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미술치료 시간에는 '아버지 나무'를 그렸습니다. 제가 그린 아버지 나무입죠.
그런데, 그림의 재료가 매우매우매우 독특한 거거든요? 뭘까~요? 맞추신 분께는 뽀~ 해드립죠. ㅎㅎ

좀 더 자세히 보실래요? 꼭 수묵화 같기도 하고....일반 유화용 붓에 찍어 그린 것인데, 질감이 아주 부드럽답니다.
마지막 힌트, 아버지들이 많이 쓰시는 것이죠. ㅎㅎ (정답은 코멘트에 발표하겠슴다.)
진지 모드로 접어들어, 저것은, 울 아버지 나무입니다.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울 아빠는 꼭 저 나무처럼 곧고, 바르고,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100점짜리 랍니다.
평생 성실하게, 한 눈 팔지 않고 가정을 지켰지요.
그런데, 좀 튀는 게 있죠? 바로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
탐스럽다구요? 그렇지만, 나무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좀...버거워 보이지 않나요?
울 아빠는 (종가까지는 아니어도) 큰 집의 장남이십니다. 할아버지도 맏아들, 아빠도 맏아들.
<둘만 낳아 잘 기르자>에서 <하나만 낳아도 국토는 초만원>으로 넘어가던 시점에서,
(아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대 이을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딸-딸-딸-아들, 넷이나 되는 자식을 보셨지요.
자식뿐인가요, 건강하던 할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시고 난 후, 동생들에, 아빠에게는 작은 아버지 작은 어머니가 되는 식구들까지 모두모두 돌보고 건사해야 했습니다.
저 사과들은, 탐스러워 보이지만, 사실, 그 자체로 '결실'이긴 하지만....
아빠가 느꼈을 심리적 하중을 표현하고 싶었답니다.
일반적으로 사과는 '양육'과 관련된 상징이죠. 그래서 보통 남성과 관련해서는 잘 나타나질 않습니다.
그런데 그리고 나서 생각해보니, 울 아빠의 양육적이고...가정적이고...어떻게 보면 모성적이기까지 한 부분을 은연중에 표현한 것 같아요.
ㅎㅎ 머리가 굵어지고는 엄마랑 속닥속닥, 이렇게 아빠를 흉보곤 했죠.
"바뀌었어...쯧, 엄마가 아빠하고, 아빠는 살림하면 딱! 맞을텐데!!"
그런데, 생각해 봅니다. 사실 아빠야말로 가장 큰 희생양이 아니었을까...하구요.
되짚어 보니, 울 아빠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문화적인 소양이 다분하신 분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라디오부터 켜고, 영화 감상을 즐겨하고, 시간이 허락할 때는 책도 즐겨 보시지요.
손재주는 또 어찌나 좋은지, 오밀조밀 만들고 고치는 실력은 맥가이버도 울고 갈 정도입니다.
사실, 울 아빠는 그런 사람. 천성이 다정다감하고...부드럽고...섬세한, 그런 분일 겝니다.
하지만, 큰 집의 맏아들...또, 그 시대의 '한국 남자'라는 틀이 아빠를 가만 두지 않았겠죠.
성실, 근면, 권위...같은 꽉 짜인 틀 안에서 자신의 천성을 누르고 다독이며 그냥 보수적이고 평범한 가장으로 평생을 살아야 했을, 아빠의 짐...이 읽힙니다.
미술치료 강의는, 자신과, 가족과, 다른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는 통로...혹은 장이랍니다.
나무 하나를 그리면서 나는, 이제야, 울 아빠....그 좋은 사람, 그러나 조금은 불쌍한 사람을 한결 이해합니다.
아빠, 진심으로 존경하고...많이많이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