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과거시제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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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을 즐겨 읽지만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에 비해서 SF 소설에 손이 덜 가는 편이다. 너무 어려운 개념이 등장한다거나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힘든 소설을 읽다 보면 뇌에 정지가 오는 것 같기 때문이다. SF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 이 장르에 대해서 공부를 더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런 한편, SF 가 선사하는 기묘하고 독특한 세계관, 그 한계 없는 상상력이 주는 매력 때문에 쉽게 손을 놓을 수도 없다. 나의 경우 특히 포스트 아포칼립스류가 전달하는 어둡고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좋아하다 보니 자꾸 그쪽으로만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만나게 된 배명훈 작가의 소설집 [미래과거시제]는 그전에 읽었던 소설과는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 굉장히 스마트하고 산뜻하다는 느낌? 미래를 다루긴 하지만 광활한 우주나 망해버린 지구 이런 게 아니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가까운 미래를 다룬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읽다 보니까 한 50년 후에 혹은 100년 후에 일어날 수 있을 만한 일들이 훅 다가오는 느낌이다. 코로나를 겪은 후 비말에 대한 공포 때문에 침 튀는 센 발음이 싹 사라진다는 설정 -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외계인과 진지하게 조우하는 자리에서 갑자기 아이들의 수능 시험 이야기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진지하게 읽다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피식 웃게 되는 이야기들이 좀 있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배명훈이라는 작가를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의 정교하고 치밀한 "SF 적 상상력" 혹은 "세계관"이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하고 산뜻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포스트 아포칼립스류가 가진 비장하고 어둡고 절망적인 세계관 특유의 감정적 소비는 최대한 절제하는 대신 여러 다양한 가능성을 시도해 보는 듯한 실험적 시도가 보였기 때문이다. 소설 하나하나가 굉장히 재미있었고 나의 뇌를 간지럽힌다는 싶은 느낌도 들었다. 9편의 소설 중 내 마음에 더 깊이 남았던 소설들은 [수요곡선의 수호자], [미래 과거시제], [접히는 신들] 그리고 [절반의 존재]였다.

어마어마한 생산력을 가진 인공 지능들.. 앞으로 그들에 의해 지배될 어두운 미래를 가끔 상상하곤 하는데, [수요곡선의 수호자]에 나오는 주인공 로봇 마사로는 특이하게도 소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주로 공급에 초점이 맞춰진 A.I.들의 무시무시한 공급력을 상쇄하고 경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수요곡선의 수호자랄까? 인간 못지않은 감수성을 가진 마사로와 함께라면 소비활동이 상당히 즐거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 과거시제]에는 독특한 언어를 말하는 자와 그를 사랑하는 여인이 등장한다. 주인공 강은신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마치 과거에 직접 겪은 것처럼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이다. 시간을 여행하는 자가 등장하고 그가 가진 특유의 언어 습관을 다루는 이야기인데, 직선으로 흐르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독특한 단편이라는 느낌도 들고 예전에 봤던 영화 [시간 여행자의 아내]도 떠올랐다.

[절반의 존재]에는 사고로 인해 절반의 몸을 기계로 대체한 사람, 지하임이 주인공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 절반이 아니라 다른 절반이 기계로 대체된 경우이다. 고통을 이겨낸 아버지는 그녀를 딸로 받아들이지만 어머니는 도저히 변한 지하임을 딸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부모님 모두와 함께 하게 된 자리에서 지하임은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어머니 안세미씨에게 자신이 여전히 그녀의 딸임을 항변하게 된다.

위에 언급한 소설들 외에도 [접히는 신들]이라는 단편도 너무나 독특하게 다가왔다. 2차원이라는 평면의 세계가 눈앞에서 3차원으로 변하고 공간에 우뚝 서게 될 때 느끼는 그 감동, 얼마나 경이로울 것인가? 평면에서 입체감을 구현해 내는 화가들의 위대함이 우주라는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공간적 상상력이 남들에 비해서 더 뛰어난 사람들이면 이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았다.

배명훈이라는 이름이 워낙 낯익어서 책장을 좀 뒤져보니, 작가의 책들이 몇 권 꽂혀있었다. [타워]라는 책과 [안녕, 인공존재]라는 책인데 어려울 것 같아서 그냥 책장에 꽂아놓은 것 같은데,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 특유의 실험적 정신과 재기 발랄함이 녹아있겠지? 미래 세상에 대한 다소 삐딱한 시선이 만들어놨을 그 풍부한 세계로 다시 빠져들고 싶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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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요괴상점
기구름 지음 / 씨엘비북스(CLB BOOKS)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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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 장터 외진 골목, 이상한 이름의 상점이 있다.

글자 그대로 요괴를 사고팔거나, 요괴를 잡아들이는 곳

조선 팔도에 끊이지 않는 요괴 사건을 해결하는 한성 요괴 상점이었다.

한성 요괴 상점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모두들 매우 평범한 삶을 영위했을 것 같은 평화로운 조선 시대에도 역병과 환란을 일으켰던 요괴들이 들끓었다니?! 이 책 [한성 요괴 상점]은 기상천외한 요괴들이 등장하며 세상을 어지럽혔던 판타지 조선 속으로 독자들을 이끌고 들어간다. 책에는 가끔씩 들어봤던 요괴 두억시니뿐만 아니라 새로운 요괴들도 많이 등장한다. 서양의 호러 스토리에 자주 등장하는 목 없는 기사, 즉 머리 없는 요괴인 무두귀 같은 존재도 있다. 독특하고 기이한 요괴들도 재미의 요소이지만, 이 [한성 요괴 상점]이 재밌는 이유는 역시 독보적인 캐릭터, 주인공 최한기 때문이다. 한순간에 부모의 실종으로 혈혈단신으로 요괴를 물리쳐야 하는 운명을 맞닥뜨리게 되지만 특유의 호연지기와 유머감각(?)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애송이 요괴 사냥꾼, 엽과 한기의 활약으로 들어가 본다.

한밤중 한기는 채 잠에서 채 깨어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집이 불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정신은 깨어났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상태. 그런데 집은 폭삭 주저앉을 정도로 타버렸지만, 한기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채 살아남는다. 알고 보니 그 전날 어머니가 준 적룡 혈담이라는 환 덕분에 살아났다는 걸 알게 된 한기. 다가올 재난을 어머니가 미리 예측하셨다는 생각에 부모님에게 어떤 변괴가 일어나지 않았나 싶어서 서둘러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한성 요괴 상점으로 달려가지만 가게는 누군가에 의해서 쑥대밭이 되어 있는 상태이고 부모님의 행방은 묘연하다. 평소에 부모님께서 하시던 말씀에 힌트를 얻어서 매화나무 곁을 파본 한기, 거기서 요괴 화첩과 아버지의 편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조선에서 알아주는 신출귀몰한 요괴 사냥꾼들인 부모님이 갑자기 사라지신 이유는 뭘까?

한편, 후농리라는 마을에서 마진이라는 역병이 돌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 나간다. 혜민서에서 나온 의녀와 의원들이 약과 탕제를 처방하지만 환자들은 차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삿갓을 쓴 낯선 사내가 후농리를 찾아오고 그가 건넨 검은 환약을 먹은 방산댁과 그녀의 딸이 차도를 보이게 된다. 불법적인 의료 행위라고 주장하며 환약 복용을 뜯어말리는 의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떠돌이 삿갓 사내의 환약을 먹은 마을 사람들은 모두 완쾌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진다. 그러나 차가운 인상착의의 삿갓 사내 이야기를 들은 한기는 곧바로 무시무시한 요괴 두억시니를 떠올리게 된다. 요괴 화첩에 따르면 요괴 두억시니가 마을에 나타나면 사람들이 전염병에 걸리고 끝내는 머리가 터져 죽는다고 하는데, 마을을 떠돌아다니며 환약으로 병을 낫게 만드는 삿갓 사내의 정체는 진짜로 무엇이란 말인가?

요괴가 등장하는 장르는 자칫하면 너무 유치해지거나 소설로서의 설득력을 잃을 수 있다. 그러나 기구름 작가의 "한성 요괴 상점"라는 요괴와 조선시대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완벽한 조화를 보여준다. 글을 읽다 보면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우리나라 고유의 옛 요괴들이 생명력을 갖추고 생생한 존재감을 내뿜는다. 한국인 특유의 해학과 풍자가 곁들여져서 요괴라 해도 크게 잔인하거나 무섭지 않다는 면도 좋았다. 예를 들자면 마을의 수호신 장승이 두억시니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머리 없는 요괴인 무두귀는 가족들이 누군가의 손에 몰살을 당한 뒤 생긴 한으로 인해서 요괴가 된 케이스였다. 그런데 정작 무서운 것은 바로 요괴들이 조선을 쑥대밭으로 만들게 하는 거대한 힘, 요괴들을 조종해서 조선을 삼키려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남긴 편지에 따르면 그는 허벅지에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는 요괴이다. 과연 한기는 거대한 위협으로부터 조선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실종된 부모님, 요괴들의 습격으로 인해 너덜너덜한 백성들, 그리고 누군가의 손아귀에 들어갈지도 모르는 나라의 운명... "한성 요괴 상점" 속 판타지 조선은 이제 애송이 엽괴 최한기의 손에 달려있다. 탄탄한 이야기 구성에 작가의 현란한 필력 덕분에 정말 시간 가는지 모르고 읽은 책이다. 특히 한기가 요괴들과 대적할 시 외우던 주문 때문에 여러 번 박장대소를 했다. 우스꽝스러운 주문이지만 그 주문에서 나오는 파괴력은 정말 대단했다. 무협지 같기도 하고 머털도사 같은 애니메이션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어쨌건 애송이 요괴 사냥꾼이 진정한 영웅으로 탄생하는 것을 보고 싶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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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하는 나날들 - 조현병에 맞서 마음의 현을 맞추는 어느 소설가의 기록
에즈메이 웨이준 왕 지음, 이유진 옮김 / 북트리거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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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직도 ‘괜찮다’는 것이 무엇인지, 특히 이 병을 가진 이상

과연 정상적인 상태가 가능한지를 부단히 고심하고 있다. (...)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없다면?

만약 이렇게 어지러운 상태가 나의 진정한 모습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조율하는 나날들이라는 제목을 통해서 끊임없이 바이올린 줄을 조율하는 한 여성을 떠올리게 된다. 여기서 바이올린 줄이란, 조현병을 가진 저자가 겪는 혼란과 망상으로 가득 찬 그녀의 머릿속이나 일상생활이라고 볼 수 있다. 세상을 온전히 살아나가기 위해서 그녀는 끊임없이 스스로와 대화하고 다독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예일대와 스탠퍼드 대학을 동시에 합격했고 패션에 관심이 무척 많았던 꿈 많은 여학생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 작가 에즈메이 웨이준 왕은 이 책 [조율하는 나날들]을 통해서 조현병 진단을 받은 뒤 그녀가 겪어야 했던 힘들었던 경험들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고백하고 있다. 이야기 내내 자기 연민이나 과한 감정을 담기보다는 제3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듯 객관적인 입장에서 풀어내어 읽기 편했다.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읽을 때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맞닥뜨리게 된다. 이 책 [조율하는 나날들]은 쓴 저자 에즈메이 웨이준 왕씨가 겪어야 했던 혼란스러운 나날들은 정말 새롭게 다가왔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정신 건강이나 정신적 문제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정신적 질환이라고 해봤자,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그리고 공황장애 정도만 알았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조현병이라는 질환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알게 되었고, 이 병이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나 자신과의 관계까지 갉아먹는 무서운 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조현병을 가진 사람들은 환시나 환청을 자주 경험하게 되고 ( 구더기가 끓는 시체를 목격하게 된다거나 등등 ) 갑자기 급격한 공포심을 느끼게 되어서 일상생활이 힘들다니... 정신과적 질환을 앓고 있는 가족들이 있어도 워낙 쉬쉬하며 살아가는 사회다 보니까 평범한 사람들은 그들이 겪는 고통을 아예 모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병을 앓게 되면서 겪었던 많은 다양한 경험과 조현병과 관련된 여러 사례들을 기술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안타까웠던 사연들은 조현병 문제 때문에 그녀가 예일대학에서 완전히 쫓겨나야 했던 사실이다. 총기 사건과 같은 참사가 번번이 일어나는 나라라서 그런지, 미국은 더욱더 엄격하게 정신과적 질환을 다루는 것으로 보였다. 작가가 예일대 정신의학과 학과장에게 이메일을 보내면서까지 재활의지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재고의 여지도 없이 매몰차게 그녀를 쫓아낸 대학의 처사가 좀 안타까웠다. 반면 희망적인 부분도 있었다. 저자는 스탠퍼드대에 다니던 시절 청소년 양극성장애 캠프의 자원봉사자로서 참가하게 된다. 거기서 양극성장애와 더불어 발달장애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스튜어트라는 아이를 도와주면서 아이에게 애정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이 엄마가 되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저자는, 이 경험 이후로 아이를 갖는 문제를 조심스럽게 떠올려보게 되는데, 이 대목에서 가슴이 뭉클했다.

우리는 몸이 아프거나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상을 잘 살아가는 모습에 감동한다. 하지만 정신적 질환에 대해서는 말하는 것 자체도 꺼려 하고 따라서 공론화되는 부분이 매우 적다. 그런 면에서 저자 에즈메이 웨이준 왕이 참 대단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 병동에 갇혀서 미친 사람 취급받았던 순간이나 대학에서 쫓겨나야 했던 것과 같이 너무나 안타까웠던 사례도 있었지만 아이들과의 성공적인 캠프 활동과 같은 희망적인 사례도 있었다. 그녀가 전달하는 모든 상황과 순간들은 굉장히 생생하고 감동적이다. 또한 그녀는 의학적 관점에서 자신의 질환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녀가 앓고 있는 특정 질환뿐 아니라 다른 여러 정신과적 질환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다루고 있어서 책을 읽고 나니 그녀와 함께 이 분야를 연구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녀는 훌륭하게 극복해나가고 있는 것 같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그동안 관심을 별로 두지 않았지만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이기에 정신적 어려움을 가진 사람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과 관심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느끼는 어려움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읽기 대단히 힘들었지만 너무나 흥미로웠던 책 [조율하는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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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커튼 한국추리문학선 16
김주동 지음 / 책과나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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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사고가 불러온 은밀한 추적

붉은 커튼이 숨기고 있던 비밀

많은 것을 극복했지만 죽음만은 극복하지 못한 우리 인간. 그래서 종교를 만들었고 신만이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다고 믿어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신이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존재인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수는 없는 것인가? 주로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의 주제로 많이 쓰여왔던 신, 죽음, 영원한 삶이라는 주제가 이 추리소설 [붉은 커튼] 속에 담겨 있다. 책을 읽다 보니 요즘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이비 종교단체가 떠올랐다. 이 책에 등장하는 미래파라는 종교 단체는 과학으로 영생할 수 있다고 신자들을 미혹하는 곳이다. 아들의 죽음과 아내의 실종 그리고 사이비 종교 단체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빠르게 풀어낸 추리소설 [붉은 커튼] 속으로 들어가 본다.

시골 할머니 집에 놀러 갔던 아들 지호가 뺑소니 사고로 죽은 뒤 아내는 매일 슬픔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녀는 모든 게 남편, 즉 주인공 탓이라고 하면서 원망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실종된 아내를 찾아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던 남편은 아내가 근무하던 학교에서 귀신을 볼 수 있다는 한 여학생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 주희라는 이름의 그 학생에게 지호의 영혼이 실려서 아내와 자신에게 죽음에 대한 결정적 메시지를 남겼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아내 나영이 주희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는 주인공.. 아내를 찾아 주희의 고향 갈산으로 가게 되는데.. 과연 그는 아내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주인공의 직업은 기자이다. 그는 6개월 전부터 미래파라는 종교단체를 취재해오고 있었다. 이 단체는 과학으로 인간을 영생시킬 수 있다는 교리를 가진 단체인데 교주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로 명맥만 유지해오고 있었다. 주인공은 지호의 죽음에 미래파가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필연적 결과인지 아내를 찾기 위해 내려간 경북 갈산이라는 동네는 완전히 미래파 신도들이 장악한 곳이었다. ( 이 대목에서 JMS 신도들이 가득하다는 한 지역명이 딱 떠올라서 소름이 끼쳤다 ) 아내가 실종되기 전 만났다는 미래파 신도들을 추적하며 아내의 흔적을 찾으려 하지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녀의 흔적... 이상하게도 주인공이 만나는 족족 목숨을 잃게 되는 미래파 신도들... 이 조그만 마을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주인공과 미래파 신도들 간에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볼만했던 소설 [붉은 커튼] 아들의 죽음도, 아내의 실종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주인공이 끈질기게 단서를 얻어 가며 진실을 찾는 과정이 흥미진진했다. 스파이 소설을 방불케하는 심리전도 이 소설을 재미있게 하는 요소였다. 도대체 누구를 믿어야 할지 누가 누구를 위해서 일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 목숨을 위협당하는 상태에서 오직 아내를 찾겠다는 신념만으로 미래파와 대결하는 주인공이 짠하면서도 대단해 보였다. 그러나 추리 소설은 끝날 때까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법.....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막판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붉은 커튼 너머에서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끝부분에서 기억의 왜곡이라는 부분도 첨가가 되는데 역시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은 추리 소설의 백미라는 생각도 들었다. 죽음과 영생, 신과 구원이라는 다소 무거운 메시지를 품었으나 가독성은 높았던 추리소설 [붉은 커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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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박물관
김동식 지음 / 요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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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경험한 순간들이 동상으로 만들어져서 박물관에 전시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매우 기뻤던 순간 혹은 슬펐던 순간 아니면 너무나 행복했던 순간 등등 떠올리기만 해도 코끝이 찡해지는 순간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지게 된다면 감개무량할 것 같다. 김동식 작가의 초단편 소설집 [인생 박물관] 중 같은 제목의 이야기에 그런 내용이 담겨 있다. 사진으로 밖에 남아있지 않은 추억들이 동상으로 제작되어 박물관에 전시되고 주인공이 꿈을 통해서 그 작품들을 만난다는 설정.. 신비롭기도 하고 가슴 찡하기도 한 설정이었다. 이처럼 이 책 [인생 박물관]은 굉장히 짧지만 강력한 한 방의 감동이 있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회색 인간]이라는 책으로 김동식 작가를 처음 만났었다. 판타지, 공상과학 등등 장르적 색채가 강한 이야기임에도 사회적 문제와 인간다움 등을 이야기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는데, 지금 [인생 박물관]이라는 책을 읽고 난 뒤의 느낌도 그러하다. 틀은 장르이지만 결국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 우리가 착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 "이다. 점점 더 각박해지고 인간미를 잃어가는 세상에 내리는 조용한 단비 같은 느낌이다. 조금 다르게 표현한다면 약간 현대적인 느낌의 우화집 같기도 하다. 짧은 글이지만 서술 구조가 확실하고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뛰어난 글들이라 재미가 있었다. 읽고 난 뒤에 더 큰 여운이 남는 [인생 박물관] 속으로 들어가 본다.

한 편의 소설집에 총 25편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굉장히 짧은 소설, 즉 초단편 소설들로 이루어진 책 [인생 박물관] 그런데 각 이야기 개성 있고 살아있다.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는 느낌이다. 25편의 이야기들 모두 인간의 본질, 즉 우리는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다루고 있는데, 주로 인간의 선한 의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치 김동식 작가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듯하다. 우리는 가끔 스스로에 대해 너무 박하게 점수를 매기고 너무 가혹하게 평가하는데 이제는 그러지 말자. 우리는 악하기도 하고 선하기도 하다. 그러나 주로 선하게 살아가겠다는 의지 쪽을 택하는 존재이기도 하다고 말이다. 이야기들 중 인상 깊었던 몇 가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단편 [ 자살하러 가는 길에 ] 음주 운전자의 손에 아내와 아들을 잃은 주인공.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부산에 있는 특정 장소로 자살하러 가기로 마음먹는다. 가던 중에 빨간 불에 길을 건너다가 사고를 당할 뻔하고 기차에서 도시락을 먹다가 소스를 흘려서 좌석을 어지럽히고 마지막에는 카드기가 고장 난 택시를 탔는데 현금이 없다. 매번 상대편에게 심한 욕을 먹는 주인공.. 그러나 죽으러 가는 길이라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단편 [인생 박물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노인은 주인공 민서에게 잠들기 전에 인생 박물관의 입장권을 써서 베개 밑에 넣어두고 자면 꿈속에서 인생 박물관에 들어가 볼 수 있다고 한다. 민서는 재미있겠다 싶어 노인이 시키는 대로 하고 실제로 꿈속에서 자신의 인생이 동상으로 표현되어 전시된 박물관에 들어가게 된다. 어떤 동상들은 과거를 떠올리게 해주지만 다른 것들은 미래를 예언하기도 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박물관에서 자신이 주저앉아 울고 있는 동상을 보게 되는 민서. 그 동상의 제목은 바로 [부모님의 죽음]이다. 화들짝 놀라서 깨게 되는 민서... 그녀에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우리는 아주 사소한 이야기에도 약간의 반전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거기에 눈물과 감동 그리고 웃음이 있다면 금상첨화! 김동식 작가의 초단편소설집 [인생 박물관]에 등장하는 이야기에는 그러한 강력한 페이소스가 있다. 비극적으로 끝나는 이야기인가 했는데 해피엔딩이 살짝 버무려져 있고 복수에 관한 이야기인가 했더니 결국엔 진정한 복수는 용서라는 교훈을 심어놓았다. 어떻게 보면 너무 단순한 권선징악적인 시선 혹은 세상과 인간성에 대해서 너무 좋게만 보는 시선은 아닌가 싶다가도 결국 선이 악을 이기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다 싶다. 세상과 인간에게 냉소적이거나 마음을 굳게 닫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반전과 페이소스 그리고 약간의 비틀기를 이용해서 재미있게 엮은 초단편 소설집 [인생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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