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무녀
박해로 지음 / 북오션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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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시달리는 자,

죽음마저 거부한 그의 의지

처음에는 스토리가 굉장히 이상하고 기묘하게 느껴졌다. 끊임없이 층간 소음에 시달리는 소설가 김민규. 그리고 밤낮 할 것 없이 악몽에도 시달리는 주인공 김민규. 읽으면 읽을수록 굉장히 초현실적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한창 예민했을 때 겪었던 가위눌림 현상도 떠올랐다. 잘린 닭 머리에서 구렁이가 튀어나온다던가 흘러내리는 벽지를 뚫고 남의 집을 훔쳐보는 무당의 소름 끼치는 눈동자까지... 그런데 다 읽고 나니? 이 소설 진짜 너무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이 소설이 내뿜는 알 수 없는 기이한 매력 탓에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는데, 뭐랄까? 그야말로 진짜 한국인이라면 공감할 만한 정서를 한 권의 책에 다 녹여낸 느낌이다. 이 책으로 무속 신앙과 무당의 역할을 다시 보게 되기도 했다. 나에게 무속 신앙이라는 게 뭔지 잘 알려준 책, [ 사악한 무녀 ] 속으로 들어가 보자.

로또에 당첨되어 든든한 자산이 생긴 후 평생 꿈이었던 소설가에 도전한 청년 김민규. 그는 [떼부잣집 탐정]이라는 추리 소설 시리즈를 세상에 내놓았고 소설이 인기를 끌면서 동시에 영화로 만들어져 김민규는 데뷔와 동시에 큰 인기를 끌게 된다. 책으로 왕칭 벌어들인 수입으로 [코어 힐]이라는 신축 아파트까지 장만하게 된 민규. 그러나 부실 공사로 인한 층간 소음이 장난이 아니다. 층간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글을 못 쓰게 되고 자신의 몸이 불에 타는 악몽까지 계속 꾸게 된 민규는 정신과까지 다니게 된다. 정신과 의사의 조언으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민규. 그는 동신 아파트라는, 다소 낡아 보이지만 층간 소음은 전혀 없어 보이는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사를 한 이후에도 김민규의 삶에 불길한 일이 끊이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따라다니는 귀신이 눈에 보이고 위층에 살고 있는, 무속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등장하는 이상한 악몽을 꾼다. 게다가 자신에게 동신 아파트를 소개해 준 공인 중개사는 민규에게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지 아닌지 좀 알아봐달라는 이상한 부탁까지 한다. 거절을 하고 싶었지만 추리 소설 작가의 본능에 이끌려 공인 중개사 아내의 불륜 현장까지 찾아가게 되는 민규... 도대체 그가 가는 곳마다 불길한 일이 생기는 이유는 뭘까?

나는 가끔 너무 피곤한 채 잠들거나 하면 이상한 꿈을 한 번씩 꾼다. 꿈에서 항상 대학교가 나오는데 강의실을 찾지 못한다던가 교과서가 없다던가 하는 이유로 학기 내내 수업을 듣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오는 꿈이다. 그리고 분명히 대학교를 졸업한 후 또 다른 대학교에 입학하는 악몽을 꾼다. 마치 남자들이 군대에 다시 끌려간 꿈이랄까? ㅋㅋ 이 소설 속 주인공 김민규도 내내 악몽에 시달린다. 자신의 몸이 불에 타는 장면을 본다던가 현실에서 자신을 쫓아다니는 귀신에 의해 가위에 눌리고 위층에 사는 무속인이 꿈에 등장해서 그에게 기이한 의식을 행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결국 위층 무속인을 찾아가 상담을 받게 되는 민규. 추리 소설가이기에 항상 논리적인 인과 관계를 추구하는 그이지만 연속적인 불길한 일에는 장사가 없다. 그러나 이 무속인 뭔가 이상한데? 그를 쫓아다니는 귀신을 물리친다는 핑계를 대지만 오히려 민규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의식을 행하는 것 같다. 과연 민규는 그를 감싸고 있는 불길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소설 [사악한 무녀]의 끝에는 기가 막힌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앞부분이 좀 이상하고 기괴하게 느껴지더라도 꾹 참고 읽어봐야 놀랍지만 아름답고 감동적인 결말을 맞을 수 있다. 평소에 무속 신앙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니라서 지식이 많이 없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무속 신앙과 결부되어 있는 모든 일들이 전혀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나도 뼛속 깊이 한국인이 맞기는 맞나 보다 싶다. 나도 추리 소설을 워낙 좋아해서 그런지 구조가 논리적이지 않거나 인과 관계가 좀 약한 글은 재미가 없다고 느껴지는데 이 소설은 그런 면에서 뭔가 딱딱 떨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결말이 놀랍기도 했지만 좀 슬프고 먹먹해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열린 결말? 혹은 속편을 예고하는 결말? 앞으로 이 시리즈가 더 나올 거라는 생각에 신이 난다. 뭐라고 해야 할까? 정말 새로운 형식의 무속 스릴러? 혹은 띠지에 쓰여 있는 것처럼 토속 오컬트 스릴러인가? 하여간 굉장히 신선한 형식의 귀신이 귀신 잡는 이야기가 앞으로 펼쳐질 것 같다. 완전 내 타입이라서 정말 재미있었던 소설 [사악한 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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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이경 지음 / 래빗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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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가 태어나면 보호자는 그때까지의 생활로부터

갑자기 뚝 잘려 나와 낯선 세계에 던져지게 됩니다.

아기와 나만 존재하며, 내가 아기의 모든 것을 해결하 고 책임져야 하는 독방의 시간이 닥치죠 "

출산과 육아라는, 인간 존재의 고유한 영역에 인공 지능이 끼어들게 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라는 가정을 재미있게 표현한 듯한 단편 소설의 일부분을 읽었다. 출판사 서평단으로 받은 샘플북 New Rabbit에 실려있는 단편 :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 는 힘든 육아 과정을 도와주는 도우미가 다름 아닌 A.I.라는 재미있는 상상을 바탕으로 쓰인 작품이다.

언니들과 친구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겪은 출산과 육아는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평소에는 우아하고 기품이 넘치는 그 사람들이 아이를 키우는 상황에서는 거의 짐승 (?) 만도 못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 우선 아이를 먹이느라 밥을 굶고, 밤에 잠에서 깨어 불안에 떠는 아이를 달래느라 1시간 도 채 못 자고, 화장실에서 큰 볼일을 보다가도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순간 모든 것을 끊고 (?) 나와야 했다.

그런데 모두들 하나같이 입을 모아서 하는 말이, 그 와중에 가장 힘든 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하다 보면 입에서 곰 파내가 날 지경이었다는 것이 그들의 말이었다. 아이가 너무 사랑스럽긴 하지만 그들에게는 제대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어른과의 대화가 너무나도 간절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매일 사용자와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상황을 공감해 줄 수 있는 인공 지능이란, 어쩌면 가끔 들러서 잠시 있다가 가는 친구나 친척 의 존재보다도 훨씬 소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단편 :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의 주인공 미주는 어느 날 갑자기 거실에 모습을 드러낸 스웨덴 배우 알렉산드 스카스가드를 만나게 된다. 물론 그는 진짜가 아니라 그녀가 얼마 전에 구입한 젖병 소독기인 보틀스에 탑재된 인공 지능이었다. A.I. 알렉산더는 사용자가 업체에 제공한 여러 정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천사 이미지인데 미주는 도대체 어떤 알고리즘에 의해서 그가 탄생한 것인지는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녀는 딸 세리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머무르는 동안 봤던 여러 영화들을 떠올린다. 그때 봤던 작품들 중에서 알렉산더가 등장하는 영화 : 레전드 오브 타잔 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대충 추측한다. 하지만 그녀가 본 영화 중에 괴물 외계인이 등장하는 에일리언도 있었다 ㅋㅋ 어쨌든 푸른 눈동자와 긴 속눈썹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까지 가진, 진짜 같은 A.I. 알렉산더는 미주를 위해 젖병 소독이 끝났다는 알림도 주지만 각종 지식을 섭렵하고 있어서 미주는 물론, 남편과도 소소한 잡담이 가능했다. 아이를 처음 키워봐서 정신없는 신혼부부의 삶에 단비 같이 찾아온 친구 인공 지능 알렉산더였다.

그런데,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원인 불명인 오류가 제품에 발생하여 제품 전체를 리콜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 미주와 남편은 고직 6일을 함께 보낸 인공 지능 친구 알렉산더를 그냥 이대로 보낼 수 없어서 허둥지둥하게 되는데.... 과연 이 신혼부부와 인공 지능의 관계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단편 소설의 일부라 아주 짧았지만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앞으로 인공 지능이 더 발전하게 되면 이렇게 능수능란하게 인간을 대하는 A.I.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 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영화 [Her] 도 생각나고 해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는 정말 아이의 출산과 양육에 기계와 인공 지능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편으로는 조금 두렵기도 했다. 공감 가는 부분도 많고 신선한 재미도 있었던 단편 :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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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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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과 쾌락의 근원은 같은데 너는 어디로 가려는 거지? "

인간의 삶은 고통의 바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 인류가 굉장히 고통에 취약한 신체나 심리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스스로 고통을 일으키는 존재라는 생각도 든다. 뉴스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가족을 학대한 가장이나 부모에게서 학대받은 아이들의 소식이 들려온다. 신체적인 고통이든 아니면 심리적 고통이든 평생을 고통에 시달리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정신 상태는 과연 어떨까? 이 책 [고통에 관하여]는 인간이라면 겪을 수밖에 없는 이 "고통 " 문제를 근원적으로 다루고 있다.

보통 장르 소설로 분류되는 책을 읽을 때, 대부분은 소설 속 내용과 내 삶을 분리시키는 게 가능했다. 소설 속에서 누가 어떤 범죄를 당하든 어떤 고통을 당하든 그건 내 문제가 아니고 가상 현실 속 " 그들 " 문제이니까. 그냥 재미가 있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조금 달랐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겪는 고뇌와 고통이 그야말로 온몸으로 체감되었다. 물론 사이비 교단이나 제약회사의 음모 등등 현실적으로 나와 전혀 관련 없는 내용들이긴 하지만 등장인물들이 겪는 고통과 고독 그리고 외로움 등이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고 할까?

생각해 보니까 내가 더 공감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소설에 나왔던 등장인물과 조금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부모의 학대로 인해서 배우자 현을 만나기 전까지는 제대로 인간다운 삶을 경험하지 못했던 주인공 경. 평생 치유되지 않는 질환으로 시달렸는데 그걸 공감하지 못하는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로 인해서 진한 고독을 겪어야 했던 등장인물 욱. 특히 이들의 심리적 상태가 내게 절절하게 다가왔다. 나의 경우, 한때 몸이 많이 아파서 아무 일도 못해서 그냥 집에서 쉬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힘들었던 이유는 몸도 몸이지만 내가 겪는 고통을 다른 사람들은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것 때문이었다. 내가 아파할 때마다 더 냉정해졌던 가족들을 보면서 진짜 진한 외로움을 느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 생각이 정말 많이 났다.

이 책 [고통에 관하여]가 단순 장르물이라 여겼기에 처음엔 그저 가벼운 재미만을 찾아보려 했었다. 스토리라인은 장르물의 그것과 많이 닮아있긴 했다. 교인들에게 일부러 고통을 주어서 통제하려는 사이비 교단의 사람들.. 겉으로 보기엔 고통을 줄이려는 목적의 약을 개발한 것 같지만 사실은 이후 더 큰 고통을 안겨주는 약을 생산한 ( 것처럼 보이는 ) 제약회사... 마치 제약회사와 사이비 교단이 합심하여 사람들을 좌지우지하려는 음모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소설은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르게 진행되었다. 사건 위주로 스토리가 이어지는 그런 소설이 아니었다고 할까? 그것보다는 고통을 직, 간접적으로 겪어야 했던 사람들의 복잡한 심리적 상태에 더 초점을 맞추는 이야기였다. 그래서인지 가벼운 재미라기보다는 명상이나 성찰 그리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그런 깊이 있는 재미가 있었다.

이 책의 스토리라인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조금 힘들다. 한 소설 안에서 작가가 독자들과 많은 생각을 나눠보려 한 것 같다. 나의 경우 전체 스토리라인보다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이 갔다. 특히 인생이 주는 고통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하려고 애썼고 끝내 탈출했던 주인공 경과 인생의 모순을 끌어안고 살면서도 여유가 있어 보이는 주인공 륜 형사의 삶에 관심이 갔던 것 같다. 이들 두 인물을 통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게 뚜렷이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불교 교리와 언뜻 맞닿아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인간과 인간이 겪는 고통을 바라보는 관점에 자비가 스며들어 있다고 할까? 인류에게 폭력을 자행하고 고통을 일으키는 모든 것들에 온몸으로 반대하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종류의 소설은 아니었지만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깊이 있는 책이라서 정말 좋았다. 굉장히 색달랐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소설 [고통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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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조각 미술관
이스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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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선에서 일어나는

섬찟하고 괴이한 여덟 가지 이야기

소름 끼치는 악몽을 꿔도 우리가 안심할 수 있는 이유는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나고도 계속 악몽에 시달린다면? 이 책 [신체 조각 미술관]은 현실에서 꾸는 기묘하고도 섬뜩한 악몽이라는 주제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 첫 작품인 [기요틴]부터 만나본 이스안 작가의 작품들은 삶의 곳곳에 숨어있는 "죽음"을 소재로 독특한 이야기를 전달해왔다. 이번 단편 소설집 [신체 조각 미술관]은 특히 예술성과 색채감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미술관, 바다, 놀이공원이 가진 화려한 색감과 예술성이 돋보이는데, 그래서인지 그 안에 숨어있는 비극적 죽음과 잔혹함이 더 두드러지는 듯하다. 점점 그녀만의 확고한 공포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는 이스안 작가의 [신체 조각 미술관] 속으로 들어가 본다.

여러 편의 단편이 있지만 역시 첫 번째 단편인 " 신체 조각 미술관 "은 확실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인간의 신체를 재료로 하여 다양한 조각상을 만들어내는 " 더 바디 갤러리 " . 평범한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큐레이터 " 수란 "은 작품을 감상하는 "누군가"에게 각 작품에 대한 소개를 해준다. 이미 죽은 사람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조각상이 되기 위해서 스스로 신체를 포기하는 사람들..... 죽음을 통해 다시 조각상으로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얼핏 들으면 그럴싸하지만 굉장히 아이러니하고 그로테스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생전에 악기를 연주하던 사람이 첼로로 다시 태어난다는 설정은... 상당히 기묘한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었다. 이스안 작가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낯설고 독특한 미술관이었다.

그 외에 인상적이었던 작품들은 " 어떤 부부" 와 "내리사랑" 이었다. 둘 다 인간의 이상 심리나 정신병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산다. 가볍게는 히스테리나 시기, 질투, 집착 같은 문제를 가진 사람들도 있고 심하게는 아예 현실에 없는 세상이나 사람을 창조해 내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있는데, 이들은 일반인들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세상을 실제로 경험한다. 옆에서 보다 보면 이런 상황이 그 어떤 공포물보다도 더 무섭고 끔찍하게 다가온다. "어떤 부부"와 "내리사랑" 둘 다 그런 공포스러운 인간의 이상 심리를 잘 표현했기도 했고 결말이 던지는 그 충격적인 반전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이번 작품이 특히 인상 깊은 이유는 이스안 작가 자신의 실제 경험담을 책 속에 실어 놨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릴 때부터 이상한 체험을 많이 해봤다는 작가. 유체 이탈이나 가위눌림은 기본이고 아마도 빙의 비슷한 것도 경험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도 정서적으로 매우 예민한 시절인 청소년기에 이틀에 한번 꼴로 가위눌림을 경험한 적이 있어서인지 작가의 경험에 매우 공감이 갔다. 겉으로 드러난 우리의 의식은 죽음과 악몽 같은 불길함을 피하지만 어쩌면 우리의 무의식은 그런 어두움을 항상 갈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공포물을 잘 그려내는 작가가 있고 이 작가의 작품에 열광하는 독자들이 있으니. 매우 잔혹하지만 동시에 기묘한 아름다움이 있는 단편 소설집 [신체 조각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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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유전학
임야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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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사유와 역사적 사실이 빚어낸 매력적인 스토리

악은 실체가 있을까? 만약 그 실체가 있다면 유전을 통해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것일까? 인간 악의 근원을 파헤치는 듯한 소설 [악의 유전학]을 읽었다.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생체 실험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입을 통해 듣는 이야기처럼 생생했다. 인간을 상대로 자행된 생체 실험이 그러하듯 매우 반 인륜적인 내용에 치가 떨리고 소름이 돋았다. 비뚤어진 우생학과 진화 이론이 만나 끔찍한 실험을 탄생시킨다. 우생학에 심취했던 히틀러가 완벽한 인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직접 쌍둥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니... 과학은 양날의 검.. 과학이 발전할수록 더욱더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각종 범죄와 테러 그리고 살인을 스스럼없이 일삼은 한 냉혹한 사내는 현재 차르 비밀 경찰에게 쫓기고 있는 신세이다. 잡히면 꼼짝없이 투르한스크라는 지역으로 유배를 가야한다. 붙잡히기 전 마지막으로 어머니 얼굴을 보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 사내. 이것이 아들과 보내는 마지막 시간이 될 것임을 직감한 어머니는 평생 가슴 속에 깊이 묻어놨던 비밀을 그에게 털어놓는다. 그것은 바로 그의 탄생에 관한 비밀. 그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 진짜 악마는 따로 있다. 그 악마가 베소 ( 사내의 아버지 ) 와 나를 완전히 망가뜨렸어 ."

1858년 알렉산드르 2세가 황권을 이어받은 지 4년째, 투르한스크 지역에 있는 두 마을 유쥐나야와 홀로드나야에는 수백 명이 함께 지낼 수 있는 공동 거주지가 지어진다. 이곳이 지어진 이유는 리센코 후작이라는 과학자가 이끄는 프로젝트를 시행하기 위함이었다. 과학자 라마크르가 주장한 획득 형질의 유전, 즉 부모 세대가 노력하여 얻은 특징은 후대에 점진적으로 유전된다는 진화 이론을 신봉했던 과학자 리센코. 그는 러시아의 추운 날씨도 극복해내는 완벽한 인간을 만들겠다는 야심을 품는다. 수백 명의 아이들을 상대로 펼쳐지는 잔혹한 실험. 영하 50도의 얼음물을 깨고 들어가는 입수 기도가 시작되고 어린 아이들은 물에 들어가자마자 심장 마비에 걸려 죽거나 동상에 걸려 발가락을 잘라내게 되는데....

한마디로 무시무시한 소설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열정이 가득하고 아이들에게도 친절했던 과학자 리센코는 실험의 거듭되는 실패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지 점점 더 미치광이로 변해 간다. 실험 대상이 되었던 아이들은 얼음물에 들어가서 죽거나, 아니면 얼음물에서 너무 빨리 나왔다고 벌을 받아 죽거나 아니면 가혹한 환경을 견디지 못해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여 나중에는 몇 명 남지 않게 된다. 주인공 사내의 어머니인 케케는 얼음물에 들어갔다가 거의 반 죽음 상태로 나왔지만 다시 살아남은 덕분에 " 기적의 케케 " 로 불리면서 주목을 받고 끝까지 살아남지만 반 이성적이고 반 인륜적인 실험의 끝은 황폐함과 절망 뿐이다.

실제로 과거 러시아 제국에서 이런 실험이 벌어진 줄 알았다. 그만큼 이야기는 현장감이 있고 생생하게 펼쳐진다. 과거 여러 나라에서 펼쳐진 잔혹하고 반 인륜적인 생체 실험이 그러했듯, 완벽한 인간을 만들려는 욕심은 완벽한 파괴로 이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소설도 나름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인간의 교만함과 오만함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사악한 결과를 낳았는지를 절실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정말로 끔찍한 것은, 리센코의 실험이 완벽한 실패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혹한기를 이겨내는 유전자를 가진 인간을 만들겠다는 실험은 실패한게 맞다. 그러나 그가 시작하려고 의도하지 않았던,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아예 기대하지도 않았던 " 유전 실험 " 이 성공했다는 사실!! 소설의 끝부분에서 소름돋는 반전이 펼쳐진다. 결론은 ? 의지에 의해 " 악 " 은 창조되었고, 그 창조된 " 악 " 은 유전자에 또렷이 새겨진 채 후대에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한 편의 다큐 영화 같았던 재미있고 충격적이었던 소설 [악의 유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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