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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진공 & 상상된 위대함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정보라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4월
평점 :
존재하지 않는 책들에 대한 비평 모음집 [절대진공 & 상상된 위대함]
처음엔 "과연 이게 가능한 이야기인가?"라고 의심했지만
결국 나는 저자 스타니스와프 렘의 "진심"을 찾아내고 말았다.
가벼운 듯, 매우 진지하고 정교하게 써 내려간 비평들.
읽다 보면 정말 이런 책들이 존재할 수도 있겠다고 믿게 된다.
"절대 진공" 속에 속하는 비평들은, 일종의 문학적 실험이다.
말하자면 "없는" 존재에 대한 글을 쓰다가 결국 "언어"를 뛰어넘은
작품이 탄생했음을 보여주는 비평 [ 솔랑주 마리오트 - 아무것도 아닌, 혹은 원인에 따른 결과]처럼.
저자는 어떻게 보면 조롱이나 유희적인 감성을 담은,
다소 장난스럽다 싶은 시도를 하고 있는 듯하지만
각 작품들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당시 문화적인 분위기나
문학 세계에 대한 매우 비판적이고도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유어 셀프 어 북]을 통해서는 당시 문학계에 팽배했던
엘리트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듯했다. 마치 "대중과 단절된 문학의 가치"를 묻는 듯. [사이먼 메릴 - 섹스플로젼]이나 [요아힘 페르젠겔트 - 페리칼립스]를 통해서는 자극적인 소비문화가 끝도 없이 확장되어 결국 "성"이나 "문학"조차도 소비할 대상으로 여긴 당시 문화를 비판했던 듯. ( 난해한 내용 때문에 일단 추측)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상상한 세계속에서 창조한 인물과도 갈등을 빚는, "타자"와의 충돌이 필연적인 인간을 희화화한 [로빈슨 연대기]나 현실 도피의 형태로 역할 놀이에 심취했다가 결국 스스로가 스스로를 기만하는 인간들을 보여주는 작품 [루이 16세 중장]도 나는 재미있었다.
"상상된 위대함" 에서 렘은 "언어와 의식" "기술과 인간" 등의 주제를 다룬다. [후안 람벨레 외 - 비트 문학의 역사] 를 통해 우리가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생성형 AI에 대해 예견하고 있는 듯한 저자. 그의 통찰력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렘의 시선은 굉장히 날카롭지만 동시에 유머와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때때로 지나치게 관념적인 서술과 실험적 형식 때문에 독자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야 할 수밖에 없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결국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 주제를 저자가 다양한 형태의 비평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인데 워낙 낯설고 실험적인 글이라서 독자들은 그가 쌓아 올린 거대한 미로 속을 헤매고 있다는 느낌을 쉽게 가지게 된다.
어쨌든 스타니스와프 렘 작가는 "문학" 과 "창작 활동"을 너무나 사랑하는 작가였던 것 같다. 문학에 대한 상상력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어떠한 형태까지도 문학으로 수렴할 수 있는지, 심지어는 언어라는 형식조차 파괴한 문학도 문학의 범주에 들 수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한 듯한 천재적인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의 놀라운 비평집 [절대 진공 & 상상된 위대함]
뭔가 독특하면서도 기존의 낡은 관념을 부수어버리는
그런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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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