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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돌아가기
최영건 지음 / 안온북스 / 2025년 4월
평점 :
최영건 산문집《사랑으로 돌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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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자마자 풍겨오는 작가 특유의 문체와 분위기.
산문이지만 마치 소설처럼 느껴지는 이야기의 결,
그리고 그 안에 조용히 웅크린 슬픔과 사랑의 이야기가 나를 단숨에 끌어당겼다.
문장들은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정서와 결을 가진 존재처럼 느껴졌다. 읽는 내내 다자이 오사무의 글이 떠올랐다. 감정이 지나치게 고조되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그 담백함 속에 더 깊은 울림이 있었다. 단정하지만 금세 부서질 듯 섬세한 문장들. 그런 문장들이 마음을 오래도록 붙잡았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장면들을 그려내는 작가의 방식이었다.
눈앞에 풍경이 펼쳐지고, 숨소리와 체온이 느껴질 정도로 섬세했다.
고양이 이름이 ‘토마스 아퀴나스’가 된 배경, 그리고 강아지 이름이 ‘오이’가 된 사연은 단순한 이름 이상의 감정을 전달했다. (마침 나도 아픈 노견을 돌보는 중이라 그런지, 이야기 속 장면들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밤새 숨을 확인하고, 하루 종일 강아지를 돌보는 시간이 곧 사랑의 또 다른 이름임을 이 책이 말해주는 듯했다. 반려동물과의 이별은 언제나 예고 없이 다가오지만, 그 시간들을 문장으로 기록해준 이 책 덕분에, 나 역시 언젠가의 이별을 더 따뜻하게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아픔을 말하는 순간조차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글,
사랑을 천천히 되새기고 꾹꾹 눌러 담아 건네는 이야기.
그것이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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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61
기다림에 대해 쓰기 위해 나는 사랑을 떠올린다. 사랑에 대해 쓰기 위해 기다림을 떠올린다. 쓰기 위해 나를 보고 있다. 잊히지 않는다는 말이 과장처럼 들리던 때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잊히지 않는 기억들은 정말로 있었다. 그중에는 계절 너머로 기울어지는 혼자만의 밤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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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79-80
하지만 할머니, 이미 모두가 모두를 쓰는 세상인걸요. 모두가 안간힘을 쓰며 쓰고 있어요. 소망하던 이야기를 살아내려 애쓰고 있어요. 자기가 견뎌온 이야기를 해명하고 있어요. 말들은 충분하고, 넘쳐흐르는 중이고, 그런데도 애처롭도록 부족하죠. 물론 저도 저에 대해 쓰고 있어요. 살아가기 위해선 모두에게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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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55
6월이 되며 수국이 활짝 피었다. 커다란 수국은 뜰의 거인들 같다. 나는 천천히 그려나가던 뜰의 고양이들 그림의 마지막 빈자리에 수국을 채워 넣었다. 흰 수국, 분홍색 수국, 푸른 수국. 여름이 우거지는 중이었다. 나는 많은 꿈속에 있었다. 밤에 문득 잠에서 깰 때면 행복하다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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