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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투혼.
감기 투혼.
감기 투혼.
감기 투혼.
감기 투혼.
감기 투혼.
감기 투혼.
감기 투혼.
어제는 일부러 초저녁 08시 즈음에 잠에 들었다.
근데 정말 거짓말 1도 안 보태고 새벽 04시 까지 쥐죽은듯이 끙끙 앓았다.
한마디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고 모든 것이 귀찮고, 그냥 원없이 앓아보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판단되어서,
아픈 사람의 특권(?)을 마음껏 누렸다.
별에 별 생각이 다 났다.
만약 내가 버림을 받아서 혼자만 덩그러니 지구에 남겨진다면 어떨까? 하는 망상과 택도 없는 가정도 해보았다.
"그래 내 편, 내 가족을 만들어야 해. 내 사람을 만들어서 내가 아플 때 내가 힘들 때 케어를 받아야 해.." 라는
아주 현실적이고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생각들을 원없이 했다.
겨우, 감기가 뭣.이라고 나는 거의 밑바닥 끝까지 가서 나의 주변을 나의 가족을 나의 주어진 현실을 나의 현재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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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다 읽으연 습관적으로 하는 나만의 패턴이 있다.
"아 너무 훌륭해~ 너무 잘 읽었어~ 아. 내 서재 책장에 또 한 권의 책의 보태어지는구나~. 나는 오늘도 한 권의 책을 읽어냈어~"하고 곧장 서재 책장에 다 읽은 책을 곧바로 꽂아 버리고 만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런 사색 없이.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다 읽은 책에 대한 < 리뷰 > 나 < 사색 > < 치열한 고민 > < 고뇌 >가 완전 제거되어있다는 부분이다.
책이 아무 피드백도 없고 자아 성찰도 없이 곧장 책장에 꽂아버리면 그것을 읽은 독자는 그저 그렇게 그냥 시간을 몇 시간 낭비한 셈이다. 책은 그렇게 읽으면 안 된다.
책을 읽고 후기 및 독후감 등을 공유하는 독서 모임은 아주 훌륭한 본보기 이자 바로미터 (예)가 될 수 있다.
책은 절대 한 가지 주제로 한 가지 색채로 한 가지 색깔로 한 가지 의미로 읽혀질 수가 없다.
책은 그것을 읽는 독자의 머릿수 만큼이나 다양하게 오역되고 오독되고 창의적으로 다른 색깔들로 읽혀지는 것이다.
느낌과 분위기도 제각각이고 거기서 얻은 교훈도 다 각자 다르고 자기가 감명 받은 부분도 독자마다 제각각이다.
다 읽은 책은 마땅히 곧장 책장으로 직행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 그 읽은 후의 짧은 순간을 꼭 기억하고 자기만의 소화 기관으로 자기만의 소화 방식으로 꼭꼭 씹어서 먹고 소화시켜야 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그 책을 빛의 속도로 잊혀지고 기억에서 소멸해버리고 만다.
지금부터라도 책장을 덮고 나서 곱씹도록 하자.
책을 사서 읽었다고 해서 자신이 거창하게 그만큼 성장했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큰 착각 내지는 어불성설 일 것이다.
그것을 꼭꼭 씹어서 소화시키지 않으면(=리뷰. 피드백. 후기. 짧은 독후감. 등등)은 그 책은 그냥 그저 그런 책 무덤.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한 줄이라도 쓰자. 누구와 짧게나마 피드백.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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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부터는 11월 달에 다음 해 다이어리를 연례 행사처럼 사러 다녀야 겠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기다리고 축하하기 위해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 들이고 장식해야 겠다.
성모 마리아 상(저는 참고로 무교.입니다)도 사고 크리스마스도 거창하지 않게 조그만 것이라도 사서 한쪽에 장식해두어야 겠다.
지금까지의 크리스마스는 너무 무의미하게 너무 성의 없이 지나가고 말았다.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해가고 있다.
더 이상의 영원히 되풀이 되고 있는 듯한 << 후회 >>를 만들지 않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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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 좋게~
나른해지고.
허무한 기분에 속이 메쓰겁고 울렁울렁거리고.
공허하고.
세상 다 산 것 처럼 혼자 외딴 섬에 버려진 기분이고.
난 절대 그러지 않는다.
빅터 프랭클 박사가 강조하신 << 실존적 공허 >>가 무엇인가요. 먹는 건가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오버랩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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