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발견한 가장 최악의 것은 그가 할 수 있는 동안에조차도,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그 상태를 종말로 가져갈 수 없음을 안 때조차도 그것에 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미져리, 스티븐 킹, 성정출판사,1991년
첫 오프모임, 숨책에서 미져리를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던가! 하지만 그 기쁨은...책을 읽는 동안 점점 사그라들었다. 당최 이해할 수가 없는 문장들 때문이었다. 학교 다닐 때, 영어에는 도통 취미가 없었다. 그래서 번역이 어쩌고 하는 말을 하기가 좀 민망하다. 그런데, 미져리는 도저히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책 전반의 문장들은, 꼭 번역의 문제라기 보다는, 역자가 기본적으로 모국어에 대한 이해와 활용능력이 부족하다고 밖엔 보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저 문장을 붙들고 십여분을 곰곰히 해석한 결과는 이렇다.
(바로 앞 문장에 '이상한 상황'을 그것이라고 칭하는 것으로 간주할 때) 가장 끔찍한 것은, 여력이 있어서 내가 처한 이상한 상황에 대해 고민하지 않으면 이 상태를 벗어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있는 순간에 조차도, 그것에 관해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는 사실이었다.
대략, 이런 뜻이 아닐까 싶다. 맙소사....우리말로 쓰인 문장을 <해석>해야 하다니. 더 끔찍한 사실은, 위의 예문이 최악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져리가 초반부를 벗어나기도 전에, 아무리 고민해도(내가, 이전에 영화를 봐서 줄거리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가 없는 문장들이 이어져서, 결국 책을 덮어야 했다.
스티븐 킹의 팬들은, 그가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는 상당한 문학성까지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단순한 심심풀이 땅콩 소설의 작가로 평가절하되고 있다고 안타까워 한다. 그런데 그 사실이 내게는 별로 중요하지가 않다. 상관 없다. 나 좋으면 그만이지. 어쩌면, '상당한 문장력을 갖춘 작가인데, 국내에서만 유독 인정을 못 받는단 말이야~'하고 잘난척 할 수 있으니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헌데, 그냥 한 번 읽고 말 싸구려 공포 소설로 간주되어 이런 막가파 번역으로 출간된 작품들을 보면....분통이 터진다. 이전에 <드림캐쳐>를 보고도 얼마나 열이 올랐던지. 두 권이면 족할 분량을 뻥튀기 해서 네 권(세 권도 아니고 네 권!)으로 불려 놓고는 그것도 모자라 수도 없는 오타에, 결정적으로 주인공의 이름까지 몇 번을 바꿔 놓았는지 모른다.
헌책방에서 눈물겹게 모은 <IT>이 황금가지의 스티븐 킹 걸작선으로 새로 나왔다. 역자도 다르다. 읽어보고...번역이 마음에 안 들면 돈이 아깝더라도 과감하게 새로 구입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니면...스티븐 킹을 읽는 것보다 절판본을 모으는 데 더 치우쳐 있는 최근의 나를 인정하고, 그냥 모아만 놓고 읽지 말아버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