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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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엔 책에서 교훈을 얻어야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사실 나는 책을 '즐기기위해' 읽는다. 교훈적인 책들은 한결같이 따분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진작부터 책꽂이에 꽂혀 있었던 '모리...'를 미적거리며 읽기를 미뤘던 것도 교훈적일 것 같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나의 예감은 적중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정말 교훈적이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아주 재미있었다!

그저 단순히 '재미'라고 칭하기에는 경박스러운 감이 없지 않다. 진부하지만 감동적이라는 표현을 쓸 수 밖에. 이 늙고 병든 노교수는 내가 살아가면서 의문스러워하던 문제의 대부분을 쉽고도 간결하게 해결해주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남들 하는대로 살아가면서 내가 너무 진부하게 삶을 꾸리는 것이 아닌가 항상 의심스러웠다.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도 아이가 내게 주는 기쁨보다는 아이때문에 누리지 못하는 자유와 시간에 언제나 갈급했다.

'사람들이 자식을 낳아야 되느냐 낳지 말아야 되느냐 물을 때마다, 나는 어떻게 하라곤 말하지 않네. '자식을 갖는 것 같은 경험은 다시 없지요'라고만 간단하게 말해. 정말 그래. 그 경험을 대신할만한 것은 없어. 친구랑도 그런 경험은 할 수 없지. 애인이랑도 할 수 없어. 타인에 대해 완벽한 책임감을 경험하고 싶다면, 그리고 사랑하는 법과 가장 깊이 서로 엮이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자식을 가져야 하네.'

그 몇 줄의 문장으로 모든 의문은 사라졌다. 언제나 자식을 위해 희생한다고만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아이는 내게 이제껏 배우지 못한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학교였던 것이다. 내가 아이에게 사랑을 준다고 하지만, 사실 아이가 내게 주는 것과 같은 절대적이고 순수한 신뢰와 사랑을 어디에서 경험할 것인가?

모리는 책의 마지막 장까지 나를 북돋아 격려해주고, 이끌어 가르쳐주었다. 내가 이제껏 읽어왔던 어떤 책보다도 많은 교훈을, 그것도 살아있는 교훈을 준 것에 깊이 감사한다. 심지어 이제껏 없던 좌우명이라는 것도 생겼다. '사랑이야말로 유일하게 이성적인 행동이다!' 으로는 누구보다도 이성적인 사람이 되려고 애쓸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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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루 속의 뼈 -상
스티븐 킹 지음, 한기찬 옮김 / 대산출판사(대산미디어)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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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었던 스티븐 킹의 작품들 중 최고의 작품은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 그 다음은 '유혹하는 글쓰기', 그리고 뒤이어 '자루속의 뼈'를 추가하기로 했다. 한창 스티븐 킹에 빠져있는 내게 조악한 번역과 편집으로 찬물을 끼얹은 '드림 캐쳐', 그 실망했던 마음을 자루속의 뼈가 충분히 위로해 주었다.

'공포'라는 면에서는 그의 이전 단편들보다는 조금 뒤쳐진다. 아니, 뒤쳐진다는 표현은 적합치 않다. 질이 다르다고나 할까. 짜릿할 정도로 오싹한 두려움을 주던 기존의 공포와는 달리 자루 속의 뼈에서는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별장 '웃는 사라'를 둘러싼 알 수 없는 기운처럼 음울하고 묵직한 공포가 전면에 걸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모자란 스릴을 채우고도 남을만큼 멋진 사랑이야기가 있다. 부록으로 스티븐 킹 자신의 느낌이 강하게 와닿는 작가론까지. 마이클 누난의 모델이 본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죽은 아내 조애너와 그에 대한 사랑도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그려졌던 스티븐 킹의 아내와 닮은 구석이 많다.

매티와 행복한 해피엔딩을 이루었다면 내 마음이야 말할 수 없이 뿌듯했겠지만, 그녀가 죽고 난 후 키라를 지키기 위한 극적인 사투의 속도감은 즐길 수 없었을테니 아쉬움을 접을 수 밖에. 그런 진부함을 살짝 비켜가는 재치 때문에 더욱 스티븐 킹에게 빠져들게 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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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전집 1 (양장) - 주홍색 연구 셜록 홈즈 시리즈 1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시드니 파젯 그림 / 황금가지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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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는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두번쯤 읽으면서 자랐을 것이다. 나 역시도 홈즈의 팬이었지만 고상한 순문학(?)에만 높은 가치를 두던 사회풍조 때문이었을까, 홈즈를 읽으면서는 언제나 질이 낮은 책을 재미로 읽는다는 죄책감이 동반되었다. 그러나 하지 말라는 것은 무엇이든 재미있지 않은가? 그런 죄책감은 책을 읽는 재미를 더욱 배가시켰다. 어쩌면 이리도 똑똑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냈을까, 마냥 신기할 뿐이었다.

이제 복고 바람을 타고 다시 떠오르는 홈즈. 하지만, 세상이 변한건지 어른이 된 내가 약아진 것인지... 그 명석해보이던 셜록 홈즈가 조금은 어설퍼 보인다. 특히 주홍색 연구에서는 별다른 추리도 없이 범인을 너무 수월하게 잡은 것 같은 느낌이다. 그만큼 극적인 반전이 없었다는 얘기. 바닥에 흥건하던 피가 코피이고, 흥분 상태에서 코피가 나올 정도면 몸에 피가 많은 사람이므로 혈색이 좋을 것이라니...맞는 얘긴가? 이 정도면 '추리'가 아니라 '추측', 혹은 '억측'이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후반부의 모르몬 교에 얽힌 사랑과 복수의 활극은 그런 단점을 많이 보완하여 덮을만큼 매력적인 구석이 있었다. 다음편, 그 다음편에서는 다시 명석한 홈즈에 대해 감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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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모으는 사람 풀빛 그림 아이 27
안토니 보라틴스키 그림, 모니카 페트 글,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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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 페트는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갖고 있는 작가인것 같습니다. 수줍음이 많지만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묵묵히 해나가는 부루퉁 아저씨는 행복한 청소부와 아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다만, 행복한 청소부 아저씨가 소박하고 현실적인 교훈을 전해준다면 부루퉁 아저씨는 몽환적이고 신비한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상상력과 창의력을 길러준다는 점이 달라 보이는군요.

제 아이는 이제 세 살인데요, 행복한 청소부 때와 마찬가지로 아직 아이가 이 책을 읽을만한 나이가 못된다는 점이 안타까와질만큼 좋은 책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만한 정도의 아이들이라면 '생각을 모으는 사람'을 읽고는 꼬마 철학자가 되어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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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국의 딸들 - 나남창작선 29 나남신서 105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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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은 언제나 희극보다 더 강한 흡인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삶의 잔인한 속성에 언제나 한숨 짓고, 우울해지면서도 김약국의 딸들을 몇 번이고 되 읽게 되는 것은 그런 이유이리라. 아니, 몇몇의 다른 이유들도 있다. 조선의 나폴리라고 한다던가. 통영이 가진 아름다움을 맛깔나게 술술 펼치는 초반부의 입담과 끝까지 매력을 잃지 않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그 특유의 사투리. 한 때 아리랑에서의 전라도 사투리에 홀딱 반하여 경상도 사투리란 투박하고 거칠다고만 생각해왔던 나에게, 말 끝마다 감정이 뚝뚝 묻어나는 듯한 통영의 사투리는 더할나위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유교의 뒤끝자락, 근대사에서 아들들이 아닌 딸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지만 그 딸들이 모두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수난사는 이례적이라고 할 수 는 없다. 그렇지만 이례성이 반감되었다고 비범함마져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끝간데 없이 이어지고 겹쳐지는 비극이 작위적이라는 느낌 하나 없이 독자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다. 그 비극의 절정은 내가 볼 때는 용란보다는 용옥이다. 전형적인 한국의 여인상, 지은 죄 없이 벌을 짊어지던 용옥의 죽음은 슬픔보다도 분노를 자아낸다.

3대에 걸친 긴 가정사가 그리 길다고 할 수 없는 분량에 집약되어 있음에도 이 소설에서는 빈틈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작가의 경륜이라는 것이 우습게 볼 것이 아님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2~3년이 지나면 나는 다시 한 번 김약국의 딸들을 뽑아들고 읽게 될 것이다. 그러는 이유는 나 자신도 알 수 없다. 비극이 희극보다 흡인력이 강하다는 말을 다시 되풀이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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