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처방전 - 내 마음이 가장 어려운 당신을 위한 1:1 그림 치유
김선현 지음 / 블랙피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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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눈길이 머물렀나요?

그곳에 당신의 아픔이 있습니다.

가끔은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예술의 힘이 그런 것이 아닐까? 그림 속에 담겨진 에너지가 상상 이상으로 우리의 상처입은 마음을 치유하곤 한다. 시간이 없어 미술관을 자주 갈 수 없는 현대인들을 위한 책 [ 그림 처방전 ]. 부제목으로 [ 내 마음이 가장 어려운 당신을 위한 1:1 그림 치유 ] 라고 쓰여져있다. 즉, 다시 말하자면 이 책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지만 또한 개개인을 위한 맞춤형 책이기도 하다. 각기 다른 이유로 슬픔, 분노, 절망 그리고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그림을 통한 처방을 제시하는 저자 김선현.

저자는 20년 넘게 미술치료를 해오면서 ' 관계 ' 문제로 힘들어하는 것을 봐왔다고 한다. 특히 사람에 상처를 받고 사랑에 아파하는 사람들을 지켜봐온 저자. 그는 말한다. 특정 그림에 눈길이 머무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정답이 없는 그림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어떤 생각들이 떠오르는지 바라봄으로써 다친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인생에 사랑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저자는 주로 " 사랑 ", " 연인 관계 " 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상담을 하면서 만났던 환자들이 겪었던 트라우마가 주로 이 몹쓸 놈의 사랑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이가 들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 이 몹쓸 놈의 사랑,,,, 사랑을 시작할 때, 사랑을 지속할 때, 그리고 사랑을 끝낼 때... 우리가 겪어야하는 괴로움과 힘듬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저자의 마음이 엿보인다.

그림 중에서 끌렸던 것들 몇 점을 짚어보자면 우선 아내를 깊이 사랑했던 샤갈의 그림이다.



그러니 잊지 않기로 해요. 지금 옆에 있는 그 사람 덕분에

당신의 하루가 반짝반짝 빛난다는 것을.

늘 변함없이 당신 곁에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혼자 있었을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고독을 즐기는 여인이나 한가로이 풀밭을 거니는 연인들의 그림에 눈길이 머물렀을 수도 있겠지만 인생의 반려자를 만난 지금,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이런 그림에 더 끌린다. 샤갈은 아내에 대한 감정을 종종 화폭에 담았다고 한다. 그림 속 케이크와 꽃다발을 들고 있는 벨라, 그녀에게 입맞춤을 하고 있는 샤갈. 이 작품을 그린 이후 30년 가까이 서로에게 소울메이트가 되어주었다고하니... 그들의 애틋하고 깊은 사랑이 여기까지 전달되는 것 같다.

멀리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란 쉽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꿔 이야기하자면,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란 늘 쉬운 일은 아니라는 뜻이겠죠.




책 한권에 인생, 사람, 관계에 대한 통찰력이 오롯이 녹아있다. 저자는 말한다. 가끔은 백 마디 말보다 한 점의 그림이 우리의 마음에 더욱 위로가 된다고. 나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부터, 자신의 몸에 자신없는 여자의 이야기까지... 그림 하나에 우리의 현실이 그대로 반영되어있다. 아름다운 그림과 거기에 더해진 작가의 친절한 해설을 듣다보면 오래 묵은 마음의 상처가 금방 치유되는 듯 하다.

그림으로 상처를 치료하는 그림 처방사, 김선현. 55점의 그림으로 당신의 마음을 읽고 치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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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속 남자 속삭이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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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돌아온 그 아이들의 영혼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있다

어린 시절에 어둠과 악을 경험하고 그 미로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종종 범죄자가 된다. 학대와 방임 그리고 폭력으로 얼룩진 과거는 범죄자의 마음 속에 단단히 뿌리내린채 어른이 된 그를 강하게 통제한다. 이 책 [ 미로 속 남자 ] 의 여주인공 사만타를 납치했던 토끼가면을 쓴 사내 [ 버니 ] 도 짧은 순간이었지만 어린 시절 경험한 어둠과 악을 극복하지 못한 채 괴물이 되어버렸다.

사람과 사람을 통해 전달되면서 영원하게 이어지는 악을 표현한 듯한 소설 [ 미로 속 남자 ]. 이 소설은 납치되었다가 돌아온 아이들의 정신적 상처와 트라우마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사만타는 그녀가 13살이었을 때 등교를 하다가 납치가 되었고 15년만에 기억을 잃은 채 사회의 품으로 돌아온다. 도로가에서 알몸으로 발견된 그녀. 경찰에 신고를 했던 목격자는 사만타 외에 토끼 가면을 쓴 한 남자가 주위를 어슬렁거렸다고 증언한다. 하트 눈을 가진 토끼 가면을 쓴 신원 미상의 남자.... 그가 과연 범인일까?

한편, 사만타가 실종되었을 당시 그녀의 부모에게서 거액의 선금을 받고 사건 의뢰를 받았던 사립 탐정 브루노 젠코. 그는 어린 딸을 잃어버리고 종종걸음을 치던 부모에게 돈만 받아챙기고 결국 범인을 잡지는 못했다. 사만타의 어머니는 큰 병을 얻어 몇 년전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새로운 인생을 찾아 떠난 상태이다. 심장병을 얻어 얼마 살지 못하게 된 브루노는 속죄하는 심정으로 사만타를 납치했던 범인을 추적한다. 사건은 반복되는 법,,,경찰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하여 사만타와 같은 실종 사례를 찾아낸 그는 R.S. 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의 실종 사례를 발견한다.

3일동안 실종되었던 R.S. 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뭔가 끔찍한 경험을 했는지 360도로 변한채 돌아왔다. 이식증 ( 흙이나 석고 등의 음식이 아닌 것을 섭취하는 현상 ), 유뇨증 ( 괄약근 조절 능력 상실 ) 을 보였고 성적 억제력 결핍이라는 상태를 보이기까지 한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신체적 접촉에서 이상한 모습을 보였던 것. 결국 R.S. 의 부모는 친권을 포기하고 그는 위탁가정에 맡겨지게 된다. 그런데 브루노는 R.S. 가 심리 치료 당시 그렸다는 그림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사람들로 붐비는 동네, 즉 평범한 배경을 그렸지만 사람들의 얼굴은 평범하지 않았던 것. 그들은 모두 토끼 머리를 뒤집어썼고 눈은 하트 모양이었던 것이다.

한편, 실종 당시의 충격 등으로 인해 기억을 완전히 상실한 사만다는 병원에서 그린 박사라는 프로파일러에게 여러 다양한 질문을 받게 된다. 마치 미로 같았던 납치 장소와 상황을 떠올려보도록 요구받는 사만다. 범인을 잡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말에, 그녀는 마지막 한 방울의 기억까지 쥐어짜면서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려 애쓴다. 조금씩 기억을 떠올리는 사만타의 증언은 처절했던 납치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담고 있어서 독자들의 심장까지 벌렁거리게 만든다. 특히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벼랑 끝의 상황은 그녀가 왜 기억을 잃을 수 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준다. 잊을 수 밖에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기억이었던 것이다!!

도망치거나, 맞서 싸우거나, 죽거나. 사만타는 첫 번째 대안을 택하려다 생각을 바꿨다.

그래서 복도로 뛰어나가는 대신 여자애에게 달려들었다. 여자애 역시 똑같이 달려들었다.

상대의 의도를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대치하는 자세로 거의 동시에 문으로 향했다.

철문은 생과 사의 갈림길이었다

한때는 탐정으로 명성이 드높았지만 이제는 심장병을 얻어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사립탐정 브루노 젠코. 목숨 걸고 범인을 추적하는 그의 모습이 짠하기도 하면서 감동적이기도 하다. 비협조적인 경찰들과 갈등하고 부딪히면서 묵묵히 자신의 빚을 갚아나간다. 기억을 잃어버린 주인공 사만타가 프로파일러 그린 박사의 도움을 받아서 과거를 떠올리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중간에 자신의 아이를 출산했지만 곧바로 아이를 잃어버린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교묘하고 악랄한 범인이 사만타와 여러 실종 아동들을 가지고 논 정황이 드러나 분노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의 묘미는 어마어마한 반전에 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부분에서 인물과 관점 그리고 배경까지 모두 뒤집어버리는 작가 도나토 카리시. 책에 대한 소개글에서 나온 것처럼 갑자기 강한 펀치를 맞은 듯 정신이 하나도 없다. 분명히 범인을 찾았는데 그가 범인이 아니다??? 사건의 피해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범인이다??? 전문가의 포스와 냄새를 풍기면서 등장한 사람에게서 의심스러운 정황이 발견된다???

이 [ 미로 속 남자 ] 는 이야기 자체가 하나의 미로 처럼 독자의 추리력을 가지고 노는 듯 하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감과 긴장감은 당연한 요소이고 그 뒤에 따라오는 엄청난 반전에 넋을 놓게 된다. 피해자를 가지고 놀았던 범인처럼, 독자들을 가지고 오는 듯한 작가 도나토 카리시의 희대의 문제작 [ 미로 속 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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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완벽한 가족
애덤 크로프트 지음, 서윤정 옮김 / 마카롱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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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와 스릴러 소설의 묘미는 예상치 못한 반전에 있지 않을까? 독자들의 기대를 한꺼번에 뒤집는 충격적인 반전을 제시하면서 놀라운 결말을 이끌어내는 소설 [ 나의 완벽한 가족 ]. 저자 애덤 크로프트는 매우 치밀하게 계산된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범인에 대해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편견과 선입견을 한껏 이용한다고나 할까?

분명 꿈 속이었는데.... 꿈 속에서 저지른 사건인데... 현실이 되어버렸다. 망연자실한 채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쳐다보고 있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고 절망과 공포 그리고 두려움이 범인의 뒷통수에 생생히 묻어나는 범죄영화와 같은 소설... 그 속으로 들어가본다.

인간관계와 결혼생활의 허술함 그리고 그 안에 숨어있는 불안을 폭로하고 있는 듯한 소설 [ 나의 완벽한 가족 ]. 열심히 쌓아올리면 올릴수록 빠르게 무너져내리는 모래성과 같은 인간 관계의 허무함을 묘사한다고 해도 될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범죄소설이나 본질적으로는 범죄보다는 아슬아슬한 주인공 부부의 결혼생활과 불안하고 초조한 그들의 심리 묘사를 훌륭하게 표현한, 완성도 높은 심리 스릴러라고 볼 수 있겠다.

여주인공 메건은 어렵게 얻은 소중한 딸아이 에비와 조용하지만 성실한 교사 남편 크리스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아니, 스스로에게 행복하다고 끊임없이 설득하고 있는 걸까? 월급쟁이 교사 남편과 함께 찌들리듯 살고 있는 자신에 비해서 사업가 남편을 둔 덕분에 부유하게 생활하고 있는 여동생 로런, 그리고 그런 자신과 로런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저울질하는 어머니때문에 괴로운 그녀. 정말 지긋지긋한 가족들 때문에라도 남편에게 집착하게 된 메건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남편 크리스가 집을 비우기 시작한다. 한적한 낚시터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오는 남편을 보고 있기가 괴로운 메건. 그는 도대체 왜 갓 태어난 아이를 놔두고 밖으로 저렇게 나돌아다니는 걸까?

그러던 어느날, 이 작고 조용한 마을에서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다. 마일리 마컴이라는 남자아이가 강가에서 목이 졸린채 죽은 상태로 발견이 된다. 우연의 일치인 걸까? 아니면 필연인 걸까? 남편 크리스는 마일리의 담임을 맡은 적이 있고, 청소를 하던 매건은 장롱 속에서 마일리가 그린 남편의 그림을 발견한다. 그리고 쓰레기통에서 시커멓게 말라붙은 피투성이의 낯선 모자를 발견하는 메건. 섬뜩함을 느낀 매건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 모자가 마일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도대체 죽은 아이의 모자가 왜 자신의 집 쓰레기통에 있는 걸까?

그날부터 메건의 머리 속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언젠가부터 행동이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한 남편 크리스. 단순한 성격에 따뜻한 마음을 가진 남자와 사랑에 빠졌었는데 결혼하고 보니 그는 그때의 그 남자가 아니었다. 완전 딴판으로 변해버린 그는, 갈수록 눈빛은 공허해지고 비밀스럽게 외출했다가 조심스럽게 집으로 돌아온다. 메건은 소름이 끼치는 동시에 불안감을 느낀다. 남편이 범인이라면 그가 범인이 맞다면!!!!,,, 그렇다면 매건 본인과 딸 에비도 언제 당할지 모르는 상황!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일상 속으로 스며든 불안과 공포를 훌륭하게 그려낸 저자 애덤 크로프트. 굳이 살인 사건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일상 생활 속에서 우리는 충분히 삶을 져버릴 수도 있는 공포를 경험한다. 행복할 줄 알았던, 그래서 웃는 얼굴로 출발했던 결혼 생활이 막장 드라마가 되어버리는 것을 우리는 주위에서 종종 경험한다. 좌절과 실망감으로 인해 비이성적인 마음을 먹게 되는 경우도 있다. 괴물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 살다보면 인간을 괴물로 만들어버리는 계기가 찾아오는 법. 콘크리트 같은 줄 알았던 삶과 현실이 회반죽처럼 흘러내릴때..... 우리는 과연 이성을 갖추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

행복한 미소를 띤 가면을 쓴 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 나의 완벽한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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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검사 1
서아람(초연) 지음 / 연담L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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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1년 전 오늘, 넌 뭘 봤지?”

대한민국의 현실 속 리얼한 모습 그대로의 사법기관과 검사들을 보여주면서 그들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선입견을 단번에 깨어버리는 소설, 암흑검사. 제목이 독특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 암흑검사 ] 가 앞을 볼 수 없는 검사를 의미한다고는 상상도 못 했다. 과연 볼 수 없는 사람이 검사와 같은 힘든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의 해답을 명쾌하게 제시하는 듯한 소설이다. 법과 검사의 이야기라고 해서 마냥 어려울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천만에 말씀!! 책을 읽는다기 보다는 동명의 제목을 가진 TV 시리즈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생생하게 전달되는 현장감 덕분에 앞을 못 보는 강한 검사의 입장에서 내내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었다.

주인공 강 한 검사는 찬란한 성공의 길을 걷고 있었다. 불우한 환경을 딛고 오직 자신의 노력으로 검사의 자리까지 올라간 강 한 검사.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고 학교를 겨우겨우 마칠 수 있을 정도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성장했으나 자신의 의지로 그 모든 것을 극복한 주인공. 그러나 천재적인 인물이라고 해서 완벽하지는 않은 법. 불우한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앞으로만 전진한 결과, 주인공은 거만하고 몰인정하며 재수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그는 9년간 사귀었던 후배 정유미 검사를 매몰차게 차버리고 재벌딸과 정략 결혼을 준비 중이었다. 냉정하고 고집스러운 주인공 강한 검사.

재벌딸인 조유진과의 결혼은 출세가도를 달리기 위한 정략 결혼, 즉 사랑없는 결혼이었지만 그는 그러한 껍데기뿐인 결혼을 불사할 정도로 야심만만했다. 오직 성공만을 위해 살았던 한때. 그러나 그 누구가 미래를 알 수 있단 말인가? 창창하기만 했던 그의 미래는,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되면서, 마치 테이블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유리병처럼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사실 그것은 사고가 아니었다. 그가 담당했던 한 사건 때문에 발생한 일종의 테러였다. 한 소녀의 죽음을 둘러싼 사건. 1년전 발생했던 13살 소녀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의 판결에 불만을 품은 누군가가, 마침 약혼식을 마치고 나오던 강 한 검사에게 테러를 가했던 것이다. 약혼식을 일찍 빠져나왔던 그가 교통이 막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채 핸들만 잡고 있었을 때 차로 다가와 창문을 두드린 정체 불명의 범인. 테러범은 아무런 의심없이 창문을 내려주었던 강한 검사의 눈에 염산을 들이붓고 도망친다. 극심한 고통에 정신을 잃었던 주인공 강한 검사는 병원에서 깨어나고, 그때 그는 알게 된다. 수정체가 완전히 파괴되어 그의 두 눈은 회복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상상도 못한 구성과 장치로 흥미를 끄는 소설이다. 앞을 볼 수 없는, 따라서 무력한 상태에 놓인 검사가 과연 실력 발휘를 할 수 있을까? 라고 의심을 품게 된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지만, 엄청난 노력과 강한 의지 그리고 번뜩이는 머리를 가진 주인공의 활약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어깨춤이 춰진다. 그 뿐 아니라 강한 검사의 주위에 포진하고 있는 캐릭터들도 개성이 넘치고 극에 현실성을 부여한다. 강한 검사의 주위를 맴돌며 그를 괴롭히다가 졸지에 24시간 장애인 보조역할을 맡게 된 류소원이라는 캐릭터. 그는 젊은이답게 혈기왕성하고 호기심도 강하며 유머감각도 뛰어나 이 소설 속에서 훌륭히 감초 역할을 해낸다.

이 책은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의 사건을 파헤치고 있다. 13세 소녀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던 19세 소년 지온유. 그러나 지온유라는 소년은 약간의 정신 지체가 있었고 별이라는 그 소녀를 정말로 아끼고 좋아했다는 정황이 있었다. 지온유의 친구였던 류소원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사법체계와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역시 한계가 있었다. 법과 논리를 통해서만 모든 것을 파악하려 하였으니..... 이제 강한 검사는 그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그 사건의 실제 범인은 누구일까? 그리고 그 사건과 관계된 인물들 하나하나를 찾아가면서 테러를 자행하는 인물은 또 누구란 말인가?

법과 논리로만 살았던 주인공 강한 검사, 그는 엄청난 불행 ( 시력 상실 ) 을 만나게 되면서 서서히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게 된다. 법, 윤리, 논리, 도덕 만으로는 인간답게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강한 검사는 더 겸손해지고 더 인간 중심의 사고를 하게 된다. 인생을 끝낼 수 있을 만큼의 비극이었다. 그러나 그 비극으로 인해서 주인공은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성장을 겪게된다. "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 라는 속담을 떠올리게 만드는 소설이다. 너무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인 소설 [ 암흑검사 ]. 언젠가 반드시 드라마도 제작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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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소녀
세라 페카넨.그리어 헨드릭스 지음, 이영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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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익명의 존재로 산다는 것 즉 다시 말해서, 그 누구도 크게 눈여겨보지 않는 존재로 머무른다는 것은,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유리한 상황일 수도 있지만 반면에 위험한 일을 당해도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불리한 상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목받지 않는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내가 살아있건 죽어있건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이 [ 익명의 소녀 ] 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제시카 패리스도 그런 익명의 현대인들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그냥 익명의 현대인들 보다 더 안좋은 것은, 익명의 여성,,,, 현대 사회라는 정글 속에서, 그리고 포식자의 위험한 눈과 입 앞에서 나약하게 존재할 수 없는 익명의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아닐지??

이 책은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서 자존감이 떨어진 한 여성을 먹잇감으로 인식하고 다가온 한 포식자와 그가 던지는 그 거미줄,,, 점차적으로 옭아매는 거미줄과 그 거미줄 안에서 발버둥치는 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자존감 상실로 인해 삶에 대한 통제감이 떨어진, 일시적으로 나약해진 인간의 정신과 삶을 누군가가 통째로 휘두르려고 한다면? 그 나약한 먹잇감이 당신이라면 기분이 어떨까?

추리나 스릴러 소설을 읽다보면 두 종류로 나뉘어진다. 스토리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대충 알 수 있는 것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전혀 알 수 없는, 안개로 뒤덮혀있는 듯한 소설. 이 [ 익명의 소녀 ] 는 두 번째였다. 읽은 만큼만 알 수 있던 소설. 내 추리력이 이제 한물간걸까? 아쉬워하던 그때, 소설은 조금씩 물살을 타기 시작하면서 속내를 드러내보였다. 아주 조금씩,, 그러나 중독성있게. 이 책을 손에 잡으면 놓을 수 없는게 그 이유이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조금씩 아이에게 주면서 공부시키는 엄마에게 조련되듯 나는 책에 조금씩 조련되기 시작했다.

제시카 패리스는 뉴욕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하고 있다. 말이 좋아 아티스트이지, 그녀는 무거운 메이크업 케이스를 들고 다니면서 고객들을 직접 방문하여 화장을 해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예약이 많이 잡히면 중간에 밥 먹을 시간마저 부족한 제시카의 삶. 그러나 힘들어도 돈을 벌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릴 적 뇌손상으로 장애를 가지게 된 여동생 베키를 돌보느라 가정형편은 이미 많이 어려운 상태이기 때문에. 항상 부채감에 시달리는 제시카. 그런데 그녀가 부채감에 시달리는게.... 가정 형편만이 이유일까?

그녀는 자신의 고객으로부터 제법 짭짤한 수입을 거둘 수 있는 한 설문조사에 대해서 정보를 얻게 된다. 간단한 설문조사를 해주고 500달러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혹한 나머지, 자신이 그 고객인 척 나가서 설문조사를 하게 된 제시카. 그러나 어떻게 알았는지 설문조사를 주도하는 실즈 박사는 제시카의 정체를 알아내고 그녀를 52번 피험자라 부르면서 집중적인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평범하지만 인간적인 허물을 가지고 있는 제시카. 그녀에게는 비밀이 있다. 그 누구에게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비밀과 그와 관련된 마음의 상처. 그러나 이 설문조사를 계기로 힘겹게 드러내게 되는 과거의 상처들... 여동생 베키의 뇌손상 그리고 과거 극단에서 당한 성추행 등등. 제시카가 과거에 겪었던 사건들은 현재의 그녀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남자에게 입은 상처 때문에 신뢰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게 된 제시카. 그녀는 이름도 알지 못하는 남자들과 원나잇 스탠드를 하고 그런 자기를 혐오스러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지속해나간다.

한편, 컴퓨터 모니터 너머에서 설문조사를 하던 제시카의ㅏ 반응을 관찰하던 실즈 박사. 박사는 설문조사와 실험에 참여한 제시카의 미세한 반응과 그 다음에 예측되는 행동방향 등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기록한다. 그리고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 당신은 불리한 상황입니다. 초대받지도 않고 연구에 몰래 끼어들었어요.

원래 계획했던 연구는 무기한 보류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당신, 52번 피험자님에게만 집중합니다 .”

느리게 흐르는 발라드처럼 시작했다가 폭풍 기타 연주가 흐르는 락 음악으로 변질된 듯한 소설이다. 초반의 느린 전개는 마치 인공 지능 같던 실즈 박사가 사람이라는 실체로 등장하면서 완전히 빠른 전개로 돌변한다. 실즈 박사는 제시카에게 몇 가지 실험에 참여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인간의 도덕적 판단에 관련된 실험을 한다는 박사. 그리곤 제시카로 하여금 술집에 나가서 누군가를 유혹하는 제스츄어를 취하길 바란다. 그런데 그 누군가는 결혼 반지를 끼고 있는 유부남들. 박사가 그녀에게 이런 미션을 내리는 이유는 뭘까?

누군가가 내가 숨기고 싶어하는 내밀한 정보를 알고 있고 그것으로 나의 삶을 휘두르려 한다면? 거미줄에 걸린 파리처럼, 그가 던진 끈끈이에 걸려서 몸부림치는 내 자신을 맞닥뜨리게 된다면?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시나리오이지만 여기에 그런 주인공이 등장한다. 쉽게 생각하고 시작한 프로젝트가 어느새 나를 옥죄는 감옥이 되었고 나의 팔 다리를 묶은 족쇄가 되어있다. 제시카 패리스,,,, 그녀는 이제 빠져나갈 수 없다. 쉬운 탈출은......

죽음뿐??

늪으로 빠져들듯,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익명의 소녀. 박사가 가지고 있는 소름끼치는 비밀과 주인공 제시카의 비밀이 만나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이 책을 읽고 심리상담을 하는 분들에 대해서 ( 미안한 말이지만 )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체적인 학대도 무섭지만 사실 정신적인 학대가 더 무서운 법이다. 나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칼과 총 같은 무기를 휘두르지 않고도 누군가를 이토록 쉽게 갈기갈기 찢어놓을 수 있다니....

극적 긴장감과 스릴감이 남다른 소설 [ 익명의 소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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