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현이예요. 난,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질 않는답니다. 아빠가 말씀하시길 내 마음의 눈이 너무 아름다워서, 세상을 보는 눈은 가질 필요가 없었대요.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나는 하나도 힘들거나 불편하지 않아요. 세상엔 빛 말고도 좋은게 참 많거든요. 뺨을 부비고 싶은 보송보송하고 따뜻한 느낌, 향기로운 냄새, 즐거운 소리가 매일매일 넘쳐나서 난 심심하지 않아요.
하지만...가끔은 나도 궁금한 게 있답니다. 내일은 제 일곱번째 생일이예요. 그래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를 했어요. "하루만 제게 요술안경을 선물해 주세요...."
다음 날 아침 일어났을 때, 내 손에 뭔가가 쥐어져 있었어요. 어, 안경 같아요! 가슴을 두근거리며 안경을 쓰자...야, 보여요 보여!!!
난 맨 먼저 하늘을 봤어요. 그게 제일 궁금했거든요. 하늘은 만져볼 수도 없고, 냄새도 자주 바뀌고,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데 언제나 내 머리 위에 있다고 했어요. 와....정말 멋져요!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엄마가 깃털로 날 간질여 주었을 때의 느낌, 잠들기 전 솜이불 속에서 상상했던 것과 비슷하기도 하고, 또 전혀 다르기도 해요.
그 다음엔 바다를 봤어요. 엄청나게 많은 물들이 모여 있다고 하는데...얼마나 많기에 내가 하루 종일 해변을 걸어도 끝이 나질 않는지 궁금했거든요. 와...물, 물, 물....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니 왠지 힘이 솟았어요.
세번째로는 <분홍색>을 봤어요. 분홍색은 동생 솔이가 제일 좋아하는 <공주님 색깔>이래요. 솔이는 맨날 공주님 놀이를 하며 날더러 왕자님을 하라고 해요.^^ 분홍색은 어디서 봤냐구요? 엄마가 예전에 살짝 말해줬어요. 분홍색을 좋아하는 솔이의 뺨이, 제일 예쁜 분홍색이라구요. 코...잠들어 있는 솔이의 뺨 색깔은 정말 근사했어요.
네번째로는 마당의 <현이 나무>를 보았어요. 현이 나무는, 내가 태어나던 날 엄마 아빠가 심은 나무래요. 지금은 많이 자라 나보다 키가 커져서, 꼭대기를 만져볼 수가 없어요. 현이나무가 얼마나 컸는지 궁금했는데, 하하, 내가 손을 쭈욱 뻗은 것보다 겨우 두 뼘 더 클 뿐이네요. 난 또, 엄청나게 많이 자랐는 줄 알았지 뭐예요.
마지막으로는....엄마 아빠를 봤어요. 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봤어요. 언제나 느껴보던 엄마랑 아빠를 바라보는 것은 참 이상한 기분이었어요. 막 웃고 싶기도 하고, 또 울고 싶기도 해서 난 엄마 아빠에게 와락 안겼어요. 저절로 눈이 감겼어요. 음...좋은 냄새. 엄마 냄새, 아빠 냄새. 히야....좋은 느낌. 보송보송 포근한. 그리고 제일 좋은,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 "우리 현이, 무슨 일이니?"
엄마 아빠한테는 비밀이예요. 내가 요술 안경을 가졌다는 건. 가끔 또 궁금한 일이 생기면 꺼내보겠지만, 항상 끼고 있을 필요는 없겠어요. 정말 좋은 건, 정말 사랑하는 건, 꼭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걸 이제 알았거든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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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선천적으로 시력을 상실한 사람들은, 수술이나 기타 의학적인 처치를 받아 시력을 회복해도, 자신이 보고 있다는 사실...시각적으로 접수한 기호들을 해독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그런게 아니라서 뺐어요. 괜찮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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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놀아줘...하는 예진이를 마구 뜯어내며 열심히 쓴 이야기다. 검은비님이 이벤트에 안 뽑아주시면....나중에 바지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져서, 시키는 건 뭐든 다 할테니 책으로 만들어 주세요~~~ 해 볼까? 미욱하지만, 엄마가 쓴 이야기에 멋진 화가 이모가 그림을 그려 준 정말, <세상에 하나쁜인 그림책>이 될 것 같은데... 일요일까지, 검은비님 서재에 열심히 들락이며 방바닥도 닦고, 책꽂이도 정리하고 그래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