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도시 속 인형들 2 안전가옥 오리지널 30
이경희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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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박스의 어둠은 더 깊어졌고

그 어둠을 가로지르는 인물들의 발걸음은 더 무거워졌다.

한층 넓어진 이야기, 한층 리얼해진 사건들

우리가 발을 디디고 있는 현실과 가상 세계를 구분하기가 힘들 정도로 기술 발전이 이루어진 [샌드박스] 그러나 화려한 기술의 이면에는 외롭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었으니... 온라인 게임과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 세계에서 벌어지는 범죄 사건들을 주로 다루었던 [모래 도시 인형들]이 2편으로 독자들에게 다시 돌아왔다. 1편에 비해서 훨씬 더 커진 스케일과 더욱 더 깊고 어두운 분위기를 장착한 작품이다. 앞으로 3편이 등장하게 되면서 장장 3부작이라는 거대한 세계관을 구축할 것이라고 하니, 정말 기대가 된다.

1편에서처럼 검사 진강우와 민간 조사관 주혜리가 등장하긴 하지만, 이번 편에서는 유독 주혜리 조사관의 활약이 돋보인다. 그런데 뉴페이스로 강경미라는 순경이 등장하는데, 여러 사건을 두고 혜리와 치열한 (?) 추리 경쟁을 벌인다. 작품 전체에 스며든 어두운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엉뚱하고 4차원적인 캐릭터라 자주 이야기에 나왔으면 좋겠다 싶었다. 주제면에서 봤을 때는, 역시 이경희 작가가 항상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죽음/외로움] , [서열/권력]라는 주제가 다루어진다. 1편에 비해서 좀 더 주제의식이 뚜렷해졌다는 느낌이 들면서 점점 샌드박스 전체를 조종하는 거대한 힘에 주인공들이 다가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힐다, 그리고 100만 가지 알고리즘]에서는 앞으로 만나게 될 새로운 형태의 인공 지능을 소개해 준다. 최고급 의료 보험의 혜택으로 150살이 넘게까지 살았던 힐다가 사망한 채로 발견된다. 뒤통수에 뚜렷하게 표시된 총상으로 봤을 때는 자살이라기보다 타살에 가깝지만, 주혜리 조사관은 그 반대를 말해주는 여러 정황을 발견하게 된다. 챗 GPT를 쓰면서 감탄했었는데, 과연 인공 지능의 발전은 어디까지 이루어질 것인가? [셋이 모이면]에는 센텀 메가 포레 아파트 재건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이한 테러 사건을 다룬다. 재건축으로 사람들이 갈등할 때 그 속에서 지독한 집단 이기심과 계층에 대한 차별 등을 엿볼 수 있는데 이 에피소드에서도 그런 면이 부각이 되었다.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신체 단말 장치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다짐하게 만든 에피소드.

[복원 요법]은 여러 에피소드들 중에서도 특히 디스토피아 분위기가 많이 흘러서 좋았다. 지구 멸망 후에 살아 남은 인간들.. 방사능으로 인해 온몸이 암덩어리인 아이들이 스스로를 치료하기 위해서 떠나는 여정. 그런데 그 여정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서라는 게 감동 포인트였다. 그리고 기괴하기 짝이 없는 결말이지만 어쩌면 인간의 근원에 다가가는 결말이 아닌가 하여 흥미롭기도 했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그 스마트폰! 지유와 계속 소통을 하는 스마트폰의 주인이 누군가 했는데, 마지막 에피소드인 [세컨드 유니버스]에서 그 정체가 조금 드러난다.

샌드박스처럼 오만가지 첨단 기술이 발달되어 있는 곳에서도 역시 돈과 권력을 틀어쥐고 있는 지배계급이 있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하늘을 찌를 때 다른 한쪽에서는 고통받는 사람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소설은 계속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마지막 [세컨드 유니버스]라는 에피소드에 특히 모든 것을 누리고 자기들만의 리그를 이어가는 재벌들의 어두운 모습이 정체를 드러낸다. 이 에피소드가 본격적으로 메타버스, 가상 현실을 다루고 있는데, 작품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몽환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씩 샌드박스의 핵심 세력으로 다가가고 있는 듯한 민간 조사관 주혜리, 과연 3편에서는 어떤 사건에서 어떤 모습으로 활약할 것인가? 이경희 작가의 독특한 서사로 탄탄하게 구축된 세계관을 보여줄 [모래 도시 속 인형들 3]가 너무 기대된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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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님의 완벽한 복수 네오픽션 ON시리즈 17
강엄고아 지음 / 네오픽션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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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사님은 죽어서 구천을 떠도는데

형사님을 죽인 놈은 잘 살고 있는 상황,

견딜 수 있으시겠어요?"

죽음 이후에 어떤 세계가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귀신이나 영혼의 존재를 믿는 편이다. 초자연적인 세계가 있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런 이야기에 강렬하게 끌린다. 따라서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원귀들의 사연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과연 어떤 사연을 가졌고 소설 [귀신님의 완벽한 복수]에서 그들의 복수는 어떤 식으로 펼쳐질 것인가?

신령님을 모시고 살면서 남의 운명을 점쳐주는 무속인 "명". 그런데 그녀에게 찾아오는 사람 손님이 뜸하다? 하지만 이미 귀신이 된 손님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그녀에게 찾아온다. 사실 명에게는 조선시대에 이미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돌던 막순이라는 이름의 친구가 있는데, 그녀가 영업을 해서 특별한 사연을 가진 귀신들을 명에게 데리고 온다.

이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기가 막힌다. 모두들 원한에 사무칠 만큼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였던 것이다. 그 원한 때문에 좋은 곳으로 가지 못한 채 구천을 떠도는 원귀가 되어버린 영혼들. 그들을 위해서 명은 아주 기가 막힌 방법으로 복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게 된다. 그들은 어떤 방법으로 복수를 하게 되고, 과연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인가?

귀신들과 짜고 퇴마 의식을 벌여서 자신은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고 그들은 가해자를 응징할 수 있게 도와주는 명. 도랑치고 가재 잡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처음에는 단순히 금전적 이익을 위해서만 이런 일을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명에게도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 있었다. 본인이 잔인한 범죄자의 타겟이 되어서 염산테러라는 어마어마한 범죄를 당했던 것... 깊은 절망을 경험해 본 명이 귀신들에게 복수의 기회를 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뉴스를 통해 종종 듣는 너무도 안타까운 이야기들 - 군대에서 구타 당해 사망, 전세 사기로 인한 자살 등 - 이 소설에 등장하기에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인지 귀신들의 복수가 이루어진 순간, 실제로 이루어진 것처럼 속이 후련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른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심각한 일이기에 이런 사적 복수가 괜찮은 일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이야기 내내 조금 아슬아슬한 기분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결국엔 사법 시스템을 이용하면서 동시에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결말이 너무도 좋았다. 한편으로는 영혼의 존재나 빙의 등 초자연적인 세상을 믿는 신참 형사 규영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른 이야기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생각보다 따뜻한 결말이 좋았던 소설 [귀신님의 완벽한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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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품 아르테 오리지널 25
커스틴 첸 지음, 유혜인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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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백 달러를 내고 최상급 가품을 사는 소비자와 2000달러 넘는 진품을 사는 소비자는 사는 세상이 달라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모조품으로 아주 교묘하고도 감쪽같은 사기극을 벌이는 두 여자의 이야기 [모조품]. 커스틴 첸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지만 그녀가 아시아계이고 여성이라 그런지 글 속에 공감 가는 내용이 아주 많아서 굉장히 흥미진진했다. 위조품으로 사기를 치는 것은 물론 범죄이긴 하지만 글은 심각하기보다는 오히려 가볍고 경쾌하기까지 하다. 빠른 속도감에 흥미진진하지만 삶에 대한 통찰도 이끌어내는 드라마적 요소도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화려하고 멋진 가방 브랜드들이 묘사되고 언급되는 게 좋았다. 비싸고 우아하고 도도한 명품을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모조품]은 프로 사기꾼 위니 팡 밑에서 쇼퍼로 일하다가 그만 덜미가 잡혀버린 에이바의 자백으로 시작된다. 세상 물정 모르는, 그저 평범한 주부에 불과한 자신에게 교활한 위니 팡이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에이바. 과연 그녀의 말이 사실일까? 아니면 범죄 혐의를 조금 줄여보려는 에이바의 간절한 몸짓일까? 그런데 우리는 에이바가 범죄 사건에 휘말리게 된 과정을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위니 팡과 사기 사건보다는 에이바라는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가짜 가방을 팔기 이전부터 그녀의 삶은 가짜였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중국인 이민자 부모님을 둔 이민 2세대인 에이바. 그녀는 미국인이 분명하지만 동시에 아시아계 부모님을 둔 것도 분명하다. 명예와 체면을 중요시하는 부모님의 권유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 번지르르해 보이는 "변호사"라는 직업을 택하게 되는 그녀. 결혼과 육아를 핑계로 일을 그만둔 것은 아마도 그 직업이 너무 싫었던 것은 아닐까? 남편 올리비에도 명망 있는 외과의사이지만 그는 일중독에 남들을 휘어잡으려는 지배욕에 가득한 사람이다. 일을 그만두었다는 이유로 자기 계좌에 대한 권리도 포기한 채 살고 있었던 에이바. 물론 각종 이유를 들어가며 자신의 삶을 합리화하려고 하지만 결국엔 부모님이 원하는, 남편이 원하는 삶, 겉으로만 화려한 포장지 같은 그런 삶을 살고 있던 에이바. 그녀야말로 진짜 가짜 인생을 살고 있었다.

“ 하지만 그건 사기잖아! 위니는 태연했어요.

원가의 열배 가격으로 가방을 파는 건? 그건 사기가 아니고?

손잡이만 빼고 가방 전체를 중국에서 만든 다음, 손잡이에 Made in Italy라고 떡하니 새기는 건?

화장실 갈 시간도 주지 않고 몇 시간씩 노동을 시키는 건? ” - 47쪽 -

대학 졸업 후 거의 10년 만에 만난 위니 팡은 결국 화려한 언변으로 에이바를 위조품 판매라는 어마어마한 범죄 사건으로 끌어들였다. 마치 자로 잰 듯한 모범적인 삶을 살던 에이바가 그렇게 쉽게 범죄의 늪으로 빠지게 된 이유가 뭘까? 어쩌면 위니 팡이 말했던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전체가 모두에 대해 거대한 사기를 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에 브랜드 하나가 붙는다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가격으로 팔린다는 것 자체가 사기일 수도 있고, 머리는 텅텅 비었는데 일류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의 존경과 인정을 받는다는 자체가 이미 사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사기를 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에이바와 위니 팡의 운명은? 물론 이 책 [모조품]을 읽어보게 되면 알 수 있다. 그녀들이 펼치는 화려한 사기술에 중국과 미국을 오가며 펼쳐는 모험과 활극은 재미를 더한다. 그녀들의 활약도 물론 재미있었지만 미국과 중국 사회의 여러 모순점들을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유독 아시아계 사람들에게 품고 있는 미국 주류의 편견이나 천문학적인 금액을 붙여서 파는 가방이 결국엔 먼지 가득한, 열악한 환경의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다는 점들?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한 세상,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자체가 모조품이 아닐까?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위니 팡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크게 복잡하지 않은 플롯에 속도감 있고 가벼운 소설 [모조품] 동시에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해준다는 면에서 의미 있는 책이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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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
캐런 조이 파울러 지음, 서창렬 옮김 / 시공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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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군과 폭도들에 대한 링컨의 경고를 읽으면 읽을수록,

남북 전쟁으로 이어지는 시기의 일들에 내가 몰두하면 몰두할수록,

과거의 그곳에서 오늘날의 이곳까지 오는 길을 더욱더 밝게 비추게 되었다. ”

-작가의 말 -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똑바로 보려면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는 것. 작가 캐런 조이 파울러가 아주 길고도 세세한 "부스" 가족의 일대기를 써야 했던 이유가 뭘까? 궁금했는데, 그녀가 남긴 작가의 말을 통해 조금 알 수 있었다. 미국에는 과거 링컨 대통령 암살이라는 비극이 있었고 지금도 끔찍한 총기 난사 사건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작가는 총격범 자체보다 범인 가족에 대한 내용이 더 궁금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괴물인 것으로 밝혀진다면? 남은 가족들은 자책감을 어떻게 처리할까? 링컨 대통령이라는 개혁적인 인물을 암살함으로써 이후 미국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버린 " 존 윌크스 부스". 그가 어떻게 비롯되었고 그의 배경은 어땠을까를 궁금해하는 독자에게 딱 맞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 "부스"는 암살범인 존 윌크스 부스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소설은 그의 아버지인 주니어스 브루터스 부스와 다른 형제들의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다. 특히 셰익스피어 비극을 천재적으로 연기하여 당대에 이름이 널리 알려졌던 아버지 주니어스의 존재감은 그야말로 독보적인 것이었다. 비록 알코올중독자에 광기 어린 삶을 살았으나 육식을 철저히 금하고 동물의 장례식을 치러 줄만큼 감수성이 풍부하고 인간적이었던 아버지 주니어스. 그는 노예제 폐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쪽이었고 흑인들의 삶에 자유가 깃들도록 많이 노력한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에게서 존 윌크스 부스가 태어날 수 있었다니, 인생이란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야기는 연극배우인 아버지를 따라서 메릴랜드 한 농장에서 삶을 시작하게 되는 어머니 메리 앤에게서 시작한다. 그녀는 첫아들 준을 낳았고 이후 줄줄이 태어나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펼쳐진다. 소설은 주로 둘째 로절리와 일곱째 에드윈 그리고 여덟째인 에이시아 세 사람을 화자로 선택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그들에게 발언권을 공평하게 할애한 반면, 존 윌크스 부스가 화자로써 전면에 나서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독자들은 화자들의 대화나 글 속 묘사를 통해 언뜻언뜻 스쳐 지나가는 존 윌크스 부스의 작고 미미한 흔적만으로도 그가 가진 폭력성과 잔인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어머니 메리 앤이 기도 중 목격했던 환상은 미래에 존 윌크스 부스가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될지 안내해 주는 강력한 복선이 되어주는 듯했다.


" 즉시 잿더미에서 화염 하나가 솟아올라 이내 팔 모양이 되더니,

마치 아기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하듯이 그것이 아기를 향해 뻗어오는 것이었다.

엄마는 그 화염 속에서 국가라는 단어를 읽을 수 있었으며,

그 단어 뒤에 조니의 이름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90쪽-


"부스"를 읽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이란 게 있고, 마치 개인들은 승부를 앞두고 있는 체스의 장기말처럼 쓰이는 게 아닐까? 비록 아버지를 닮아서 우울에 알코올 중독을 물려받은 가족이지만 오히려 좌파에 가까울 정도인 "부스" 가족에게서 지독한 극우에 가까운 인물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정말로 비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 부스" 가족들은 평범한 사람들이고 로절리나 에드윈 같은 인물들은 굉장히 섬세하고 인간적인 사람들로 그려진다. 존을 사랑했으면 사랑했지 그가 악인으로 거듭날 일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존 윌크스 부스는 악과 손을 맞잡고 거리로 나와 끔찍한 악행을 저지르게 되고 미국 역사를 영원히 바꾸는 역할을 맡게 되는데.....


이 책 "부스"는 노예제를 둘러싼 대립이 격화되던 미국 역사 한가운데로 독자들을 던져놓는다.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악인과 그의 가족에 대한 일대기라고 볼 수 있다. 이야기 흐름이 다소 느리고 단조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우리가 겪고 있는 정치적 격변이나 흐름과 과거 사건이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에 더 정신 차리고 보게 되었던 것 같다. 과연 끔찍한 악행을 저지른 누군가의 가족들은 사건 이후 어떻게 삶을 살아나갔을까? 정확한 역사적 고증을 통해서 풍부하고 격정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소설 "부스"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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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1 - 제1부 개미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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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개미 왕국 벨로캉에 닥친 정체 모를 위험,

물려받은 저택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치려는 한 남자

그리고 전대미문의 책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그렇게 개미와 인간을 오가는 장대한 모험이 시작된다!

소설 [개미]가 출간된 지 어언 20년이 되었다니! 무려 스무 살이나 먹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정말 신기하고 독특한 소설이 있다며 친구가 추천해 준 [개미]를 밤을 꼴딱 새우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매우 낯설고 기이했던 내용이었지만 당시 그 느낌은 정말 황홀했다. 이 책을 읽고 며칠간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과연 암개미의 운명을 타고났을까? 아니면 일개미의 운명을 타고났을까?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개미들을 키웠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조직 생활과 일하는 모습에 강렬하게 매료된 후 본격적으로 그들의 삶을 관찰,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열일곱 살이 되던 해 본격적으로 개미 도시를 집으로 들여왔고 그때 처음으로 개미에 대한 소설을 구상했다. 1983년 아프리카의 " 마냥 개미 "를 관찰하게 되면서 이 복잡하고 신비로운 개미 세계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겠다고 결심한 후 작가는 결국엔 이 대작 [개미]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주인공 조나탕 웰즈는 삼촌 에드몽 웰즈가 죽은 후 그로부터 집을 한 채 물려받게 된다. 낡고 오래된 집이지만 백수가 된 후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고 있던 조나탕에게 이 집은 구원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삼촌 에드몽 웰즈는 유언장에서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절대로 지하실에는 내려가지 말 것! 그는 가족들의 지하실 출입을 겨우 막아내지만 어느 날 아들 니콜라가 애지중지하던 강아지가 지하실에서 미스터리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로 거의 매일 지하실을 내려가다시피한 조나탕. 어느 날부터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 걱정스러웠던 아내 뤼시도 지하실을 내려간 후 돌아오지 않게 된다. 결국 실종된 부부를 찾기 위해 경찰도 동원되지만 그들도 돌아오지 않는데....

소설 [개미]는 한꺼번에 3가지의 다른 이야기를 풀어낸다. 우선 삼촌의 집을 물려받은 조나탕 가족 이야기. 미스터리하고 위험해 보이는 깊은 지하실과 한번 내려가면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이 책의 핵심인 개미 제국의 이야기. 우리는 마치 거대한 기계와도 같은 개미 공동체에서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세포처럼 움직이는 개미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괴짜 생물학자였던 에드몽 웰즈가 살아생전 써 내려간 백과사전 이야기. 아마도 베르베르 작가를 사랑하는 독자들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그 책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 나와있는 지식이 조금씩 노출된다. 아마도 이 백과사전에 모든 미스터리를 풀만한 열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 세계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람들이 연속적으로 실종되고, 개미 세계에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개미들이 죽어나간다. 병정개미들과 질 좋은 고기를 구하기 위한 원정에 나섰던 수개미 327호는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인해 스물여덟 명이나 되는 동료들이 사망하는 엄청난 사건을 겪게 된다. 겨레의 생존을 위협하는 비밀스러운 적들이 있음을 감지한 수개미 327호는 동료들과 어머니인 여왕개미에게 이 소식을 알리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한다. 그러던 중 수개미 327호는 바위 냄새를 풍기는 개미들에게 공격을 당하게 되고 뭔가 큰 음모가 있음을 직감한 그는 친구들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구하게 되는데...

우리는 소설 [개미]를 통해서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와 개미 제국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를 한꺼번에 맞닥뜨리게 된다. 사람들이 사라지는 무시무시한 지하실과 바위 냄새를 풍기며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낯선 개미들의 등장이 과연 어떤 연관 관계가 있을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베르베르 작가는 직접 개미를 키워본 적도 있고 아프리카까지 날아가 야생 개미를 연구하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개미의 관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전혀 낯설지 않다. 페로몬을 이용한 소통법이나 병정개미가 뱃속에 넣어 다니는 개미산 그리고 온도가 개미의 시간 인식에 미치는 영향 등등은 매우 신비롭고 재미있었다. 무엇보다도 공동체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개미들의 모습을 보며 인류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잘 살아갈지를 배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경이롭고도 환상적인 개미 세계로 여행하고 싶다면 꼭 읽어봐야 할 소설 [개미]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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