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드비히 베멀먼즈 일러스트레이터 4
퀜틴 블레이크.로리 브리튼 뉴웰 지음, 황유진 옮김 / 북극곰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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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를 통틀어 굉장히 중요한 일러스트레이터 "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그림들이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친근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그림들이라고 할까? 흔한 듯 흔치 않은 이런 그림들을 찾아내기가 힘들다는 게 문제인데, 일러스트레이터 루드비히 베멀먼즈의 손끝에서 탄생한 그림들은 매우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독창적이고 생생하다. 지루하게 느낄 수 있는 일상을 새로운 각도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루드비히 베멀먼즈는 매우 독특한 삶과 예술 세계를 구축한 사람이다. 아버지가 호텔 가문의 일원이었던 그는 1898년 호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웠던 까닭에 부모가 일찍이 이혼을 하는 바람에 그는 질풍 노도의 아동기를 보내야 했다.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그는 열두 살의 나이에 호텔을 운영하는 삼촌 밑으로 가게 되었고,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호텔 일을 하게 된다.


호텔은 그가 화가와 작가로 발전해나갈 수 있는 기본 터전이 되어주었다. 호텔을 드나드는 다양한 고객들과 거기서 벌어지는 상황들이 그가 그리는 그림의 풍성한 소재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호텔 고객들을 주로 그려서일 수도 있겠지만 루드비히 베멀먼즈의 그림에는 들뜬 관광객이 그리는 듯한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는 어릴 때부터 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거기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오스트리아 출생이지만 프랑스 출신 가정 교사에게 교육을 받았고 부모의 이혼 이후 독일에 살다가 열여섯이 되던 해에는 아버지가 있던 미국으로 가게 된다.

루드비히 베멀먼즈가 그린 그림의 특징은 여유롭고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하다는 것이다. 여행하면서 사진 찍듯이 풍경을 기억해 놨다가 스케치북에 빠르고 생생하게 그린 스케치들이 많다. 그림들이 격식을 차리거나 무게를 잡지 않고 주로 호텔과 거리 풍경을 그려서인지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하면서도 매우 자연스럽다.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곳에서 관찰하다가 영감이 번뜩이는 순간 잡히는 데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다소 낙서 같은 느낌이 없지 않지만, 단순함이 오히려 매력적이고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1939년에 드디어 [씩씩한 마들린느] 가 출간되면서 마들린느 시리즈가 시작된다. 루드비히 베멀먼즈는 " 마들린느가 태어나겠다고 했어요." 하면서 마들린느라는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스스로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한다. 아마도 어릴 적 프랑스인 가정 교사의 손에 길러졌던 것과 아내인 마들린느 프로인드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고 본다. 여하튼 이 책은 전 세계 어린이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아마도 단순한 문장을 사용했고 아이들을 가르치려 하거나 감상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책에서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출간 즉시 1940년 칼데콧 명예상을 받기도 했다.

루드비히 베멀먼즈는 평생 동화책을 만들고 그림을 그렸지만, 스스로를 삽화가라는 테두리에만 가두고 싶어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였다. 그는 삽화 외에도 만화, 잡지 표지, 광고 그림 등도 그렸고 훗날에는 영화 각본과 에세이를 썼고 유화에 도전하기도 했다. 유화를 그릴 때 비록 힘들어하긴 했으나 화가로써의 입지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본다. 우스개 소리 같긴 하지만, 나중에 " 내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건 얼마 남지 않은 은행 잔고랍니다."라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상업적인 부분도 이 화가의 입지를 넓히는데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의 마음을 잊지 않았던 루드비히 베멀먼즈. 아이들의 동화책을 고민하는 모든 엄마들에게 그가 펴낸 동화책 [마들린느] 시리즈를 추천해 주고 싶다. 아이들의 마음으로 걸어들어가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면에 끌리는지를 정말 잘 아는 사람의 작품으로 보인다. 작가 스스로도 자신은 어른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6살에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고 한다. 너무나 따뜻하고 친근하여 마치 내 이웃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루드비히 베멀먼즈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나니 세상이 조금 달라 보이는 건 내 착각일까?

* 출판사가 제공하는 책을 읽고 최대한 솔직하게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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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전시관
설혜원 지음 / 델피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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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혜원 작가의 [허구의 전시관]에는 기발하고 독특한 상상력으로 빚어낸 7가지 단편 소설들이 실려 있다. 뭐라고 할까? 알록 달록 화려한 표지라는 문을 열고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도저히 전개와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신비롭고 환상적인 허구들이 독자들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당긴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같은 환상 동화가 현대물로 재해석되어, 풍자와 해학을 더한 채 현대인들의 부조리를 꼬집고 비튼다. 모든 이야기들이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빈한승빈전] 이라는 단편은 인간에겐 자유 의지가 있으나 선택의 책임은 피할 수 없다라는 걸 보여주는 듯한 이야기다. 주인공 빈한은 조선 시대를 살았던 나무꾼이고 승빈은 현대의 한국에서 경찰 공무원을 지망하고 있지만 사실 둘은 같은 사람이고 그들의 삶은 동시에 발생하고 있고 끊임없이 누군가에 의해 관찰당한다. 마치 RPG 게임 속 주인공 같은 빈한과 승빈을 엿보는 고차원적인 존재가 그들의 삶을 꼼꼼히 데이터화하고 정리하여 상벌을 내린다는 독특한 내용의 이야기.

" 그러나 저들이 불규칙적이라 느끼는 삶도 나를 비롯한 수많은 이의 노동으로 적확하게 짜여 집행된 결과이다. 인생의 상벌은 중요한 문제이기에 몇 번에 걸친 심의가 있은 뒤 결재되기에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다."

[초인종이 울렸다] 에서 주인공 "그녀"는 꼭 따라잡고 이기고 싶은 세련된 "미영"으로부터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소개받게 된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남루한 옷을 걸친, 얼굴빛도 좋지 않은 도배사 남녀가 "그녀" 앞에 등장하게 되고. 그들의 꼬락서니에 기가 막혔던 "그녀" 가 가정부에게 일을 맡기고 그 자리를 떠나려던 순간, 예상치 못했던, 그리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거만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주인공 "그녀" 가 한낮에 들이닥친 불청객들에 의해 참교육을 당하는 이야기. 웃기기도 하지만 잔인한 농담의 향연이 펼쳐진다.

"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소리 질렀다. 연분홍이 아니라 코랄핑크라구. 붓을 든 남자가 벽에 콜알핑크, 라고 썼다. 여자도 붓을 들어 콜알핑크 옆에 짧은 평행선을 두 줄 그리곤 연분홍이라고 썼다. 남자도 여자도 썼다기보다 그렸다."

[디저트 식당]이라는 단편 속, 주인공은 창작 요리를 전공하는 학생이고 요리 창작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흔히 가던 건물의 지하에 디저트 식당이 새로 생긴 것을 발견하게 되는 주인공. 그 식당에 들어간 그는 황홀한 맛과 향기를 풍기는 디저트들 사이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마치 흡입하듯 그것들을 집어 삼킨다. 현실에서는 가능할 것 같지 않던, 50도 각도로 기울어진 피사의 케이크탑을 입으로 가져가던 순간, 디저트 식당의 여주인이 주인공에게 경고의 말을 날리는데... 내용은 비슷하지 않았지만 이야기를 통해 느껴지는 색감이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연상시킨 작품.

" 소실점의 법칙은 이 공간이나 그림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에요. 사람과 사물도 관계도, 세상의 모든 것이 그 나름의 소실점을 벗어나면 전혀 다른 모습이 되기도 하죠. 예컨대 사물의 앞모습만이 전부가 아니란 말이에요. 옆모습 뒷모습, 심지어 그 안의 속 모습도 겉모습과는 다르죠."

이 책에는 저 세상에서 바로 건져올린 듯한, 기괴하고도 신기한 이야기들이 독자들을 기다린다. 각 단편들은 럭비공 처럼 앞으로 어디로 튈 지 전혀 알 수 없다. 눈 앞에 펼쳐진 여러 문들 중 하나에 노크하고 입장하면 다시 복잡한 미로가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특히 [잉어와 잉여]라는 작품을 읽다보면, 내가 나비인가? 아니면 나비가 나인가? 를 외쳤던 고대의 사상가 장자가 떠오른다. 모든 사물을 차별하지 않았던 정신적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른 장자가 [잉어와 잉여] 의 주인공이 되어 세상을 헤엄치는 느낌이다.

환상과 판타지 그리고 풍자와 해학이 어우러져 기묘함과 통쾌함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소설 [허구의 전시관]. 장르 소설을, 특히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께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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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하우스 안전가옥 오리지널 14
김효인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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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온 전직 호텔리어 구이준과

추리 마니아이자 대박 소설가 지망생 이제인은

어쩌다 제주 삼해리 연쇄 살마마 사건을 쫓게 되었을까?

크리스마스에 발생한 연쇄 살마마 사건을 해결한다는, 다소 어리둥절한 내용의 소설인 [메리 크리스하우스] 말이 누군가의 손에 죽는 이야기인 만큼 뭔가 어둡고 음습할 거라 생각했지만, 천만의 말씀!! 이 책은 제목만큼이나 발랄하고 유쾌했다. 방금 코믹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소설가 지망생 제인의 어처구니없는 말씨와 행동에 킥킥댔지만 그 어떤 탐정 못지않은 날카로운 그녀의 추리력에 놀라고 말았다. 또한 제인의 등장에 골치 아파하지만 왠지 설레는 (왜일까요?) 구이준을 보며 한편으로는 로맨스가 기대되기도 했다.

이 책의 경우, 주인공뿐 아니라 이 작품의 배경인 제주도 삼해리 사람들의 활약도 대단하다. 까다롭고 차가운 겉모습의 도시 남자 구이준을 막걸리 한 병으로 무장해제시킨 마력을 가진 너구리를 닮은 이장과 송당당근이라는 귀여운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호피 쫄티를 입은 우락부락한 사장님도 개성 만점이었다. 이들 외에도 조연의 개성이 빛나는 소설인 [메리 크리스하우스]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훨씬 긴장감 넘쳤고,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한때는 잘나가던 호텔리어였던 구이준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서울에서의 모든 생활을 접고 부모님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제주도, 그것도 산기슭에 자리한 조그만 마을 삼해리에 있는 민박집에 관리자로 취업을 하게 된다. 구이준이 오기 전에 함량 미달인 취업 지망생들과 대 환장 파티 ( 그들 표현대로라면 )를 해야 했던 민박집 부부는 허우대 멀쩡한 구이준이 시골까지 내려온 진위를 의심하기도 하지만, 그전 면접생들과의 지옥 같았던 면접을 떠올리며 그의 손을 덥석 잡아버린다.

한편,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사람과의 접촉도 별로 없고 일도 별로 없어서 한가롭게 평화를 즐기고 있던 있던 구이준의 삶에 파문을 일으킬만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구이준이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10년 전, 그에게 흑역사를 안긴 채 홀연히 떠나버렸던 그녀, 누나 구이현의 친구 이제인이 다시 그의 삶에 불쑥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민박집에 손님으로 등장한 제인은 자신이 한 미스터리 프로그램의 작가였고,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제주도에 내려왔다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제인이 추적하고 있던 사건은 바로 연쇄 살마마 사건!! 그것은 3년마다 크리스마스에 말이 죽어나간 끔찍한 사건이었다. 희한하게도 말들이 죽을 때마다 근처에서 빨간 산타복을 입은 남자가 목격되었는데 마지막 사건에서는 그도 말과 함께 죽은 채로 발견된다.

뉴스에서는 그를 살마자로 보고 있으나 제인은 그 남자가 범인이 아님을 확신하고 있다. 왜냐하면 제인이 오기 하루 전에 또 한 마리의 말이 죽어 나갔기 때문. 도대체 범인은 누구일까? 만약 진짜 범인이 있다면 그는 왜 말 못 하는 말들을 죽여야만 했을까? 모두가 행복해야 할 크리스마스에 죽어나간 말들의 복수를 하기 위에 명탐정 제인과 조수 구이준이 나선다!!

요즘은 장르를 파괴하는? 혹은 여러 장르가 섞인 그런 소설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다. 이 [메리 크리스하우스]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죽음이 있고 긴장 넘치는 전개가 있는 만큼 스릴러로 규정할 수도 있겠지만, 제인과 이준의 꽁냥꽁냥 로맨스가 한 숟갈 보태어졌고 풀로 위장한 채 잠복 수사를 하며 안경 쓴 구이준을 구난이라 부르는 엉뚱 발랄한 제인의 코미디도 한 숟갈 보태어진 소설이다. 그냥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완성도는 꽤 높은 소설 [메리 크리스하우스]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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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마치 비트코인
염기원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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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선 무관심, 다정한 폭력

차가운 도시의 이면 아래 웅크렸던 몸을 서서히 펼쳐내는 청춘의 기록 "

[인생 마치 비트코인] 은 차갑고 비정한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한편으로는 홀가분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지독한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 달까? 외로워서 SNS에 기대거나 돈과 성공을 안겨줄 불투명한 미래를 추구하면서 외로움을 달래는, 그런 현대인의 자화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소설이다.

주인공은 한 오피스텔의 관리인으로 일한다. 그러나 말이 좋아 오피스텔이지 방은 침대 하나 들이기도 벅찬 크기이다. 그뿐 아니라 얇은 벽 때문에 옆집 소음을 참아야 하고 건물이 따닥따닥 붙어있어서 창문을 열었다가 앞 건물의 사람과 눈이 마주칠 각오를 해야 한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이 오피스텔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그것도 월세 50에 관리비 12만 원을 내고.

원래 그는 시골 출신이지만 시골 생활에는 미래가 없다는 생각에 친구와 함께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용산 전자 상가에서 일하다가 월급을 떼어 먹히기도 하고 마트에서 무거운 것을 나르다가 심각한 관절염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래도 닥치는 대로 돈을 모았던 터라 종잣돈을 쥐고 있었지만 잘못된 주식 투자로 인해 한순간에 날려버리고 빈털터리가 된 후 경마장 시절에 알았던 사장님 덕분에 그가 가진 건물 중 하나에서 관리인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403호 입주자가 2달째 월세와 관리비를 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불길한 예감대로 403호 문 앞에서 구더기를 발견한 주인공. 역시나 입주자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었다. 그날따라 청소업체 사장과 연락이 되지 않아서 주인공은 직접 방을 청소하게 되고, 죽은 이가 남긴 유품을 정리하다가 완전 새것처럼 보이는 아이 신발과 그녀가 직접 쓴 가계부와 일기장을 발견하게 된다.

주인공의 눈에 비친 살아생전 403호의 이미지는 그냥 게으른 여성이었다. 답답할 정도로 삶에 서투른 듯한 여자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녀가 남긴 일기장을 읽게 되면서 주인공은 점점 그녀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소설가로 데뷔까지 했던 그녀는 글을 정말 잘 썼고, 그녀가 남긴 그 일기장을 읽고 난 뒤 그는 유품뿐만이 아니라 그가 정리해야 할 다른 일이 있음을 알게 되는데.....

" 튼튼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심장이 철컹 내려앉았다. 여자 역시 403호의 아이가 죽은 것을 알고 있었다니. 나와 403호 둘만의 비밀이 아님에도, 일기장을 봤다는 이유로 나는 세상에서 그녀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인 양 착각했던 것이다 "

그냥 잔잔하게 흘러가는 소설이구나..라고 생각하던 그 순간, 가슴속에 뭔가 묵직한 감정이 쑥 들어왔다. 슬픔인지 분노인지 모를 그 감정이 느껴진 것은, 주인공이 죽은 이의 일기장을 탐독하게 되는 시점부터였다. 살아있을 적에는 투명 인간에 불과했던 한 사람의 존재가, 죽은 후 누군가에게 이렇게 크게 다가오게 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화려한 도시의 불빛의 이면, 어느 그늘진 곳에 참으로 고독하고 또 고독한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탁월한 필력으로 묘사한 [인생 마치 비트코인]. 작품성 뛰어난 한국 소설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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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락워크 도깨비 - 경성, 무한 역동 도깨비불 고블 씬 북 시리즈
황모과 지음 / 고블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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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펑크로 재현한 조선말과 일제강점기...

세상의 법칙을 거부한 인간과

인간을 꿈꾸는 도깨비의 일대기

역사를 새롭고 신선한 관점에서 재해석한 책 [클락 워크 도깨비]

작고 얇아서 한 손에 쏙 들어오지만 메세지와 내용의 밀도가 높고 반복해서 읽을수록 

새롭다.이 책은 일제 강점기 시절, 격동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조선과 한국인의 역사를 말하고 있는데,스팀 펑크라는 새로운 장르적 시도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산업화와 선진화라는 명목으로조선을 무자비하게 수탈했던 일본의 만행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발버둥쳤던 한 여인, 그리고 한 도깨비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세상과 큰 교류없이 외지인과의 만남을 꺼리며 불과 무쇠를 다루어 기구 제작에 힘쓰던 아버지,그런 아버지와 함께 살아서인지 주인공 연화는 어릴 때부터 기계와 기계 제작에 큰 관심이 있었다.남들과의 접촉 자체를 꺼리는 아버지 때문에 산 속 깊은 곳에서 살았고 그런 딸이 외로움을 느낄까봐바퀴와 스팀을 내뿜는 주전자가 달린 썰매를 만들어 준 아버지. 연화는 그걸 타 고 이 산 저 산을 내달린다. 선머슴이 따로 없다.

외롭게 혼자 놀던 연화는, 어느날, 산 속에서 유별난 친구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바로 갑이라는 이름의 도깨비였다. 한번도 인간으로 살아본 적이 없었다는 이 도깨비는 겁 많고 약점 투성이인 인간을 무시하는 발언을 참 쉽게 한다. 그러나 자신을 스스럼없이 대하는 연화의 대담함에 반했는지그녀 곁에 머무르며 함께 어울려 논다.

그러던 어느 날, 농기구를 주문했던 사람들이 아버지를 해치고 농기구를 훔쳐간다.

그들이 주고 받는 언어가 이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일본인이었고

산 속에만 살았던 연화와 아버지는 몰랐지만 당시 조선은 일본인들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아버지를 잃고 홀로 살아가야 했던 연화는 수레에 스팀 엔진을 붙이고 영원한 불을 가진 갑이의 도움을 받아 수레를 끌며 살아간다. 남장을 한 채 번개처럼 수레를 끌고 다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불효자라며 끌끌대는데.... ( 그 당시 변발을 한 조선인에게 불효자라고 했던 것 같음 )

SF 장르의 하위 장르에 속하는 스팀 펑크는 증기기관이 발달했던 산업 혁명 당시 영국을 무대로 SF 적이거나 환상적인 요소를 도입한, 대체 역사 소설을 일컫는 용어라 한다.

[클락 워크 도깨비] 의 경우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일제 강점기 속 조선의 모습이긴 하나,인습을 거부한 채 남장을 하며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주인공 연화의 모습을 통해 확장된 여성상을 다루고 있고 인간이 되고 싶어서 인조 노동자로 변한 도깨비 갑이의 모습을 통해 근대화로 인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을 다루고 있다. 오래된 미래라고 할까? 세기말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책이다.

책의 막바지 부분에는 일본에 취업하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딸들을 그리며

연화가 구슬프게 읊는 시가 독자들을 애절하게 만든다. 당대 역사의 시선을 다양한 관점과

폭넓은 시선에서 재해석한 신선한 시도였던 [클락 워크 도깨비]

복이야, 향아, 순이야, 금아, 은아, 내 딸들아. 오고 있는 길이냐?

조금 늦는 건 괜찮으니 돌아오더라도 꼭 안전한 길을 골라오렴.

따듯하고 푹신한 곳에선 잠시 쉬고 몸을 추스르렴.

한숨 푹 자다 일어나렴. 돌아오다 좋은 사람을 만난다면 자리 잡고 아이 낳고

행복하게 살다오렴. 늦게라도 좋으니 꼭 무사히 돌아오너라.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최대한 솔직하게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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