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이 냥극하옵니다 안전가옥 쇼-트 24
백승화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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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놈아, 관직이 장난이더냐?

세상천지에 누가 고양이를 찾는다고 관직을 준단 말이야?

캬, 이놈 참. 너 아직 까막눈이면 포졸 시험도 물 건너가는 것이야.”

하루 종일 잠만 늘어지게 자고 새벽에 갑자기 깨어나 온 집안을 뛰어다니는 골칫덩어리 고양이들. 하지만 오동통한 뱃살에 분홍분홍한 발바닥을 보는 순간, 집사의 마음이 사르륵 녹는다. 누군가 내게 왜 고양이를 키우게 됐냐고 묻는다면, 마치 운명처럼 나에게 왔다고 말할 것 같다. 사랑스러움으로 지구 정복에 도전하고 있는 고양이들의 이야기 [성은이 냥극하옵니다]

금주령을 어기고 노름꾼의 뒤를 봐주는 등, 불량스러운 일상을 살아가는 포교 변상벽.

언제나처럼 술을 마시고 곯아떨어진 채 길거리에서 자다가 그만 포교직 자격을 무기한 박탈당하게 된다. 포도청에서 곤장을 맞고 아버지 변 대감에게서 물벼락을 맞는 등, 잇단 수난에 시무룩해진 변 포교. 그런데 누군가에 의해 납치된 듯한 숙종의 반려묘를 찾아주면 관직을 받을 수 있다는 방문이 거리에 붙게 되고 전날 밤 광대탈을 쓴 무리들이 들고 있던 자루에서 고양이 소리가 들렸던 것을 기억해 낸 변상벽. 그는 어린 노비 쪼깐이와 함께 본격적으로 숙종의 반려묘 찾기에 돌입하게 된다.

숙종의 반려묘와 닮은 꼴을 가진 고양이의 뒤를 쫓아 빈민촌까지 들어오게 된 변상벽과 쪼깐이. 그들은 빈민촌의 아이들이 던진 돌팔매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그런데 임금이 고양이를 찾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면서 고양이들이 사라지고 있던 가운데 빈민촌의 아이들까지 미스터리하게 실종되고 있던 상황.

빈민촌에서 배고픈 고양이와 아이들을 돌보고 있던 묘마마라는 별명의 여인은

변상벽이 포교 자격을 박탈 당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그에게 아이들을 찾아달라 부탁하게 되는데...

[성은이 냥극하옵니다]는 변 씨 가문에서 서얼로 태어나 구박과 차별을 받으며 자랐기에

다소 삐딱한 자세로 삶을 살아온 변상벽이 "숙종의 반려묘 찾기"라는 프로젝트에 돌입하면서 비로소 진짜 사나이로 성장한다는 이야기다. 단순히 관직을 되찾기 위해서 시작한 프로젝트!! 그러나 빈민촌 아이들이 실종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이 미스터리한 수사에 진지하게 임하게 되는데....

이 책의 장르를 굳이 분류하자면 코믹 액션 역사 수사극 (?)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코미디언 뺨치는 익살꾼 변상벽과 변상벽의 유치한 거짓말에 홀라당 넘어가는 순진한 쪼깐이의 활약이 대단히 빛나는 소설이다. 그들이 펼치는 변장극과 액션이 너무도 생생하여 영화로 만들어도 재미있겠다 싶었는데 처음에는 영화의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이야기였다니... 제발 지금이라도 영화로 만들어지길 바랄 뿐이다. 등장인물들도 개성이 풍부하지만 스토리도 매우 탄탄한 편이다, 고양이의 납치와 관련된 정치적 암투 그리고 당시 조선의 상황을 알 수 있었던 빈민가 아이들의 실종 사건 등등

너무나 재미있고 사랑스러웠던 납치된 고양이 찾기 프로젝트 [성은이 냥극하옵니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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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노토피아 - 엘리베이터 속의 아이
조영주 지음 / 요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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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붕괴를 막으려 계속해서

이세계행 엘리베이터를 타는 소원,

본래 세계로 돌아가 가족과 행복해질 수 있을까?

당신의 현재 삶에 만족하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많을까? 뭔가 부족하거나 약간은 불행하다고 느끼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삶을 꿈꾸거나 시간 여행이 가능하고 전생이 있었을 거라 믿는지도 모르겠다. [붉은 소파]로 제12회 세계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조영주 씨도 여기 말고 다른 삶을 한 번이라도 꿈꾸었기에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크로노토피아]는 기본적으로 여러 삶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소설이다. 기본적으로 시뮬레이션 우주론이 바탕에 깔려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신이 준비한 수많은 시뮬레이션 중 하나라는 말이다. 말하자면 다중 우주론이나 다차원 세계를 믿는 입장이라고 보겠다. 소설 [크로노토피아]에서 작가 조영주 씨는 우연히 엘리베이터를 통해서 시공간을 넘나들게 된 한 아이의 모험을 그려낸다.

현실의 삶에서 유일한 보호자인 엄마에게 학대받는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아홉 살 소년 소원. 그는 같은 아파트 주민인 현우 형에게서 엘리베이터를 통해서 이세계로 가는 방법을 알아낸다. 그렇게 해서 우연히 가게 된 이세계에서 따뜻한 부모와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소원. 그러나 지진으로 인해서 아파트가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하게 되면서 다시 불행해질 위험해 놓인 소원. 소원이는 다시 그때의 행복한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세계로의 여행을 끊임없이 도전하게 되는데....

소원이는 2023년을 기준으로 10년 전 과거, 혹은 30년 전 과거 등등 무작위로 다양한 시공간으로 떨어진다. 기본적으로 소원이가 하려고 하는 일은 아파트의 붕괴를 막는 일. 소원은 아파트 붕괴만 막을 수 있다면 가족과 행복했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고 확실하게 믿고 있었다. 여러 삶을 살면서 소원이는 아파트 붕괴를 막기 위해서 건축학과 교수가 되기도 하고 투자에 성공해서 엄청난 돈을 번 후 아파트를 몽땅 사들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소원이의 간절한 소원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답변은 소설 속에!! [크로노토피아]는 이상적인 삶을 경험하고 그것을 되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여러 번의 삶을 살아내는 소원이를 통해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화두를 던져주는 소설이라고 하겠다. 책 속에서 소원이는 자신처럼 시간 여행을 하는 인물을 만나면서 삶이란 것은 " 그냥 살아나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항상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나 자신에게도 깨달음을 주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모든 아홉 살 소년 소원이가 따뜻한 부모와 강아지 망치와 행복하게 살길 바라게 되는 소설 [크로노토피아]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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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버든
클레어 더글러스 지음, 김혜연 옮김 / 그늘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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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만 같은 신혼집 마당에서 발견한 유골 두 구..

사랑하는 할머니는 정말 시체와 함께 살았던 걸까?

엉켜버린 기억과 정원을 밟는 순간 깨어나는 미스터리!

반전을 뒤집는 반전, 그 어떤 예측도 빗나가는 감성 스릴러

고즈넉하고 목가적인 시골 오두막집에서 발견된 두 구의 시체.

이곳은 손녀인 새피를 너무나 예뻐했던 로즈 할머니가 물려준 작은 집 스켈턴 플레이스 9번지이다. 독자들은 그 누군가가 꽁꽁 숨겨놨던 과거의 비밀 속으로 새피와 함께 걸어들어가게 된다. 도대체 과거 젊었던 로즈 할머니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언제나 따뜻하고 친절했던 로즈 할머니가 유산으로 새피에게 물려준 오두막집.

새피는 현재 임신 중이고 남자 친구인 톰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작고 아늑한 오두막집에서의 알콩달콩 신혼살림을 꿈꾸고 있던 그때,

집 수리에 동원된 인부들이 마당을 파다가 시체 두 구를 발견하게 된다.

너무나 놀라고 당황하게 된 새피. 그러나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있는 로즈 할머니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연락이 뜸했던 엄마 로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는데...

경찰들은 시체들의 사망 시기가 약 30년 전이라는 것을 밝혀내는데, 그 당시에는 로즈 할머니가 직접 오두막에 살고 있었다. 시체 발견이 언론에 대서특필이 되면서 바퀴벌레처럼 모여드는 기자들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설고 위협적인 사람들... 꽃향기만 가득한 시골집에서 벌어진 섬뜩하고 잔인한 사건들의 비밀이 조금씩 정체를 드러내게 되는데...

소설 [진 버든]은 새피와 로나 그리고 로즈의 시점을 오가며 서술된다.

아무것도 알 수 없고 할 수 없어서 무력한 새피.

아주 어릴 적에 오두막집에 살았던 경험이 있는 엄마 로나.

그리고 모든 것의 열쇠를 쥐고 있는 로즈 할머니.

가끔 제정신이 돌아오는 로즈 할머니가 맥락 없이 던지는 몇 가지 이름과 단어들을 기반으로 엄마 로나가 사건을 역추적하게 된다.

새피에 비해서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로나가 마치 수사관처럼 과거를 캐내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평생 딸 새피와의 관계가 삐거덕거렸지만 임신 중인 새피를 위해서 온몸을 던지는 모정을 보여주는 로나.


어떻게 보면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 이야기인 [진 버든]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상처 입고 위협당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로맨스와 스릴러가 적절하게 섞여 있는 이야기라서 좋았던 것 같다.

막판에 훅 들어오는 반전 때문에 정신이 없었지만 결말이 해피엔딩이라서 좋았다.

잔잔하고 고요한 호수에 갑자기 들이닥친 눈보라 같았던 소설 [진 버든]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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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 블루 아이
루이스 베이어드 지음, 이은선 옮김 / 오렌지디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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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누구나 내면에는 가장 추악한 귀퉁이일망정 남들에게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루이스 베이어드 장편소설 [페일 블루 아이]는 1830년대 미국 웨스트포인트 육군 사관 학교에서 벌어진 끔찍하고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주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주인공인 은퇴한 경찰 거스 랜도가 유명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를 자신의 조수로 삼아서 사건 조사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오~~~ 고딕 문학의 대가인 포가 엽기적인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탐정으로 등장하다니.... 벌써 어둡고 으스스한 분위기가 배경으로 깔리는 느낌이었다. 에드거 앨런 포에 대해서 좀 찾아보니 1830년대에 실제로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를 다닌 적이 있었다. 실제로 이런 살인 사건에 휘말린 적은 없겠지만 실제 인물이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소설에 힘을 실어주는 느낌이었다.

어느 날 미 육군 사관 학교인 웨스트포인트에서 프라이라는 이름의 생도가 나무에 목을 매단 채 발견된다. 겉으로 봐서는 명백한 자살.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사후에 누군가가 시체의 심장을 빼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살인 사건으로 전환된다. 끔찍한 살인 사건이 학교에서 일어나다니... 세간의 이목이 두려웠던 웨스트포인트 측은 조용히 이 사건을 처리하길 바라는데, 뛰어난 수사 능력으로 뉴욕시에서 명성을 떨쳤던 은퇴 경찰 거스 랜도가 이 사건을 조사할 사람으로 선택된다.

거스 랜도는 수사를 하던 중 매우 지적이고 예리한 관찰력을 지닌 사관생도 포를 만나게 된다. 그의 관찰력과 추리력에 깊은 인상을 받은 랜도는 비밀리에 그가 수사를 도울 수 있게끔 조치를 취한다. 시체를 발견하였거나 프라이와 방을 함께 썼던 생도를 면담하고 프라이 옷 속에 있던 쪽지와 그의 일기 등을 샅샅이 조사하는 거스 랜도. 그는 의도가 불순하거나 다소 종교적인 성향을 띤 단체에 프라이가 속해있었을 거라는 단서를 얻게 된다. 한편 에드거 앨런 포는 번뜩이는 재치도 있지만 가끔 그가 써내는 시가 사건 추리에 도움이 된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불러주는 시를 받아쓴다는 이상야릇한 이야기를 하는 포. ( 내 생각에 인간의 무의식은 부지불식간에 많은 것을 알아내기에 포의 무의식도 의식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사건을 파악했는지도 모르겠다 )

" 웅장한 시르카시아 숲 한복판에서

하늘로 검게 얼룩진 개울 안에서

하늘에 할퀴어 달빛이 산산이 부서진 개울 안에서

아테나이 나긋나긋한 처녀들은

살랑거리며 순종을 표하고

그곳에서 나는 외롭고 다정한 리어노어를 만났노니

구름을 찢어발기는 울부짖음의 손아귀 안에서

처절하게 괴로워하며 나는 굴복하는 수밖에 없었도다.

옅은 파란색 눈을 한 처녀에게

옅은 파란색 눈을 한 악귀에게 "

- 169쪽 -

분명 랜도와 포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사건 조사는 지지부진하기만 하고 그들은 범인을 찾아낼 결정적인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찾아내지 못한다. 그런데 프라이가 시체로 발견된 지 얼마 안 되어 또 다른 생도가 비슷하게 사망한 채 발견된다. 그는 밸린저라는 생도인데, 바로 포와 얼마 전에 격투를 벌인 생도였다. 포는 한 사관생도의 누나와 사랑에 빠졌었고 밸린저도 그녀를 흠모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상하게도 살인 사건을 둘러싼 여러 정황들이 범인이 바로 "포" 임을 가리킨다고 할까? 그렇다면 정말로 랜도는 진범을 옆에 두고 사건 조사를 해왔던 걸까? 포가 범인이 아니라면 과연 누가 시체를 난도질하여 심장을 강탈해간단 말일까?

[페일 블루 아이]는 굉장히 매혹적이고 독자들을 단번에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어딘지 모르게 황량하고 어두운 19세기 미국의 지역과 배경을 너무나 잘 그려내고 있다. 에드거 앨런 포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그가 살아생전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상상하게 해주는 면도 있는 듯하다. 미스터리한 죽음이 발생하고 노련한 탐정과 그의 충실한 조수가 있다는 점에서 정통 탐정물같이 느껴지는 소설이지만 포가 써 내려간 시와 연애 이야기하며 뭔가 고전 문학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았다. 사실 영상으로 옮기면 더욱더 고딕 스릴러의 맛이 느껴질 수도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내가 죽고 하나 있는 딸마저 떠나버린 쓸쓸한 랜도와 단체 생활에 제대로 적응 못해서 술로 마음을 달래는 연약한 자아의 포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는 게 신의 한 수!!

도무지 사건 해결은 눈에 안 보이고 웨스트포인트 측은 더 이상 랜도에게 수사를 맡기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그때, 소설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독자들을 데리고 간다. 사실 소설 중간중간에 약간의 떡밥은 있긴 했으나 ( 포가 쓴 시도 한몫을 함 ) 전혀 예상치 못했던 충격적인 결말이 등장한다. 포가 쓴 여러 편의 시와 랜도가 웨스트포인트에서 겪게 되는 여러 우여곡절에 대한 사소한 묘사 때문에 전개가 다소 느리게 느껴졌던 [페일 블루 아이] 그러나 마지막에 소름 끼치는 결말로 인해서 모든 이야기가 다 설명되니 모든 독자들에게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읽으라고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너무너무 재미있었던 소설 [페일 블루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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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의 품격
김희재 외 지음 / CABINET(캐비넷)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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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가진 힘이 있다. 특정 드라마에 빠져서 울고 웃다 하다 보면 어느새 거친 현실을 마주할 에너지가 비축됨을 느낀다. 특히 "토지" 나 "허준" 같은 대하드라마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막장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뭘까? 음식으로 치면, 평소에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다가 가끔 맵고 짜고 단, 혀끝을 감싸고도는 그런 음식을 먹고 싶은 이유와 비슷할까? 아니면 인간에게는 남의 불행이나 범죄를 지켜보고 비난하거나 단죄하고픈 욕망이 있는 것일까? 어쩌면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소시민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드라마 주인공을 보며 쾌감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다.

4인의 작가가 모여 만들어낸 소설 [막장의 품격] 이 소설은 액자식 구성 혹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형식을 띄고 있다. 우선 큰 틀에서는 주인공인 스타 작가 윤정과 베테랑 PD 민호의 일과 사랑 이야기겠지만 ( 정확히 말하면 불륜 ), 그들이 함께 손을 잡고 기획해 내는 3편의 막장 드라마가 소설 속 이야기로 실린다. 따라서 [막장]이라는 주제로 펼쳐지는 총 4편의 작품이 실린 앤솔로지라고 보면 되겠다. 지금 당장 TV 드라마로 빚어내도 좋을 만한 완성도 있는 이야기들 속으로 들어가 본다.

초보 방송 작가 시절, 지민호 PD의 리드 아래 대본 집필을 배웠던 윤정. 그녀가 쓴 드라마 몇 편이 큰 흥행을 거둔 탓에 윤정은 흔히 말하는 스타 작가가 되었다. 특히 민호와 함께 했던 작품이 대박을 터트리며 그들은 환상의 콤비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몰랐던 사살이 있었으니... 유부남이었던 민호와 윤정은 몰래 사랑하는 사이였고, 지금은 잠시 결별한 상태. 드라마 제작을 핑계로 민호가 다시 윤정을 만나려고 시도하는 것일까? 어쨌든 환상적인 콤비 윤정과 민호 외에 초보 작가 재범과 영지도 참여해서 기획한 3편의 막장 드라마! 과연 어떤 막장이 펼쳐질 것인가?

[이야기 하나, 남자를 나눠가진 여자들] 주인공 추예지는 자신의 게임회사 경영을 맡은 대표 수호와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결혼 약속까지 하게 되지만 알고 보니 수호에게는 예지 외에 수없이 많은 여자들이 있었다. 자신의 바람을 들키고도 너무나 당당한 수호를 보며 예지는 엄청난 복수를 다짐하게 되는데... [이야기 둘, 안 되는 거 없고, 못 하는 거 없는 '막장 조작단'] 5년간 사귄 남자 친구 민우가 한 병원의 부원장 아들이었고 정아는 그의 엄마, 명숙에게서 민우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된다. 남자친구를 구하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면 분하기 짝이 없는 정아. 그녀는 우연히 수호가 이끌고 있는 방송 제작사 "막장 조작단"을 알게 되고 그들은 함께 거대한 복수극을 연출하게 되는데... [이야기 셋, 귀혼] 대기업인 대원그룹에 합격하여 대원 백화점 대표 정광현의 수행비서가 되는 추예지.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광현이 의식을 잃게 되고 대원 그룹의 회장은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과 지위를 약속하며 예지에게 광현과의 영혼결혼식을 올릴 것을 종용하게 되는데...

훈훈하기 그지없는 가족 드라마를 봐도 될 텐데, 막장 드라마에 어쩔 수 없이 끌리는 우리의 심리는 과연 뭘까?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마음대로 살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안정된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으로써 어느 정도 욕망을 억눌러가며 살아야 한다. 그런데 막장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마치 사회 속 소속감이나 지위가 원래부터 없는 냥, 낯부끄러운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른다. 나의 욕망을 대신 저질러 준다는 면에서 우선 끌리지만 결국 막장 드라마는 권선징악이라는 룰을 철저히 지킨다는 면에서도 끌린다. 악인들은 처벌을 받고 선한 자들은 결국 승리를 한다는 게 막장 드라마의 기본 룰이다. 그런 면에서 막장 드라마는 시청자들과 적절한 밀당을 하다가 막판에 사이다를 안겨준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민호와 윤정이 힘을 합친 팀은 3편의 드라마 대본을 쓰게 되지만, 결국엔 방송국 국장에 의해서 제작이 거절당하게 되는데... 과연 제작에 들어가게 되는 대본은 무엇? 윤정과 민호의 불륜의 결말은 과연 어떻게 펼쳐질까? 막판에 이어지는 예상 못 한 반전 덕분에 ( 선택되는 대본, 윤정의 사랑 ) 더 재미있었던 소설 [막장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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