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 없는 세상 - 제6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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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 없는 세상은 무엇보다도 재미있다. 내 생각에 재미는-그 어떤 종류의 재미이든-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다. 읽는 중간중간 허를 찌르는 준호의 솔직담백함에 큭큭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작품 속의 주인공이 살아있다. 준호의 행적을 따라훑고 있노라면 마치 내 남동생의 이야기를 읽는 것 같은 현실감과 생동감이 느껴진다. 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미묘한 길목에 선 아이들. 그 또래의 아이들은 누구나 이렇게 매력적인 섬을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것일까? '희망'의 진우연과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콜필드에 이어 만나게 된 준호는 앞선 두 사람에 뒤지지 않는 근사한 매력을 발산하는 인물이다.

마실 때는 톡 쏘는 맛이 있고 마시고난 후에는 입안이 개운해지는 콜라. 동정 없는 세상은 그 콜라같은 소설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기분이 상쾌하고 머리가 개운해진다. 영양가는 별로 없을 지 모르지만^^ 그 유혹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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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부리말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양장본
김중미 지음, 송진헌 그림 / 창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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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는 데 두 시간이 채 안 걸렸다. 하지만 감동은 어느덧 마음 깊이 스며, 몇 배의 시간동안 유지되었다. 가난의 아픔을 선정적으로 부각시키지 않고도 그 속내를 어느덧 넘어다보게 만드는 담백함은 이 작품 최고의 미덕이다. 힘겨운 삶의 초상들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는데도 고통보다는 희망을 발견하게 만드는 차분한 이야기이기에 쉽게 읽고 쉽게 느꼈던 것이다. 요즘 대부분의 아이들은 형제자매가 별로 없는 가정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라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는 마음이 커질 기회를 갖기가 힘들다. 그런 아이들에게도 꼭 권해주고 싶은 필독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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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1.2권 합본) - 우리 소설로의 초대 4 (양장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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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뜻 서평을 하기가 아까울 정도로 깊은 감흥을 주는 책이 간혹 있다. '칼의 노래'도 그런 책이었다. 이 작품의 매력을 뭐라 말해야할까.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생생히 재구성해낸 역량? 주인공의 깊은 사유를 드러내주는 품격있는 문장? 특별한 기승전결 없이도 술술 풀려나가는 편안한 구성? 모두 다 높은 점수를 쳐주고 싶지만 무엇보다도 큰 매력은 작품 속에서 되살아난 '이순신'이라는 인간 자체일것이다. 아들의 죽음을 어린시절 토해낸 젖냄새로 기억하며 숨어 우는 아버지. 군량이 부족하여 처참하게 굶는 병졸들을 곁에 두고 밥상을 받아야하는 매끼니를 고통스러워하는 덕장.

품었던 여인을 적장의 배 안에서 주검으로 발견하고 남모래 한숨을 토하는 사내. 무수히 떠오른 적의 시체를 보며 그들도 한 가정의 아들이자 아버지였음을 고뇌하는 한 인간. 그래서 적 자체보다 '적의 개별성'을 더 큰 적으로 생각하는 철학자. 외강내유를 힘겹게 실천하는 이순신은 너무도 생생한 인간미를 가지고 있어 흠모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작가는 이 작품이 소설임을 견지하고 읽어달라 하지만 어느덧 내 속에서 광화문 네 거리의 동상, 나라의 수호신 이순신과 칼의 노래의 인간 이순신은 둘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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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요네즈 - 제2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전혜성 지음 / 문학동네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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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소설, 드라마, 영화에서 어머니의 모습은 대부분 정형화되어 있다. 가족과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끊임없는 사랑. 태어난 그 순간부터 어머니였던 것처럼 모성애로 점철된 그 모습이 현실에도 여과없이 적용될 수 있을까? 마요네즈는 기존의 소설과는 판이한 스타일의 엄마를 보여준다. 일찍이 철이 난 딸에게 세 살배기 아이처럼 묵직한 짐이 되는 철없는 엄마. 아버지 병구완은 일보는 아줌마에게 맡기고 머리에 마요네즈로 팩을 하는, 딸의 마음을 궁금해하고 아는체하면서도 한 번도 심중을 헤아려주지 않는 늙은 엄마.

그 성장기와 현재는 가족이 애정이 아닌 애증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가정이 때로는 견디기 힘든 심리적 압박의 원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일련의 과정들은 '여성'을 억누르고 배제해야만이 '어머니'로 거듭날 수 있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모순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기도한다. 여자이되 여자일 수 없는 '어머니'. 소설은 아무런 결말도 제시해주지 않는다. 한바탕의 카타르시스로 극적인 관계 개선이 되는 경솔함을 저지르지 않는것이다. 하지만 책을 덮고 곱씹어보면 그냥 깨닫게 된다. 가족이기에 그렇게 미워할 수 있고, 미워하면서도 사랑할 수 있으며, 또 보듬어 안을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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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토니 모리슨 지음, 김선형 옮김 / 들녘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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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배경음악으로, 조용한 커피숍에서 잔잔히 깔리는 음악으로, 재즈는 제법 우리 생활에 깊이 파고들어 있다. 곡의 분위기에 따라 때론 부드럽게, 때론 신나게 즐길 수 있는 편안한 음악 재즈. 그런데 지금 듣는 음악의 장르가 '재즈'라는 것을 각성한 순간 그 편안함은 간데 없이 사라지고 만다. '음...이게 재즈였구나. 제목이 뭐지? 노래는 누가 했나? 연주는? 허...이런 걸 무슨 장르라고 했더라...' 갑자기 학구적인(?) 자세가 되어 음악 자체의 느낌은 잊어버리기 일쑤이다.

음악을 들을 때와 똑같은 실수를 책에서도 저질렀다. 그냥 그 문장들에 편안하게 젖어들었으면 좋았을것을. '그래! 재즈처럼 읽고 감상해야된다 이거지!'하고 뻣뻣하게 신경을 곧추세우고 책을 노려보다보니 정말 문장이 전해주는 흥은 발견하지 못하고 지루하고 힘들게 책읽기를 마쳤다. 정작 그런 규정을 버린 자유로운 애드립이 재즈의 가장 큰 특성이건만...쩝.


이 소설이 영화화되었던가? 원작에 충실하게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다면 훨씬 즐겁게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도대체가, 죽은 소녀가 흑인인지 백인인지도 분간이 안되니...난감한 노릇이다.

이제 이 책을 접하려는 독자들에게는 강력히 권하고 싶다. 앞에 실린 서평은 절대 먼저 읽지 말 것. 선입견과 사전 정보는 싹 잊어버리고 더운 욕조에 들어앉은 듯 릴렉스... 듣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편안한 재즈 음악과 함께라면 더할 나위가 없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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