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피나와 조각난 심장 세라피나 시리즈 3
로버트 비티 지음, 김지연 옮김 / 아르볼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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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소설의 힘은 그 한계없음에 있다. 아름답고도 기괴한 세상의 탄생. 작가의 시선에 따라 자유롭게 창조된 세상 속에서 대립하는 선과 악. 파괴하려는 악과 지키려는 선. 불꽃튀는 대결 가운데 때로는 좌절과 어려움을 겪는 주인공들. 그러나 뭔가를 지키려는 그 선한 힘에 의해서 다시 세상은 살만한 것이 된다.

이 책 [ 세라피나와 조각난 심장 ] 에서 주인공 세라피나를 비롯한 인물들은 모두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흑표범으로 변신할 수 있는 세라피나, 동물과 소통하는 브레이던, 혼령과 이야기할 수 있는 로웨나, 동물로 변신하는 웨이사. 능력도 중요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뭔가를 지켜야한다는 사명이 있다는 것. 숲 한가운데에 존재한 아름다운 빌트모어 대저택을 수호하는 것!

그런데 책의 시작은 충격적이다. 첫장면에서 세라피나는 관 속에 갇혀 땅에 묻힌 채로 깨어난다. 쇠냄새 인 줄 알았는데 썩은 흙냄새와 함께 몰려든 고약한 피냄새. 도대체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시작되는 걸까?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떠는 마법사 세라피나.

사실 이런 시작이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아무리 마법사라고는 하지만 어린 아이인 세라피나가 산채로 파묻혔다는 설정은 너무 잔인한게 아닌가? 싶었는데 아뿔싸..... 이 설정에는 너무나도 슬픈 진실이 숨어있었다.

흑표범으로 변할 수 있었던 마법사 세라피나는 빌트모어를 지키는 수호자였다. 그러던 어느날 밤 순찰을 하다가 낯선 이의 공격을 받게 되고 ( 그 낯선이는 악의 수호자 유라이아와 그의 딸 로웨나? ), 그 결과 산채로 무덤에 갇힌 것이었다. 젖먹은 힘까지 다 써서 무덤을 빠져나오는 세라피나. 그러나 탈출 순간부터 계속 되는 괴생명체와 낯선 마법사의 출현에 간담이 서늘하다. 

괴생명체의 출현과 더불어 급속하게 불어난 강물은 곧 빌트모어 대저택을 덮칠 듯 무서운 기세로 콸콸 흘러넘친다. 갑작스러운 주변환경의 변화에 어리둥절한 세라피나는 친구인 브레이던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알아보려하지만, ... 어라... 자신의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손길을 느끼지도 못하는 브레이던....

슬픈 진실. 그렇다. 세라피나는 사악한 마법사인 유라이아와 딸 로웨나의 공격을 받아 숨을 거둔 상태였던 것. 본인이 죽은 걸 몰랐던 세라피나는 아버지와 친구들을 찾아가보지만 글쎄... 여전히 세라피나를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

누가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고 했던가? 주인공을 죽여버린 어처구니 없는 작가를 원망해보지만 어찌하리. 세라피나라는 존재는 현재 공기 중의 원소에 불과하다. 물과 불 그리고 재와 같은. 그녀는 혼령과 소통할 수 있는 로웨나외에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수 없다.

세라피나는 원래 빌트모어의 수호자였으므로 다가올 위험을 즉각적으로 알아차린다. 어디서부터 오는지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이 홍수를 일으켜서 빌트모어 대저택을 덮치려 한다. 과연 영혼이 되어버린 세라피나는 악의 힘으로부터 빌트모어를 지킬 수 있을까? 그리고 세라피나의 친구인 브레이든과 웨이사가 세라피나를 영혼 상태에서 구할 수 있을까? 

주인공이 죽어 영혼 상태로 활약한다는 다소 독특한 설정의 [ 세라피나와 조각난 심장 ]. 공기중을 떠다니는 원소로 변화한 주인공이 친구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빌트모어를 지키기위해 애쓰는 세라피나와 친구들의 모습을 보니 역시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려는 선한 힘이 결국 이길 것 이라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자연을 사랑하고 동물로 변하거나 동물을 이끄는 사랑스러운 능력자 아이들의 이야기인 [ 세라피나와 조각난 심장 ]. 청소년들이 봐도 좋고 어른들이 읽기에도 손색없는, 퀄리티 높은 판타지 소설임이 틀림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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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약 - 미술치료전문가의 셀프치유프로그램
하애희 지음, 조은비 그림 / 디자인이곶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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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로운 사실은 격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말기 환자들에게 과거에 기뻤던 일들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놀라운 일이 생긴다. 아무리 고통이 심해도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면 얼굴 표정부터 달라져서 미소를 짓거나 심지어 큰소리로 웃기까지 했다 "

- Ira Byock, [ 아름다운 죽음의 조건 ] -

이 보는 약은 치료에 대한 우리의 그동안의 관점을 바꾸는 것 같습니다. 질병과 고통에 대한 종전의 치료법이 먹는 약이었다면, 이 [ 보는 약 ] 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친근한 이미지를 보고 거기에 색을 더하는 활동을 통해서, 뇌 속의 호르몬, 즉, 치유능력이 있는 긍정적인 호르몬을 활성화시킴으로써 질병을 치료하는 개념인 듯 싶습니다.

사실 현대인들은 걸어다니는 병원이 아니겠습니까? 항상 원인모를 두통과 같은 신체적 혹은 우울증과 같은 심리적 질병에 시달립니다. 아마도 부족한 수면이나 지나친 스트레스 등이 그 원인이 아닐까 싶어요. 저도 밤에 여러 작업을 하다보니 항상 부족한 잠 때문에 힘든데 이 수면부족이 쌓이다가 나중에 큰 질병으로 드러날까봐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럼 당장 수면패턴을 바꿀 수 없거나, 생활 습관을 바꿀 수 없을 때 무엇을 해야할까요? 이럴때 적절한 치료법이 필요한 듯 싶습니다. 음악이나 명상 등도 도움이 되겠지만, 전문가들은 이 책 [ 보는 약 ] 처럼 힐링이 되는 따뜻한 이미지를 가진 컬러북을 색칠하면서 긍정적 정서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 보는 약 ] 은 총 3부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제 1부 가족 : 가족들과의 단란한 한때를 나타내는 이미지들 / 제 2부 놀이 : 어릴적 친구들과 함께 했던 놀이들을 나타내는 이미지들 / 제 3부 그리운 이야기 : 이제는 더이상 찾아볼 수 없는 추억 속의 이미지들.

이미지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니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라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특히 TV 를 달고 살았던 어린이었던 나, 6백만불의 사나이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 추억 때문인지 몰라도, 47쪽 텔레비젼 속의 영웅이라는 제목의 이미지가 특히 재밌어서 열심히 추억을 떠올리며 색칠을 했습니다.




이외에도 색칠하고 싶은 재밌는 이미지에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사각사각, 사실 소리가 크게 나지는 않지만 색연필과 종이가 만나는 촉감이 아주 신선하고 좋았습니다. 원하는 색깔로 아이들 옷을 색칠하여 입혀보니 꼭 7살의 내 모습같아서 소리내어 웃게 되었습니다. 아! 이 느낌이구나... 하하핫

이래서 [ 보는 약 ] 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색칠을 하고 있는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풀리는 느낌이 들고 화나 분노도 사르르 녹아서 없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이것이 바로 치료효과가 아닐까? 싶네요. 부정적 감정은 최소화하고 긍정적 감정을 극대화하는 것. 내 몸에 좋은 호르몬이 흘러나오게하는 것.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에게도 실시한 프로그램이었다는 [ 보는 약 ] 색칠 놀이. 굳이 질병을 가진 환자들이 아니더라도 일반인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조카와 함께 정신없이 색칠하며 놀았던 시간들이 그리워집니다. 또 한번 색칠하며 놀아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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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일리에겐 아무 잘못이 없다
최형아 지음 / 새움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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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노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지만문제의 위중함은 아주 크다고 생각한다사회 문제를 고발하는 몇몇 시사프로에서 다루어왔던 문제이니만큼..


코피노란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겠지만사업차 혹은 유학차 필리핀을 방문했던 한국인이 필리핀 여성을 만나 가진 아이들코피노의 대부분은 자식을 버리고 한국으로 도망간 아버지를 둔비슷한 가정사를 가지고있다한국 현지에서는 고소감인데 양육비 고소 단지 외국 그리고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 )에서 벌어진 일이라 베일 속에 가려져 있는 아이들.


코피노의 현실 아버지의 부재가 미치는 영향이 당연히 크지 않을까대부분이 미혼모인 필리피노 어머니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을 것이고그들은 삶의 기반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근근이 살아간다아이들은 가난과 이중잣대 한국인도 아니고 필리핀인도 아니고 의 고통 속에서 살아갈 것이고.


책 속에 등장하는 에일리처럼태어난 죄 밖에 없는데탄생 순간부터 축복받지 못하는 영혼들은 단지한국인의 아이라는 이유로사회의 손가락질과 비난의 눈길을 받게 된다당연히 필리핀 주류 사회에 진입하지 못하고 이 직업 저 직업을 전전하며 살아가거나평생 좌절을 거듭하거나 출구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될 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읽으며대한민국의 추악한 민낯을 보게 되었다돈 좀 벌었다고 으스대며 필리핀으로 골프관광과 성관광을 떠나는 양반들현지인들을 무시하며 돈을 쓰고 필리핀 현지 여성들의 성을 사고 착취한다성을 사는 게 아니라 현지 여성과 연애를 하고 동거를 한다하더라도 그동안 생긴 아이에 대해선 눈을 감아버리는 몇몇 한국인들주인공 리틀 박의 아버지처럼... 파렴치한 인간들이 있다그들은 연락하라며 잘못된 주소를 적어주고는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타고 나몰라라 한다그 와중에 욕으로 주소를 대신하는 인간도 있다니.. .. 정말 천박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줄거리를 간단 요약하자면권위적인 사업가이자 정치인인 아버지를 피해서 필리핀으로 떠나온 리틀 박그는 한국에 있을 때아버지의 강요로 인해서 연인을 잃게 된 아픔을 지니고 있다그런데 필리핀에서도 아버지라는 망령을 마주칠 줄이야사업가였던 그는 접대를 하는 과정에서 에일리 라는 술집 여성을 만나게 되고자기도 모르게 그녀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그런데 어느 순간 에일리는 사라져버리고 물어물어 그녀를 찾아간 팔라완이라는 곳에서 무장괴한에게 납치를 당하게 되는 리틀 박.


한편 필리핀에서 첫째 아들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둘째 아들인 지훈을 필리핀으로 파견하는 아버지둘째 아들은 영사관에서 일하는 미스터 장과한국인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전담하는 경찰 앤디 그리고 형과 가장 친한 친구인 미스터 임을 만나면서 형이 어디에 잡혀있는지 조금씩 추적하기 시작하는데...


이 책엔 사실 납치를 당한 주인공 리틀 박이 나중에 에일리와 대화를 나누고 진실을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는 장면들이 이야기의 주요 서사를 차지하고 있고 이 부분들은 이야기의 흐름에서도 중요한 부분이다상처를 잊고자 한국을 떠나왔는데 또 다른 상처와 마주하게 된 주인공자신의 잘못은 아니지만단지 한국 남자란 이유로 도의적 책임을 지고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 그아버지의 업이 고스란히 그에게 찾아왔다.


요즘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필리핀에서의 한국인 피살 사건어쩌면 주인공 리틀 박처럼 아무 책임이 없고 선한 사람이 당했을 수도 있다그런데 불교 사상에 ‘ 업 ’ 이라는 게 있는데 그 사상에 따르면 부모가 선업을 짓느냐 악업을 짓느냐에 따라 자손에게까지 행불행이 이어진다고 한다내가 저지른 일이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자손들을 칠 수 있다는 건데... 나중에 안 좋은 일을 당하고 울고불고 해 봐야 소용없는 일코피노 문제가 부메랑이 되어서 한국인들을 치고 있는 것 같다.... 현재 그리고 아마 미래에도 쭉 그럴 것이다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추리소설인 줄 알고 시작했으나 사회고발 르포처럼 읽혔다코피노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넘어범죄라고 생각하는데 한국 정부는 왜 손을 놓고 있을까수많은 에일리와 에일리 엄마의 눈에 흐르는 피눈물이 보이지 않는 걸까우리가 당한 것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지금도 수많은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소설의 저자도 그런 부분에 초점을 두고 이 소설을 쓰지 않았나 싶다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코피노 문제... 진작 다뤘어야 할 진정성 있는 주제와 현장감 넘치는 생생한 묘사로 독자를 사로잡는 이 책 에일리에겐 아무 잘못이 없다 ]. 우리가 알아야 할 시대의 상처를 다루고 있다..


에일리의 엄마인 테스가 친구를 통해서 지훈에게 한 말이 울림이 되어 남는다... 그나마 다행으로 느껴진다고 할까그 동안의 아픔은 잊고 새출발을 하겠다고 다짐하는 듯한 발언.


“ 아참테스가 이 말로 꼭 전해달라고 했는데당신들이 무슨 짓을 하건 자신은 에일리와 함께 꼭 행복해질 거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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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 메일
제프리 하우스홀드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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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끝없이 어딘가로 질주하는 남자가 있다. 누군가의 추적으로부터 도망치는 사나이. 위장술로 어찌어찌 몸을 숨겨보려하나, 집요한 적의 총공세로 인해 더 이상 사람들이 있는 곳에선 살아갈 수 없다. 마지막으로 도달한 곳은 숲. 그는 한마리 동물이 되어 살아간다. 굴을 파고 바람소리를 들으며 살쾡이와 친구를 맺는다. 그런데 어느날, 자신의 은신처를 발견한 적과 대치하게 된 스파이.

 

주인공은 영국인 스파이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독재자 암살 시도 끝에 잡혀서 모진 고문을 당하여 손가락들이 망가지고 한쪽 눈이 실명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노련한 스파이답게 고문관들을 물리치고 빠져나온다. 사냥꾼이 사냥에 실패하면 도로 사냥감이 되는 법. 고도로 훈련된, 짐승의 본능과 민첩성을 가진 첩보요원이나 한순간의 실패가 모진 시련을 불러왔다.

 

이 책 로그메일에 등장하는 주인공 첩보요원은 존재감이 다소 희미하다. 일단 이름이 없다. 1인칭 시점으로 이어지는 이 글에는,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과 그를 둘러싼 위협적인 외부세계만이 존재한다. 급박한 시간 속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 그는 도대체 누구이고 어떤 독재자를 쫓고 있었던 것일까? 독재자 암살의 명분도 없고 조국에 대한 사랑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쫓기는 사냥감의 동물적 감각과 집요하게 그를 쫓는 무리들. 아마 독재자 편이겠지.

 

도시의 인파 속에 묻히려던 그의 정체는, 그가 자신을 추격하던 누군가를 살해한 이후, 완전히 드러나 사태는 급박하게 돌아간다. 인파가 드문 시골까지 내려온 첩보요원. 좁은 오솔길에 들어와 굴을 파는 지경까지에 이른다. 굴을 파고 풀로 위장한 문을 만들어 몸을 숨기는 스파이.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결국 숨어있는 그를 찾아낸 적들. 통로를 차단하는 압박 요법으로 점점 그를 코너에 모는데.....

 

책의 말미에 이르기까지, 소설은 친절함을 베풀지 않는다. 내가 누구인지, 독재자는 누구인지, 시대적 배경은 말할 것도 없고. 드러나는 게 없다.

 

오직 " 나 " 라는 인물의 " 생존 " 을 향한 치열한 몸부림만이 보일 뿐이다. 치밀한 묘사로 인해, 독자들은 그의 숨소리마저 들을 수 있을 정도이다. 동굴 입구를 막아버리는 적군들 앞에서 이제는 주인공이 느끼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냄새마저 맡을 수 있다. 오직 주인공의 도망과 적들의 추적으로 이루어지는 내용인지라, 독자들은 모든 감각을 다 동원하여 주인공과 함께 할 수 있다. 그가 갇혀있는 축축한 동굴 내부의 느낌, 산소가 모자라서 제대로 숨을 쉴 수 없는 갑갑함, 죽음을 앞에 두고 과거를 떠올리는 주인공의 느릿느릿한 독백의 처연함까지.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보니 저렇게는 살 수 없겠다 싶다. 억만금을 준다해도. 걷는 내내 뒤돌아봐야하고, 나를 스쳐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의심해야한다. 나중엔 도대체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도 의심이 된다. 조국을 위해서도 아니고 도대체 명분이 없는 암살자의 삶. 왜? 그렇게 살까? 그 아래 뭔가 있을리라는 나의 생각은 박살이 나고만다.

 

로그메일은 처절한 한 남자의 생존기이다. 감정이 끼여들 틈이 없다. 죽음이 코 앞에 있는 상태에선 생각을 해선 안되고 감정을 느껴서도 안된다. 오로지 삶을 향해 나아가야하는 것이다. 책을 읽는게 다소 힘들었다. 주인공이 긴장하고 불안에 떨때마다 독자들도 함께 했기때문.  같이 도망다닌 것 처럼 근육이 욱신거린다.

 

한마리 고독한 늑대의 이야기이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나만 믿어야 하는 외로운 스파이의 운명. 순간 번뜩이는 기지와 재치만이 나를 살릴 수 있다. 책을 읽는 동안이나마 진짜 첩보요원이 된 것처럼 느낄 수 있었다. 007처럼 멋있게 암살에 성공한 스파이 이야기가 아니다. 암살에 실패한 뒤 도망다니는 자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어떤 첩보영화나 소설보다도 사실적이고 박진감이 넘친다. 위기의 순간마다 땀을 쥐게 만드는 첩보소설 속으로 빠쳐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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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24
김유철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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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 24 ] 읽는 내내 한숨을 쉬었다. 왜 우린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걸까? 정녕? 꿈 많고 가족을 사랑하던 해나가 왜 추운 새벽에 차가운 저수지로 몸을 던져야했을까? 공룡처럼 거대한 경제 시스템 안에 " 사람 " 이라는 두 글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거대한 기계를 지탱하는 부품들만 존재할뿐. 부품이 죽든지 살아남든지 기계는 슬퍼하지 않는다. 다른 부품으로 갈아 끼우면 되니까. 이 세상의 모든 해나를 위해 기도하며 책을 읽어내려간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혹은 골리앗에게 맞서는 다윗.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는 조변호사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었다. 뿌리깊은 사회악을 제거하고 아파하는 이들과 연대하려는 그녀의 몸짓에서 정의를 읽었으나, 약하디 약한 참새의 날갯짓 같은 느낌이 들어서 참... 책을 든 순간부터 거대한 용과 싸우는 전사의 모습이 그려지니,,,,,원

 

주인공 김변호사는 자신의 학교 후배인 인권변호사인 조변호사로부터 사건의뢰를 받게 된다. 원래는 조변호사의 몫이였으나 암수술을 받아야되는 바람에 그녀가 믿고 따르는 선배 김변호사에게 사건을 의뢰한 것.

 

김변호사가 변호할 재석 군은 저수지에 빠져 익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나를 성폭행하고 고의로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런데 김변호사는 조변호사가 왜 이 사건에 집착하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아마도 그녀가 보호하고 있는 이 사회의 주변인들 - 외국인 노동자들, 해나와 같은 현장 실습생들, 그 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 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추측하며.

 

조변호사에게서 바통을 이어받은 김변호사는 조변호사를 통해, 그리고 해나의 주변인들을 탐문하면서 많은 진실을 알게 된다. 해나가 죽기 전 함께 콜센터의 해지방어팀에 근무하던 팀장이 실적의 압박감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했고 해나와 함께 콜센터의 해지방어팀에 근무했던 같은 학교의 다른 현장 실습생들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1달도 못 채우고 퇴사를 했던 것. 검찰은 해나의 죽음을 단순히 재석의 성폭행에 의한 사고로 돌리려하나 김변호사가 봤을 때 이 사안은 그다지 단순하지가 않다.

 

책을 읽으며 너무 놀랐고 창피했으며 죄책감마저 들었다. 통신사 해지를 위해 전화를 할 때마다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에. 전화기 건너편에 있는 사람이 내 이웃 내 형제 내 부모 일 거라는 생각은 한번도 못 해본 내 자신이 부끄럽기만 하다. 콜센터에서 제대로 실적을 내지 못한 팀원들을 일부러 비난하고 창피 준다는 대목에서 그만 분노의 눈물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해나가 회사를 들어갈때마다 지옥문을 들어가는 느낌이었겠다는 생각과 함께 정말 열악하디 열악한 콜센터의 상황을 보며 가슴 한구석이 너무나 무거워졌다.

 

181쪽

 

개인의 희생을 통해 사회가, 국가가 번영할 수 있다면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사회와 국가가 우리의 것이었던 적은 없었다. 몇몇 독재자와 그들의 비호를 받고 있던 정치인, 사업가, 언론인 들의 것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회사를 배불리기 위해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으니까.

 

과연 김변호사는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이 사건에서 유죄판결을 이끌어내려고 파이팅 중인 검찰을 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까? 제 2 의 해나는 지금도 양산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 약자와 주변인이 보호되는 세상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이 책을 보며 철통같은 경제논리 앞에서 무너지는인권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주위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이것이 현실이라고. 우리가 바꾸어나가야 할 현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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