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
샬럿 버터필드 지음, 공민희 옮김 / 라곰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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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만약 내일 죽을 운명이라면 과연 오늘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이 책 [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은 평생 자신이 일찍 죽을 운명이라 믿고 살아온 사람이 제2의 인생을 겪는 이야기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유쾌하고 따뜻한 편이지만 인생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날카로움도 있다. 큰일을 거치며 인생관이 변하는 넬과 주변 인물들의 활약이 흥미진진한 책 [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 속으로 들어가 본다.

주인공 넬은 20대 초반 여행을 갔다가 만난 한 점성술사로부터 “38살에 죽을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함께 여행을 떠났던 친구 소피가 실제로 예언에 따라 죽게 되면서 넬은 진심으로 그 말을 믿게 된다. 이후 그녀는 마치 유통 기한이 정해진 사람처럼 인생을 가볍게 살아가게 된다. 돈은 버는 족족 써버리고 마음껏 여행하고 사랑은 되도록 가볍게 끝내는 삶을 살았던 넬. 그리고 마침내 D-데이는 다가왔다.

삶을 정리한다는 생각에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너무도 솔직한 편지들을 보내고, 가지고 있던 재산은 모두 기부해버린 뒤, 엄청 비싼 호텔에서 마지막 밤을 맞이하게 된 넬. 그런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다음 날 아침, 황당하게도 넬은 여전히 살아있는데....

소설은 바로 이 시점에서 시작된다. 뭔가 당황스러우면서도 철학적인 상황. 독자들은 “만약 나에게도 다시 삶이 주어진다면?”이라는 질문을 머릿속에 떠올린 채 넬과 함께 그녀의 두 번째 인생을 함께 걷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자신의 인생으로부터 계속 도망만 다녔던 그동안의 넬, 그러나 이제 그녀는 마치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사랑도 하고 실망도 하면서 그녀가 인생을 배우는 과정은 코믹하기도 하지만 독자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단순한 로맨스 소설이라기엔 주인공이 너무나 좌충우돌이고 그렇다고 완전 코미디 소설도 아닌 것이 “인생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라는 중요한 주제를 가지고 있는 책이다. 주인공 넬, 혹은 우리가 피하면서 살아왔던 주제들 – 상실, 두려움, 관계, 미래 – 등을 마주하는 법을 아주 유쾌하게, 그러나 너무 가볍지 않게 풀어내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길가에 풀어놓은 망아지같이 살아온 넬을 보면서 내 20대 시절이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우리의 인생. 우리는 완벽하지 않기에 누구나 넬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또 이것을 만회하기 위해 무척 노력하기도 한다. 어쨌든 2번째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고, 넬은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점차 깨닫게 된다. 삶의 두 번째 기회에 대한 위트 있는 사유 - [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

* 출판사에서 협찬받은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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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
줄리애나 배곳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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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기이함, 그리고 사랑이 교차하는 순간들

줄리애나 배곳의 단편집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는 다소 낯설고 기이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자꾸 읽다 보면 어느새 마음 한쪽을 가득 채우는 슬픔과 그리움을 느낄 수 있다. SF 장르라는 외피를 입고 인간과 사랑을 말하는 저자. 이 책은 SF, 호러, 판타지 등 실로 다양한 장르로 이루어져 있고 어떤 이야기들은 매혹적일 만큼 파괴적이고 기묘하기도 하다.

이야기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배경과 서로 다른 장르적 색채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작품들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하는 감성은 일관된다. 슬픔, 상실, 그리움, 연민, 용서 그리고 사랑. 이 소설이 특이한 이유는, 갈수록 젊어지는 기술이나 안드로이드를 결혼식에 대신 보낼 수 있는 첨단 기술이 발달한 사회를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아날로그적인, 아주 진한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거나 인상에 크게 남았던 작품들을 언급하자면, 우선 [버전들]에서는 원래 인간들 대신 결혼식에 참석한 안드로이드들이 서로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이 상당히 신선했고, [가스라이터]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관계를 조작하는 시대의 도래 앞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도덕적인 불편함을 잘 묘사한다. [디어 브래들리 쿠퍼]에서는 유명인의 머리카락으로 태어난 아이가 친부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인데 정체성이나 소속감 같은 인간 특유의 감성을 잘 표현했다.

그러나 이 중에서 가장 내 마음에 크게 와닿았던 것이 바로 [역도화]였다. 소생술을 포기하는 대신 어려지는 길을 선택한 아버지. 이 단편은 하루에 십 년씩 어려지는 아버지와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는 딸의 이야기인데, 정말 눈물샘을 너무 자극한다. 무책임한 아버지를 미워했던 주인공은 젊은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며 그도 아버지이기 전에 한 인간이었음을 깨닫고 용서하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 점점 갓난아기로 퇴행하는 아버지를 품에 안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코 끝을 시큰하게 만들 만큼 감동적이다.

독자에 따라서 어떤 이야기들은 지나치게 난해하다고 느낄 수 있다. 바로 내가 그랬으니까. 그러나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해도 이야기가 전달하는 감정은 아련하게 남는다. 줄리애나 배곳은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을 들여다보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읽으면 기발함과 특이함으로 승부하려는 이야기인가 싶다가도 어느새 슬픔과 상실이라는 감정의 바닷속에서 허우적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감정적으로 깊이 있는 SF 소설이나 다소 어둡지만 인간적인 단편소설을 좋아한다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

* 출판사에서 협찬받은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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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
샬럿 버터필드 지음, 공민희 옮김 / 라곰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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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참으로 미스터리한 방식으로 꿀밤도 주고 행운도 준다. 삶을 다시 살아갈 기회를 가지게 된 주인공 넬의 여정이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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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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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협찬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왜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순간들은

영원히 사라진 반면

우연히 마주친 덧없는 순간들은

기억 속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지

“ 산다는 건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고통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은 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나지막이 읊조리는 바움가트너의 고백은, 우리가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혹은 이미 겪고 있을 “삶의 진실”을 다룬다. 삶은 아픔의 연속이다. 사랑하던 사람을 영원히 잃게 되는 일, 무너지는 몸과 희미한 기억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일, 그리고 여전히 삶이 우리를 과거의 기억 속에서 끄집어낼 때마다 다시 용기를 내야 하는 일 등을 이야기하는 소설 [ 바움가트너 ]

작가 폴 오스터는 소설 [바움가트너]에서 노년이라는 시점을 아주 사적인 목소리로 표현한다. 일흔을 넘긴 자신의 분신인 주인공 사이 바움가트너를 통해서 그 나이대 사람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혼란과 우울, 과거의 기억과 회한 등을 우리 앞에 조용히 펼쳐 놓는다.

어느 봄날의 작은 사고에서 시작되는 소설 [바움가트너] 수시로 찾아오는 건망증, 신경을 약간만 쓰지 않아도 발생할 수 있는 미끄러짐과 같은 사고 그리고 엉뚱한 곳에 물건을 놓아두는 사소한 실수들 등은 주인공을 자꾸만 과거의 시간으로 끌고 들어간다. 지금은 곁에 없는 아내 애나를 처음 만났던 순간, 그녀와 함께 했던 눈부신 나날들, 그리고 그녀가 떠난 후 살아있었으나 사실은 늘 죽어 있었던 시간들.

과거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정리할 때마다 마치 아들의 과거를, 아내의 흔적을, 그리고 자신의 시간을 지우는 것 같았다고 말하는 바움가트너. 어쩔 수 없는 상실이었지만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독자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삶이란 매일 조금씩 무엇인가를 잃어가는 과정이라는 것. 수십 년이 순식간에 스쳐간 듯 느껴질 때, 우리는 깨닫게 된다. 이제 남은 시간조차도 결코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상실만을 기록하고 있지는 않다. 이 소설은 우리가 끝이라고 여기는 지점에서 시작될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를 말하기도 한다. 한 젊은 여성 학자가 그녀의 유고작 들을 연구하고 싶다고 찾아오게 되면서 바움가트너는 처음으로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글로 다시 살릴 수 있다면 그의 이야기도 계속될 수 있지 않을까?

소설 [바움가트너]는 이야기를 완성하는 대신, 그가 살아내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삶이라는 불완전함을 견디고 기억이라는 끈을 부여잡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인간의 운명이 아닐까? 이 책 [바움가트너]는 우리가 언젠가는 만나게 될 삶의 풍경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때로는 너무 느리고 안타깝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깊고 넓은 바다가 더 느리듯 어쩌면 노년의 느리고도 깊이 있는 삶을 더 잘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기억과 회상이라는 키워드로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소설 [바움가트너]

“기억하라, 이 순간을. 지금 네게 일어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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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클라베 (영화 특별판) - 신의 선택을 받은 자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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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협찬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가장 엄중한 방식으로 치러지는 비밀스러운 선거, 콘클라베

소설 [콘클라베]는 교황의 선종이라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바티칸 아파트를 거부하고 검소하게 살았던 교황- 우연의 일치인지 주인공이 얼마 전 실제로 선종하신 프란체스코 교황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이제 전 세계에서 모인 118명의 추기경들이 차기 교황을 뽑기 위해서 철저히 고립된 채 콘클라베에 들어가게 된다.

줄곧 화자를 담당하는 사람은 야코포 로멜리 추기경인데, 그는 전체 회의와 선거를 주관하는 추기경 단장이다. 그냥 겉으로 보기에는 회의를 주재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일에 종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추기경들 사이에 오고 가는 치열한 심리전과 신경전 그리고 정치적 줄다리기의 한복판에서 열심히 조율하고 판단하는 역할을 한다.

어느 집단이든 마찬가지이겠지만 추기경들의 집단에서도 겉으로 보이지 않는 정치적 암투? 혹은 권력 게임 등이 아주 치열하게 펼쳐진다. 자유주의자, 보수주의자, 진보주의자 등 각 추기경들마다 서로 다른 신념, 정치적 성향 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개 속에서 시작된 선거와 투표는 점점 비밀과 야망이 엉킨 거대한 권력 게임으로 변해가고, 누군가는 과거의 실수를 숨기고, 다른 누군가는 교묘히 경쟁자를 밀어내는 상황...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진실은 드러나게 되는데...

“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뒤로 가면 갈수록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 넘치는 서술 방식 때문에 완전히 빠져들게 되는 소설 [콘클라베] 어떤 추기경이 교황이 되느냐에 따라서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영향력이 미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교황 자격이 되지 않는 듯 보이는 후보들이 교황 자리를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일 때, 그리고 누군가는 곧 될 것 같은 가능성을 보일 때 나도 모르게 손을 모아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의 장점은 단순 정치 스릴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책은 영적이고 종교적인 교회라는 집단에서조차 얼마나 다양한 관점이 존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다양성이 충돌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아주 치밀하게 잘 그려내는 심리 스릴러라고 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정치판보다 더 정치적인 암투와 노림수가 벌어지고 욕망과 욕망이 부딪힌다.

이 소설의 압권은 엄청난 반전을 보여주는 결말이다. “ 과연 이게 현실에서는 가능할 가?”라는 자문을 하게 만드는 충격적인 결말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생은 반전의 연속"이라는 말이 떠오를 만큼 이 반전이 너무 좋았다. 결국 신은 아주 미스터리한 방식으로 본인의 뜻을 관철시킨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던지는 작가의 질문은 오래도록 마음을 울린다. 누군가를 대표할 권리는 어디에서 오는가? 진정한 리더란 어떤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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