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양의 유치원에서는 요즘, 달팽이와 누에를 기른다. 주말이면 조를 편성해서 가정에서 관찰하고 유치원으로 다시 보내는데....허걱, 방학 하는 날 예진이가 손에 뭔가 들고 내린다. 이따시만한 달팽이 세 마리!!!
하필이면 기나긴 방학이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우리 집 차례가 된 것이다. 졸지에 열흘 동안 달팽이 엄마가 되었다. 어무이~~~~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벌레를 무지하게 싫어한다. 대략 초등학교 3~5학년 쯤이었던 것 같은데... 같은 반의 개구진 남자 아이가, 우연히 교실에 들어 온 어른 남자 손가락만한 메뚜기(인지 방아깨비인지)를 책으로 "팡!" 소리가 나게 내려친 것을 본 기억이 있다. 굉장히 강렬한 트라우마. 하지만, 도리어 그 생생함 때문에, 가끔 나의 벌레 기피증을 변명하기 위해 생성해 낸 모조 기억이 아닌가...싶기도 하다.
여하간 어느 정도로 싫어하는가 하면, 내 손가락 위에서 포식하고 있는 모기를 발견해도 "가아~ 가아~~"하고 손을 휘휘 저을 뿐 내리치질 못해서 주변 사람들의 어이 없는 시선('이봐....거 어울리지도 않게, 너무 심한 내숭 아냐?')을 받을 정도이다.(하긴, 요즘은 상황이 좀 달라져서, 내 새끼들 피 빤 모기는 사정 없이 후려칠 수 있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점. "그런데, 달팽이가 벌레인가?"
아닐걸...-.-;; 그렇지만, 나는 <벌레와 그의 친구들>은 다 싫다! 달팽이는 <그의 친구들>과 인 것이다. -.-;
이렇게 임시로 세 든 달팽이 가족. 시부모님이 계실 때는 문제가 없었다. 아버님이 매일 매일 집 뚜껑을 열고, 달팽이를 나무 젓가락으로 들어낸 후, 상추나 당근을 갈아주셨으니까. (그거 아시는가? 텔레비젼 프로그램 '스펀지'에 나왔었는데, 달팽이는 먹이 색깔 그대로 똥을 싼다. 당근 먹으면 당근색 똥, 상추 먹으면 상추색 똥.^^ 게다가, 양도 엄청나다.-.-) 그런데 어제, 부모님이 고향으로 여행을 떠나고 난 후....공교롭게도 터프한 우리 남편은 달팽이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있나보다. 근처에도 안 간다! 허걱.... 저녁이 되어, 어제 넣어 준 상추가 시들고 급기야 썩어가는 기색이 보이자 고민을 거듭 했다.
결론은, <그냥 잔디밭에 풀어주자.>
우리 딴에는, 어린이집에 좀 미안하긴 해도 후련하고 명쾌한 결론이었건만, 이번에는 예진이가 난리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결사반대다. 게다가, 우리의 토의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으니....어린이집 선생님께 이를게 뻔하다.
난감해 하고 있던 중, 마침 퇴근한 시동생이 위생장갑을 끼고 집청소를 거들어 주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되는가 싶었는데....상추 속에 숨어 있는 줄 알았던 한 마리가, 죽었다. 왜 죽었을까...집이 너무 좁았나? 상추에 농약이 묻었나? 베란다가 너무 건조했나? 더웠나? 그것도 아니면 밤마다 피우는 모기향이?
기분이 안 좋다. 아무리 미물이라지만, 우리 집에서 살던 생명이 죽어나간다는게....참 울적하다.
달팽아 미안. 니가 조금 부담스러웠던거지, 미웠던 건 아냐.
이제 남은 두 마리. 내버릴 생각 말고 잘 키워서 고이 반납해야지...
달팽아 미안, 잘 키워주지 못해서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