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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오식당
이명랑 지음 / 시공사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음식으로 치면, 잔치국수다. 시장 좌판에서 허기를 느끼던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의 배를 몇 푼으로도 채워 줄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재료, 그나마 몇 가지 안 들어가지만 오로지 경륜과 손맛만으로도 시원한 맛이 나는, 잔치국수.
이명랑은 그 연배 전후로는 보기 드물게 '경험의 언어'를 소유하고 있는 작가다. 경험의 빈곤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젊은 작가들과 견주면 그녀는 분명 행복한 쪽에 속한다. -해설 '시장 언어의 유쾌한 카니발' 중-
글쎄다, 화장실 없이 수채구멍에 오줌을 눠야 하는 처지 때문에 교우관계에 치명타를 입었다고 주인공의 입을 빌어 말하는 작가, 저런 소리를 들으면 발끈할지는 모르겠다만...내 보기에도 그렇다.
시장 언어라 이름 붙였던가? 욕지거리와 일본어 잔재들이 뒤섞인 그 언어들은, <경험>이라는 첨가물과 함께 곰삭지 못했다면 분명히 신경줄을 거스르는 문장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누군가, 시장과 상관 없이 자란 어떤 작가가, 그 언어들을 빌어 글을 썼더라면...그 문장들은 <하류 인생>을 대표하는 어거지에 지나지 않았겠지.
그런데 <삼오식당 > 속의 문장들은 다르다. 책을 열고 몇 페이지 지나지도 않아 나는 그 문장들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었다. 품격이 없다고도, 거칠다고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나 역시 자라면서 숱하게 들어온 듯한 기시감에 휘말리며...어쩌면, 이 시장 언어들이야말로 우리네 사는 모습을 가장 진솔하게 담을 수 있는 그릇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상한 수식어도 쳐 내고, 모호한 은유도 벗겨 낸, 탱글한 알몸의 언어. 이명랑은, 그런 근사한 언어를 구사해낸다.
어쩌면 특별하달 것도 없는 에피소드 들이다. 그냥 나같은 사람이라면, 바로 곁에서는 아니라도 한 두 다리 건너 즈음에서는 매일같이 일어날 법한 일상들. 특별히 숨막히는 기승전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눈물 찡한 결말이나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삼오식당의 7개 이야기들은 눈 돌릴 수 없이 재미있다. 참 오랜만이다. 외출하면서 두고 나온 것이 사무치게 아까운, 그런 재미를 가진 책은.
이 작가가 아직 젊다는 사실이 반갑다. 그리고 당분간은 시장의 삶, 그 화두에 붙들려 있을 것 같다는 고백이 즐겁다. 먹을 때는 좋은데 금방 배가 꺼지는 잔치국수. 이명랑의 잔치국수를 나는 아직 몇 그릇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