 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느낀다.
몸이 변하면 마음도 따라 움직인다.
나도 생명이고, 자연의 일부라는 깨달음을 아는 몸이 되어 감사하다.
센치하다가 우울해지고, 업되었다가 지나치게 조증이 되지 않게
몸과 마음의 시소를 신경 쓰는 나이가 된 것이다.
올 여름은 "극강호우"를 마주치고
위기상황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가의 안전시스템에 분노했다가
그마저도 힘을 잃고 자포자기처럼 된 기후우울 상태에 빠져있다.
열대야가 불러온 불면의 여름밤, 나는 "도시의 계절" 을 읽는다.
"도시의 계절"은 네 명의 여성 친구들이 절기에 따라
함께 쓴 에세이 모음집이다.
이름도 고운 진리, 예슬, 밤바, 무해.
이들은 30대 여성이고 도시에 산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생계에 바쁘지만
한때 같은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사이다.
나는 이들의 글 덕분에, 내가 해 보지 않은 사소한 도전들을 대리경험한다.
밤과 음악 사이에서 옆 테이블의 모르는 타인에게 같이 춤 추자고 말을 걸기도 하고,
떨리는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위장약까지 먹어가며 타투이스트에게 팔을 맡기기도 하고,
회사일과 병행하며 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한다.
오랜만에 잉크병을 사서 서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만년필로 글을 쓰기도 한다.
한편, 한밤중 400km 떨어진 가족의 전화 벨소리에 무한한 공포와 상상력에 가동되기도 한다.
대책 없는 짝사랑임을 알면서도 그 감정의 급류를 타고 있는 순간을 만끽하고,
군대 이야기처럼 재현되는 학창시절의 불유쾌한 기억을 소환하기도 한다.
네 사람의 일상과 절기마다의 감정 상태, 그들의 경험은
분명 내 이야기가 아닌데 내 이야기처럼 이질감이 없다.
상황과 등장인물들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 시간 속에 드러나는 모든 감정들에
100%, 아니 1000% 공감할 수 있으니까.
나도 느끼지만 말할 수 없었던 비루함, 비참함, 패배감,
좋았지만 나눌 수 없었던 행복감, 만족감, 희열... 너무 익숙하다.
이 도시에서, 콘크리트 담 너머로
나만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고립되어 있지만 더 큰 의미에서 우리는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나처럼 매일을 좌절하고 또 다시 살고
그렇게 좌절하고 절망하면서도 섬세하게 감각하면서 살아있는 여자들이 있으니까.
강력하고 독재적이고 지배적인 힘을 갖지 못할 지라도
조용히 자기 영역을 넓히며 생존하는 곰팡이 포자처럼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방식으로 살며
우리의 냄새, 우리의 감각을 이 도시에 퍼트릴 것이다.
글 쓰는 여자는 이렇게 진화하고 '적합하게' 생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