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파일 두어 개 부탁하고

  강좌를 마치고 왔더니

  저토록 어여쁜 메모가 책상 위에.

  편하게 카톡으로 해도 될 말을

  깨알로 수를 놓듯 

  한땀한땀 연필 끝에 앉혀 놓았더라

  채 5분도 걸리지 않았을 수고로  

  5만년을 예약하는 감동과 여운이라니   

  누군가의 가슴을 데우는 일은

  한 마디 손글씨로도 충분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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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5 17: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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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6 0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8-05-25 1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손글씨. 글씨를 잘 쓰는 분은 부럽습니다.
읽는 분이 기분좋을 느낌이네요.^^

다크아이즈 2018-05-26 07:49   좋아요 2 | URL
손 글씨를 잘 쓰시는 것도 부럽고
그 속에 정성까지 깃드니 뭔가 뭉클함이~
서니데이님도 손글씨 예쁘시잖아요^^~

2018-05-25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6 0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5 2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6 0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8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6 1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8-05-26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채 5분도 걸리지 않았을 수고로
5만년을 예약하는 감동과 여운이라니
누군가의 가슴을 데우는 일은
한 마디 손글씨로도 충분하더라

- 캬악!!! 작가다운 문장 같습니다. ㅋ

다크아이즈 2018-06-04 17:29   좋아요 0 | URL
한결 같이 알라딘을 키워가시는 페크 언냐님 잘 계시지요?
누군가의 가슴을 데우는 일의 숭고함
부쩍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요즘 빨간머리 앤, 다시 읽고 있는데
마릴라 아줌마, 매튜 아저씨가 가슴에 팍팍 꽂히네요.
잔꾀를 부리는 날이 있고, 그럴 때는 마음이 불편하기 그지 없습니다.
마릴라와 매튜의 나날에 경의를 표하는 온나절입니다.

2018-06-04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04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08 1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6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6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8-06-27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한동안 덥고 비오는 날이 계속될 것 같아요.
남쪽에는 오늘 밤에 비가 올 거라는 뉴스도 보았어요.
눅눅하고 덥고, 습한 여름입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시원한 여름 보내세요.
다크아이즈님, 편안한 밤 되세요.^^

서니데이 2018-12-31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크아이즈님, 새해인사 드립니다.
올해 봄에 들었던 새 책 소식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벌써 겨울이 되고 시간은 너무 빨리 흐르네요.
올해도 잘 보내셨나요.
이제 내일이면 2019년이 됩니다.
가정과 하시는 일에 건강과 행복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항상 건강하시기를 바라는 마음도 더하고 싶습니다.
따뜻한 연말, 좋은 새해 맞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니데이 2019-12-31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크아이즈님, 새해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그 사이 일년이 지나고 또 다른 해를 앞두고 있어요.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그리고 가정에 평안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0-05-04 0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05 1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06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13 1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24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풋내기들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우열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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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 풋내기들 2

 

   끝까지 비교해가며 읽어냈다는 기쁨보다는 숙제를 해결했다는 해방감이 앞선다. 목표 완수 뒤에 오는 허탈감은 이 작품을 끝까지 매달고 있어야 할 이유가 있었나, 하는 의구심으로 연결되었다. 마라톤 완주하는 사람들에게 딱히 큰 이유가 필요치 않듯이 그냥 비교해 읽기로 했으면 끝까지 가보는 거지 뭐, 하는 기분이랄까.

 

   확실히 레이먼드 카버를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다만, 그의 소설에 엎어지겠는가 하는 질문을 해오는 이가 있다면 즉각 대답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17편의 길고 짧은 단편은 주로 가정 파탄, 가족의 위기 등에 관한 보고서로 짜여 있다. 술에 쩐 가장은 가끔 폭언과 폭력도 행사한다. 결혼 생활의 권태기쯤에서 오는 알콜 의존성 일탈과 폭력 그리고 후회를 직조하는가 하면, 생의 아이러니를 직감하고 받아들이는 과정과 삶은 그저 그렇게 흘러갈 뿐이라는 자각을 펼쳐보이기도 한다. 애매모호하게 처리한 심리묘사 속에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장치 같은 것이 숨어 있기도 하다.

 

   수수께끼처럼 다 말해주지 않는 노련함(이게 단순한 회피일 수도 있는데, 독자로서는 노련함으로 해석하고 싶어짐. 어떻게든 의미 부여를 해야 속은 기분이 들지 않으니까.)에도 얼비치는 비애 서린 가족애와 이웃에 대한 섬세한 시선 등등이 레이먼드 카버 특유의 연필질에 살아나는 느낌이랄까. 당분간은 레이먼드 카버를 들여다볼 일은 없을 것 같다

 

  나처럼 비교해가며 읽고 싶은 사람은 어쩔 수 없으나 굳이 시간 빼앗겨 가며 수고할 필요가 없다. 레이먼드 카버를 읽고 싶은 독자라면 <<풋내기들>>로 족하다. <<사랑을 말할 때~>>는 읽지 마시길. 고든 리시의 장난질 말고는 더도덜도 아니더라.

 

**괄호안 제목은 <<사랑을 말할 때~>>

 

 

8. 여자들한테 우리가 나간다고 해(여자들에게 우리가 간다고 말해줘)

빌 재머슨과 제리 로버츠는 불알친구이다. 제리는 대학 3학년 때 캐롤과 결혼했고, 그녀는 빌과도 친했다. 머잖아 빌도 린다와 결혼했다. 캐롤과 린다도 잘 지냈다. 권태를 느낀(?) 제리는 빌에게 일탈을 부추기고 둘은 지나던 여자애 둘을 꼬신다. 빌은 단순히 섹스를 원하고, 제리는 빌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른 채, 같은 바위에서 빌의 몫인 여자까지 섹스를 했다. (이건 뭥미? 제목과도 도저히 연관이 안 됨)

<의문점>

100제리가 보기엔 그녀가 바로 그런 방식으로 자기를 쳐다본 것 같았다? -원본에는 없는 문장. 낚시용 문장. 원본에는 <제리와 눈이 마주치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 아마 빌보다 제리가 못생겼다는 의미가 아닐지.

100다시 만나? - 소녀들이 공원(페인티드 록스, 사랑을~에서는 픽처록)에 간다는 사실을 말했기에 거기서 만나자는 뜻. 사랑을~에서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 이해 불가.

100그건 가방 안에 있어. -원본에서는 없는 말. 역시 미끼.

101우린 해냈어. - 여자애들을 쉽사리 꼬셨다는 뜻. 사랑을~에서는 무슨 말인지 이해 불가.

 

- 우울증과 피로(네 딸에 또 임신 중)에 찌든 제리는 어린 여자애들과 놀아날 생각을 하고 사고 방식이 제대로인 빌은 애들이 너무 어린데다 집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리는 기어이 갈색머리를 겁탈하고 돌덩이로 여자애 얼굴을 내리치고 목을 조르고 또 돌을 내리친다. 빌은 작은 여자를 따라갔지만 해칠 마음은 없고 겁이 났다. 빌은 제리의 잔인한 모습을 목도했다. 소녀들 자전거 중 한 대만 없애버리면 이 일과 관계없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맥 빠진 제리가 자신에게 어깨를 기대자 그를 토닥이며 눈물을 흘린다. (운명적인 우정의 장난. 세상에나 이렇게 서늘하고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의 문제작을 이도저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나. 원제목을 몰라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빌이 여자들(아내들)한테는 내가 (바람 쐬러 나간다고) 얘기할게.” (사랑을~에서는 여자들에게 다녀온다는 얘기를 할게.” 이 장면에서 따온 것 같음. 그렇다면 <<풋내기들>> 제목이 번역을 맞게 한 것임.)

 

 

9. 당신 뜻에 부합한다면(청바지 다음에)

패커 부부는 주말 여가로 마을의 빙고 게임장을 찾는다. 그곳에서 시건방진, 청바지를 입은 젊은 커플을 만난다. 그들은 돈을 내지 않고 게임을 하는 속임수를 쓰는데 빙고가 터져 행운을 거머 쥔다. 돌아오는 길, 그들 걸음걸이조차 건방져 보인다. 집에 돌아온 아내는 하혈(?)을 한다며 주치의를 만나야 할 것 같다며 남편에게 기댄다. 왜 그자들이 아니라 아내에게 이런 일이 닥치는지 모르겠다. 그는 문단속을 하고 자수를 놓는다. 용골(선박 아랫단 척추 역할) 위에 올라선 남자처럼 손을 흔들고 있다고 믿으려 애쓰면서.(, 애매모호해요. 제목과도 연결이 안 되고, 뒤집어진 배처럼 씁쓸한 초로의 풍경?)

 

-제임스는 뜨개질 취미가 있고, 이디스는 관심이 없다. 두 사람은 관심사가 다르다. 청바지 소녀 커플은 히피족이다. 이디스는 히피족이 속임수를 쓰든 상관하지 않지만 제임스는 그들을 신경 쓰느라 제 게임에 집중하지 못한다. 이디스는 하혈하는 것을 앞에서도 내비친다. 괜히 히피 커플의 자유와 젊음이 부러워 심통이 난다. 제임스는 알콜 중독자 모임에 나간다. 거기에서 바느질 권유를 받아 시도했고, 뜨개질도 해 소품을 만들어 손주들에게 선물했고 제법 큰 물건들도 뜨개완성을 했다.

그날밤 바느질에 몰입하지만 속임수 히피 커플을 생각하면 부아가 인다. 실은 속임수를 썼다고 해서 히피가 이길 확률이 높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아들, 교통사고로 죽은 아버지가 있다. 아내가 암이 아니고 흩어져 사는 자식들을 위해 기도했다. 끝내 히피 소녀와 미워죽을 것 같은 남자에 대해서도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삶과 죽음 모두를 위한 기도. “당신 뜻에 부합한다면.” - 이 역시 <<풋내기들>> 원작이 제목도 맞고, 집필 의도도 살렸다. 편집자본인 사랑을~에서는 결말 부분도 매끄럽지 않고, 제목도 전혀 맞지 않음. 독자의 상상력이 편집자에 맞추기에는 터무니없이 말이 안 되는 제목과 결말.

 

 

10. 집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물이 이렇게 많은데(너무나 많은 물이 집 가까이에)

친구 셋과 낚시를 갔던 남편은 강물 나뭇사이에 낀 시체를 발견하고 낚시 캠핑이 끝난 뒤 경찰에 신고했다() 아내인 나에게 말한다. 나는 장례식에 들른다. 그곳에서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도 듣는다. 집에 돌아오니 남편은 위스키를 마시고 있고, 아들 딘은 아직 오지 않았다. 딘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남편은 나에게 필요한 중요한 일부터 하겠다며 블라우스를 벗긴다. 그가 뭐라고 중얼거리지만 (집 주변에?) 많은 물이 흐르니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나는 딘이 오기 전에 남은 단추들을 내 손으로 푼다.

(범인이 아들이라는 암시. <<풋내기들>> 읽지 않은 상태에서 그나마 가장 미니멀리즘에 가까운 소설이라는 느낌. 말할 수 없는 당혹감과 괴로움 및 소통 부재 앞에서 어떤 위로도 받을 수 없을 때의 인간 상황. 의 이 정도의 편집이라면 괜찮지만 만약 <<풋내기들>>을 읽은 다음의 내용이 내 상상과 다르다면 이 낭패감은 어찌할 것인지. 일단 <<풋내기들>>에서의 이 단편을 읽고 판단하기.

 

-어쩌면 딘(아들) 얘기일지도 모른다는 대화의 복선이 빠져 있음. 시체를 발견했지만, 여행 첫날인데다 막 도착한 참이고, 강에서 차로 돌아가려면 5마일이나 걸린다는 사실이 빠져 있어 편집본은 시신을 너무 무신경하게 다뤄 의아함을 줌. 죽은 지 5일이 지났고, 강간에 교살이라는 신문 기사, “집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물이 이렇게 많은데, 왜 남편은 그 멀리까지 낚시하러 가야 했을까?” 이 문장에서 제목을 따왔음을 알 수 있다. 편집본은 애매함. 나는 심리적으로 남편을 의심하고 있으며 뭔가 서운한 나머지 남편 뺨을 때린다. 남편은 알콜에 의존하고 있으며 나는 약간의 우울증이 있다. 둘은 소통부재를 겪고 있다.

지난날 남편과의 삶에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싸움 끝에 이 정사가 폭력으로 끝날 것이라고 남편이 말한 적도 있고, 두통으로 병원에 다니면서 의사에게서 위안을 받기도 한다. 별일 없는 것 같지만 나의 내면에는 뭔가의 균열이 있는 상태. 남편은 잦은 터치(스킨십)로 어색한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 남편에게 나는 연민을 느낀다. 남편은 딘이 범인이라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눈치 채고 있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 먼곳까지 낚시를 간 것일까(확인 차). “나는 딘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고 심장이 덜컥한다.”에서 나는 확실히 알게 된다. 두 책 단편 중 편집자가 손을 많이 댄 축에 속하는데 그나마 이 작품이 원작에서 덜 멀어져 있다는 안도감 같은 게 인다.

 

 

11. 멍청이(우리 아버지를 죽인 세 번째 이유)

멍청이란 뜻을 지닌 더미는 말을 못하는데 직장인이다. 아버지가 보여준 배스가 나오는 잡지 영향으로(?) 배스를 웅덩이에서 키운다. 나와 아버지가 배스 낚시를 하려하자 강력하게 저항하는 바람에 낚싯줄이 끊어지고 만다.

강이 범람하는 겨울 더미집에 가보니 물고기 대부분이 휩쓸려나갔다. 더미의 슬픈 표정. 점점 우울해진 더미는 (무슨 갈등인지는 나오지 않지만) 망치로 아내를 때려죽이고 자신도 물에 몸을 던졌다. 시체를 건지는 것을 보러 간 나는 아빠가 여자를 잘못 만나면 저렇게 된다는 얘기를 듣는다. 아빠의 그 말은 진심이 아니고 누구를 탓해야 할지 몰라서 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더미가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는 하는 일마다 잘 안 됐다. 아버지는 진주만과 할아버지 근처 농장으로 이사간 것 외 세 번째로 더미 때문에 죽음(인생허무)을 맞이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절반도 -”라는 의미가 아내에게 뭔가 잘못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드러나지 않음. 원작에서 그 이야기를 찾아보자.)

 

-아버지를 죽인 이유가 아니라 아버지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못 박음. 고든 리시 편집본에서는 자극적인 은유로 독자를 홀리는 경우라 하겠다. 아버지가 그렇게 된 이유도 첫째가 멍청이로 먼저 나온다. 진주만도 진주만 사건이라고 분명히 이야기해준다. (이건 번역자가 다르니 단순 번역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 더미가 배스를 연못에 풀어놓게 된 것도 아버지의 권유에 의해서임.

아버지의 친절에 더미(여기서는 멍청이)는 아버지를 친구로 의지함. 더미의 아내는 냉정하고 의심이 많음. 아버지는 멍청이와 친구니 배스가 자라면 송어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배스 낚시를 할 수 있을 것에 기뻐함. 하지만 더미는 배스에 집착해 아무도 자기집에 들어오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성어가 된 배스 낚시를 허락받는데 나보다는 겨우 아버지한테만 허락한 상황이라 내가 낚는 걸 탐탁지 않게 생각해서 방해를 함.

강이 범람해 연못과 강의 경계가 없어져 배스 가두리는 무의미해짐. 더구나 더미의 아내는 멕시코 남자랑 바람이 남. 더미는 점점 외톨이가 되어 감. 바에서 아내를 데리고 나와 트럭에서 죽이고 연못으로 뛰어듬. (더미의 죽음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 아내든, 우울증이든 혹은 설사 아버지의 권유에서 시작한 배스든 - 직간접적으로 우리는 무언가의 죄책감이나 자책에 시달림. 그냥 객관적이고 단순한 죽음일 뿐인데도.)

 

12. 파이(심각한 이야기)

버트는 크리스마스날 전아내의 집을 찾아 아이들과 선물 교환을 하고 나오면서 벽난로에 화염을 피우고 파이를 훔쳐(?) 나온다. 차문을 열다가 파이 하나를 떨어뜨린다. 다음날 사과하기 위해 베라를 찾아가는데 베라는 불을 지르려고 한 거냐고 따진다. 베라 아닌 다른 사람의 기척이 밴 것은 질투심(?)에 못견뎌한다. 남자와 통화하는 베라를 보고 코드를 칼로 잘라버린다. 접근금지신청을 하겠다고 하자 그는 재떨이를 던지려한다.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빼먹은 감이 있다. 그는 진입로에서 파이를 피해 차를 탄다. 재떨이를 가져오는 바람에 운전하기가 쉽지 않다. (깨져 버린 부부 관계에 집착처럼 전부인의 집 물건에 집착하는 남자의 이야기?)

 

-통나무 8개를 화로에 넣고, 쌓인 파이를 들고 나옴. 알콜의존형 버트. 딸 테리는 (엄마의) ()약에 손을 댐.

330버트는 그로써 자기가 아직도 그녀를 사랑한다는 걸, 그리고 자기가 질투한다는 걸 확실히 보여줬기를 바랐다. - 이 문장이 빠지면 안 되는 거였음. 원본에는 재떨이 가지고 나오는 장면 없는데, 이건 편집자본도 나쁘진 않지만 이미 스스로 화해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버트이기데 무의미하기도 함.

 

 

13. 평온함 (고요)

이발소에서 이발을 하면서 삼대가 사슴 사냥에 나간 수위의 이야기를 듣는 나. 친절한 이발사는 수위에게 수위의 관심사인 사슴 사냥에 대해 물어준다. 사슴을 쏘았지만 놓쳤다는 수위 이야기에 늙은이는 당장 사슴을 찾으러 가라고 말한다. 옥신각신한 끝에 수위, 늙은이는 차례로 이발을 하지 않고 나간다. 이발사는 늙은이는 폐기종으로 곧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잘 모르는 남자도 망설이다 나가버린다. 이발사는 내가 모든 일의 원인이라도 되는 양 이발을 계속할까, 말까 물어온다.

이발사의 손가락이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던 캘리포니아 크레센트 시에서의 추억. 그때의 고요와 그 손가락의 감미로움과 자라기 시작한 머리칼을 생각한다. -친절했던 이발사, 그 고요한 순간에 대한 회고담?

 

- 경비는 남의 이목을 즐기며 무용담을 이야기하는 스타일이고, 늙은이는 그 잘난 척을 잘 받아주지 못하는 스타일. 대기하는 남자는 그들 싸움을 부추기고(이 장면은 편집본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음) 이발사는 중재하고 정리하는 분위기. 손님이 다 나가버리자 화가 난 이발사는 그 화풀이를 내게 하는 격(이 부분도 편집본에서는 잘 묘사되지 않아 왜 이발사가 나에게 이발을 계속할까 말까 물어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음) 새로운 손님이 들어오는 장면도 없음. 새로운 손님이 들어오는 바람에 기분이 풀린 걸까. 이발사는 내 머리칼을 애인의 손길처럼 쓸어준다. 아내와 새 인생을 살려고 했던 그곳의 추억인데 어쩌다 그날 이발소 의자에 앉아 그곳을 떠나 뒤돌아보지 않기로 결심했는지. 머리칼 사이로 느껴지던 평온함과 손가락에 어려 있던 슬픔, 다시 자라기 시작한 머리칼을 떠올린다. -단순히 이발사에 대한 추억이라기보다 새 인생을 출발하려고 했던 그때의 순간을 이발사의 손길에 비유해서 쓴 것 같음.

 

 

14. 내 거야(대중 역학)

헤어지면서 아기를 서로 데려가겠다고 드잡이하는 부부 이야기.

-원본과 거의 같음

    

 

15. 거리(그에게 달라붙어 있는 모든 것)

중년의 부부는 크리스마스를 보내러 밀라노에 왔다. 십대에 결혼했던 그 시절을 떠올린다. 아기가 아픈데도 사냥을 가고 싶어했던 소년 남편과 그것을 말리고 싶어했던 소년 아내. 그 시절을 떠올리며 감성에 젖는다. 아내는 남편이 그 도시를 안내해 줄 것을 기대한다.

-원본에서는 사냥 같이 하기로 한 칼네 집 현관까지 간다. 그곳에서 칼이 사냥이 뭐가 중요하냐고 이야기하고 칼은 집에 가봐야겠다고 말한다.

그날 아침 이후 힘든 삶이 있었음도 편집본에서는 빠졌다. 남편과 아내가 각각 바람을 피웠지만 둘은 춤을 췄고 서로를 품에 안았다. 모든 것이 얼어붙었지만 그들은 잠시나마 웃다가 웃는다.

    

 

16. 풋내기들(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나와 여자친구 로라는 멜네 집에 놀러갔다. 내 친구 멜은 결혼 전력이 있고(나와 로라도 그렇다), 정신과 의사이고 신학교에서 오 년 보낸 적이 있다. 정신적인 사랑을 믿는다. 테리는 멜과 살기 전에 만난 남자가 자신을 사랑한 나머지 죽이려 한 적 있다고 말한다. 가학적인 사랑도 사랑으로 이해하는 쪽이고 전남친을 연민한다. 로라는 타인의 상황을 판단하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하며 회의적이다. 테리의 전남친은 그녀가 떠나자 쥐약을 먹었고 권총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지금은 죽었다. 테리와 멜을 끊임없이 위협했고, 멜은 당시 두려웠다. 멜은 테리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

로라는 나와 별일이 없이 사랑하고 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테리는 그게 신혼이라고 그렇다고 응수한다. 멜은 전처를 사랑했다는 점에서는 테리가 전남친을 사랑한 감정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랑했고, 지치면 미워하고 새로운 사랑을 하고, 또 헤어지고 이런 것이 삶이니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멜이 말한다.

멜은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매는 노부부를 치료한 이야기를 해준다. 사고 자체보다 서로 볼 수 없는 안타까움을 지닌 그들에 대에 마음이 아팠다는 사실. 아내를 볼 수 없는 절망 때문에 죽어가는 노인에 대한 이야기.

멜은 아이에게 전화하고 싶지만 전처가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을 정도로 전화를 받지 않기를 바란다. 전처는 파산상태로 재혼도 하지 않고 새로운 남자친구와 사는데 멜이 다 부양하는 셈. 술이 떨어져가고 방이 어두워졌는데도 서로의 심장소리만 들릴 뿐, 누구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217사랑에 관해 뭔가 아는 것처럼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에 대해선 창피해야 마땅해. - , 이 부분에서 편집자본 제목을 따옴.

 

-주인공 이름이 원본에서는 허브. 허브 ->,로 바뀜.

384내가 보기에 우린 사랑에 순전히 풋내기들이야. - , 이 부분에서 제목을 따옴.

385그런데 끔찍한 건, 끔찍하지만 또 좋은 일이기도 한데, 말하자면 그나마 끔찍함을 덜어주는 건 우리 중 누군가에게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상대는, 남은 배우자는 얼마 동안은 애도하겠지만 결국 다시 사랑하게 되고 조만간 다른 누군가를 만나게 될 테고, 그럼 이 사랑이라는 것도 - 맙소사, 이걸 어떻게 이해하겠어? - 그것도 다 그저 추억으로 남는다는 거야. 추억조차도 안 될지도 몰라. 어쩌면 애초에 그렇게 생겨먹은 건지도 모르지.

노인이 아내를 몹시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한다는 것. 젊어서도 같이 거실에서 춤 추고, 눈 내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 노인이 회복해서 아내의 병실을 찾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장면, (허브)은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떠나버려서 몹시 힘들어한다는 상황, 끔찍이도 전처를 싫어한다는 사실. 이 모든 것을 술을 마시면 더 힘들어한다는 사실. 테리는 전남편의 아이를 임신했었고 낙태 시술을 멜이 했다는 사실. (언젠가는 나와 로라의 사랑도 파국이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읽힘. 그럼에도 아직은 그대로 있기를 바라는 마음.)

413나는 창가에서 기다렸다. 아직은 그대로 있어야 한다는 걸, 바깥으로 눈길을 향하고 밖을 내다봐야 한다는 걸 알았다 볼 것이 남아 있는 동안은.

    

 

17. 한마디만 더(한 마디 더)

파탄 난 가정(술이 원인인 듯)에서 짐을 싸게 되는 남편. 아내와 딸과 함께 살면서 폭언과 기물을 부순다. 정신병원 같은 이 집에서 나가게 되는데 집을 정신병원으로 만든 건 당신이라고 아내가 말한다. 면도용품 가방과 여행 가방을 들면서 뭔가 한 마디 하고 싶은데 그게 뭔지 생각해낼 수가 없다.

 

-또 취해서 딸에게 난폭하게 군다고 원본에서는 확실하게 말해 줌.

424한마디만 더 할게. 맥신, 잘 들어. 나 당신 사랑해. 너도 사랑한다, . 둘 다 사랑해.

423(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 안 됨. 물어볼 것)충격적이게도 그는 이날 밤을, 이런 모습의 맥신을 기억하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앞으로 다가올 날에 맥신이, 그가 더 이상 떠올릴 수 없는 어떤 여자를 닮아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긴 코트를 입고 불 켜진 방 한가운데에 서서 눈을 아래로 깔고 있는 흐릿한 형상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미래에 새로운 여자를 만나도 맥신과 다르지 않은 광경을 연출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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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5-14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의 책에서 이어지는 느낌입니다. 제목에서 2가 있는 것처럼요.^^
읽는데도 한참 걸리는데, 찾아보고 정리하는데 시간 많이 걸리셨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다크아이즈님, 편안한 밤 되세요.^^

다크아이즈 2018-05-25 03:08   좋아요 1 | URL
맞아요, 서니데이님
너무 길어서 잘라서 두 번에 걸쳐서 올렸어요.
시간만 허락한다면 읽고 정리하는 것이 최대의 행복이지요.
편히 주무세요.

koviet2 2018-05-30 08:34   좋아요 0 | URL
아무리 찾아봐도 1편은 어디 있는지 못찾겠습니다.
죄송하지만 링크 좀 부탁 드립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5-14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갑 낀 쉽보르쉬카에서 잠시 웃었습니다.. ㅎㅎㅎㅎ
그보다는 검은 가죽 장갑을 낀 쉼보르쉬카가 더 강렬하지 않을까요.. ㅎㅎㅎ

다크아이즈 2018-05-25 03:13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어감이 ㅋㅋ
쉼보르스카 여사님, 어쩌쓰까요 ~~

2018-05-21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5 0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3 0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5 0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4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5 0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5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koviet2 2018-05-30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버 작품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플래너리 오코너 -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 외 30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2
플래너리 오코너 지음, 고정아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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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너리 오코너를 언급한 문학 관련인들이 많았다. 최고의 전미도서상 영예를 차지한 책 중의 한 권. 작가와 동명인 제목의 31편의 단편을 연대순으로 묶었다. 김영하, 이동진 등등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에서 이 작품을 언급하기에, 극복해야할 작품일 것 같아 망설임 없이 사서 읽었다. 꼬박 3주가 걸렸다. 절반의 성공 정도, 라고 말하고 싶은 건 내용 자체 때문이 아니라 중복되는 부분 때문이었다. 선별해서 반으로 줄여 출간했더라면 두께도 줄고, 더 강렬했을 것 같다. 결론은 선택하고 읽은 걸 후회하지 않는다.

 

 

작품은 시종 야멸차고 냉소적인 통찰로 허위에 쩐 당대의 인간 군상을 고발한다. 노예제가 폐지된 지 한참이나 지났지만 작품 속 배경의 미 남부 기성인들은 옛 향수에 젖어 있고, 그와 반대로 젊은 세대는 그들과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31편의 단편 중 종교적 가치관, 인종 문제 등이 나오지 않는 장면은 하나도 없다.

 

 

우리식 단편 정서와 달리 단편에 너무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와(그들 각자에게 이름이 다 부여되기 때문에 눈에 착 달라붙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림) 혼란이 야기되나 속도가 붙기 시작하면 재미와 서늘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때에 따라 잘 이해되지 않는 작품도 있는데, 그런 작품은 번역자도 곤욕스러웠을까. 매끄럽게 접수가 되지 않는 부분은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인종 차별, 기성 세대의 고루함, 시혜적 위치의 위선과 거짓 연민, 맹신적 종교관에 대한 고발 등등의 주제가 일관되는데 제법 재미있고 매우 묵직하다. 주제의 도돌이표라는 면에서 동어반복에 지겨운 면도 없지 않다. 대체적으로 서늘한, 그렇지만 예견되는 반전은 불편하다 못해 이 작가 뭐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피폐해지는 감정선을 곁에 두고 싶지 않은 독자는 건너뛰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내면 깊숙한 곳을 휘돌고 있는 인간의 어두운 면을 포착해 감정을 장전하고 단번에 폭파시켜버리는 힘. 우월한 지위가 지닌 허울 좋은 연민의 가면을 벗기는 데 탁월한 작가고나. 때론 모른 척 해야 할 순간들도 필요할 터인데, 그런 것을 지켜주지 못해도 되는가 하는 의구심과 불편함을 맛보게 하는 작가. 불편한 진실 마주하기가 고약한 통찰을 지닌 작가들이 원하는 것이니 기꺼이 작가에게 당해주는 당위도 나쁘지 않다. 위선이 까발려지는 순간의 씁쓸한 통쾌함과 서늘한 두려움만이 독자의 몫이로고나

 

 

권선징악이니 구원이니 사랑의 순정성이니 등등을 조소하는 작가적 태도를 작가정신으로 봐도 좋을까 하는 질문이 자꾸 돋았다. 정의나 선함 구원 등은 없다고 허를 찌르듯 다부지게 보여주는 작가에게 피로감을 느낄 만큼 끝까지 읽어 나갔다. 다행하게도 폐기 불능의 그 피로감은 두꺼운 소설을 읽어냈다는 안도의 나른함에서 멈췄다

 

 

참고로 잘 모르는 독자를 위한 작가 소개. 대다수가 열렬한 신교도인 곳에서 드물게 아일랜드계 가톨릭교도였으며, 촉망받는 작가의 길로 접어든지 얼마 안 되어 불치병에 걸려 서른아홉에 생을 마감한 작가. 단 두 편의 장편과 서른 한편의 단편으로 사후 자신의 이름을 딴 문학상을 남긴 작가. 20세기 미국 소설의 가장 독창적이고 도발적이며 강력한 목소리 가운데 하나.

 

 

<스포일러성 간단 내용>

1. 제라늄 - 남부가 고향인 더들리 영감은 딸 성화에 못 이겨 뉴욕살이를 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맞은편집은 제라늄 키우는데 성의가 없다. 고향의 제라늄은 여기와 비할 바 아니고 루티샤라면 잘 키우기도 할 것이다. 이웃 레이비와도 잘 지냈다. (검둥이 루티샤와 레이비는 더들리를 도와주는 듯) 뉴욕살이는 딸사위아들 다 눈치가 보인다. 집이 아니라 건물인 아파트는 좁아터져 목구멍 같다. 옆집에 잘 차려 입은 검둥이가 들어온 걸로 보아 그는 하인일 것이다. 그와 낚시의 즐거움이라도 나누고 싶다. 딸은 그가 아파트에 살려고 온 사람이지 하인이 아니니 괜한 짓을 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준다. 검둥이와 친하게 지낼 만큼 분별없는 아비가 아니라고 더들리는 대꾸한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창에 나오는 제라늄이 소식이 없다. 제라늄은 단순한 꽃이 아니라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그 무엇이다. 옷본을 빌리러 갔다가 옆집 검둥이를 만나 다정한 부축을 받는다. 자신의 등을 두드리고 어르신이라고 격의 없이 대하는 게 고향에서는 있을 수 없다. 불쾌하다. 제라늄 자리에 남자가 앉아서 우는 게 보인다. 제라늄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아래로 떨어졌단다. 6층 아래를 보니 제랴늄 화분이 깨져있다. 목구멍이 터질 것 같다.

제라늄을 주우러 가고 싶은데 힘에 부쳐 포기한다. 남자가 자기 집안을 더 이상 들여다 보지 말라고 더들리에게 말한다. 꽃은 골목길에 뿌리를 하늘로 쳐들고 쓰러져 있다. - 단편의 성격에 맞게 가장 잘 직조된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데뷔작만한 작품이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을 정도로 개인적으로 맘에 쏙 든 작품.

 

2. 이발사 - 이발소에 들른 자유주의자 선생 레이버는 이발사에게서 검둥이에 대한 편견 섞인 말을 듣는다. 이발사는 철저한 백인우월주의자다. 레이버는 자신의 상식에서 그를 커버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동료 제이콥스라면 이때 잘 응대할 텐데. 정치적 성향이 다른 레이버가 씁쓸하게 당하는 이야기.

의문)다먼 / 보이 블루는 다른 사람?

 

3. 살쾡이 - 냄새로 살쾡이를 잡는 데 일조하고 싶어 하는, 앞을 잘 볼 수 없는 늙은 흑인 게이브리얼의 이야기. 두려움과 공포

 

4. 작물 - 소설 쓰는 윌러턴 양 이야기. 소설 쓰는 작업을 수확량에 비유했나?

 

5. 칠면조 - (이해가 ) 총 맞은 야생 칠면조 잡기에 성공한 룰러. 하느님께 감사하고 적선도 베풀 수 있을 정도로 들떠 있지만, 돌아오는 길에 다른 아이들 무리에게 빼앗기고 만다.

 

6*. 기차 (현명한 피 일부분) 기차 안에서 검둥이 짐꾼을 만난 헤이즈 이야기. 그 짐꾼이 캐시 영감의 가출한 아들 같아서 알은 체를 하고 싶은데 아니란다. 그들의 고향 아스트로드 출신이 아니라 시카고 출신이란다. (, 한번 읽어서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흑인들의 회한, 가족에 대한 아련한 추억?)

 

7*. 감자 깎는 칼 - (현명한 피 일부분) 감자 깎는 칼을 파는 남자에게서 헤이즈 모츠는 (선심으로) 칼을 하나 산다. 그것을 보고 부자인 줄 알고 18세인 이녹이 따라온다. 칼 파는 곳에서 본 맹인과 소녀를 뒤쫓는다. 헤이즈는 칼을 소녀에게 주지만 달가워하지 않고 대신 맹인이 받는다. 헤이즈가 그들을 따라 온 것은 소녀가 전교 전단지를 찢는 자신을 사납게 쳐다봤기 때문. 맹인과 소녀는 열혈 신자이다. 헤이즈에게 예수님이 들어 있다는 맹인의 말에 이녹은 예수님 따윈 없다고 말한다. 이녹은 이웃 열혈 신도 아줌마에게 입양되어 예수님을 잘 안다. 맹인은 헤이즈에게 안수를 하며 예수님 표시가 되었다고 말하지만 헤이즈는 부정한다.

 

맹인과 헤어진 뒤에도 이녹은 헤이즐 계속 따라 온다. 헤이즈가 집안에 들어서자 소녀가 감자칼을 자기에게 줬다며 이녹이 그것을 보여준다. 쫓기다시피 이녹은 돌아가고 헤이즈는 여자가 있는 집으로 들어간다.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갔다 천막안의 여자를 훔쳐 본 죄가 떠오른다. 그것을 씻기 위해 자갈 넣은 신발을 신고 숲길을 걸었던 생각을 떠올린다. - 왜곡된 종교관에 대한 비판?

 

8*. 공원의 중심 -(현명한 피 일부분?) 이녹은 동물원 경비원이고 마치면 연결된(?) 산림원 수영장에서 모녀를 훔쳐본다. 그 사실을 아는 헤이즐 위버가 감자칼을 준 맹인 부녀집을 아느냐고 묻는다. 이녹은 그것을(?) 봐야지만 그들의 주소를 알려줄 수 있다고 말한다. 헤이즐을 동물원으로 데려가야 하고(?) 동물을 보여주고 박물관으로 이동한다. 박물관에서 쪼그라든 남자를 보고, 수영장에서 만난 두 아이를 데리고 온 여자를 만난다. 여자는 헤이즈를 보고 웃는다. 이녹은 헤이즐을 따라가다 쓰러진다. 돌멩이가 날아와 이녹을 피로 물들인다. 비밀의 피가 도시 중심부에서 고동치는 소리가 들린다.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가?)

 

10*. 이녹과 고릴라 - (현명한 피 일부분) 이녹은 스타 고릴라처럼 유명해지고 싶었다. 자신과 악수하는 사람들이라니. 우연한 행운으로 고릴라의 탈을 쓰고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극단적 편집광이자 부적응자 이녹 에머리, 맹인 행세로 돈 버는 아사 호크스, 음탕한 소녀 사바스 호크스, 섹스로 유혹하는 와츠 부인, 호객하는 가짜 목사, - 구원과 죄악의 문제

 

(현명한 피, 장편 6, 7, 8, 10모아서 장편, 영화 와이즈 블러드) 22, (단편에서는 18) 극히 보수적인 집안서 자란 헤이즐 모츠는 전쟁을 경험하면서 종교적 믿음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상실감과 타협하기 위해 헤이즐은 자기만의 교회, 즉 그리스도가 없는 교회를 세운다. 이 교회는 죽은 자가 부활하지 않는 교회이다.

 

헤이즐은 배교한 거리의 목사로서 주변을 구원하려하지만 더욱 세상과 믿음에서 멀어져간다. 천주교 신자 입장인 작가가 개신교를 본 시각(비판적). 낙오자, 도둑, 사기꾼, 인간쓰레기, 거짓예언자 등의 괴상한 인간 무리가 등장한다. 이 소설은 신학적 우의이다. 그로테스크하고 말도 안 되는 코미디이다. 오코너는 그녀가 자란 남부 시골의 복잡한 시각을 보여준다.

 

남부의 수많은 신화와 편견을 풀어내는 동시에 그 전통과 유산, 저항 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단순하고 간결한 문장은 가장 미세한 디테일에서조차 통찰과 경이를 보여주며, 믿음과 의심의 변화를 예리하리만치 민감하게 묘사한다. 거칠고, 녹슬고, 본능적이지만, 그 안에서 은총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예수가 거짓말쟁이라는 사실 외에는 아무래도 좋다.”

 

9. 행운 - 남동생을 낳다가 서른 넷에 죽은 엄마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루비는 임신에 대한 공포가 있다. 주변에서 임신이라고 말하지만 극구 부인한다. 하지만 아기의 탄생은 삶의 행운이 아니던가. 행운, 아기라는 말을 되뇌어본다.

 

11.좋은 사람은 드물다 - 할머니는 플로리다에 가고 싶지 않다. 부랑자들이 교도소를 탈출해 그쪽으로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날 가장 먼저 차에 올랐다. 아들 베일리네 부부, 손자 들과 함께 떠나는 휴가. 타워(휴게소)에서 쉬는 동안 주인 레드 새미는 이 험악한 세상, 좋은 사람은 드물다고 말하며 할머니와 옛시절 이야기를 한다.

 

중간에 할머니가 젊은날 가본 적 있는 대농장에 들르려다 교통사고가 난다. 대농장도 실은 딴곳에 있었다. 마침 부랑자 세 사람이 지나다 이 광경 속으로 뛰어든다. 총을 들고 불안감을 조성하는 그들에게 할머니는 좋은 사람들이라고 비위를 맞추지만 그들은 자신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베일리와 큰아들이 둘에게 숲속으로 끌려가고 할머니는 부랑자 대장에게 힘든 상황에서 기도를 했어야 했다고 말한다. 숲에서 나온 둘이 티셔츠를 가져와 대장에게 준다. 대장은 스스로에게 부적응자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말한다. “내가 저지른 잘못하고 내가 받은 벌하고 계산을 맞출 수가 없거든요.”라고 말하면서. 숲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린다. 부적응자는 할머니에게도 세 방의 총을 쏜다. 말 많은 여자라고 하면서 누가 일분에 한 번씩 총을 쐈더라면 좋은 여자가 되었을 거라고 말한다. 부적응자는 인생에 진짜 즐거움은 없다고 말한다.

 

12. 황혼의 대적 - 여전히 무대의 주인공이 되기를 소망하는 104세 장군, 손녀딸은 할아버지를 졸업식 무대에 세우고 싶어 한다. 졸업식이 끝나고 강당 밖으로 나와 보니, 휠체어에 실린 장군은 시체가 되어 있다.

 

13. 당신이 지키는 것은 어쩌면 당신의 생명 - 노파는 조금 모자라는 15살 딸과 산다. 시프틀릿이 관심을 보이자 딸을 결혼시키고 그를 따라 차에 실어 보낸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잠든 노파의 딸을 히치하이커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에게 깨워달라고 말하고 차를 타고 가버린다. 심심해진 그는 다른 청년 히치하이커를 태운다. 천사 같았다는 엄마에 대한 회한에 젖자 청년은 화를 내며 차에서 뛰어내린다. 시프틀릿은 폭우를 내려서라도 모든 더러움을 씻어주기를 바란다.

 

14. - 종교의 복잡한 속성을 안타깝고 비극적으로 그림. 어린 아이(5?)가 술병난 엄마를 위해 (자신은 배고픈 병이 있으면서) 강물 속에서 설교하고 치유하는 목사를 만나러 이웃을 따라 간 이야기. 목사에게 세례를 받고 명단에 들었다는 소리를 듣는다. 아이는 집을 떠나 숲의 강에 가서 천국을 찾으려 한다. 강물 속에서 몸이 빠르게 움직이고 어딘가로 흘러간다. 아이를 보고 뒤따라온 패러다이스 씨는 물 속에서 빈손이었고 강물이 흘러가는 쪽만 까마득히 바라본다.

 

15. 불 속의 원 - 코프 부인네 집에 한 때 기숙한 적 있는 사내의 아들 무리가 찾아와 머문다. 부인은 하느님께 감사하라고 말하자 소년들은 싸해진다. 집안의 집기들을 맘대로 쓰고 분위기는 뭔가 불안하다. 이 모든 과정은 프리처드 딸아이가 보고 있다. 아이는 이 무리들을 혼내주고 싶어한다. 함부로 굴지 말라고 주위에서 말하면 이 숲과 사모님 다 하느님 것이라고 맞받아친다. 불안감을 조성하던 아이들이 사라지자 코프 부인은 감가할 게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때도 아이는 어둠 속의 비명소리를 듣느라 엄마의 기도 소리는 듣지 못했다. 아이는 소년들을 혼내주기 위해 권총을 들고 숲으로 간다. 그 무리들은 이 땅이 자기들 것이라며 주차장을 만들 거라며 불을 지른다. 맹렬히 숲이 타오른다. 엄마는 깜둥이나 유럽 사람이나 못된 놈 파월이 아닌 것에 항상 감사하라고 했는데, 지금 엄마 얼굴을 보니 그 사람들 표정과 같다. 숲에서 기쁨의 함성이 울리는데 그 소리는 예언자들이 용광로 속, 천사들이 비워 준 동그란 원 안에서 춤을 추는 것과 같다. - 구원은 있는가, 의 문제 같음.

    

16. 추방자 잘못 자리 잡은 사람들, 폴란드에서 고초 받던(아마 홀로코스트로 추정) 추방자 귀작 씨네 가족 네 명이 매킨타이어 부인 농장에 들어온다. 매킨타이어 부인은 늙은 판사를 좋아해 결혼했고 재산이 많은 줄 알았지만 현금은 없고 농장 6만평밖에 없다. 두 번 더 결혼했지만 다 실패로 돌아간다. 남편 둘은 어딘가에 살아있지만 사랑한 사람은 죽은 첫 남편인 판사밖에 없다.

 

농장 관리일을 보는 쇼틀리 부인은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그들을 대한다. 쇼틀리 부인은 전통적인 남부적 세계관(흑인에 대한 편견, 구교에 대한 몰이해 등)에 머물러 있다. 석 주만에 귀작 씨는 농장의 모든 일을 꿰찼다. 쇼틀리 씨를 훨씬 능가한다. 농장여주인은 그간 백인 쓰레기와 깜둥이들이 자기 피를 말렸는데 이제 쓸 만한 사람이 들어왔다고 좋아한다. 쇼틀리 부인은 위기감과 배신감을 느낀다. 쇼틀리 부인에게 각인된 유럽은 악마의 실험장 같다. 쇼틀리 씨가 양조장을 몰래 운영하는데 그것을 귀작 씨가 고자질할까봐 노심초사한다. 쇼틀리 부인은 귀작 씨를 농장에 소개시켜준 신부가 그들을 조종한다고 생각한다. 추방자의 일솜씨 때문에 해고당할 위기에 처하자 쇼틀리네는 야반도주한다.

 

쇼틀리네가 그다지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해고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여주인은 안도한다. 귀작 씨가 건넨 사촌 여동생 사진을 보고 깜둥이는 결혼할 여자라고 좋아한다. 여자가 이곳으로 오는 비용의 반을 대고 있다고 말한다. 깜둥이를 자극하는 일을 바라지 않았으므로 여주인은 귀작 씨에게 당장 그 계획을 취소하라고 말한다. 귀작네도 다른 일꾼들과 다르지 않다고 부인은 생각한다. 귀작 네를 내보낼 거라고 말하자 신부는 당황한다.

 

몇 주 뒤 쇼틀리 씨가 돌아와 여간 기쁘지 않지만 쇼틀리 부인은 뇌졸중으로 죽었단다. 귀작 씨를 해고해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뤄진다. 추방자가 해고되지 않자 신부는 기회를 엿보아 부인을 개종시키는데 열을 올린다. 부인은 귀작 씨를 내보낸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실천이 쉽지는 않다. 쇼틀리 씨는 자신은 유럽을 위해 전쟁에 나가 싸웠는데, 이제 이방인들(폴란드인 심지어 아프리카 흑인들까지)이 이곳을 차지하고 있으니 울분이 쌓인다. 쇼틀리 씨는 트렉터로 (고의로) 추방자를 치고 농장을 떠난다. 깜둥이도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났다. 일손이 사라진 상황이라 부인은 일에서 온을 떼고 남은 재산으로 살아간다. 흑인 여자의 간호를 받으며 말년을 보내는 그녀 곁에 노신부가 있을 뿐. 노신부는 부인의 공작을 거둬 먹이고 부인의 침대를 지키며 교회의 가르침을 설명한다.

 

17. 성령의 성전 - 집에 온 두 소녀를 관찰하는 아이의 시선. 성전에 대한 여러 은유와 시각?

 

18. 인조 검둥이 - 헤드 씨는 넬슨의 할아버지. 가출한 딸이 넬슨을 놓고 죽었다. 넬슨이 태어난 애틀랜타는 검둥이 천지. 그곳에 가기 위해 새벽기차 여행을 한다. 헤드 씨는 검둥이를 처음 보는 넬슨에게 검둥이를 인지시키려한다. 검둥이 앞에서 우월감을 느끼는 헤드 씨지만 넬슨의 유일한 의지처이기도 하다. 넬슨은 지나는 곳마다 여기가 내 고향이라며 소리치는 바람에 할아버지는 당황한다. 도시락도 잃고 길도 잃는다. 할아버지는 이 검둥이 천국을 고향이라 부르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라고 호통친다. 길에서 잠든 넬슨이 깨어 뛰어가다가 노부인 발목을 부러뜨린다. 헤드 씨는 치료비를 물러내라는 성화에 넬슨이 자기 아들이 아니라며 자리를 뜬다. 이내 자책감에 휩싸이는 헤드 씨. 길을 잃고 헤매다가 검둥이 동상을 보게 된다. 어떤 자비 행위처럼 그것은 두 사람의 차이를 녹아내리게 한다. 겨우 기차를 탔고 헤드 씨는 끔찍한 죄를 짓지 않았으므로 낙원에 들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넬슨은 피로와 의심의 얼굴로 다시는 애틀란타에 안 갈 거라고 중얼거린다.

 

19.좋은 시골 사람들 - 완벽한 것은 없다는, 는 말을 좋아하는 호프웰 부인은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으며, 여러 사람들이 각기 다양한 방법으로 밥벌이를 하며 살고 있다고 여긴다. 또한 그녀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된다, 라고 믿는 낙관적인 사람이다. 그녀는 오래전 남편과 이혼하고 홀로 농장을 경영하며, 열 살에 총기 사고로 한 쪽 다리를 잃은 서른 살의 고학력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철학 박사를 비롯한 기타의 여러 학위를 가진 딸은 시골 농장의 어머니나 주변 인물들의 안일한 모습을 보며 삶은 기본적으로 허무하고 무의미하지만, 고등교육을 받은 자신만큼은 무의미한 일상이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호프웰 부인이 한쪽 다리를 잃은 자신을 언제까지나 어린아이로 대하며 보호하려는 것에 불만을 품는다. 그녀는 부모가 지어준 이름인 조이를 버리고, 헐가라는 흉칙한 이름으로 개명하는 등의 소극적인 반항을 한다.

조이는 많이 배웠지만 거친 세상을 경험하지 못했고, 어머니를 떠나 자신만의 삶을 살 용기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과 여타의 사람들을 대하는 어머니의 감상적인 태도가 못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와 같이 지낼 수밖에 없다.

 

어느 날 농장에 성경을 팔겠다는 열아홉 살 청년이 찾아오고, 타인에 대한 친절을 미덕으로 삼는 호프웰 부인은 청년을 거절하지 못하고 식사를 대접한다. 호프웰 부인은 그 청년을 진실하고 좋은 시골 사람으로 여겼다. 타인에 대해 그런 식의 감상적인 태도를 보이는 어머니를 경멸하는 조이는, 능청맞게 식사를 하고 앉은 청년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지만, 바로 그날 어머니 몰래 청년과 만날 약속을 한다.

다음날 청년을 다시 만난 조이는 투정하듯 아무런 조건 없는 사랑을 말하는 청년에게서 진정한 순수함을 본다. 그녀는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닫았던 마음을 열고, 비틀어진 내면의 근원인 의족을 내보인다. 바로 그 다음 순간, 순수함의 탈을 벗어던진 청년은 조이를 모욕하며 의족을 들고 달아난다. 황급히 달아나는 청년을 멀리서 바라 본 호프웰 부인은 청년이 성경을 팔러 다른 마을로 가고 있다, 라고 여기며 이렇게 말한다. ‘저쪽에 사는 깜둥이들한테 성경을 팔러 갔던 모양이야. 순진하기도 하지. 그래도 우리 모두가 저렇게 순진하다면 세상이 훨씬 좋아질 거야.’

 

20. 죽은 사람보다 불쌍한 사람은 없다 - 할아버지가 죽은 뒤 타워터는 농장을 관리한다. 교사 삼촌이 그 권리를 뺏지 않기를 바라면서. 교사 삼촌은 할아버지를 잠시 모실 때 글을 쓸 목적으로 그를 관찰해서 교사 잡지에 실은 적이 있다. 사이가 틀어진 할아버지는 타워터를 빼내 숲으로 이사를 갔고, 아이를 기독교인으로 키우고 싶어했다. 할아버지는 관도 직접 짜두었다. 타워터의 삼촌이 자신의 죽음을 처리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세상은 죽은 자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할아버지는 생각한다. 자신이 죽으면 타워터가 삼촌에게 가지 않기를 바란다. 타워터는 죽은 자만큼 불쌍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유산이 조카를 거치지 않고 곧장 타워터에게 가기를 바라지만 아버지가 미리 유언한 게 있어서 맘대로 되지 않는다.

무덤을 파다가 만난 대화 속의 낯선이(악마의 영혼, 또다른 자아)는 일흔 먹은 노친네가 아기를 숲으로 데려와 키운 건 미친 짓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묻어줄 아이가 필요했을 뿐이라고. 노인이 너에게 원하는 원칙은 때가 오면 노인을 묻고 무덤에 십자가를 세워주는 것이라고. 할아버지야말로 대문 앞의 돌인데 하느님이 그것을 치워줬다고 말한다. 무덤을 파던 마당에서 뒤쪽 모퉁이로 가 불을 놓는 타워터. 자정이 되어 간선도로로 나와 차를 얻어탄다. 영업사원에게서 사업수완이 좋으려면 사람을 사랑해야한다는 것을 배운다. 가령 아무개 부인 암, 이라고 적었다가 죽으면 사망, 이라고 그 이름에 줄을 긋는 식. 사람이 죽으면 기억할 게 하나 줄어드니 고마운 거라고 말한다.

타워터는 불타는 도시를 보고 자신이 불 지른 곳으로 돌아가는 줄 알고 흥분한다. 잠깐 졸았다고 말하는 타워터에게 영업사원은 소중한 조언을 많이 해주었는데 못 들었겠구나, 라고 말한다.

 

21. 그린리프 메이 부인은 그린리프 씨를 고용하고 있는데 썩 맘에 들지는 않지만 별 다른 수가 없다. 두 아들은 농장일에는 관심이 없다. 큰아들 스코필드는 검둥이를 상대로 보험을 한다. 그린리프 부인처럼 뚱뚱한 시골여자랑 결혼할 거라고 부인 속을 뒤집는다. 그린리프는 기도 치유에 빠져 있는 지저분하고 게으른 여자이다. 둘째 아들은 매사에 시큰둥한 시간 강사인데, 시골을 싫어하면서도 떠날 생각은 못하는 자이다. 그린리프 씨네의 두 아들은 2차대전에 참가해 프랑스여자와 결혼했다. 둘 다 부상당하는데 성공해서 연금도 받는다. 정부 지원으로 대학도 다니고 땅도 샀다. 15년 뒤에 상류 계급으로 올라갈 것을 생각하면 부인은 침울해진다. 그린리프 부부는 책임감도 없었기에 늙지도 않는다. 자신이 죽으면 그린리프 부부가 두 아들을 빨아먹을 것 같다. 차라리 그린리프의 두 아들과 며느리가 자신의 식구였으면.

 

그린리프네 소가 메이 부인 농장에 들어와 방해하기에 찾아가기를 바라지만 그들은 별다른 반응이 없고, 메이 부인은 은근히 무시를 당한다. 두 아들마저 엄마 편이 아니다. 자신이 여자라서 고용인에게도 무시를 당한다고 말한다. 소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부인은 그린리프에게 총을 가지와 소를 쏘아죽이라고 말한다. 목초지에서 지루하게 시간을 끄는 동안 숲에서 황소가 나와 메이부인에게 달려든다. 그린리프는 황소의 눈을 네 차례 쏜다. 고꾸라진 부인의 모습은 자신의 마지막을 황소의 귀에 속삭이는 듯하다.

 

22. 숲의 전망 포천 노인은 딸과 사위 피츠는 못 믿지만 손녀 메리 포천은 신뢰가 간다. 비밀리에 메리 포천에게 유산을 남기는 유서도 작성해 놨다. 노인에게 상식은 땅을 팔아 미래를 확보하는 것이지만, 손녀인 메리에게 상식은 땅을 팔지 않고 숲의 전망을 보거나 잔디밭에 송아지들이 풀을 뜯어 먹게 하는 것. 피츠와 사이가 좋지 않아 메리가 자신에게 기울어졌으면 좋겠는데 쉽지 않다. 피츠는 땅을 팔아치우는 노인에 대한 원망으로 메리를 자주 때린다.

틸먼과 땅 매매 계약을 하는데 메리 포천이 병을 던져 방해한다. 피츠가 그랬던 것처럼 매를 들어 훈육하려 한다. 하지만 메리 포천이 도리어 할아버지를 구타한다. 포천이 아니라 순수한 피츠라고 확인시켜주면서. 노인은 아이의 목을 조르고 돌덩이에 머리를 몇 번 찧는다. 피츠는 1도 없다고 말한다. 노인은 호수 주변엔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걸 느낀다.

 

23. 깊은 오한 - 똑똑하고 예술가 기질인 에스버리는 건강을 잃고 뉴욕에서 어머니에게로 돌아온다. 에스버리는 깜둥이에 대한 희곡도 쓰는데 부인으로서는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아픈 지금은 자신을 가만 내버려두라고 말한다. 누나 메리는 시골 초등 교장인데 에스버리는 매력이 없어서 거기에 머물고 있는 거라고 폄하하고, 누나는 에스버리가 능력이 없어서 책을 출간하지 못하는 거라고 빈정댄다.

에스버리는 어머니에게 부치지 않은 긴 편지를 갖고 있다. 엄마에게 길들여진 새 같은 신세 한탄성 편지. 열망만 있고 재능이 없는 게 엄마 탓이라는. 이 편지를 읽고 엄마가 자신의 참모습을 보고 당신의 역할을 감지하기를. 그의 맘도 모르고 엄마는 의사를 불러 진료를 한다. 엄마와 에스버리는 생각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검둥이를 대하는 방식부터. 엄마는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부류이다


   꼭 누구를 만나야 한다면 블록 의사가 아니라 대화가 통할 신부님을 만나고 싶다. 메리는 그가 글을 못 써서 병에 걸린거라고 말한다. 예술가 대신 환자가 되기로 한 거라고. 막상 핀 신부를 만나지만 종교적인 대화만 늘어놓는 신부와 통할 리 없다. 검둥이들도 불러달라고 해서 곧 죽을 거라며 그들에게 이야기한다. 죽기 전 엄마에게 편지를 넣은 서랍 열쇠를 주는 것만 남았다. 그 이야기를 하지만 엄마는 못 알아 듣는 것 같다. 엄마는 아들의 병이 파상열이라고 말한다. 그는 오한을 느낀다. 그는 남은 평생 질긴 몸믕로 깨끗해지는 공포와 마주하고 살 것임을 안다. 성령은 불 대신 얼음을 입고 잔혹하게 내려오고 또 내려 올 것이다.

      

*선을 베풀었다가 당하는 이야기 - 선은 선 그 자체로 행해지고 받아들여져야 하지, 다른 어떤 감정이나 이데올로기가 개입되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새로운 가치관을 지닌 젊은 주인공은 대체로 글을 쓰고 싶어 다.

 

24. 가정의 안락 - 토머스의 어머니는 미덕을 남용하는 무모한 자선가 스타일. 부정수표 건으로 가석방 된 스타(세라 햄)를 좋은 아이라고 믿고 선을 베푼다. 세라 햄은 막무가내에 불성실하고 자살까지 시도한다. 토머스의 방에 들어와 권총까지 훔쳐간다. 살아계신 아버지라면 이 꼴을 안 보고 현명하게 대처하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리 착한 캐릭터는 아닌 듯)토머스가 보기엔 그 여자 앞에서 엄마가 바보짓하는 거다. 꿈결에 나타난 아버지는 보안관을 찾으라고 말한다. 총이 다시 자신의 책상 위에 있는 것을 보고 아버지(혼령)는 도로 그 여자에게 가져다 놓으라고 말한다. 총을 가방에 넣는 장면을 세라가 보고 어머니에게 이른다. 총에 대해 옥신각신하다 총을 쏘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토머스는 쏜다. 보안관이 들어오다 그 장면을 목격하고 어머니는 세라와 토머스 사이에 누워 있다. 보안관의 통찰은 토머스가 어머니를 죽이고 여자에게 죄를 덮어 씌우려 했던 것. 보안관은 부인의 시체 위에서 살인자와 탕녀가 서로의 품으로 쓰러질 것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안관은 눈치 챘다. 아직 보안관이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그들은 몰랐다. - 선의와 미덕의 남용은 가정의 파괴(가장의 영원한 안락)을 부른다.

      

25.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 - 줄리언은 타자기 판매원이자 글을 쓰려는 꿈이 있다. 줄리언 어머니에게 흑인은 동정의 대상이다. 세상은 변했고 사는 곳도 달라졌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검둥이는 하인이라는 사고가 뿌리박혀 있었다. 줄리언 어머니의 친절은 내가 그들보다 위에 있다는 사고에서 기인했다. 겨우 1센트 동전어치의 동정을 베푸는 어머니의 편견과 맞서 싸우는 아들. 하지만 어머니를 완전히 설득하지 못하고 좌절한다. 어머니는 아들의 단호한 태도에 온몸이 뒤틀리고 눈동자마저 돌아간다.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줄리언.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와 자기 모순.

 

 

26. 피트리지 축제 -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기획으로 파트리지 시 진달래 축제가 매년 열린다. 축제 시작 전 축제 배지를 사지 않은 죄로 모의 재판을 받은 싱글턴이 쏜 총에 고위 인사 다섯과 무고 시민 한 명 등 여섯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청년 캘룬은 자신의 내면이 싱글턴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할머니 두 분과는 깊이 있는 얘기는 불가능하다. 선량한 복음주의자이지만 도덕에 대한 상상력이 없기 때문이다. 히피적 삶을 사는, 방문 판매원이 적성에 맞는 캘룬은 글을 쓰고 싶어한다. 당장 광인 싱글턴을 옹호할 글을 생각한다. 순수한 빛에 녹아든 그의 그림자를 생각하며 자신의 죄의식을 달랠 수 있기를. 할머니들의 성화에 축제에 참가하겠다고 한 것도 싱글턴의 해방적 이미지 때문이었다. 캘룬은 싱글턴은 수단이었을 뿐 범인은 파트리지 시 자체라고 생각한다. 무고한 시민 장례식은 그가 망나니였다는 이유로 시민들로부터도 외면을 당한다. 캘룬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길에서 만난 노인과 백인소녀도 싱글턴을 이해하지 못한다. 인척인 이발사는 싱글턴이 희생양이라고 캘룬에게 공감한다. 캘룬이 보기에 싱글턴은 개인주의자요 독립된 자아가 강한 사람일 뿐이지 범법자는 아니다.

할머니들의 소개로 옆집 여자와 미인대회를 향해 출발한다. 여자도 이 축제에 냉소적이며 글을 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싱글턴에 대한 두 사람의 연민의 방식은 소설과 논문의 글 종류만큼 다르다. 구체성을 획득하고 싶다는 캘룬의 말에 여자는 싱글턴을 면회하라고 말한다. 캘룬과 여자는 티격태격하며 퀸시 병원에 도착한다. 캘룬이 보기에 여자는 가짜 학문적 성과를 위해서 싱글턴을 활용하는 것 같다. 싱글턴을 만나자 여자는 그를 이해한다고 말하려고 왔다고 말한다. 싱글턴은 제지하는 직원들이 달려들었지만 순식간에 여자를 겁탈하려 한다. 여자와 캘룬은 재빨리 차로 돌아온다. 그녀 안경에 제 모습이 비친 것을 본다. 캘룬은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특징 없는 자신의 얼굴이 미래로 달려나가 축제를 일으키는 걸 느낀다. 마치 판매의 달인처럼 오래전부터 그를 데려가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호의나 연민이 이해받을 수 있는 악인은 없다, 쯤의 메시지. 일관되는 플래너리 오코너식 주제.)

 

27. 절름발이가 먼저 올 것이다 - 셰퍼드는 아들 노턴과 살지만 매사가 못마땅하다. 교도소에서 레크리에이션 자원봉사하면서 루퍼스 존슨을 알게 되고 그를 선도하기 위해 함께 산다. 루퍼스 존슨은 다리를 절고 머리는 좋다. 셰퍼드는 루퍼스에게 연민을 느끼고 새 신발을 구해주고 구원으로 인도하고 싶다. 루퍼스 존슨보다 어린 아들인 노턴은 이러는 아빠가 싫다. 무례한 존스도 싫긴 마찬가지다. 셰퍼드는 존슨이 반항하면 할수록 사명감에 불타고 반대로 자신을 불신하는 아들 노턴에 대해서는 실망이 앞선다. 노턴은 점점 존슨의 영향 하에 있게 된다.

 

선의는 이긴다며 존슨의 비행을 믿지 않고 그를 감싸고도는 셰퍼드. 존슨은 보조 새신발을 거절한다. 혼자 힘으로 마련하겠다고 하지만 셰펴드는 포장해 달라고 한다. 나쁜 짓을 한 당사자가 존슨인 것을 뒤늦게 알고 셰퍼드는 그제야 그가 이 집을 떠났으면 하고 중얼거린다. 싸울 것이 노턴의 단순한 이기심과 자신의 외로움밖에 없던 시절이 오히려 그립다. 존슨의 사주로 성경을 훔치는 노턴. 성경을 찢어 삼키고 집을 떠나는 존슨. 이렇게 시시하게 끝나면 존슨이 아니라며 불안해하는 셰퍼드. 노턴 방을 열었더니 망원경으로 엄마를 찾았다고 소리를 친다. 좀 있다가 경찰에 잡혀오는 존슨. 그는 셰퍼드가 지옥이 없다며 하나님을 모욕하는 더러운 말을 했다고 반항하며 말한다. 발의 고통 때문에 도덕적 혼란에 빠진 것이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셰퍼드가 말하자 존슨은 발은 아무 상관 없다며 오히려 절름발이가 먼저 오는 법이라며 구원은 예수님이 하지 저 더러운 무신론자가 하는 게 아니라며 덤빈다. 구원의 날이 오면 절름발이가 노획물을 차지할 것이라고 소리친다. 스스로에 대한 환상을 충족하느라 자기 아이를 방치한 걸 알게 된다.

 

명석한 악마가 존슨의 눈으로 자신을 조롱하는 것을 보게 된다. 망원경에 몰입해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던 노턴. 다시는 아이를 힘들지 않게 하고 어머니 역할까지 할 것이다. 다락방에서 그가 본 풍경은 망원경은 바닥에 뒹굴고 허공엔 아이가 매달려 있다. 우주인이 되고 싶었던 아니는 그렇게 매달린 채 우주로 여행을 떠났다. -비행 소년을 선도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들인 노턴은 돌보지 못한다. 자기 위로 같은 것. 나의 선이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오만이자 폭력일 수 있다. 무지한 선한 행동은 그 자체가 무지의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선 자체가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란 얼마나 힘든가. 행하는 당사자도 당하는 수혜자도 순수한 선행은 불가능한 것인가.

 

28. 이교도는 왜 분노하는가? - 버지가 교통 사고를 당하자 맏아들인 월터보고 집안을 건사하라고 엄마는 말한다. 깜둥이 관리까지 하라고 하자 월터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엄마와 다른 길, 다른 세계를 꿈꾸는 스물여덟 살의 아들이 이해가 되지 않고 분노만 인다. (아들의 새로운 세계관이 진정한 종교이고, 엄마의 기존 가치관이 이교도적이라는 의미로 읽힘. 짧은 소설이 완벽하게 읽히지는 않으나 플래너리 오코너의 일관된 작가관으로 볼 때 그렇게 읽힘.)

 

 29. 계시 - 소한테 발길질 당한 터핀 부부가 병원 대기실에 있다. 땅이 있고 살 만한 부인은 사람들을 계층별로 나누고 은근히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경멸한다. 그러면서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운다는 원칙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격도 좋다고 생각한다. 뚱뚱한 것 빼고는 검둥이로도 백인쓰레기도 못생긴 여자로도 만들지 않은 예수님께 감사할 뿐이다. 옆자리 못 생긴 여자가 자신이 아닌 게 다행이다. 여학생도 터핀 부인 맘을 알았는지 서로의 눈길이 부딪치다가 여학생은 터핀 부인에게 책을 던지며 목을 조르고 흑돼지라며 지옥으로나 가라고 능멸한다. 그 대상이 자신보다 못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향했다는 사실에 터핀 부인은 참을 수 없다. 품위 있는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고 믿었는데. 별빛 가득한 들판으로 올라가며 할렐루야를 외치는 영혼들의 목소리. - 자신은 검둥이나 백인쓰레기나 못생긴 여자랑 다른 선택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는 허위 의식에 찬 중년 부인 이야기

 

30. 파커의 등 - 못생기고 화장기 없는 아내와 사는 파커. 소작농인 그를 보는 늙은 여주인은 그를 트렉터 정도로만 여긴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문신을 즐겼다. 무심한 듯한 아내가 견딜 수 없을 때 문신을 새로 새기고 싶은데 남은 부위는 등밖에 없다. 아내를 설득하기 쉬운 예수를 문신한다. 집에 돌아가 등의 문신을 보라고 하자 아내는 하느님은 이렇게 생기지 않았고 우상숭배일 뿐이라고 말한다. 거짓과 허영은 참을 수 있지만 우상숭배는 원하지 않는다며 파커를 빗자루로 때린다. 나무에 기대서서 울고 있는 파커. -일상에서 구원 받을 수 없는 한 남자의 문신을 통한 구원 또는 소통에의 열망.

 

31. 심판의 날 - 고향을 떠나 뉴욕의 딸집에서 살게 된 테너. 흑인 이웃에게 남부식으로 잘난척하며 추근대다 밀침을 당해 드러누웠다. 사위와 딸에게 부담만 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고향에 내려가고 싶어 한다. 한때 검둥이를 부리는 농장주였지만 지금은 파산해 딸에게 의탁하고 있다. 비둘기장 같은 집, 이상한 영어, 멀쩡한 사람이 살 곳이 못 된다. 함께 했던 검둥이 집사 콜먼이 그립다.

검둥이와 함께 사는 뉴욕이라니. 하지만 딸은 그들에게 간섭하지 말고 나서지 말고 사는 게 잘지내는 거라고 따끔하게 충고한다. 그것도 무시한 채 검둥이에게 말을 건넸다가 무시를 당한다. 딸이 출근한 뒤 난간에서 뛰어내리다 걸려 허공에 매달린 채 죽는다. 처음에 따딸은 뉴욕에 묻었다가 고향으로 시신을 보낸다. 그 후 딸은 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있게 되었고 미모도 돌아왔다. - 남부 출신 보수 영감의 뉴욕 살이의 고달픔. 제라늄과 연결됨.

 

    

 

 

 

 

 

 

 

 

 

 

 

 

 

 

 

 

 

34나는 논쟁을 안 한다니까 – 제이콥스

50그를 둘러싼 어둠은 텅 비었고, 그 깊은 곳에서 동물들의 울음이 그의 목구멍 속 고동 소리와 섞여 들었다.

52소재가 너무 많아서 윌러틴 양은 한 가지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게 소설 쓰기의 가장 힘든 부분이라고 그녀는 항상 말했다. 그녀는 실제로 쓰는 일보다 쓸 것을 생각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54첫 문장은 섬광처럼 다가와!

54‘롯 모턴은 개를 불렀다. 개는 귀를 쫑긋 세우고 어슬렁어슬렁 그에게 다가왔다.’ ‘개’라는 표현도 두 번 나오네. 으음, 하지만 그건 ‘롯’이 두 번 나오는 것만큼 귀에 거슬리지는 않는다고 그녀는 판정을 내렸다.

78무시무시한 어떤 것이 팔에 힘을 주고 손가락을 구부린 채 자신에게 달려든다고 그는 확신했다.

100여기 사람들이 원하는 건 남을 굴복시키는 게 전부인 것 같아. 너는 돈이 많을 것 같아. 돈이 있다면 아주 잘 쓸 자신이 있는데 – 이녹

90그는 어둠 속에 하얗게 서서 움직이지 않고 짐꾼을 바라보았다. 철로가 곡선을 그릴 때, 그는 열병에 휩싸여 기차의 질주하는 고요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215우리는 치유를 위해 강에 갈 거예요. 설교자 선생님은 이쪽에 자주 오시지 않거든요.

225고통을 강물에 버릴 수 있을까 하고 왔다면, 예수님을 위해 오신 게 아닙니다. 여러분은 고통을 강물에 버릴 수 없습니다.

225믿음을 가지면 여러분은 그 강에 고통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 강은 죄를 싣고 가도록 된 강이기 때문입니다. 그 강은 고통으로 가득하고,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천천히, 여기 제 발밑의 이 붉은 강물처럼 천천히 흘러가면서 그 죄들을 씻어 줄 것입니다.

258코프 부인은 자신이 프리처드 부인 같은 심성의 소유자를 대하는 방식에 자부심을 품었다. 프리처드 부인은 사방에서 나쁜 신호와 불길한 징조를 보았지만 자신은 차분히 그것이 공상의 산물임을 보여주었다.

269이름은 벌레 같아도 얼굴은 예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271이제 게으른 깜둥이들도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될 거야.

273일할 수 있는 사람을 말을 못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일을 못해. 깜둥이를 더 들인 것보다 나을 게 없어.

295판사님은 익숙한 악마가 모르는 악마보다 낫다고 말씀하셨죠. 그는 작지만 분명한 어조로 말하고 나갔다.

348헤드 씨는 동네에서 재치로 유명했고, 넬슨은 갑자기 할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낯선 여행지에서 자신의 유일한 의지처라는 것을 깨달았다. 할아버지를 잃으면 자신은 세상에서 외톨이가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큰 충격이 밀려와서 넬슨은 할아버지의 코트 자락에 어린아이처럼 매달리고 싶어졌다.

392너는 그냥 좋은 시골 사람 아니었어?

393날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 포인터는 내 진짜 이름이 아니니까. 나는 가는 곳마다 다른 이름을 쓰고 어디서도 그렇게 오래 머물지 않아. --너는 그렇게 똑똑하지 않아. 나는 태어날 때부터 아무것도 믿지 않았어.

394어떤 사람은 순진하게 사는 게 불가능해요. 나는 일단 불가능해요. - 프리먼 부인

429좋은 여자는 스코필드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웨슬리는 그 자신이 좋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551버스 안에 우리뿐이네요. -줄리언 어머니

518어머니는 언제나 진부한 동기로 시작해서 - ‘좋은 일이니까’ -악마와 어처구니없는 계약을 맺곤 했지만 물론 어머니는 그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552어머니는 똑똑한 여자였고, 그는 어머니가 출발점만 제대로 되었다면 훨씬 괜찮은 사람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자기 환상 세계의 법칙에 따라 살았고, 그는 어머니가 그 바깥에 발을 내딛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576사람의 근본적 권리 중에는 바보처럼 행동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 남들과 다르게 살 권리지. 아, 그러니가 자기 자신으로 살 권리야. - 캘룬

601"엄마가 교도소에 있다면 어쨌든 엄마를 보러 갈 수 있겠죠." 아이가 고함치듯 말했다. 눈물이 얼굴에 흘러내리고 케첩이 뺨 위에 방울졌다. 아이는 입을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이 되어 자제력을 잃고 엉엉 울었다.

617루퍼스가 나에 대해 하는 말 때문에 내가 루퍼스를 돕지 않는다면 나는 이기적인 인간인 거야. 내게 다른 사람을 도울 능력이 있다면 나는 그걸 하고 싶다. 나는 속이 좁은 사람이 아니야.

618자기가 무슨 예수 그리스도인 줄 알아! -루퍼스가 셰퍼드에게

631자기가 원하는 걸 다 갖고 있을 때 남의 물건을 훔치고 부수고 싶지는 않은 법이죠.

641 너는 뭐가 될 거니, 노턴? 셰퍼드가 예민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이가 두 눈에 열렬한 빛을 띠고 소리쳤다. "우주인요!"

653우리 세대의 유일한 미덕은 진실을 말하는 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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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5-10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방문합니다. 잘 지내시겠지요?
그런데 무슨 글이 이렇게 깁니까?
먼저 인사부터 하고 글을 읽고 가겠습니다. ㅋ

다크아이즈 2018-05-10 22:03   좋아요 0 | URL
와웅, 페크 언냐님~~~ 반갑습니다.
책 읽고 정리한 것, 시간 없다는 핑계로 미뤄둔 것
짬 내서 올려 보려구요.
정리한 것 올리는 것도 귀차니즘 때문에 쉽지 않아요.
새삼 꾸준한 페크 언냐가 대단하게 보입니다.

독서가 2018-06-14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약 감사드려요. 제라늄 너무 웃기고 슬프네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9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정명환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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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이라면 이쯤 되어야 한다. 말꼬리가 이어져 번잡하나, 솔직한 자기 성찰로 가득 찬 사르트르식 자서전. 성공한 이후의 주변 이야기가 없어 아쉬울 수도 있지만, 유소년 시절의 회고만으로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했으므로 사르트르의 한 생을 돌아보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웬만한 자서전을 만나더라도 한동안 사르트르의 말이 지나간 언덕을 대신하진 못할 것 같다. 모계 혈통으로 알베르트 슈바이처와 닿아 있음을 수다스레 설명하는 첫 부분부터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가계도를 그리면서 읽어야 할 정도로 구구절절 자신의 피 안에 슈바이처가 맴돌고 있음을 자랑(?)한다.

 

 

어린 사르트르를 구원해 준 것은 할아버지의 서재이다. 그에게 그곳은 엄숙한 신전이자 신기한 놀이터이다. 좌충우돌 독학으로 글을 깨친 사르트르에게 그곳은 신세계이자 인식의 기틀을 마련하는 운동장이었다

 

 

어린 시절 이야기라는 면에서는 재미를 선사하지만 사건 위주가 아니라 사유 위주의 자서라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사르트르 특유의 해학을 지나 은유와 모순 상징을 지날 때는 바짝 긴장하며 읽게 된다. 완벽하게 읽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라는 그의 철학적 명제를 그의 삶 속에서 확인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자신의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주변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인간 욕망의 삿됨을 스스로에게 질타하고 그것을 독자에게 전이시키는 마력을 맛보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유년의 연극적 삶의 우스꽝스러움을 고백함으로써 어른들의 부조리가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이양되는 과정 앞에서는 화끈거리는 공감의 여운을 애써 감춰야만 했다.

 

 

가족에 대한 냉정하고도 가차 없는 붓질. 왜곡과 기만과 과장으로 가득한 자서전에 신물이 난 독자들에게 그가 왜 사상가이고 문학가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무서울 정도의 자기 솔직함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성년 이후의 자서를 포함하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 이야기에 솔직할 수는 있어도 타인(교류한 숱한 명사들)과 연루된 이야기라면 천하의 사르트르도 부담을 느끼지 않았을까.

 

 

유소년 시절 이야기만으로도 사르트르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것은 안심이나, 자기애에서 나오는 지루한 묘사나 독특한 자신의 사상이 독자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분석적이긴 하나 인간미가 있는 스타일은 아니다. 빛나는 통찰이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고나 할까. 통찰에 적당함이란 건 있을 수 없지만 유쾌하고 발랄한 어떤 지점을 지나 뭐든 지나치면 무서워지는 느낌이랄까

 

 

1964년 그가 노벨 문학상에 거론될 때 가장 먼저 언급된 책이 바로 이 <<>>이었다나. 외견상 노벨상의 서양 편중과 작가의 독립성 침해, 문학의 제도권 편입 반대 등의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지만 그 속내는 사르트르만이 알 일. 어쨌든 노벨상을 거부한 이 최초의 사건으로 그의 명성과 지성은 한층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또한 사르트르가 원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읽기와 쓰기와 관련된 어린 사르트르의 좌충우돌 인간적인 매력과 그의 철학적, 문학적 씨앗의 시절을 알고 싶은 독자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약간 지루하면서도 어려운 감이 없지 않지만 생각보다 재미가 장착된 책.

    

<등장인물>

*알자스 초등 교사 출신 식료품상 (샤를, 오귀스트, 루이:목사, 루이 아들 알베르 슈바이체르)

**샤를 -교직, 책 내고 연설, 루이즈 기유맹과 결혼, 부인을 돌보지 않음. 장남 조르주, 에밀 독일어 선생(독신이면서 아버지 가장 닮음, 고독사), 둘째딸 안마리(미인이었지만 환경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음. 사르트르의 어머니가 됨)

*사르트르네 의사의 장남 장바티스트가 해군 장교 시절 안마리 슈바이체를 알게 되어 낳은 아이가 장폴 사르트르, 열병으로 죽음. 어머니인 안마리의 삼촌이 알베르 슈바이체르. 사르트르의 외할아버지 동생의 아들이 슈바이체르 - , 가족 관계 어렵다.)

*칼레마미 -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독일식으로 부르는 애칭

*뤼세트 모로 - 이웃 소녀

*마리 루이즈 - 내가 다닌 학원 선생이자 개인 교사

*시모노 씨 - 할아버지의 공저자

*디발도스 신부 - 할아버지가 존경한 신부

*베르나르 - 연극에서 나보다 주목 받은 친구, 내가 수염을 끌어당김.

*피카르 부인 - 이웃 노파, 문답지 수첩을 선물로 줌.

*(폴 이브) 니장 - 사르트르 고등사범 친구, 사팔뜨기, 악의 베나르 화신, 냉소적이고 경망한 객관적 관찰자, 철학자이자 소설가, 2차 대전 초기 전사

*올리베에 - 고등 초년 시절 담임, 깡마르고 대머리

*베르코 - 고등 시절 친구, 장폴처럼 과부의 아들, 형제애 느낌.

*베나르 - 고교 친구, 병아리 닮은 소년, 모범생, 반기숙생, 온순하고 예민함. 바느질하는 엄마, 가난, 연약

*뒤리 선생 - 고교 베나르와의 우정 시절 선생님

 

<스포일러성 줄거리>

1부 - 나는 해군 장교인 아버지와 아인슈타인 가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내가 한 살 때 열병으로 죽었다. 나는 엄마와 외가살이를 한다. 아버지와 추억이 없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덩치 큰 엄마는 누나 같다. 경제력 없는 엄마는 순종적이다. 나는 순한 아기 노릇을 잘했다. 훌륭한 행동으로만 남을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

 

네댓 살 때 눈병을 앓아 애꾸눈에 사시가 되었다. 그런 징조가 있기 전에 내 사진은 다소곳한 공경심에 위선적인 교만이 서려 있다. 자신의 값어치를 알고 있다는 듯. 할아버지는 죽음의 문턱에서 나에게 황홀경의 의미를 부여해 불안과 싸우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들들에게는 고약했지만 손자인 나에게는 사족을 못 썼다. 그것은 노인이 개에 환장하는 것과 같다.

 

나는 어른들 앞에서 사랑 받는 법을 알고 최대한 이용한다. 나는 나 자신을 베풀어 할아버지를 기쁘게 할 줄 안다. 배 고픈 것도 착한 것이 될 정도로 나 자신을 창조해나간다. 환심을 살 줄 안다. 엄마는 여전히 헌신적이지만 그것은 묵과되기 일쑤였다. 나는 권력보다는 박애와 진보를 실천하고 따르려했다.

 

충분한 칭찬을 해주지 않는 할머니 앞에서 나는 불안했다. 부정적인 루이즈는 가면극하는 내 속을 꿰뚫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내 편이 되어 할머니 루이즈를 무시했다. 알자스에 프로이센이 주둔하면서 나는 할아버지를 따라 파리로 이주한다. 파리에서 할아버지는 독일인을 상대로 프랑스어를 가르쳐 가족을 건사한다. 알자스를 못 찾아도 평화가 지속되어야 학원이 잘 되니 할아버지는 평화를 지지한다.

 

할아버지의 서재는 신전이었다. 거기서 기본 소양을 키웠다. 할아버지의 <독일어독본>이 판을 거듭했지만 출판사는 마땅한 보수를 쳐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나는 교직을 성직으로 문학을 수난으로 여기게 되었다. 엄마 안마리가 책을 읽어줬는데 나중에는 그 행위에 질투을 느끼고 스스로 책을 읽는 시늉을 한다. 그러다가 글을 깨친다. 어렵고 생경한 낱말들을 접하지만 그 뜻을 알기까지는 십 년 이상의 일이 된다. 나로서는 사물보다도 관념이 한결 현실적이었다. 왜냐하면 내게는 관념이 먼저 주어졌고, 그것도 사물로서 주어졌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서 나는 세계를 만났다. 이 관념론을 청산하는 데 30년이 걸렸다. 책은 내게 종교가 되었다.

 

할아버지는 존재가 분명한 작가들을 싫어했지만 나는 그 속에서 오히려 나의 다른 면을 발견하는 것 같아 신이 났다. 책으로 변신한 작가들은 죽은 게 아니었다. 코르네유, 플로베르, 위고, 샤토브리앙 등 내 놀이동무는 넘쳐났다. 동무들이 위대하지만 찬양하지는 않았다. 번역가로서 할아버지는 그에 맞게 작가들을 각색했다. 실리주의 할아버지가 보는 작가와 내가 보는 작가들의 세계는 달랐다. 나는 작가들에 대해서 비교적 솔직하다. 친구에게나 할 수 있는 나쁜 습관처럼 솔직한 견해를 밝힌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다. 이 때문에 남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영웅의 특권을 원래 상태로 내려놓는 일도 내 일이다.

 

어른의 책으로 어른 행세를 하지만 여전히 나는 어린애다. 나의 탐험과 사냥은 집안 연극의 일부였고 모두 그 연극을 좋아했다. 나는 날마다 신동이 되어 할아버지를 자극하는 존재가 되었다. 책으로서 어른들의 환심을 사는, 연극을 하는 아이는 이제 혼자 있어도 그것이 자연스런 일이 되었다. 나는 교양의 물 속에 흠뻑 젖게 되었다. 나는 내 나이에 맞는 진짜 독서(잡지, 모험소설 등)도 하게 되었다. 어머니만 그 사실을 알고 있고, 할아버지에게는 그거싱 떳떳한 독서가 아니었으므로 말하지 않는다. 이 사실이 들켜서 혼줄이 났지만,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아니었으므로 상심했지만 관용을 택했다. 나는 편히 이중생활을 할 수 있었고, 오늘날까지도 비트켄슈타인보다는 추리 소설을 더 즐겨 읽는다.

 

정규 학교에 편입하지만 철자법 사건으로 그곳에 다니지 않고 고독한 일상으로 되돌아 온다. 여전히 신동인 것은 변함이 없다. 개인교습을 받지만 선생은 나를 멍청한 아이로 여긴다. 공립초등학교에 들어가 할아버지 바짓바람으로 선생님께 편애를 받는다. 선생의 역한 냄새까지도 참을 만큼 나는 위선으로 단련되어 있다. 선생을 욕하는 담벼락의 낙서를 보고 충격을 먹을 만큼 나는 착한 척하는 것에 단련되어 있다. 나 역시 욕 당사자가 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8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대우 받지 못하는 학원 선생 마리루이즈에게 연민을 느낀다. 할아버지는 그녀가 못 생겨서 아무도 데려가지 않는다고 말해준다. 세상의 불공정과 무질서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한다.

 

나는 열 살이 될 때까지 한 늙은이와 두 여인 사이에 끼어 홀로 지냈다. 내가 확신하는 건 내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이었다. 연극하고 있다는 의식 없이 어찌 연극을 하겠는가. 내 존재의 결핍 때문에 나는 거짓 순진성을 내보이고 어른들에게 의지했고 내 스스로 속임수에 빠졌다. 나쁜 것은 어른들 역시 연극을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의심했다는 것. 어른들은 자기들이 하는 말과 내게 하는 말투가 달랐다. 어렴풋하나마 내 존재 이유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의기소침은 나를 추상적인 존재로 머물게 했다. 시모노 씨 같은 존재감을 보여줄 수 없다는 사실,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카톨릭 세례도 받는다. 이는 신앙이란 달콤한 프랑스 식 자유를 장식하기 위한 것이다. 집안으로서는 자유롭고 정상적인 인간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이지 신실한 믿음 때문에 세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모든 사람의 총애를 받는 것과 동시에 개개인에게는 따돌림을 받는 존재가 나였다. 일곱 살 내 나이에 기댈 곳이라고는 나 자신 밖에 없었다.

 

나는 어머니의 애정으로 여성화되고, 아버지가 없어 생기가 없으며, 할아버지의 총애 덕에 우쭐했다. 가족 간의 연극을 갈파할 만큼 나는 조금 커버렸다. 귀엽다고 쓰다듬고 만지는 것이 지겨운 나이가 되었다. 남의 환심을 사는 것보다 남을 위압하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칼레마미도 안마리도 내 환상극에서 배제되었다. “이 자리에 꼭 필요한 사람이 잇다. 그건 바로 사르트르다.”라고 생각할 만큼 나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게 된다. 동시에 여분의 존재라는 것도 자각한다. 동년배 아이들을 공원에서 만났을 때 그들은 내게 무관심했다. 그들의 눈을 통해 나는 신동도 해파리도 아니고 아무의 관심도 끌지 않는 일개 꼬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내 굴욕감을 할아버지는 새로운 속임수(글쓰기?)로 나를 끌어들인다.

 

2부 - 외할아버지 샤를 슈바이체르는 프랑스어 언어유희를 즐겼다. 아르카숑으로 잠시 떠나 있는 동안에도 할아버지와 나는 시를 주고 받았다. 어른인 척 흉내내는 시에서 공상과 모험의 산물인 산문으로 갈아탔다. 비록 표절 글이긴 하지만 여덟살 무렵에 벌써 작가로서의 영감을 맛보았다. 엄마와 지인들의 칭찬에 열심히 쓰는 척했다. 개수작 같은 글을 보고 할아버지는 실망한다. 내 창작 활동은 묵인되었을 뿐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았다. 그래도 끈질기게 썼다. 소설이 복잡해지면서 앞뒤 맞추려니 표절도 줄어들었다. 모험소설에 지나지 않지만 3인칭을 써가며 글이 원격화 되는 매혹을 맛보기도 했다.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는 냉혹한 이야기를 욕하면서도 흉내 냈다. 기괴망칙한 모험 소설들은 언제나 미완성이었다. 어린 시절의 그 기록들이 지금은 없어서 아깝기만 하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가짜 연기에서는 벗어나게 되었다. 나는 오직 글쓰기 위해서만 존재했다. 사적인 글쓰기 영역은 곧잘 어른들의 관심 때문에 방해를 받기도 한다. 직업 문인들에 대해 경멸적인 할아버지는 글 쓰는 나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나는 고등사범에 들어가 문학 교수가 되고 싶어진다. 할아버지는 타협안으로 밥 굶지 않게 교수를 하면서 글을 쓰라고 한다. 할아버지 속에는 나와 놀아주는 어릿광대와 권위를 누릴 줄 아는 카리스마 두 개의 세계가 있다.

 

글짓기에 명수는 없다. 입말도 글로 쓰면 외국어가 된다. 작가들 모두 그렇게 여길 것이다. 쓴다는 게 너무 중요해서 펜을 들기가 겁났다. 모범적이었던 복종할 데까지 복종하다 겨우 반항한 것에 불과한 글쓰기. 저격병 군인무리에게 하듯 사람들은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작가들은 인류를 위해 특출한 봉사를 해야 한다. 글쓰기 위해 태어난 나도 그래야 한다. 하지만 내 최초의 소설(구토)1935년 이후에나 나온다. 그만큼 나는 쓴다는 것의 불안에 시달린다.

 

할아버지는 전형적인 프티부르주아 지식인이었다.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계급이 무의미한 사회에서 작가를 실직자로 만들어버린 이 세상에 나는 갑갑증을 느낀다. 나는 사제의 마음으로 작가가 되려 한다. 이웃이나 신이 아닌 내 이웃을 살린다는 목적으로 신을 위해 쓰고 싶다. 내가 바란 건 독자가 아니라 나를 은인으로 받들어줄 사람들이다. 그때가 겨우 아홉 살이었다.

 

나는 매순간 죽음의 세계를 생각했으므로 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고등사범 시절 친구들이 그 문제에 괴로워할 때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였다. 책 만드는 데 필요한 만큼의 희망과 욕망을 지니고서 내 종말을 향해 조용히 걸어가고 있었다. 이미 죽어 있기에 나는 자신이 흡족하지 않았다. 그건 겸손한 게 아니라 간사한 것이었다. 아홉 살과 열 살 사이 나는 죽음 뒤의 인물이 될 정도로 조숙한 아이였다.

 

유명 작가가 되어 내 이름이 붙은 거리를 상상하면서도 나는 내 실체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었다. 나는 왕인 동시에 구두직공인 셈이었다. 19147월 독일과 전쟁이 났다. 전쟁이 내 독서를 망쳤다. 판매대의 책자들이 자취를 감춘 것. 글 쓰겠다는 열망도 수그러들었다. 그래서 1914년 전후가 어린 시절 중 가장 행복한 때였다.

 

엄마와 나는 정신연령이 비슷해 같이 붙어 다녔다. 엄마에게 말로 변신한 나의 세계를 읊어준다. 엄마와 밀착함으로써 엄마를 통해서 남성의 냄새를 맡고 남성을 두려워하는 것을 배웠다. 나는 엄마의 단단한 근위병이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원한을 누르고 내가 고등 초년부 통학생이 되도록 해주었다. 첫 작문 실력은 꼴찌였다. 개인 교습만 받던 나는 강단으 싸늘한 민주주의적 원칙에 어리둥절했다. 남과 비교 당하는 시스템에서 나의 우월성은 달아나버렸다. 나보다 더 잘 대답하고 더 빨리 대답하는 놈이 있었다. 너무나 사랑받으며 자란 나는 순진했기에 급우들에게 탄복하거나 부러워하지도 않았다. 고통 없는 추락이 온 셈이다. 할아버지는 눈살을 찌푸렸다. 엄마가 학교에 찾아간 이후로 선생님의 관심을 느꼈고, 5학급(2)이 되자 민주주의에 익숙해져 있었다.

 

학교 생활 때문에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교우 관계가 시작되자 글 쓸 욕망도 사라졌다. 따돌림 당하던 어린 시절에 비하면 친구들의 환대에 황송할 지경이었다. 집에서는 어른 흉내, 학교에서는 진짜 어른이 되어 놀았다. 가족 사이에 있던 광대 놀이를 청산하게 되었다. 나를 찾아가게 되니 시모노 씨도 부럽지 않게 되었다. 집안의 관심이 품위 있는 우정에 걸림돌이 되긴 했지만 그 둘을 잘 조율할 줄도 알았다. 통학생인 우리 우정에 진정한 방해꾼은 기숙생 무리들이었다. 그들은 불한당 무리였다. 얼마나 못 돼 먹었으면 가족조차 그들을 버렸을까.

 

조심스런 우정은 식기 쉬운 법이다. 방학이면 헤어지지만 나는 베르코를 좋아했다. 잘생긴 데다 온순했고 독서광이었다. 결핵환자는 그는 18살에 죽었다. 베나르는 모범생에 효자에다 연약했기 때문에 우리들의 존경을 받았다. 유리 상자 속의 그, 실체 없는 그를 우리는 멀리서 사랑했다. 전쟁에 차출 된 아비를 대신한 모성 사회의 덕성이 반영된 베나르는 겨울 끝에 죽었다. 우리의 덕성은 한 단계 높아졌다. 바느질품팔이 베나르 엄마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잃었다. 이 사건은 나에게 악의 존재, 신의 부재와 부조리를 엿보게 했다. 그렇지 않고야 어째서 베나르의 모습만 이렇게 괴롭도록 선명하게 남아 있을까. 뒤이은 니장은 베나르의 악의 화신 같은 친구였다. 냉소적이고 비판적 관찰자인 그는 베나르만큼 우수한 성적을 내지는 않았다. 글을 쓰고 독서를 하고 싶어했다. 맹목의 신뢰와 당치 않은 불신 사이에서 헤매다가 오랜 뒤 나는 그와 진정한 친구가 된다.

 

열 살 때, 방문에 부딪혀 이가 부러졌는데 웃을 수 있었던 것은 종말의 질서를 미리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죽음을 통해 내 삶을 바라보았다. 최악이 최선의 조건이라고 여겼고, 잘못조차 유익하다고 생각했으므로 결국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것과 같았다. 겸손했지만 자신만만한 아이였다. 내 실패가 사후 승리의 조건이라 믿었다.

 

나는 내 계급과 내 세대의 신화 즉 기득권을 이용하고 과거의 영광이 현재의 풍요라는 신화를 따르는 척했지만 혼자 있을 때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 자신이 나의 잿더미에서 소생하면서 부단히 다시 시작하는 창조를 통해서 나의 기억을 무로부터 건져냈다. 내 영혼의 혁명을 꿈꿨다. 과거와 현재의 동거를 바라지 않는 나는 내 유년기도 지웠다. 그래서 이 책을 쓸 즈음에는 그 흔적을 해독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글을 쓴다는 것은 죽음에게, 가면을 쓴 종교에게 내 인생을 우연에서 구출해 달라고 부탁하는 일이었다. 30세에 <구토>를 썼다. 내 종족의 정당화될 수 없는 씁쓸한 존재를 묘사했고, 나 자신의 존재는 시비의 대상에서 제외해버렸다. 나는 로캉댕이었다. 내 삶의 곡절을 가차 없이 드러냈다. 나는 우리들의 불행한 조건에 관해 신나게 썼다. 못생겼다는 자의식은 나의 부정적 성분이었다. 무신론은 가혹하지만 끝까지 밀고 간 작업이라 생각한다.

 

한 줄이라도 쓰지 않은 날이 없도다. 이것이 내 습성이요 본업이다. 어린 시절의 특징은 50대인 내게 그대로 남아 있다가 기회를 노리고 고개를 쳐든다. 현재 나는 내 명성이 짜증스럽다. 살아 있는 한 그 명성은 영광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신을 믿지도 않고, 갈피를 잡을 수 없어 가끔 지는 자가 이기는 자 되는 놀이를 한다. 할머니의 말이 생각난다. 인간들이여, 가볍게 스쳐 가라, 힘껏 딛지 말아라. 나는 내가 엘리트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걸 자부한다. 노력과 믿음으로 나 자신을 구해왔다. 불가능한 구원만 버린다면 사람마다 가치가 있고 어느 누구보다도 잘나지 않은 한 진정한 인간이다.

 

 

14(샤를 아내 루이즈)활발하고 얄밉고 쌀쌀한 그녀의 사고방식은 올곧고도 짓궂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남편의 생각이 선량하면서도 삐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거짓말쟁이이면서도 어수룩한 까닭에 그녀는 만사를 의심했다. --그녀는 점잖은 것과 연극을 다 같이 싫어하게 되었다. 촌스러운 정신주의자들의 집안에 잘못 끼어든 이 예민한 현실주의자는 반발심이 나서 볼테르를 읽어 본 적도 없으면서 볼테르주의자(회의주의자)로 행세했다.


14(루이즈)"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싶어하도록 만들어야 한단다."하고 그녀는 늘 말했다. 과연 처음에는 그녀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지만, 그 수가 차차 줄어들고 마침내는 만나 볼 수가 없어서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15(외설 소설 읽는 루이즈)"참 대담하군. 잘도 썼지. 인간들이여, 가볍게 스쳐 가라. 힘껏 딛지 말아라."하며 새침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17(루이즈 딸 안마리에 대해) 검소하고 자존심이 강한 이 중산층 인간들은 아름다움이란 자기들보다 돈이 많은 사람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면 후작 부인이나 창부들에 대해서만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18안마리는 그를 정성껏 돌보았지만 사랑한다는 주책을 부리지는 않았다. 루이즈가 부부 생활에 대한 혐오감을 미리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어머니는 자기 어머니를 좇아 쾌락보다는 의무를 택했다.

19그녀는 결혼 전이나 후나 나의 아버지라는 사람을 잘 몰랐고, 때로는 이 낯선 사나이가 왜 하필이면 자기의 품 안에서 죽으려고 온 것인지 기구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19어머니는 마음으로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던 아들을 되찾은 것이 기뻤지만, 나는 본 일도 없는 한 여자의 무릎 위에서 의식을 회복했으니 말이다.

20자기의 짐이 가벼워지는 것은 좋았지만, 동시에 특권을 잃게 되는 것이 못마땅했다. - 루이즈(사르트르 외할머니)


21얌전히 앉아만 있었으면 귀찮은 식객이라고 욕을 먹었을 것이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일을 하니 이번에는 집안을 휘어잡으려한다는 의심을 사게 되었다. 그러니 첫 번째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온갖 용기를 내야했고 두 번째 비난을 면하기 위해서는 겸손할 대로 겸손해야만 했다.

21~22아버지의 죽음은 내 생애의 큰 사건이었다. 그것은 어머니를 사슬로 묶고 내게는 자유를 주었다. 세상에 훌륭한 아버지란 있을 수 없다. 남자들이 나쁜 탓이 아니라 부자 간의 관계란 원래 고약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뭐랄 사람은 없다. 그러나 아이를 소유하겠다니 그런 당치 않은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다행히도 그는 일찍 죽었다.

22사람은 그냥 죽기만 해서는 안 되며 알맞게 죽어야 한다. 만일 아버지가 더 늦게 세상을 떠났더라면 나는 죄의식을 느꼈으리라. 철이 든 고아는 부모의 죽음을 제 잘못으로 돌려 스스로를 탓하는 법이다. --그런데 나는 무척 기뻤다. 남들이 나의 처지가 불쌍하다면서 나를 존중하고 떠받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아버지는 자신의 잘못으로 죽었다.

30내게는 매우 불완전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밖에는 없었다. 초자아가 없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공격적인 성격도 없었다. 어머니는 애초부터 내 것이었으며, 그녀를 담담하게 독점하는 것을 누구 하나 시비하지 않았다. 나는 폭력도 증오도 모르고 질투라는 이름의 그 괴로운 수련을 겪지도 않았다.

32나는 악이 발붙이기에는 나쁜 땅이다. 착한 연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애써 노력하거나 스스로를 억제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새로운 수작을 꾸미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34나는 알맞게 죽어 준 아버지 때문에 자유를 얻었고, 줄곧 죽기를 기다리던 할아버지 때문에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허나 그것은 별수 없는 노릇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무당들은 모두가 죽은 여자들이다. 어린애도 모두가 죽은 자의 거울이다.

35세대의 싸움에서 흔히 어린애와 노인은 한패가 되는 법이다. 어린애가 신탁을 내리면 노인이 그것을 푼다. 자연은 말을 하고 경험은 통역을 하는 것이다. --어린애가 없으면 개를 얻으면 된다. --어린애와 짐승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은 인간을 배반하면서 사랑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나는 전도유망한 강아지였다.

44사랑과 미움은 동전의 앞뒤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사랑한 일이 없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워하는 동시에 환심을 살 수는 없는 법이니까. 또한 환심을 사려는 동시에 사랑할 수도 없는 법이니까.


84이를테면 나는 난잡한 짓을 하고 난봉을 부리고 사창가에서 바캉스를 보냈지만, 나의 진리가 어디까지나 성전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 허드레 책을 읽으면서 하는 비유

88나는 어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억지로 느껴 보려는 순수하지 못한 기쁨을 더 값진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에게서 풍기는 혐오감은 그들의 위신의 일부였다. 나는 불쾌감을 진지함과 혼동하고 있었다. 나는 위군자였다. 바로 선생이 내게로 몸을 기울일 때면, 그의 입김이 역하고도 그윽해서 나는 그의 덕성에서 풍겨 나오는 그 악취를 열심히 들이마셨다.

92~93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느끼기를 멈출 수 없는 존재의 결핍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른들에게 의지하고 그들이 내 능력을 보장해 주기를 바랐는데, 그럼으로써ㅗ 영락없이 속임수로 빠져 든 것이었다. 남의 환심을 사야만 했던 나는 아양을 떨었지만 그런 아양은 당장에 빛이 바래 버렸다.


94(에밀 아저씨는) 집안에서 오직 나만이 결백하고, 오직 나만이 일부러 그를 욕보이거나 그를 거짓 소문으로 중상하지 않았다고 떠들어 대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큰 힘을 가지고 있고 그 우울한 사나이의 가슴에 사랑의 불길을 지폈다는 사실에 좀 거북한 느낌이 들어서 방긋이 웃기만 했다.

95한마디로 내 역할은 어른들의 상대역에 불과했다. 할아버지는 자기의 죽음을 달래기 위해서 내 비위를 맞추었다. 그리고 내가 피우는 소란은 할머니에게는 그녀의 심술의 구실이 되었고 어머니에게는 죽어지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다.

120모든 사람의 총애를 받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는 따돌림을 당한 나는 이를테면 팔다 남은 물건이었다. 내 나이 일곱 살에 기댈 곳이라고는 나 자신밖에 없었다.


145나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둘 다 거짓이었다. 나는 공적으로는 사기꾼이었다. 그 유명한 샤를 슈바이체르의 널리 알려진 손자 노릇을 했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는 상상적 불만 속으로 빠져 들었다. 나는 가짜 영광을 버리고 익명의 가짜 용사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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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8-05-03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크 님 추천이니 함 읽어봐야겠네요..사르트르 읽으면 스르르르 잠이 와서리..ㅎㅎㅎ

다크아이즈 2018-05-03 13:26   좋아요 0 | URL
곰발님, 절 믿지 마세요 읽은 책은 웬만하면 별을 다섯 개 쏘거든요ㅠ
근데 은근 자신에게 솔직한 걸로는 곰발님과 사르트르가 닮았더라고요~

라로 2018-05-03 13:53   좋아요 0 | URL
저는 사르르르 잠이 와요. ㅎㅎㅎㅎ
 

 

 

 

 

 

 

 

 

 

 

 

 

 

  언제부터였을까. <<풋내기들>><<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두 작품을 꼭 비교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대성당>> 소설집에 수록된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읽고 충격을 먹은 뒤부터였나 보다. <<대성당>>을 읽기 전 <<사랑을 말할 때~>>를 먼저 만났다. 좋은 작품집이라고 권하는 사람들의 말을 온전히 믿어서는 안 되었다. <<사랑을 말할 때~>>는 대체로 요령부득이었다. 몇 번이나 책을 던지고 싶었다. <목욕>이란 작품의 원본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이란 사실을 알고 당황했다. 내가 보기에 두 작품은 다른 느낌이었다.

 

  편집자 고든 리시한테 농락당한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속울음이 어땠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았다. 허울 좋은 미니멀리즘의 성에 갇힌 카버의 소설이 그의 사후에라도 날개를 달 수 있게 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번역도 김우열이 정영문보다 훨씬 깔끔하다. 하기야 원본의 반 이상을 잘라낸 것도 있고, 결말마저 원작가인 카버와 다르게 한 것도 있는데 후자더러 잘 된 번역이기를 바라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알려졌다시피 <<풋내기들>>은 레이먼드 카버의 두 번째 소설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의 원본이다. 편집자 고든 리시는 카버의 원고를 대수리했다. 일부 작품은 제목과 등장인물의 이름을 바꾸기도 하고, 거의 모든 작품의 결말을 그의 입맛대로 잘라내거나 바꿨다. 누더기가 된 원고를 받고 당황했을 카버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고든 리시의 의도대로 출간 되었다. 아마 판매에도 성공했을 듯. 카버는 언젠가 원본 그대로 출간할 수 있기를 바랐다. 2009, 카버의 아내 테스 겔러거가 고인이 된 남편 대신 <<풋내기들>>을 펴냈다.

 

   주인공들은 대체로 한때의 카버를 닮은 듯한 절망적인 서민들. 알코올중독과 가정불화와 장애를 지닌 사람들. 단순한 문장, 섬세한 감성, 순간 포착, 미세하게 변화하는 인물들, 술 관련, 파산 관련 내용이 주를 이룬다. ‘미니멀리즘이라 표현되는 카버 소설의 단순한 전개, 담백한 문체, 아리까리한(?) 결말 등은 카버의 의지가 아니라 편집자의 장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두 작품을 비교할수록 확실해진다. 편집자의 역할이 고든 리시처럼이 되어도 좋다면 난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다. 후자의 책을 출간 당시 카버가 겪었을 심리적 혼란이 백 번 이해된다. 세 번째 소설집 <<대성당>>을 작업하면서 고든 리시를 가리켜 최고의 편집자라고 추켜세웠던 건 돈 맛이 작가정신에 녹아들었기 때문인 것은 아닌지

 

   독자로서 보기에 고든 리시는 큰 실수를 한 것 같다. 지나친 생략으로 작가 감성과 작가 의식을 무시했다. 두 책 내용을 비교해야 레이먼드 카버의 상실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시도해본다. 편집자본인 후자를 읽고 엄지척을 하는 상황에 대해서 과연 취향 존중이라며 쉽게 인정해도 좋을 것인지. (이하 스포일러)

 

1.춤 좀 추지 그래? - 집밖에 중고 물건을 내놓은 남자에게 소년과 소녀는 관심을 보였고, 뭔가 절박해 보이는 남자는 그들과 위스키를 마시며 춤을 권하고 그들은 함께 남자집 마당에서 춤을 춘다. 남자와 춤을 추고 레코드 판과 전축을 남자에게서 받은 소녀는 쓰레기 같은 이것들에 대해 모든이에게 이야기한다. 이야기 속엔 그 이상의 무엇이 있고 그걸 꺼내려고 애쓰다가 그녀는 그런 노력을 관둔다. (인칭 통일 되지 않은 영어본 또는 번역, 생뚱맞고 어리둥절한 결말)

 

--> 춤추지 않을래? 남자 잭과 여자애 칼라는 스무 살, 남자 이름은 맥스, <25잭이랑 난 그 남자 침대에서 자버렸다니까. 잭이 취하는 바람에 아침에 트레일러를 빌려야 했어. 그 남자 물건 다 옮기려구 말야. 나 자자가 중간에 한 번 깼거든. 근데 우리한테 담요를 덮어주고 있는 거야. 그 남자가 말이야. 이 담요야 만져봐. 여자애는 계속 이야기했다. 모두에게 이야기했다. 뭔가 더 있었다는 건 여자애도 알았지만,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얼마 후 여자애는 이에 대해 더는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 이 문장을 빼먹고 애매모호하게 처리. 어리둥절하게 만들어서 독자들의 (짜증나는) 상상력을 기대하게 만듦.

 

2.뷰파인더 - 양 손이 없어 갈고리 손을 한 남자가 나의 원경이 비치는 집 사진을 폴라로이드로 찍어주고 사라고 말한다. 서로 외로운 처지인 나는 호기심 반으로 그를 불러들여 여러 장의 사진을 찍는다. 아이 셋이 보도 위 갓돌 위에 페인트로 주소를 써주고 일 달러를 달라고 했는데 그것과 연관이 있느냐고 묻자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애들 때문에 자신이 이렇게 되었다고 남자는 말한다. 지붕 굴뚝 위 망으로 아이들이 던진 돌을 주워 멀리 던지는 장면을 찍어 달라고 하자 남자는 움직이는 피사체는 찍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도 나는 다시 돌을 집어 든다.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안 됨. 아내나 아이들이 곁을 떠난 것에 대한 트라우마?)

 

--> 뷰파인더 나의 가족도 날 떠났다는 것을 사진사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나중에 나도 가족이 훌쩍 떠난 것을 인정한다. 아이 엄마와 아이들이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사진사가 말한다. 사진사는 나의 아내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여자 때문에 모든 게 무너지고 다리까지 잃었다는 것을 나는 말한다. 그냥 망이 아니라 철망이다. 돌멩이를 집어 들고 그를 향해 웃는다. 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요! 내가 외쳤다.

30이런 비극이 담긴 사진을 내가 뭣하러 사겠는가? - 복선이 되는 문장

(세상에 이 멋진 단편을 고든 리사가 완전 망쳐 놨다! 이해도 잘 되고 교감도 되는데.)

 

3.미스터 커피와 수리공 양반 - 알콜 중독 보고서로 읽힘.

어머니집에 들렀는데 예순 다섯의 그녀는 누군가와 키스를 하고 있다.

어머니가 바람 피우던 그 무렵 아내도 애 여섯이나 딸린 로스라는 수리공 남자와 바람이 났다. 전 부인이 로스를 감옥에 처넣었을 때 보석금 내 준 것도 아내라는 사실을 내 딸을 통해 들었다. 딸에게 갈 돈이 줄어든 것에 대해 딸은 서운한 감정이 있고 그것 때문에 딸은 로스의 감시 대상이 되지만 사이가 나쁜 건 아니다. 아내는 로스 집에서 요리하고 청소도 했지만 아이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삼년 전 일이다. 가끔 아내가 그를 정말 사랑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점성학과 오로라와 역경 같은 것에 관심이 있을 정도로 명민하고 재미있었으므로.

아버지는 팔 년 전 마흔 넷에 술에 취해 잠자다 죽었다.(말이 안 되는 번역?) 어머니와는 한번도 밤인사를 한 적이 없다. 머나가 집으로 돌아온 날 밤, 나는 잠시 끌어안고 있은 뒤 저녁 식사를 차리라고 말한다. 머나는 손 씻으라고 대꾸한다. (이게 뭐야? 아버지의 무관심으로 바람 피우는 엄마, 그를 통해 바람 난 아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제목은 뭐지?)

 

--> 다들 어디 있지? 로스에게 총을 쏜 것은 첫째 부인, 감옥 보낸 것은 둘째 부인으로 나오지만 원본에서는 둘 다 첫부인(부양비를 안 낸 걸로 감옥 가게 함. 편집본은 왜 감옥 보냈는지 안 나옴.), 항공우즈공학 분야에서 일한 장면 편집본에서는 안 나옴. 다들 술 때문에 일이 벌어진 일과 인연인데 편집본에서는 그것이 덜 느껴짐. 아내가 나보다는 로스가 술독에서 빠져나올 가망성이 있는 것을 보고 도우려고 그집을 드나듬. 아이들에 대한 내 광기가 편집본에서 빠져 있음. 성장한 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술버릇에 대해 트라우마를 겪고 있음. 아내는 교사로 일하고 아들과 사이가 좋지 않음.

한때 나를 사랑한 적이 있음을 아내가 고백함. 아들 마이크가 군대에 가서 인간이 되어 오기를 바람. 스물두 살의 베벌리는 로스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로스는 신시아를 사랑한다고 안심 시킴. 취한 상태에서. 항공우주국에 다니면서 로스는 술독에 빠져서 잘림. 아버지는 원본에서는 쉰 넷으로 합리적인? 나이로 나옴. 내가 내 친구 아내와 좋은 감정으로 전화 통화하고 있는 것은 빠져 있음. 현재 지속 되는 상태.(편집본에서는 화해 모드)

55다들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방금 집에 전화했는데. -나의 현재 심리 상태

 

4.정자 - 모텔을 운영하는 나는 동료이자 아내인 홀리와 살면서 호텔 청소원인 후아니타와 바람이 났다. 홀리는 심적으로 괴로워한다. 우리는 술 없이는 안 되고, 모텔은 파산 직전이다. 한때 서로가 애틋했던 시절 외곽의 농장 뒤쪽에 있던 정자의 추억에 잠긴다. 우리 모텔도 그런 추억의 장소가 되기를 나는 바란다. 나는 홀 리가 무슨 조짐을 보이기를 기도한다.(?) (무슨 결말인지?)

--> 정자 후아니타 동료 청소원 여자가 아내에게 내가 바람 피운 것을 고자질하는 장면은 안 나옴. 지속되는 나의 바람으로 아내는 술독에 빠지게 됨. 마지막 장면 손님을 받지 않고 둘만의 화해하는 시간을 갖는 것일까. 아니면 고개를 흔들고 손님을 받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반대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정자, 라는 의미도 긍정 부정 다 활용할 수 있겠다.

 

(47)하지만 홀리는 술잔을 쥔 채로 침대 위에 그냥 앉아 있다. 나는 그녀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77하지만 홀리는 빈 잔을 들고 침대에 앉아서 그저 날 바라볼 뿐이다. 그러더니 고개를 흔든다. 홀리는 알고 있다.

 

5.나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볼 수 있었다.

기척에 나는 잠이 깨어 밖으로 나간다. 이웃 샘이 민달팽이를 잡으러 입에 (담배 같은) 미끼를 물고 환한 달빛 아래를 누빈다. 달빛 아래 모든 것이 환하다. 샘은 심장마비로 아내를 잃었다. 샘과 남편은 술을 마시다가 사소한 말다툼 끝에 의절하고 샘은 울타리를 두 겹으로 쳤다. 하지만 화해하고 싶어 한다. 샘과 헤어져 잠들어 있는 남편 곁으로 온다. 그의 가슴 속에 뭔가 맺혀서 흐르고 있다. 그걸 보니 샘이 가루?를 뿌려대던 그것들이 생각난다. 나는 서둘러 자야겠다는 생각 말곤 없다. (무슨 이야기? 가루의 정체는? 화해하고 싶지만 가까울 수 없는 관계의 회한?)

 

--> 뭐 좀 볼래? 편집본에는 샘에게 히피 딸이 있다는 사실. 새로 결혼한 여자에게서 낳은 아이가 알비노라는 사실. 아기가 내 아이가 아니라는 안도감. 나와 남편은 자발적 의사에 의해 아이가 없다. 아기 이후 샘은 급하고 약해져서 남편과 다투게 되고 울타리 치고 말을 섞지 않게 됨. 달팽이들이 마당의 꽃들을 아작낸다는 사실. 유리병에 넣어 숙성시켜 비료로 쓴다는 사실. 샘이 새 아내 로리가 아니었다면 첫아내 밀 리가 있는 곳이 어디든 함께 있으리라는 사실. 그곳이 실은 아무 데도 없다는 사실. 세제 깡통에서 달팽이에게 (가루)를 뿌리고 또 뿌린다는 사실. 샘이 술을 많이 줄였다는 사실. 꿈꿔왔던 과거와 현재 삶이 달라졌다는 사실. 남편 클리프를 사랑한다는 사실과 맘에 있던 모든 얘기를 자고 있는 남편에게 한다는 사실과 아무 데도 다다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것을 인정해야 할 때라는 사실. 말하고 나니 기분이 나아지고 클리프 숨소리는 거칠었지만 왠지 잠들 수 있을 거라는 사실. (두 집 사이의 앙금 같은 것을 은유하는 달팽이. 이 멋진 단편을 망쳐 놨어. 개연성을 무시하는 미니멀리즘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83사냥하는 중이에요. 뭐 좀 볼래요? 이리 와봐요. 낸시. 내가 뭐 보여줄게요.

88죽음은 아무 데도 없는 거예요, 낸시.

 

6.봉지 - 업무 차 잠깐 짬을 내 공항 로비에서 나는 이혼한 아버지를 만난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줄 과자 등을 담은 봉지를 들고 있다. 아버지는 바람 피운 이야기를 주절댄다. 어머니 거래처 여자(여자는 엄마가 주문한 물건을 봉지에 담아왔다.)와 바람을 피우다 그의 남편에게 들켜 도망친 적이 있다. 비행기 안에서 아버지의 봉지를 챙기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아버지를 본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고 그 봉지는 내 아이들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것이 되었다. (? 아이들이 일 년 새 다 커버려서? 아이들에게도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은 느낌.)

 

--> 외도 집에 배달온 여자를 강간성 폭행을 했다는 사실. 아버지의 외도 이야기를 나는 늙은 망나니의 미친 짓으로 생각하고 있음. 이혼의 직접적 계기가 바람 피운 사실이라는 것. 상대녀의 남편이 무너져 칼로 자살을 했다는 것. 그때 아버지 일부는 죽음이나 마찬가지라는 것. 아버지는 양심에 짐을 지고 있다는 사실. 아버지가 죽은 게 아니라 아버지 주소를 잃어버렸다는 사실. 마지막 내 아이 부분은 언급되지도 않는다는 사실.

 

124세상 누구도,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아요. 어서 기운 되찾으시고 걱정하지 마세요.

124하지만 내게 말해줬으면 한다. 나 같은 사람에게 아버지는 뭘 기대한 걸까?

 

7.목욕 - 어머니는 아들 생일 케이크를 주문해두었다. 생일날 아침 아들은 교통 사고가 나고 입원한다. 생사를 오가는 동안 남편과 아내는 번갈아 집에 목욕하러 간다. 남편에게서 낯선 전화가 오지만 남편은 무시한다. 여자가 집에 목욕하러 들르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데 넬슨, 하고 분위가 심상찮은 광경이 목격된다. (이 부분이 인칭이나 번역이 일관되지 않고 매끄럽지 않아 이해가 안 됨, 원작을 봐야 이해가 되는 구조.) 집에 오니 어머니를 찾는 낯선 벨이 울린다. 스코티(아들) 관련 전화라고만 목소리가 말한다. (이 장면만으로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음. 아이의 죽음을 예견하는가 싶지만 원작을 보면 그게 아니라는 사실)

 

-->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케이크를 주문한 사실을 남편은 모르고 있음. 흑인 가족 넬슨 이야기도 흐릿하게 나와 알 수 이해 불가능. 스코티가 행방불명된 적 있던 사건은 사라지고 없음. 넬슨이 죽었다는 사실. 스코티가 죽었다는 사실. 빵집주인은 아이 없이 긴 세월을 지냈다는 사실. 빵집 주인의 중년 회의와 무력감. 츤데레 빵집 주인

166스코티 말입니다. 준비 다 해놨는데요. 남자 목소리가 말했다. 스코티는 잊어버리셨나요? (왜 확실하게 말하지 않아서 이런 오해를 하게 만드나. 안타까워요.)

166그 개자식. 죽여버리고 싶어. 총으로 쏴서 뒈져버리는 꼴을 보고 싶어.

173손님이 전화로 이야기한 것 같은 사악한 사람은 아닙니다. 한마디로 내가 더 이상 뭘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걸, 그런 느낌이라는 걸 알아주세요. 부탁이니 두 분에게 날 좀 용서해줄 마음을 내달라고 해도 될까요? 빵집 안이 따뜻해서 하워드는 일어나 코트를 벗었다. --갓 구운 롤빵이라도 좀 드셨으면 싶은데. 드시고 살아내셔야죠. 이럴 땐 먹는 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거든요. 빵집 주인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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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4-26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크아이즈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셨지요.
그 사이 겨울이 지나가고 봄도 많이 지나가고 있어요.
같은 책이지만, 번역에 따라서 느낌이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가끔은 같은 원서의 여러 번역본을 읽어보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이 책은 김우열 번역이 좋은 모양이네요.
편안한 밤 되세요.^^


다크아이즈 2018-04-26 23:31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실시간으로 덧글을 주시네요.
서니데이님의 바지런함을 십분의 일만 닮았어도
제 삶이 달라졌을 거예요.
왜 이리 피곤하고 게으른 나날인지요.

이 책은 단순 번역 비교가 아니라 원작자 대 편집자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서니데이님도 편히 주무세요.

서니데이 2018-04-27 00:11   좋아요 0 | URL
앗, 저 요즘 너무 게을러서 게으름 줄이기 하고 있어요.
그런데 2주동안 게으름이 더 커졌어요.^^;
다크아이즈님, 좋은 꿈 꾸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