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
박정현 지음 / 오블리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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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은 작가의 두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절제된 문체를 지니고 있다. 겉으로는 담담하지만 문장 하나하나에는 내면을 향한 질문과 존재의 흔들림이 섬세하게 스며 있다. 묘사되는 내용과는 달리, 작품 전체의 분위기는 차분하면서도 예리한 관찰로 이루어져 있다. 명확한 결론보다는 모호함의 경계에 머물며, 읽는 이에게 긴 여운을 남긴다.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작가가 쓴 에세이는 어떨지 궁금해졌다. 그는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소설에 임하고 있을까. 2004년생이라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다가왔고, 문득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가 떠올랐다. 나이가 전부는 아니지만, 시간과 함께 쌓이는 삶의 감각이 글에 깊이를 더해준다는 사실 역시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20대 초반의 작가가 이미 이런 밀도의 글을 써내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의 이야기를 더욱 기다리게 만든다. 시간이 흐르고 경험과 사유가 차곡차곡 쌓일수록, 그의 문장은 또 어떤 방향으로 확장될까. 한 명의 독자로서 그 다음 이야기를 조용히 기대하게 된다.


***


p.5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어쩌면 자기가 찾던 아름다움은 깎아낸 돌조각들에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본질을 찾겠다며 잘라낸 그 조각들, 쓸모없다고 믿고 내버린 그 파편들이야말로 자신이 찾던 얼굴의 유일한 윤곽이었을지도 모른다고.


*


p.198

예술은 우리가 마주하게 두려워하는 부재의 자리에서 끝까지 시선을 돌리지 않는 태도이며, 존재의 부재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을 직시하는 힘이다. 그래서 예술은 때때로 무의미하고, 비논리적이며, 해석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본질로 수렴하지 않기에, 끊임없이 허울로만 표현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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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연습
박정현 지음 / 오블리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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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방식으로 독서의 희열을 다시 느끼게 하는 소설.


어떻게 이토록 담담하게 소설을 풀어갈 수 있었을까.


소설 속 주인공들은 각자의 아픔을 지니고 있다.


태어난 직후부터,


어쩌면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를 그 아픔은


타의에 의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차곡차곡, 켜켜이 쌓여온


체념이 묻어난 상처었다.


“어떤 생은 태어나기 전부터 후회를 배운다.”(p.7)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한 분위기로 이어지지만

그 잔잔함 속에는 분명한 힘이 있었다.

철학적인 사유를 담고 있는 질문들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여운을 만들어낸다.


소리를 높이지 않기에, 그래서 오히려 더 오래 남는다.



***


p.25


둘 사이로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언어가 쉬는 동안 더 많은 말을 건네는 침묵.


*



p.59

"레테는 망각의 강. 고통을 그대로 붙들지 않도록 잠시 내려놓게 해 주는 쪽. 반대로 므네모시네는 기억의 강. 사라지지 않게 천천히 이름을 불러주는 쪽, 숨을 세어주듯 이어 가는 방식. 결국 무엇을 잊고 무엇을 남길지, 그 순서를 어떻게 정할지에 대한 이야기야. 급하게 선명해지는 걸 경계하고, 흐리지만 오래 남기는 법을 말해."


*



p.154


숨이란, 가만히 내쉬고 다시 들이쉬는 단순한 리듬으로 세워져 있다. 우리의 하루도 그 리듬을 닮아야 한다. 큰 약속이 아니라 작은 반복이 우리를 지탱한다. 그 반복 하나하나에 의미를 과하게 부여하지 않되, 그 반복을 성실히 수행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일. 이것이 남아 있는 자의 최소한의 품위다.


*



p.156

당장은 제목 없는 하루를 살아도 좋다. 제목 없는 하루가 쌓여 문장이 되고, 문장들이 모여 한 권의 삶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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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의 무경계
박정현 지음 / 오블리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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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의 무경계》 박정현


<달팽이>

<익사 연습>

<숨바꼭질>

<머리카락>

<주사위를 굴려>

<완벽한 자두 나무> 📍

<누구와 함께 밤을>

<숙주>

<폭소>

<마지막 식사>

<부검>

<막간>

<이호와 이호> 📍


*13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


심리 묘사가 집요하다고 느껴질 만큼 인물의 내면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읽는 내내 독자는 안전한 거리에서 관찰하는 위치에 머물 수 없다. 불편하고, 낯설고, 때로는 눈을 돌리고 싶어지는 장면을 마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지막 단편 <이호와 이호>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실존의 무경계》라는 제목이 담고 있는 의미가 빛을 발한다. 이야기 속 인물들이 끊임없이 넘나들던 경계의 모호함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선명하다.


작품의 분위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로테스크하다. 자극적인 표현도 종종 등장하지만, 그것은 작품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로 보여진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 눈이 번쩍 뜨일 만큼 궁금증이 밀려오는데, 바로 그때, 마치 작가는 이맘때쯤의 독자의 머릿속을 알고 있다는 듯 궁금증을 해결할 답을 적어 두었다. 왜 이토록 어둡고 날 선 분위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작가가 남긴 마치는 글에서 분명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그로테스크함은 장식이 아니라, 이 소설이 선택한 언어였다.


분위기와 문체, 그리고 소설을 이끌어가는 사유의 방식이 유니크하다. 이 책은 이야기를 읽는 경험이라기보다, 한 사람의 사고 속을 통과하는 체험에 가깝다. ‘마치는 글’까지 읽고 나서 다시 ‘들어가는 말’로 돌아왔을 때 비로소 느껴지는 소설의 무게가,《실존의 무경계》가 끝내 독자를 놓아주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


p.113

다시 펜을 쥐었다. 고통이 없이는 이야기가 없다. 그건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진리였다.


*


p.145

"하지만 저는 흐르는 시간을 더 좋아해요. 흐르는 시간은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다주잖아요."


*


p.179

구조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경계를 강요한다. 안과 밖, 나와 너, 선과 악을 나누고, 그 나눔 속에서 우리를 정의한다. 그러나 그 경계가 만들어지는 순간, 실존의 본질은 틀에 갇혀버린다. 나는 이 경계가 만들어내는 폭력, 그것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단조롭고 피폐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경계를 허물고, 그 틀을 넘어서는 실존의 자유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책은 그런 시도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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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너머의 미래 - 누가 자동차 산업의 패권을 차지할 것인가
안병기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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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산업의 변화와 전환을 통해 세계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책.


저자는 자동차 산업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글로벌 경쟁과 정책 이슈까지 함께 짚어 나간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국가 간 자동차 패권 경쟁, 각국의 정책 변화, 그리고 글로벌 기업들의 전략을 객관적으로 분석함과 동시에 과거 전기차가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부상하게 된 이유와, 현재 우리가 마주한 ‘전기차 캐즘(성장 한계)’을 설명하며, 그 안에서 현실적인 질문과 선택의 기준을 제기한다.


저자가 통찰하는 변화의 이야기는 비단 자동차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느새 새로운 질문 앞에서 멈춰 서곤 한다. 그럴 때일수록 미래를 섣불리 예측하기보다, 변화 앞에서 내가 서 있는 위치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천천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책이다.


▪︎


p.10

소비자들이 원하는 자동차가 무엇인지 조사하고 고민해서, 내가 만들고 싶은 차가 아니라 그들이 갖고 싶어하는 차를 만들어야 한다.


*


p.14

예측이 어려울 때는 대응이 중요하다. 한 발 빠르게 움직이면 선택의 기회가 많아진다.
...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의 말처럼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반복"이다. 과거는 집착할 대상은 아니지만 되짚어는 보아야 한다. 하이브리드, 전기차, 수소차만 해도 버거운데 자율주행에 SDV도 개발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거세지고 있다. 한꺼번에 다 진행할 수 없다면 우선순위와 비중을 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를 기반으로 한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 책은 그런 근거를 세우는 데 작은 힘이나마 도움을 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정리했다.


*


p.77

기술력, 자본력에 정치 외교력까지, 우리도 이제 세계 경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


p.80-81

전기차 캐즘이라는 단어가 일반화된지도 벌써 1년 반이 넘었다.

... 과연 다시 전기차의 부흥이 올 것인가? 온다면 언제가 될 것인가? 그때까지의 대안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을 위해 과거 자동차 역사의 흐름을 되짚어보고 현시점의 자동차 산업 데이터를 분석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한다면, 최소한 불확실한 산업에 무리하게 뛰어드는 과오는 피할 수 있다. 흔히 하는 이야기지만 '위기'는 '위험'과 '기회'를 함께 제공한다.


*


p.121

전기차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심으려는 의도가 아니라, 지난 몇 년 동안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가를 다시 한번 점검해보기 원하는 마음이다.


*


p.258

지금은 미래에 대비해서 블루 오션을 개척하기 보다 생존을 위해 투지는 최소화하고 수익은 극대화하는 '마른 수건 짜기'가 절실하다.


*


p.289

표준화와 공용화 전략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기업의 생존을 좌우하는 필수 조건이다.


*


p.310

오랜 기간 동안 환경차 기술 개발을 위해 함께 달려온 수많은 선후배들과 동료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다.

... 내가 남기는 이 글이 나를 이어 전투기에 올라갈 수많은 후배 조종사들, 그리고 그들을 위해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낙하산을 접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권의 '가이드북'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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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왜 친구를 원하는가 - 우리 삶에 사랑과 연결 그리고 관계가 필요한 뇌과학적 이유
벤 라인 지음, 고현석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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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뇌가 보내는 구조 신호다. 그리고 관계는 위로가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인간의 뇌가 왜 ‘연결’을 생존에 꼭 필요한 요소로 설계했는지를 신경과학의 언어로 차분히 풀어낸 책이다. 저자는 외로움을 단순한 감정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뇌가 보내는 분명한 경고 신호이며, 관계 맺음은 행복을 넘어 우리의 신체 건강과 회복력, 나아가 판단력까지 깊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독립적인 존재라 여기지만, 사실 뇌는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들어졌다는 점을 이 책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짚어준다.


이 책이 전하는 가장 인상적인 메시지는 “관계는 생존 전략”이라는 말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인간관계를 뒤로 미루거나, 혼자 버텨내는 것을 당연한 미덕처럼 여겨온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하나의 질문을 건넨다.


“지금 당신의 뇌는 충분히 연결되어 있는가?”


넘겨짚으면 안 된다. 단순히 관계를 더 잘 맺으라는 조언이 아니다. 사소해 보이는 대화 하나와 정기적인 만남 하나가 어떻게, 왜, 삶의 결을 바꿀 수 있는지를 이해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책은 외로운 사람뿐 아니라, 겉으로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어딘가 무뎌진 채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잘 어울린다. 나 또한 이 책을 읽고 난 후 관계 맺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읽고 나면 인간관계가 부담이나 과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돌보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처럼 느껴질 것이다.


*


p.20

가장 희망적인 소식은 해결책이 놀라울 만큼 분명하고 단순하다는 사실이다. 사람들과 더 많이 어울려라!


*


p.36

이런 현상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일어난다. 우리 뇌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며 더 정확히 예측하는 능력을 쌓아간다.


*


p.65 

인간에게 최악의 형벌, 고립


*


p.135

놀랍게도 이들은 만화를 더 재미있다고 평가했는데, 얼굴에 지어지누미소가 뇌를 설득해 만화를 즐기고 있다고 착각하게 한 것이다. ...... 이것이 표정 모방이 감정 전염을 일으키는 방식이다. 당신은 친구의 표정을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면서 그가 느끼는 것을 함께 느끼기 시작한다.


*


p.207

소셜 미디어는 정말 우리를 더 사회적으로 만들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본다.


*


p.240

앞에서 언급한 15만 명의 암 환자를 다시 떠올려보자. 결혼한 사람들이 더 높은 생존율을 보인 것이 과연 놀라운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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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04

기억하자. 공감은 타인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게 함으로써 타인을 돕도록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인간이 집단 속에서 더 잘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사실, 즉 우리가 서로 돕는다는 사실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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