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평점 :
와....읽으면서 이 작가는 천재구나…를 계속 마음 속으로 되씹었던 소설. 어쩌면 이렇게 독특한 조합을 이룬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계속 탄복했다. 1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들은, 각각 무게감이 상당하여, 조금만 살을 붙이면 장편으로 낼 수 있겠다 싶었다. 특히 내가 좋아했던 단편 - 레귤레이터 - 는 주인공 사립탐정 루스를 내세워 다른 소설도 냈으면 하는 바람이 들기도 했다.
이 단편 소설집이 다루는 장르는 다양하다, 종이 동물원의 바탕이 되는 드라마 장르부터, 무협, 역사, SF, 환상 까지,,, 각기 다른 틀로 여러 이야기를 담아서 독자들에게 재미를 선사한다. 개인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이야기부터, 인류의 미래를 다루는 거대한 이야기까지. 작가의 상상력의 영역은 무궁무진한 듯 하다.
단편 [ Good Hunting - 즐거운 사냥을 하길 ] 에서는 영국의 침략으로 인하여 중국의 정신적 물질적 가치가 황폐해지는 과정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살아남은 중국의 정신적 가치를 대변하는 주인공 “ 염 ” 의 변신하는 모습은 장관이다. 제일 재미있게 본 작품이다.
“ 내 눈 앞에서 염은 마치 은빛 종이접기 구조물처럼 접혔다가 펼쳐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태곳적의 전설에 나오는 존재처럼 아름답고 소름 끼치는 크롬 여우가 내 앞에 서 있었다 ”
[ The regulator - 더 레귤레이터 ]
레귤레이터는 사람의 몸에 삽입되어 있는 일종의 A.I 인데, 인간의 감정을 조절한다. 경찰이나 군인처럼, 분노나 죄책감 그리고 두려움으로 일을 망치면 안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인데, 주인공인 사립탐정 루스의 몸에 삽입되어 있다. 그이유는 그녀가 과거의 한 사건이 일으키는 죄책감과 항상 싸워야하기 때문이다. 이 단편이 재미있었던 이유는.... 사립탐정과 연쇄살인마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추리소설과 스릴러 빠순이인 나에게 엄청난 스릴감을 안겨준 작품.
그리고 대표작 [ 종이동물원 ], 이 단편을 읽고는 많이 울었다. 주인공의 어머니가 주인공에게 품었던 사랑, 그러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사랑때문에. 중국인이었던 어머니. 그리고 미국에서 태어난 혼혈 2세 주인공. 언어와 문화적 차이로 인해 소통이 되지 않았던 어머니와의 관계를 극복 못한 상태로 그녀를 하늘로 보내고만 주인공. 약간의 반전이 동반된 끝부분에서 슬픔에 눈물조차 말라버린 주인공의 모습에 또 가슴 아팠다.
“ 나는 포장지에 그 한자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적었다. 엄마의 글씨와 내 글씨가 포개지도록 ”
이외에도, 인류의 미래를 다룬 [ The waves - 파 ] 에서 보여준 상상력은 놀라웠다. 미래 인류가 자신의 영생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내용이나, 하나의 싱귤레리티, 즉 인공체인 동시에 유기체인 전일한 세계정신 속에 머물다가 기계로 떨어져나오기도 한다는 내용. 참으로 쌩뚱맞다 싶으면서도 뛰어난 상상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종이동물원에 속해있는 14가지 이야기는 하나같이 내용이 묵직하다. 잊어버려선 안될 뼈아픈 중국의 역사가 담겨있고, 동시에 미래는 어떤 식으로 펼쳐질 것인지에 대한 작가의 통찰력이 실려있다.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책을 참조하고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을지....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역사와 문자 그리고 책을 위주로 이 단편집을 구성해냈다는 작가는, 그 말대로 각 단편마다 그것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펼쳐놓는다. 가슴아픈 역사에 눈물 흘리다가, 신기한 문자 점술에 매혹되기도 하고, 또 결코 나라에 들켜선 안될 책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숨이 가빠진다.
올해 들어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 가운데 하나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 너무나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