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사랑한 수식 - 인간의 사고가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언어
다카미즈 유이치 지음, 최지영 옮김, 지웅배(우주먼지) 감수 / 지와인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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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에서의 수식은 수 천년을 담아놓은 한 편의 시와 같다.❗️



p.11

과학에서 수식은 곧 언어이며, 그 언어는 시에 가깝다. 수식과 시는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둘 다 짧다. 하지만 그 짧음은 결코 단순함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함축된 기호와 표현 뒤에는 방대한 사유와 시간이 응축되어 있다. 시는 가능한 한 모든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최소한의 언어로 감정과 세계룰 담아내려는 고도의 노력의 산물이다. 수식 또한 그렇다. 단 몇 줄의 수식 속에 수십 년, 아니 수천 년에 걸친 천문학적 관측과 물리학적 직관, 철학적 사유가 녹아든다.


*


수식을 시에 비유한 문장을 읽는 순간, 과학에서 수식이 지닌 의미가 단숨에 와닿았다. 군더더기 없이, 최소한의 언어로 감정과 세계를 담아내는 ‘시’처럼, 수식 또한 가장 응축된 진실의 언어라는 것이다. 책에는 아인슈타인, 프리드만, 뉴턴, 푸아송 등 위대한 과학자들의 수식, 그리고 그 수식에 얽힌 이야기가 담겨있다.


예컨대,


** 영화 인터스텔라의 장면들이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실제 물리 법칙을 바탕으로 계산된 장면이었다는 사실은 과학의 경이로움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데, 실제로 몇 년 뒤 공개된 블랙홀 사진과 영화 속 장면이 놀라울 정도로 유사했다고 한다.


**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요하네스 케플러는 지동설이 이단으로 취급되던 시대 분위기 탓에, 법칙을 발표한 후 어머니가 마녀 재판에 불려 나가는 일을 겪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의 궁정에 고용된 점성술사였다.


이처럼 물리학과 수식의 관계, 그 안에 담긴 논리와 우주의 질서, 그리고 아름다움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본질만을 담아낸 수식이야말로 우주를 가장 깊이 이해하는 시적인 언어임을 깨닫게 된다.

물리학의 경이로움과 수식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경험하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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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너머 예술 - 창을 품은 그림, 나를 비춘 풍경에 대하여
박소현 지음 / 문예춘추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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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작가들의 낯선 작품, 낯선 작가들의 새로운 시선.

신선한 큐레이션으로 그림을 바라보는 눈을 확장하고 싶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

작가의 설명과 함께 그림을 들여다보는 여정이 또 다른 예술이 된다.❗️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과 그들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창문’이라는 제한적인 주제로 이렇게나 다채롭게 접근할 수 있다니.


샤갈, 뭉크, 르네 마그리트, 살바도르 달리, 앙리 마티스, 데이비드 호크니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들뿐 아니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남아 있는 정보는 많지 않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그리고 미스터리한 분위기의 작품을 남긴 야곱 브렐까지. 다양한 시대와 화풍을 넘나드는 작가들의 구성이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15년간 MBC 아나운서로 활동했던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 또한 깊은 여운을 남긴다. 방송인으로 지내던 시절, 마음이 버거웠던 날들. 암 투병을 겪으며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온몸으로 깨달았던 순간들. 무엇보다도, 어린 시절 피아노를 사랑하던 소녀가 퇴사 후 미술에 매료되어 이제는 그 예술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참 인상적이었다.


전시를 보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수고로움도 감수하는 것은 물론, 방대한 미술사 지식을 흡수하고, 이를 섬세한 시선으로 책에 녹여 내는 통찰력까지. 읽는 내내 음악과 미술, 두 세계 모두에 능하고, 그 안에 뜨거운 열정까지 품고 있는 저자의 모습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그런 예술적 감수성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저자의 삼촌은 아시아 작가 최초로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초청받아, 한국관이 생기기 전부터 그곳에서 작품을 전시했던 김관수 작가였다. 어린 시절, 삼촌과 함께한 따뜻한 기억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삼촌의 창작 활동을 묘사한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


p 5-6

예술가들은 자신이 보여 주고 싶은 세상으로 우리를 초대해왔다. 내 앞에 쌓인 초대장을 만지작거리기만 하다가 언제부터인가 하나하나 열어 보게 되었다. 어디를 묘사한 픙경인지, 왜 이런 색으로 표현했는지 직관적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답을 찾다 보니, 그림 너머의 이야기도 궁금해졌다.
... 사각형 틀 안에 세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림은 창문과 닮았다. 창문 역시 우리를 더 넓은 세상으로 초대한다. ...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실내의 풍경과 달리 창 너머의 세상은 낭만적인 우주와 초현실적인 꿈속을 넘나드는 무한한 공간을 제공한다. 그런 창문을 품은 예술은 어떨까.


*


"나는 창문을 열어 두기만 했다. 그러면 그녀가 하늘의 푸른 공기, 사랑, 꽃과 함께 스며들어 왔다." - 마르크 샤갈 -


*


p.61

경계에 서 있지 않고서는 그것이 경계였는지 모른다. 
... 일상의 소중함에 더 감사하는 것, 그것은 경계에 위태롭게 서 있어 본 사람만이 가지는 특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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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푹한
윤해서 지음 / 시간의흐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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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은 듯 조용한 분위기 속에 묵직한 힘을 지닌 소설.

때로는 난해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의미가 담겨 있는 듯했다.

전체적으로는 무채색의 결을 띠면서도, 순간순간 찬란한 색채가 비집고 나와 
읽는 내내 고요하면서도 감각적인 울림이 이어졌다.

작가의 문체와 책이 품고 있는 색채가 오래도록 잔상을 남긴다.


▪︎


p.86

두 사람은 입학 첫 해, 4월 7일, 배터리 켐블(Battery Kemble) 공원에서 처음 만났다. 워싱턴을 떠날 때까지 둘은 매일 배터리 켐블 공원에 갔다.

움푹한 공간.

이영은 켐블 공원을 한국어로 그렇게 불렀다.
오늘의 움푹함이 필요해.
...
움푹한 곳에서 소리를 지르면 메아리가 돌아오잖아.
소리가 빠져나가지 않고. 마음이 머물 공간이 필요했어. 계속 흩어지니까.


*


p.103-104

아는 식물의 이름이 늘어나는 것은 세계가 갑자기 가깝게 다가오는 일이다.
 길에 아는 이름들이 서 있다.
 비슷비슷한 초록이 이름으로 구분되기 시작하는 순간, 모두 다른 잎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가지가 뻗어가는 방식, 잎이 돋아나는 모양, 잎맥의 생김새, 꽃들의 움직임.
 작은 잎들이 피고 지는 것을 눈여겨보게 되면 세상은 갑자기 다정해진다.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에 마음을 빼앗긴다.
 얇고 여린 잎들이 짙은 초록으로 두꺼워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에 봄과 초여름을 온통 쏟게 된다.
 누군가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거리를 지날 때마다 느낀다.

곁이 생긴 기분.


*


p.137

이영은 아직 많은 말의 뜻을 알지 못했다.
뜻은 잃은 뒤에 도착한다.


*


p.182-183

그런데 모든 숲은 숲마다 소리가 다 다릅니다. 전나무 숲에서 나는 소리랑 대나무 숲, 자작나무 숲에서 나는 소리는 모두 다르죠. 바람이 통과하는 나뭇잎이 다르니까요. 숲들은 어떤 나무들로 이루어져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음색, 다른 음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
대나무나 유리로 만든 거대한 풍경을 공원에 설치할 생각이에요. 바람이 지날 때마다, 풍경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 바람의 세기에 따라 다른 소리가 공원에 울릴 수 있도록이요.


*


p.186-187

필요하지만 아름답지 않은 것.
필요하지 않지만 아름다운 것.
필요하고 아름다운 것.
이영은 운에게 세 번째에 속하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운은 이영이 사라지고 알았다.
너에게 내가 필요하지 않아도 좋아.
네가 나에게 피해만 끼쳐도 좋아.
네가 아름답지 않아도 좋아.
사랑은 필요도 아름다움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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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의 알프스, 로포텐을 걷다 - 하얀 밤의 한가운데서 보낸 스무날의 기록
김규호 지음 / 미다스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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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로포텐을 백패킹하며 쓴 여행기.


작가는 첫 로포텐 여행 이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그곳을 찾는다.


그 두 번의 여정이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첫 여행은 말 그대로 무작정 떠났다. 설렘과 어설픔이 뒤엉킨 여정 속에서, 수없이 마주한 뜻밖의 순간들을 통해 여행의 진짜 얼굴을 하나씩 발견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두 번째 여행은 동료와 함께였다. 시간이 흐르며 작가도 한층 더 단단해진 만큼, 여행에도 여유와 낭만이 묻어났다. 한 번 지나온 길이기에 더욱 느긋하고 안정감 있게 그 풍경을 마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여전히 뜻하지 않은 일들은 불쑥 찾아오지만, 그 안에서 여행을 더욱 깊고 풍요롭게 누리는 성숙함이 느껴진다.


이 책은 백패킹에 대한 로망을 품게 해주는 동시에, 그 여정에 따르는 수고와 인내, 그리고 고요한 싸움 같은 현실적인 감각도 함께 일깨워준다.


하지만 그 고단함마저도 왠지 아름다워 보였달까.


무엇보다도, 이러한 여행이 내면의 변화를 이끄는 깊은 여정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자연의 거대함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아지지만, 그 작음 속에서 오히려 삶의 본질과 마주하게 되는 것 같다.


특히 극야와 백야를 인생에 비유한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오늘을 단 한 걸음이라도 걸었다면 충분하다’는 문장은 오랫동안 마음을 맴돈다.


오로라를 꼭 보고 싶다는 간절한 꿈을 품고 있던 내게,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겠다는 다짐을 더욱 또렷이 새기게 만든 책. 북유럽, 특히 노르웨이를 향한 오래된 동경에 다시 진지한 불을 지펴주었다.


▪︎  ▪︎  ▪︎


p.13-14

여러 번의 여행을 통해 나는 자연 속을 여행할 때 가장 큰 만족감을 느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스위스의 아레슐트 협곡, 라트비아의 체메리 습지, 슬로베니아의 슈코치안 동굴 등 대자연의 기운을 온몸으로 맞고 나면 여운이 짙게 남고 여행을 한 보람이 가득했다.


이는 더 큰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미지의 땅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 한번도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으면서 대단한 자연이 펼쳐지는 곳이 있다면, 그런 곳에 꼭 가보고 싶었다. 국가를 먼저 정해놓고 찾아보기 시작했다.


노르웨이가 바로 떠올랐다. 송네 피오르와 트롤퉁가 등 이미 들어본 여행지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선은 더 위로 향했다.


그러다 북위 68도 부근,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로포텐 제도에 눈길이 멈췄다.


*

p.189

사진은 여행의 과정과 풍경의 규모를 담아내지 못했다. 바다와 하늘은 수평선에 드리운 하얀 구름에 경계가 허물어져 하나가 된 듯 아득하게 펼쳐졌다. 단순한 구성이었지만, 온몸을 에워싸는 듯한 압도감이 느껴졌다. 섬을 걷는 내내 마주한 풍경은 망설인 시간이 아까울 만큼 잔잔하고 깊은 울림을 주었다.


*

p.294

우리 인생도 어쩌면 이와 닮은 것 같다. 하루에도 환했다가 어두워지길 반복하는 나날들이 있고, 극야처럼 태양이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으며 짙은 어둠이 지속할 때도 있다. 극야를 처음 겪을 때는 그 상황이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은 불안감에 빠져 마음을 졸였고, 걱정과 근심이 늘어났다. 그 상황을 빠져나가려 애써도 끊임없는 어둠만이 계속 이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가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걸 스스로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어둠은 조금씩 걷혔다. 그러다 한동안 빛이 꺼지지 않는 찬란한 날을 마주했다. 우연인 듯 필연이었다.

... 


그러나 이제는 두렵지 않다. 극야를 마주해도 다시 백야가 돌아온다는 걸 분명히 알았으니까. 오늘을 달 살아내며, 내일로 어떻게든 나아가기 위해 단 한 걸음이라도 걸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저 멀리 반대편에서 백야는 반드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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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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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페이지 터너!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 것❗️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지는 짧고 강렬한 미스터리❗️


첫 작품을 펼친 순간,
다카노 가즈아키의 소설은 단숨에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익숙한 공간이 낯설게 느껴지는 긴장감"
"짧지만 묵직한 한 편의 영화같은 느낌"


결말이 궁금해서 페이지를 멈출 수가 없었다.
그만큼 몰입감이 탁월했다.


이야기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다르지만,
그 안에는 공통적으로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압도적인 서사 텐션이 깔려 있다.


짧은 호흡임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의 감정은 치밀하게 배치되어 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짧아서 더 강렬했다는 점.
호러처럼 무섭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과 ‘시간’을 주제로 흥미롭게 풀어낸 작품들이 많았다.


마지막까지 단 한 편도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심장을 조여오는 긴장과 감동이 교차하고,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는 마치 영화 장면처럼 장면이 그려졌다.


놀랄 것도 없는 일이었다.
다카노 가즈아키는 영화감독을 꿈꾸던 청년이었다.
직접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과 촬영, 편집까지 공부한
영화적 감각을 지닌 작가다.


그래서일까?
그의 문장은 장면처럼 살아 움직였다.


평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고,
타임 패러독스나 역설적인 구조의 서사에 매력을 느끼곤 했는데,
이 책은 그런 내 취향을 저격했다!!!


▪︎


🔖이 책을 추천합니다!!!

❗️미스터리 입문자이지만 가볍게, 무섭지 않게 읽고 싶은 분

❗️반전 있는 단편, 구성 탄탄한 이야기, 영화 같은 전개를 좋아하는 분

❗️단 한 줄도 놓치기 싫은, 몰입감 넘치는 소설을 찾고 있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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