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어의 절반은
곤도 후미에 지음, 윤선해 옮김 / 황소자리(Taurus)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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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용이지만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듯 새것인 파랑 캐리어,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간직한 캐리어는 마미와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뉴욕과 홍콩, 아부다비와 파리, 슈투트가르트를 여행하는 동안 여기저기 상처와 얼룩이 생기고, 그 상처보다 다채로운 이야기가 쌓여가는데......


파란색 캐리어를 등진 채 관광 명소를 바라보는 여인이 표지에 그려져있다. 그래서 이 책 [캐리어의 절반은]의 내용에 대해, 여행지에서 일어나는 소동을 가볍게 그린 게 아닐까?라는 추측을 했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좀 더 깊이 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인생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열심히 사는 여성들의 이야기라고 할까? 그 뿐만 아니라처음에 캐리어의 존재에 대한 미스터리가 좀 있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미스터리가 풀려가는 과정도 좋았다.


말하자면, 글의 구조가 정말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진짜 주인공인 캐리어에서 시작하여 캐리어로 끝나는 소설이랄까? 대단히 정교하고 짜임새있는 글의 플롯이 좋았다. 이 책은 주인공들의 여행 이야기를 담고 있긴 하나, 오히려 읽다 보면 행운을 담은 캐리어가 사람들의 삶과 삶을 여행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이 파란색 가죽 캐리어가 무생물로 느껴지지 않고 살아있는 존재로 다가온다.  마치 캐리어가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 행운이란, 기적이란, 다른 게 아니고 모험과 여행을 했다가 무사히 제자리로 돌아오는 여행 같은 것이지 "라고 말하는 듯.


이 책에는 상당히 많은 화자가 등장한다. 그러나 이어달리기에서 바통 터치를 하듯 이야기가 이어지기 때문에 내용이 헷갈린다거나 하는 일이 전혀 없다. 오히려 이런 구조가 캐리어가 가진 비밀과 미스터리 (?)에 대한 열쇠를 자연스럽게 제공해 주는 적절한 구조가 아닌가 싶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주인공 마미는 그냥 재미로 들러본 플리마켓에서 발견한 파란색 가죽 캐리어에 한눈에 반하고 만다. 캐리어를 손에 넣고 나니 그냥 생각만 했던 뉴욕으로의 혼자 여행을 하게 되었고, 뉴욕에서 좋아하던 배우를 실제로 만나는 행운도 가지게 된다.


여행이 워낙 좋았다 보니, 마미에게서 시작된 파란색 가죽 캐리어와의 여행은 친구들 - 하나에, 유리카 그리고 유코 -로 이어지게 되고, 그들은 여행지에서 남자친구를 새로 사귀게 되거나 좋지 못한 관계는 끊게 되고 친구들과의 오해를 푸는 등 여러 소동을 겪게 된다. 그러나 어쨌든 파란색 캐리어와의 여행은 잊지 못할 추억과 함께 인생 다음 단계로의 발돋움이 되어준다. 이들의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캐리어가 품은 미스터리에 대한 비밀도 조금씩 풀린다. 애초에 캐리어의 주인은 누구였고, 어떻게 해서 플리마켓으로 나오게 되었는지...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마치 주인공 " 파란색 가죽 캐리어 "의 탄생과 역사를 다룬 이야기가 사이드로 등장하는 듯하여 재미있었다.


나도 결혼하기 전에는 해외 여행을 좀 다녔는데 - 비록 가까운 일본, 대만, 홍콩 등등 - 이었지만 그때는 진짜 신나게 살았던 것 같다. 사실 여행을 다니면서 독립심도 키우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채운 면이 많아서 지금 생각하니 안 갔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소설 [캐리어의 절반은] 한국 여성들의 이야기도 아니고 나보다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공감되는 부분이 참 많은 소설이다. 딱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여자들이 고민할 만한 사연들을 소설로 아주 잘 녹여낸 느낌이고, 캐리어의 비밀스런 사연이 소개되는 것도 자연스럽고 감동적이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던 소설 [캐리어의 절반은]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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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베스트셀러 - 나에게서 시작하는 특별한 글쓰기 수업
루타 서페티스 지음, 이민희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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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감정은 이야기가 된다.

글쓰기를 위해 플롯, 캐릭터, 문체, 대화문을 고민하는 시간은

나와 내 주변,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시간이다.

거의 매일 글을 쓰고 있긴 하나, 나는 "진짜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은 없다. 소설을 쓴다거나 에세이를 쓰는 일은 아직도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멀리 느껴진다. 그 분야는 전문적인 것이고, 진짜 "재능"을 가진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 '나라는 베스트셀러'를 읽으니, 왠지 한번 나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이 특별해서라기보다는, 평범한 삶이지만 남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숨어있다고 이 책이 나에게 속삭이는 듯하다.

작가 루타 서페티스는 리투아니아계 미국 작가인데, 한국에서도 출간된 [회색 세상]이라는 작품을 썼다고 한다. 굉장히 유머감각이 뛰어난 분이라, 작가의 작품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글쓰기 책을 여러 권 읽어봤는데, 몇 명 안되는 재치 넘치고 재미있는 작가들 중 한 명이다. 예를 들자면, 어릴 적 오빠가 자신의 바비 인형을 괴롭히자 그의 방에 지독한 방귀를 뀌고 나왔다는 저자. 이를 " 선을 넘는 혈육을 생화학 무기로 응징했다 "라고 표현한다. 완전 재치 그 자체!! ㅋㅋ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물론 글쓰기에 관한 것이다. 플롯에서 시작해서 인물 설정, 보이스, 자료조사 그리고 수정 및 피드백과 용기까지. 각 장은 저자가 주제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다루고 나서 질문으로 끝난다. 예를 들자면, "플롯"을 다루는 부분에서 그녀는 리투아니아에서 온 이민자 가정이자 예술가가 가득했던 자신의 가족들이 모여살던 독특한 집 구조 이야기를 꺼낸다. "부엌 벽에는 거대한 초록색 햄버거 팝아트가 걸려 있고, 화장실에는 원더우먼 포스터가 변기를 마주 보고 있었다" 등으로 묘사된다. 질문은 "당신이 자란 동네에 독특한 이웃이 있었는가? 누구의 사연이 흥미로웠는가? 등이다.

다른 주제는 좀 익숙했는데, "보이스"라는 주제는 조금 낯설었다. "보이스"라는 것은 작품에 드러나는 뚜렷한 특색과 고유의 스타일이라고 한다. 아.. 어떤 책을 읽으면 읽자마자 작가의 이미지가 딱 그려지는데 바로 그것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장에는 "장르 보이스"라는 소제목에 관련된 글이 나오는데,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나와서 너무 좋았다. 예를 들자면, "스티븐 킹" "애거사 크리스티" 그리고 "커트 보니것" 이 장에서 작가는 "문장의 경제성"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문장이 장황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간결한 문장이 강렬한 효과를 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책 [나라는 베스트셀러]를 읽으면서 저자의 강연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 루타 서페티스는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과 경험을 드러내며 독자들로 하여금 책에 빠져들게 한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조차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과 격려를 안겨 준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 사실 자신이 흥미롭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훨씬 더 흥미로운 경우가 많다. 겸손해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들은 자신보다 다른 사람에게 더 주목한다. " -77쪽- 글쓰기를 가르치는 책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고 흥미로운 책인 [나라는 베스트셀러] 아마도 이 책을 완독하고 나면 내면에 숨어있는 어린 시절로 여행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주위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좋은 글쓰기 수업 [나라는 베스트셀러]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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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티와 나 : 설화도 편
김영리 지음 / 푸른들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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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오염된 눈이 내리는 이곳, 설화도

이 섬에는 비밀과 음모가 숨겨져 있다!

기억을 잃어버린 소녀, '심이연'

전설 속 괴물 예티, 누누이

사실 우리 세상은 현재 많은 위기에 봉착해있다. 그중에서도 제일 해결이 시급한 게 바로 기후 위기가 아닐까 싶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세상은 점점 더워지고 있고,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녹아서 해수면은 날로 상승한다. 이때 문학이나 소설이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작품을 통해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아닐까?

[예티와 나 - 설화도 편]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아직 더 읽어봐야겠지만 아마도 미래 사회의 한 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듯한 이 소설은 인류에게 닥친 기후 위기를 다룬 것으로 보인다. 설화도의 한 해안가에서 기억을 잃은 채로 발견된 주인공 심이연. 자신을 도와준 의원 밑에서 의료에 대해

공부하면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준다.

설화도라는 섬은 천군이 지배하고 있는데, 그는 병사들을 시켜서 갖가지 세금을 부과하며 마을 사람들에게서 식량을 빼앗아간다. 그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사람들을 아프게 만든다. 한마디로 설화도라는 섬은, 주민들의 말처럼 지옥이며 일종의 디스토피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소문에 의하면 소도라는 곳에 나쁜 괴물 '설괴'가 살고 있고, 이것이 춤을 추기 시작하면 눈이 내린다고 한다. 사람들은 '설괴'라는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만큼 무시무시한 존재인 듯. 한편 의원이 노환으로 돌아가신 후 이연은 사람들을 위해서 천궁의 약방에 쳐들어갔다가, 파랑이라는 사람을 만나고, 그는 이연에게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약을 건네준다. 곧이어 천군의 병사들에게 잡힌 이연은 약방에 쳐들어간 죄로 설괴가 있는 소도로 보내지는데.....

분명 디스토피아 소설이 맞긴 한 것 같은데, "예티와 나"는 굉장히 귀여운 소설이다. 붉은 눈을 가진, 덩치가 크고 털이 북슬북슬한 예티가 등장하는 것도 많고, 눈에 나쁜 성분이 있어서 눈을 맞기만 해도 사람들이 죽는, 아주 무섭고 비참한 미래를 보여주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예티와 나"는 소설 속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독자들의 마음을 짠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은 지구상에 닥친 기후 위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고, 모든 음모는 특정 지구인들을 살리기 위함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사람들을 죽이다니?? 이런 모순이 있을 수가.... 그리고 과학의 잘못된 행보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 어떤 목적을 위해서라도 특정 존재를 불행하게 만드는 과학은 옳지 못하다고 본다. 어쨌든 뒷부분부터 본격적으로 기파랑과 이연의 활약이 두드러지는데, 이 책은 두 번째 책인 코아 편으로 이어진다. 부디 주인공들의 활약이 성공하길 바랄 뿐. 알고 보니 굉장히 귀엽고 다정했던 책 - [예티와 나 -설화도 편]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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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플라이트
줄리 클라크 지음, 김지선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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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나눈 그들의 선택,

새로운 삶을 찾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까?

두렵다고 숨지 말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줘!

너무나 착해 늘 당하고 살았던

그녀들의 인생을 바꿀 기회가 찾아온다.

와... 정말 한마디로 끝내주는 소설이다. 사람으로 묘사하자면 매우 영리한 소설 (?) 이라고도 할 수 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과 숨 막히는 서스펜스가 처음부터 끝까지 살아있는 책이다. 도망쳐야만 하는 여자들과 반드시 그녀들을 잡아야만 하는 사람들. 탈출을 했어도 돈과 권력이 있는 자들의 눈길을 벗어날 순 없다?? 소문난 스릴러라도 지루한 부분이나 억지스러운 면이 있기 마련인데, 이 책은 한마디로 너무나 탄탄하고 치밀하게 짜여진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주인공 클레어는 정치인 가문 출신의 금수저인 로리 쿡을 만나 겉으로 보기에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 로리 쿡은 클레어가 조금이라도 자신의 기분을 잡치게 하면 그녀를 가만 두지 않는다. 계속되는 신체적, 정신적 학대 때문에 클레어의 영혼은 이미 죽은 상태이고, 얼굴에는 화장으로 가린 멍이 가득하다. 그 뿐 아니라, 로리 쿡은 다니엘이라는 비서를 시켜서 클레어의 일거수 일투족을 철저히 감시하게 만든다.

이토록 불행한 결혼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클레어는 학창 시절 베프였던 페트라와 그녀의 동생 니코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들로부터 가짜 여권 등 도망자의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받아 정리한 후 그녀는 자신이 출장을 가기로 한 디트로이트 지역으로 이미 보내놨다. 그런데 출장을 가는 당일날 아침, 그녀는 로리가 일정을 바꿔버렸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즉, 로리가 디트로이트로 가고 클레어는 푸에르토리코로 가게 된 상황. 로리는 이미 디트로이트로 떠났기에 그녀가 부쳐놓은 소포가 들키는 것은 시간 문제인 것. 클레어는 공항에서 발을 동동 굴러보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다.

그런데 그때 클레어는 이바라는 이름의 낯선 여인으로부터 접근을 받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경찰로부터 쫓기는 신세라고 말하며 클레어와 신분을 바꾸기를 은근 희망한다. 이바의 설득에 넘어간 클레어는 그녀와 항공권을 바꾸게 되고, 이제 클레어는 이바가 가려고 했던 오클랜드 공항으로, 이바는 푸에르토리코로 향하게 된다. 정신없이 이바의 집으로 향하게 된 클레어, 그러나 다음날 아침 그녀는 이바가 탄 푸에르토리코행 비행기가 추락사고를 당해 승객 전원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는데.......

하루 아침에 신분을 바꾼 채 도망자의 생활을 하게 된 클레어와 이바의 탈출극을 매우 흥미진진하게 보여주는 소설 [라스트 플라이트] 클레어는 평범한 가정 출신이 엘리트 집안으로 시집을 간, 흔치 않은 행운녀라고 볼 수 있었지만 실상은 매우 불행했다. 이바는 어머니가 마약 중독자였고 어릴 적에 버려져서 수녀원에서 길러졌다. 평생 사람들에게 뒷통수만 맞아온 그녀는 아무도 믿지 않고 고립된 생활을 해왔지만 누군가의 따뜻한 애정을 계기로 자신도 남들을 돕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한마디로 여성들의 연대를 보여주는 작품이랄까? 살다 보면, 우리는 함정에 빠지기도 하고, 덫에 걸리기도 하면서 불행한 인생을 한탄하며 살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언젠가는 떨치고 일어나서 자신 앞에 놓인 장애물을 직접 치우거나 뛰어넘어야 한다. 강한 여성들이라면 할 수 있다. 과연 두 주인공인 클레어와 이바는 완벽하게 도망을 갔을까? 아니면 당당하게 문제에 맞서서 해결했을까? 진짜 복잡하고 어려운 퍼즐을 푸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고 결말 부분에서는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졌던 소설 [라스트 플라이트]

" 무엇이 당신을 힘들게 하는지 모르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도망치며 살아갈 수는 없어요. 진실을 마주할 필요가 있어요. 나를 똑바로 보고 모든 걸 털어놓아요. " --- 3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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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자들
고은지 지음, 장한라 옮김 / 엘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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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으로 얼룩진 고국의 역사와

시대가 남긴 상흔을 안고 치유하는 한 가족의 서사시

소설 [해방자들]은 흐르는 강과 같고, 음유시인이 부르는 서정적인 시와 같다는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그만큼 표현과 문장의 아름다움이 두드러진다. 특히 한국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들을 다루기에 진한 슬픔과 감동이 밀려든다. 우리 민족은 강대국에 의한 질곡과 비탄의 세월을 걸어와야 했다. 일본의 잔인한 지배 아래 신음했고, 패권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진 정치적 힘겨루기 때문에 한반도는 여전히 남과 북으로 단절되어 있다. 민족의 비극은 개인의 삶에 고스란히 투영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에는 인숙과 성호 부부의 가족 이야기가 등장한다. 다양한 화자들은 1980년대부터 2014년까지의 이야기를 주로 하지만, 그 이전에 벌어진 사건들도 물론 등장한다. 1980년대는 광주를 피로 물들인 그 사건, "광주 사태"가 벌어진 시기이다. 한 독재자가 광주 시민들의 민주화를 향한 시위를 북에서 내려온 폭도들의 테러로 규정하고 그들의 목숨을 빼앗는 만행을 저질렀다. 길을 걷던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언니, 동생이 총칼에 맞아 죽었던 시기이고, 이때 인숙은 아버지 요한을 잃는다. 도저히 제정신으로 한국에서 살 수 없던 인숙과 성호는 시어머니 후란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책 [해방자들]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겪어온 수많은 사건들과 비극적 역사를 다루면서 동시에 인숙과 성호의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갑자기 떠나버린 아버지 때문에 사람들에게 제대로 마음을 열지 못하는 성호와 마찬가지의 상실감으로 아들 성호에게 집착하는 후란. 시어머니가 아들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바람에, 인숙은 이 복잡 미묘한 모자 관계의 틈바구니에서 제대로 숨도 못 쉬면서 산다. 그녀는 젊은 시절에는 로버트라는 한국인을 몰래 만나기도 했다.

사실 이 로버트라는 캐릭터가 특별한 빛을 발한다. 이를테면 모두들 눈 감고 있을 때 혼자서 눈을 떴던 자라고 볼 수 있다. 그에게는 일본에 징용을 갔다가 살아돌아온 어머니가 있었는데, 그녀는 일본이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던 한국인을 몰살시킨 사건에서도 살아남았고 제주 4.3 사건뿐만 아니라 6.25 전쟁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이다. 아무래도 그런 어머니 밑에서 커서 그런지, 로버트는 젊은 시절부터 신문과 연설 등을 통해서 하나의 민족, 통일의 중요성을 설파하지만 그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자는 아무도 없다.

"갈라진 나라도 여전히 나라라고 할 수 있는지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241쪽-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소설 [해방자들]은 민족이 겪어야 했던 거대한 상실 - 한때 나라를 잃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남과 북으로 나뉘어 여전히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음 - , 디아스포라, 독재, 정치적 부패, 그리고 개인적 혼란과 희망 등등을 다루고 있다. 이 조그만 나라가 그동안 얼마나 강대국에게 쥐어터지면서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들의 정치적 이익 때문에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영문도 모르는 죽음과 실종 등을 겪어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민족의 비극은 그렇게 세월을 타고 흐르며 개인의 상처로 남아 우리는 서로에게 고통을 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 책 [해방자들]이 진정한 화해와 치유를 보여주는 소설이라 느꼈다. 시어머니 후란이 죽기 전에 인숙이 그녀를 싫어했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한국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화해의 장면이 아닌가 싶었고 로버트가 피를 토하며 민족의 통일을 염원하는 장면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헨리가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 듯한 장면에서도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우리의 희망을 보여주는 듯해서... 계속 울었다.

이 소설은 사실 노래나 시 같아서 이야기가 논리적으로 이어지기보다는 함축된 부분이나 명백하게 이야기되지 않는 부분은 짐작이나 추측으로 파악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표현과 묘사 하나하나가 진짜 그림처럼 아름다워서 이야기가 조금 끊어지는 단점은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큰 역사적 비극 뿐 아니라,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라던가 세월호 사건도 나오는데, 진짜 당시에 느꼈던 원통함과 비참함이 또다시 올라와서 힘들었다. 우리의 치부라고도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우리는 자꾸 그 사건들을 이야기해야 한다. 다시는! 절대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한국인의 영혼을 노래한 듯한 아름답고도 감동적인 소설 [해방자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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