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행 슬로 보트// 가난한 아주머니 이야기
뉴욕 탄광의 비극 // 캥거루 통신
오후의 마지막 잔디밭 // 흙 속의 그녀의 작은 개
시드니의 그린 스트리트


하루키의 단편을 살 때면 꼭 예전에 읽은 단편이 1-2개는 섞여있곤 했었다.  (계획성없는 라이센스 정책에 아주 화가 나곤했었지.) 이 책은 그 절정판이며 벌써 오래전에 절판되어버린, 하루키 매니아들에게조차 별 소장가치가 없는 그런 B품같은 책인데 내겐 여러 기억들이 남아있어서 소중한 책이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대학시절엔 훨씬 더 단편 매니아였고 자리를 옮기며 책읽는걸 즐겼었다. 그래서 백팩엔 항상 2-개권의 책을 가지고 다녔었다. 이 책은 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미팅을 하고, 소개팅을 하고, 약간의 두근거림을 즐기다 처음으로 사귀게된 사람에게 받은 책이다. 이젠 미술을 전공했던 그의 얼굴도 희미하고 왜 그를 좋아했었는지, 그때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조차 잊었지만 그래도 책을 받던 순간의 기분과, 며칠 걸려 조금씩 읽었던 순간들의 느낌은 생생하다.

잔디를 깎던 소년의 여자친구는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 그가 그녀와 헤어진 후 인상이 좋아보인다는 이야기를 듣는 그 부분이 오래 기억에 남았었는데....나 역시 단언하건데 그때의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된 것 같다. 나이들어 간다는 것, 현명해져 간다는 것, 사람을 통해 배운다는 것의 그 아름다운 매직!

이런 소설 속 상상만큼 현실이 아름다운건 아니어서 이 나이에 다시 만나진다든가 하는 우연은 절대 사양하고 싶지만 이 책만은 지난 시간만큼 나와 함께 나이를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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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4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4-08-24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며 저도 잠깐 오래 전 다니던 대학 잔디밭에 잠시
궁둥이를 걸쳐봤습니다.^^

michelle 2004-08-24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의 세심함에 감사!!! 다정함에 다시 한번 감사!!
 

스탠다드 재즈곡들로 이루어진 이 책은, 단편으로 이루어진 하나하나의 내용보다 전체적인 사랑에 대한 실패, 기억들에 대한 느낌이 전반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전체가 다른 여자, 다른 사랑에 대한 기억들인데 하나의 같은 장소가 등장하곤 했다.
바로 우리들 사이에서 유명했던 그 "스노브한 재즈바"였다.

"아직까지 그 누구도 그 장소를 확실하고 자세하게 이야기한 적이 없는 재즈바, 그 비밀스런 곳에 관한 이야기이다. 긴자의 뒷골목이라는 말도 있고, 록폰기의 종합빌딩 지하라고 떠드는 사람도 있고, 뉴욕의 이스트 빌리지에 있다는 소문도 있다. 보스턴 대학 구내에 그 재즈바 간판이 조용하게 걸려 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 

아마 류가 심하게 취했을때 만나곤 했던 술주정뱅이들의 파라다이스였겠지만, 우울하게 찾아간 어느날 우연히 만나게 된다는 그 재즈바, 다시 찾으려고 하면 좀처럼 찾을 수 없다는 그곳을 책에서 읽고 마치 신기루나, 유니콘의 존재처럼 막연히 찾아야 한다. 여기에 있지 않을까라는 호기심이 들기 시작했다.

당시 대학생이던 나와 내 친구는 그당시 술과 음악을 사랑하던 인간들이어서 서울 유흥가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는 편이었다. 술을 마실 때마다 어딘가에 있을 스노브한 재즈바를 그리며....우리 꼭 가봐야할텐데라고 노래를 불렀다. --;; (결국 술주정이었지)

하여간, 결국 그 전설대로 그녀가 한번, 내가 한번 그 재즈바를 발견했다. 어느날, 학교에서 만난 그녀가 흥분하며 홍대 근처에서 그 재즈바를 봤다는거다. 허름한 단층건물 지하에 있었는데 그 재즈바가 분명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당장 학교수업을 재끼고...홍대로 출발했다. 주차장 골목 건너편이었는데 그당시엔 개발이 좀 덜 된 곳이었고 한참을 찾아도 결국 그 재즈바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가 만취했던지 혹은 정말 그 재즈바가 맞았을거다) 두번째 발견한 곳은 이태원의 클럽이었다. 내가 직장생활을 막 시작했을 즈음이었는데 회사가 이태원 근처에 있어 회사가 끝나면 주로 선배들과 자주 들르던 골목에 그 재즈바가 있었다. 술에 취해 이곳저곳을 헤매이다 몇몇이 사라지기도 하고 또 나타나기도 하던 그 마법의 골목에서 난 혼자 그 재즈바를 찾았다.

왜 혼자 재즈바에 들어갔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일행과 헤어졌는지 혹은 누군가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하여간  그날 공연 스케줄에 Quartet에 있는 걸 보고 말설임없이 들어갔던것 같다. 그 당시 라이브피를 내는 공연장에서나 볼 수 있던 그들의 공연이 평일에 잡혀있는걸 보고 놀랐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몇잔을 마시고 공연을 보고  굉장한 편안함을 느끼며 집에 돌아갔다. 그리고 예상대로 두번다시 그곳을 찾아갈 수 없었다.

아직도 익숙한 거리에서 갑자기 낯선 재즈바 간판을 볼 때마다, 언제부터 있었을까? 새로 생겼을까? 아님 저곳이 그곳일까라는 생각을 하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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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여사 2004-10-19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태씨는 죽었을까?-,. -;

michelle 2004-10-19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스테리어스하지? 오랜시간을 만나온 사람이 한번에 인생에서 없어지는 일이란...잘 지내고 있겠지. 곰탱이라 부르던 리트리버도 깁스 풀었겠구나. 예전에 --;;
 

워낙 카드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 주변인들은 내가 정성들여 산 (거의 내용은 없고 서명만 적힌) 카드를 받아본 경험이 있을거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면 늘 2-30장의 카드를 구입하고 그 카드가 다 떨어질 때 즈음이면 여행을 다시 떠나는 패턴을 반복하곤 했다.

페이퍼뮤지엄이라는 이 깜찍한 샵은 여행지 곳곳에서 만나곤 했다. 사실은 카드류와 깜찍한 소품을 파는 문구점에 불과한데 이름이 주는 느낌이 마치 미술관을 한바퀴 도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대부분 크리스마스카드나 생일카드로 보내버리고 이제 몇 장 남아있지 않지만
웹으로 보내기 위해 스캔해둔 몇가지 카드들을 소개!

  






친한 친구 teenypop의 결혼카드로 준 듯...

 

 

 

 


용도가 불분명해서 아직까지 사용못하고 있음.

 

 

 

 

 


겉이 아니라 안쪽에 그림이 그려져있는 카드


 

 

 

 

 

 




몬로버전과 엘비스 버전을 갖고 있었는데 엘비스는 누구한테 보냈더라?


 

 








태국에서 사온 Christmas in Thailand 시리즈였는데 슬리퍼신은 산타를 너무너무 사랑했었다.
  

 

 

 

 

 

 

 



친구 결혼카드로 그녀의 홈에 올렸음.  참고로 그녀가 얻은 남자와는 현실적 거리가 있음.


 

 

 

 

 

 



Edward Gorey 작품. 이 쿨한 카드 세트는 정말 음침해서 보낼데가 없다.

 

 

 














어버이날 아빠에게 드리려고 사왔으나....왠지 민망해서 시집갈 때 드리려고 놔두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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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rpoll 2004-08-13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시집갈때!.. 죄송 ㅠㅠ; 저는 님이 남잔줄 알았다는;;

michelle 2004-08-13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왜일까를 생각해봤는데...그럴만하더군요. 글과 생활이 무쟈게 삭막하긴 하죠. 뭐 미안할것까지야...

starrysky 2004-08-17 0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카드, 엽서, 편지지 등의 문구류를 너무너무 좋아해서 한때는 맘에 드는 건 닥치는 대로 사들였거든요. 근데 michelle님처럼 그걸 제 용도로 이용하는 게 아니라 그냥 계속 쌓아두기만 하다 보니 아이들이 너무 숨막혀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느날인가 마음을 비우고 주변에 다 날려보냈답니다. 음.. 내용은 없이 빈 종이로 마음만 담아서요. 흐흐.
그리고 이제는 욕심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위의 카드들을 보니 또 다시 스물스물 예전의 욕심들이.. 저 꽃그림 카드랑 태국 산타, You've Got Male이 특히 죽이네요. 아아, 하지만 안돼안돼. 이제 사모으는 건 그만~~ ㅠㅠ

michelle 2004-08-17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저처럼 쓸데없는 쇼핑을 즐기는 부류신가보군요. 눈에 띄지도 않는 것들에 돈쓰는 재미가 쏠쏠하죠. 저 태국 크리스마스 카드 예쁘죠? 슬리퍼신은 산타 시리즈인데 아주 예뻐요. 아...여행가고픈데 빨리 스케줄이 안잡히는군요. 여행가면 님의 서재에 카드한장 보내드릴께요.

ownidefix 2004-09-12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미혼시절 종이광이었답니다.
지금은..^^;;;
그래도 아직 예쁜 포장지나 봉투를 보면 버리질 못한다는..나름의 지조를 지키고 있답니다.
아..왜 그렇게 종이봉투가 좋은건지..하여간 저도 종이 사는데 수억 날렸죠.
그런데..저도 남자라는 오해를 많이 받는데..동지입니다요..방가방가..

michelle 2004-09-13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미혼시절? 아마도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계신듯...종이광이란 말 멋지네요. ownidefix님 서재에는 '개와 남편이 자고있다' 이런 페이퍼까지 있는데 왜 오해를 할까요? 하여간 오랜만! 반갑습니다.
 

나는 이 책을 대학 시절에 읽었다. 옆에 보이는 저 북디자인은 개정판에서 복원된 원서의 디자인이고 내가 처음 읽었던 키친은 아주 조잡하기 짝이 없는 paperback이었다.
취직과 영어공부에 쫒기는 요즘 대학생들도 그렇게 여유가 있을까 싶지만 나의 대학시절은 아~주 여유있는 시간들이었고 남들이 공부하러 가는 도서관에 가끔씩 책을 보러 들르곤 했었다.


그당시 바나나는 인기작가는 아니었다. 일본문학 코너에서 책을 찾다 우연히 손에 들어온 이 책은 막 출간된 것도 아니었는데 아는 사람도 거의 없을만큼 인기가 없었다. 그당시 일본문학은 하루키와 류가 평정하고 있었고 대학생들은 하루키를 유행가사처럼 트렌드로 읽고다녔다.  그런 쿨한 트렌드에 비춰볼 때, 바나나는 조금 유치한 감이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책을 읽고 왜 그렇게 감성의 코드가 맞는다고 느꼈는지....아마 전생애를 걸쳐 만화 애호가로 보낸 나의 감성이 처음 발현된 책이었기 때문일게다.(사실 또래보다 조금 유치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바나나 이후에 "만화를 못그리면 소설가가 된다"라는 컨셉이 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여간, 나는 왠만하면 책을 빌려읽지는 않는다. 읽고 나서 너무너무 갖고 싶은데 구할 수 없다면? 그 고통을 이미 어린 시절에 깨달았기 때문에 책은 꼭 사서 읽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었고 난 이 책을 구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음을 밝힌다. 서점마다 책은 품절이었고(인기가 없어서) 도서관에서 책을 훔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도 처음 고민했던 것 같다. 은박지를 바코드에 붙이면 나가면서 소리가 안난다는 낭설과....소심한 나의 고뇌..ㅋㅋ...그때 이 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생전 친하게 지내지 않던 과친구와 돈독해지기까지 했다. (그녀는 등단했다고 들었는데 잘 살고 있는지....)

결국 차선책으로 교보문고 외국어 코너에서 영역본을 샀다. 지금도 그렇지만 영문으로 감정을 느낄만큼은 아니어서 그냥, 책을 갖고 있다는데 만족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이후에 바나나가 많이 출간되기 시작하면서 읽었던 많은 책들에는 이 책만큼의 만족감이 없었던 것 같다.  

때가 꼬질꼬질해져 책장에 꽂혀있는 이 책을 볼 때마다 처음 느꼈던 감성의 깊이가 다시 돌아오는 것만 같다. 지금이라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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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lbi 2004-08-24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하하...나도 이 책을 학교 도서관에서 처음 발견했었지..읽고 나서는 소장을 하기 위해 서울시내 대형서점을 뒤지고 돌아다니다 결국 어느 후진 서점 한구석탱이에서 발견하고는 기뻐했지...키친 보다는 키친 안에 있던 "달빛 그림자"때문에....음....내 대학 시절은 그리움과 거리가 멀었는데, 햇살 가득한 창가에서 이책저책 쌓아놓고 읽을 수 있었던 그 때가 그립군....

michelle 2004-08-24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보쇼 우리 같은 대학 아니었던가? 지금 도서관에 가서 찾아보면 열람카드에 니 이름과 내 이름이 있겠군. 즐거운 시절이었지?
 
사형집행관 프랑스 현대문학선 23
미셸 폴코 지음, 이인철 옮김 / 세계사 / 1996년 7월
평점 :
품절


엄마가 요즘 읽으시면서 화장실에 꽂아두셨길에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유럽의 사형집행관의 역사에 대한 대하소설 중 일부인데 첫장을 일단 넘기고 나면 그로테스크한 살인에 흥미를 느껴 정신없이 읽게 된다. 신생아를 재료로 한 토마토 요리는 부르크네르의 '새 삶을 꿈꾸는 식인귀들의 모임'을 연상시키며 쥐스킨트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들도 있다.
>> 리딩인트 : 미셸 풀코가 아마 후대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작가겠지만 다른 작품을 찾을 수는 없다. 한 권을 읽으면 다른 작품이 궁금해지는 그런 작가인데, 뭐 일단 언젠가는 다른 작품이 번역되겠지하고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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