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공책 하나에 예진이가 낙서를 하고 있다. 싫증 나서 팽개친 공책을 펴보니, ㅎㅎㅎ....대학 4학년 때 임용고시 공부를 했던 공책이다.
누구나 그렇지만, 난 유독 시험이 싫었다. 시험이 주는 긴장감과 압박감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너무너무 싫었다. 이 노트를 보니...나는, 필사만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이 구원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책의 내용을 노트에 어여쁘게 옮기면서, 그것이 내 머리 속에도 가지런히 자리잡길 원하는 유약한 소망이 보인다.

중고등학교 때 내가 필기를 열심히, 잘 하는 아이였냐하면, 결코 아니다. 나는 노트 필기보다는 원태연의 시 베끼고 만화 긁적이는 것을 훨씬 좋아했다. 시험기간마다 노트를 빌려서 공부했기에, 종래엔, 어쩌다가 빼먹지 않고 필기를 했다 해도 내 글씨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상하고 낯설어 친구의 노트를 빌렸다.
그런 내가 이렇게 정연한 글씨로 노트에 집착했다니...거의 미신, 숭배, 광기였지 않나 싶다.
그래서, 시험 결과는 어땠을까? 합격? 불합격?
ㅎㅎㅎ 여름정도까지 반짝 공부(저런 노트를 대여섯 권 만들었다.)를 하고 가을부터는 내처 놀더니만, 원서까지 접수 시켜놓고는....시험 당일에 내뺐다. 멀쩡히 시험보러 가는 길에, 저 혼자나 갈것이지, 죄없는 친구까지 꼬드겨서 종로엘 가서는, 상영시간이 4시간이 넘기에 쉬는 시간까지 준다고 유명했던 공포영화 '킹덤'을 봤다.

동글동글 글씨체....예쁘긴 하다. 그런데, 귀여웠던 글씨가....요즘은 이렇게 변했다. ㅡ.ㅡ;

난리 굿이네.....그나저나 스윗매직님! 님이 보내주신 리뷰 노트는 저렇게 더러운 글씨로 유용하게 쓰고 있습니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