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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의 알프스, 로포텐을 걷다 - 하얀 밤의 한가운데서 보낸 스무날의 기록
김규호 지음 / 미다스북스 / 2025년 5월
평점 :
노르웨이 로포텐을 백패킹하며 쓴 여행기.
작가는 첫 로포텐 여행 이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그곳을 찾는다.
그 두 번의 여정이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첫 여행은 말 그대로 무작정 떠났다. 설렘과 어설픔이 뒤엉킨 여정 속에서, 수없이 마주한 뜻밖의 순간들을 통해 여행의 진짜 얼굴을 하나씩 발견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두 번째 여행은 동료와 함께였다. 시간이 흐르며 작가도 한층 더 단단해진 만큼, 여행에도 여유와 낭만이 묻어났다. 한 번 지나온 길이기에 더욱 느긋하고 안정감 있게 그 풍경을 마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여전히 뜻하지 않은 일들은 불쑥 찾아오지만, 그 안에서 여행을 더욱 깊고 풍요롭게 누리는 성숙함이 느껴진다.
이 책은 백패킹에 대한 로망을 품게 해주는 동시에, 그 여정에 따르는 수고와 인내, 그리고 고요한 싸움 같은 현실적인 감각도 함께 일깨워준다.
하지만 그 고단함마저도 왠지 아름다워 보였달까.
무엇보다도, 이러한 여행이 내면의 변화를 이끄는 깊은 여정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자연의 거대함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아지지만, 그 작음 속에서 오히려 삶의 본질과 마주하게 되는 것 같다.
특히 극야와 백야를 인생에 비유한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오늘을 단 한 걸음이라도 걸었다면 충분하다’는 문장은 오랫동안 마음을 맴돈다.
오로라를 꼭 보고 싶다는 간절한 꿈을 품고 있던 내게,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겠다는 다짐을 더욱 또렷이 새기게 만든 책. 북유럽, 특히 노르웨이를 향한 오래된 동경에 다시 진지한 불을 지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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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14
여러 번의 여행을 통해 나는 자연 속을 여행할 때 가장 큰 만족감을 느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스위스의 아레슐트 협곡, 라트비아의 체메리 습지, 슬로베니아의 슈코치안 동굴 등 대자연의 기운을 온몸으로 맞고 나면 여운이 짙게 남고 여행을 한 보람이 가득했다.
이는 더 큰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미지의 땅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 한번도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으면서 대단한 자연이 펼쳐지는 곳이 있다면, 그런 곳에 꼭 가보고 싶었다. 국가를 먼저 정해놓고 찾아보기 시작했다.
노르웨이가 바로 떠올랐다. 송네 피오르와 트롤퉁가 등 이미 들어본 여행지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선은 더 위로 향했다.
그러다 북위 68도 부근,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로포텐 제도에 눈길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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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9
사진은 여행의 과정과 풍경의 규모를 담아내지 못했다. 바다와 하늘은 수평선에 드리운 하얀 구름에 경계가 허물어져 하나가 된 듯 아득하게 펼쳐졌다. 단순한 구성이었지만, 온몸을 에워싸는 듯한 압도감이 느껴졌다. 섬을 걷는 내내 마주한 풍경은 망설인 시간이 아까울 만큼 잔잔하고 깊은 울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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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4
우리 인생도 어쩌면 이와 닮은 것 같다. 하루에도 환했다가 어두워지길 반복하는 나날들이 있고, 극야처럼 태양이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으며 짙은 어둠이 지속할 때도 있다. 극야를 처음 겪을 때는 그 상황이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은 불안감에 빠져 마음을 졸였고, 걱정과 근심이 늘어났다. 그 상황을 빠져나가려 애써도 끊임없는 어둠만이 계속 이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가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걸 스스로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어둠은 조금씩 걷혔다. 그러다 한동안 빛이 꺼지지 않는 찬란한 날을 마주했다. 우연인 듯 필연이었다.
...
그러나 이제는 두렵지 않다. 극야를 마주해도 다시 백야가 돌아온다는 걸 분명히 알았으니까. 오늘을 달 살아내며, 내일로 어떻게든 나아가기 위해 단 한 걸음이라도 걸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저 멀리 반대편에서 백야는 반드시 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