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이트 시즌
스티븐 킹 지음, 이창식.공경희 옮김 / 대산출판사(대산미디어)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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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테마로 4편의 중편소설 한 권에 담은 <Different Seasons>이라는 책의 여름과 겨울 소설 두 편이 묶여 출간된 것입니다. 영리한 학생(Apt Pupil)이 원제인 파멸의 시나리오가 여름, 라마즈 호흡이 겨울에 해당되는 작품이지요.

책의 외관도 매우 파격적입니다. 양쪽에서 각각 한 작품씩이 시작되어, 중간에 맞물리는 부분은 반대로 되어 있기 때문에 펼치는 순간 파본인 줄 알았지요. 두 작품 모두 괜찮았지만, 저는 특히 파멸의 시나리오에 더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평소에도 성장소설이라는 장르를 좋아했는데요, 글쎄...이것도 일종의 성장이라고 볼 수 있다면, 이렇게나 섬뜩하고 완벽한 성장소설은 본 적이 없습니다.

전쟁 중 펼쳐진 나치의 만행에 유달리 관심이 많던 평범한 미국 소년이 우연히 자기 마을에 나치 전범이 신분을 감추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접근해서 정체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며 전쟁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 틀어진 관계는 기묘하게 자라나면서 소년을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만능 모범생과 살인마라는 양면을 가진 인물로 변화시킵니다.

소재가 주는 충격은 라마즈 호흡 쪽이 훨씬 강렬합니다. 라마즈 호흡에 비교하면 파멸의 시나리오는 도리어 공포의 강도가 약해보이지요. 하지만 점점 변모해가는 소년, 그리고 소년과 두산더의 관계에 대한 묘사는 생생하고 현실감이 느껴져서 실화소설에서나 느낄 수 있는 실제적인 공포로 다가옵니다. 네가 아는 사람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다고, 네가 그 희생자가 될 수도 있겠다고 작품이 끊임 없이 제게 최면을 거는 겁니다.

그저 스티븐 킹의 작품이기 때문에 별 기대 없이 집어들었는데, 예상 외의 멋진 작품을 만나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그의 소설 중 좋아하는 작품best 5의 순위가 파멸의 시나리오로 인해 바뀌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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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 꿈꾸는 나무 18
홀리 미드 그림, 민퐁 호 글, 윤여림 옮김 / 삼성출판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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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장난감, 특히 인형들은 모두 파란 눈에 금발 머리이죠? 책도 서양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완구류 못지 않습니다. 그나마 우리것에 대해 관심을 갖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전래 동화나 한국의 정취가 느껴지는 창작동화들이 늘어나고는 있지만...글쎄요, 이게 다가 아니잖아요? 남아메리카는요? 아프리카는요? 극동지방은요?

'쉿!'은 아이들의 그림책에서는 보기 드물게 '태국'이라는 나라의 정취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물론 아이는 이 나라가 어디인지는 관심이 없겠죠. 하지만 그림이 주는 이국적인 정취에는 뭔가 자극을 받지 않을까요? 저는 그 이질적인 풍경 안에서도 엄마와 아이의 모습은 우리나라와 다를 것이 없다는 따뜻한 동질감이 느껴지더군요. 덤으로 애들이 좋아하는 다양한 동물까지요.

전면에 펼쳐지는 동물들과 엄마의 대화에도 귀 기울이면서, 자그맣게 표현된 아이의 행동거지도 관심 있게 살펴요. '아기가 지금 뭐해?'하고 자꾸 물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페이지는 동물들이 모두 잠든 전경입니다. 아직은 조금 엷은 빛을 품고 있는 어둠 속에서 잠든 코끼리, 돼지, 오리, 개구리, 작은 쥐...그 풍경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거든요.

마지막 장에 까만 눈이 초롱초롱한 아이의 모습에도 저절로 웃음이 터지구요. 일부러 하하하 크게 웃으면 아이도 따라 웃어요. 왜 웃어야하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지만, 웃다보면, 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되겠지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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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무하마드 유누스 외 지음, 정재곤 옮김 / 세상사람들의책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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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주요 관심분야는 순문학, 특히 소설분야입니다. 그리고 싫어하는 분야가 있다면, 수필과 사회학 관련 서적이지요. 이런 저런 잡다한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재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를 받아들었을 때, 큰일이다 싶었죠. 이 책은 수필+사회학 작품인데다가 무지하게 재미 없게 보였거든요. 하지만 지루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소소한 재미와 함께 책장이 술술 넘어가더군요. 끝까지 읽게 되어 참 뿌듯했습니다. 심한 책편식 도중에 오랜만에 영양가 높은 책을 읽은 것 같아서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생각한 것은 내가 가난이라는 것에 대해 얼마나 많은 착각을 하고 있었는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자가 가장 많이 부딪혀온 편견 '가난은 무지, 혹은 게으름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교육이 필요하다'라는 것이 바로 제 생각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난을 그 사람의 환경이나 조건이 아닌, 특성으로 인식해왔다는 점을 새삼스레 깨우치고 부끄러워지더군요.

내 주변에도 이러한 소액융자 시스템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가...하는 자문에 대한 답은 일차로는 '없다', 이차로는 '모르겠다', 마지막으로는 '전혀 관심이 없었구나' 였습니다.
이것은 비단 제 개인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황금만능주의로 치달아가면서 인생을 질보다는 양으로 살아가려는 사회가 아닙니까.(엥? 갑자기 왠 비분강개?^^;)

가난하고 배고픈 소수는 돌아보지 않고 부유한 소수만을 바라보며 어떻게하면 그 부류에 편입될까, 어떻게하면 그 부류와 최대한 닮을 수 있을까에만 온 정신을 쏟고 있는 사람들... 저 역시도 그 사람들 중의 한 명 인것입니다.

분명히 아직도 결식아동이 있고, 노숙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라민 은행의 소액융자가 우리 나라 현실과는 먼 이야기라고만 생각된다는 점은, 보고 싶지 않은 부분은 눈을 감고 무시하기만 했던 안일함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본적인 인간성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땅에 떨어져있는지를 재고해보게 하는 책입니다.

무담보, 무보증에 오직 신뢰 하나로 융자를 하는 은행, 상환률이 98%에 육박한다는 이 이야기가 분명 소설이 아닌 실화임에도 왜 자꾸만 의구심이 고개를 드는지... 천 원이면 이 아이들이 한 달동안 굶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하는 광고를 보고 우리 나라 사람 모두 천 원씩만 걷으면 저 나라 아이들 모두가 한 달동안 잘 먹을 수 있겠네? 하던 단순하고 명료한,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생각. 대나무 의자 한 개를 만들 값이면 이 가정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겠네? 하는 생각도 굳은 사고로 보면 그저 이론에 그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무하마드 유누스는 그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실천에 옮기고 증명해 나가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분명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동화같은 이야기,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해피엔딩.그것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의 제일 큰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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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6-03-17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입니다. :)

진/우맘 2006-03-17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접한 리뷰,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딸기 2006-03-23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도착했어요. 근데 아직 읽지는 못했어요. 헤헤
 
누구 그림자일까? 아기 그림책 나비잠
최숙희 지음 / 보림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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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그림책을 고를 때 물론 내용도 살피지만, 저같은 경우는 그림만 예쁘면 홀딱 반해서 사버리는 경우도 많답니다. 그림책을 통해 인지 영역의 발달을 도모하는게 최우선 목적이긴해도, 수준 높은 그림을 보면 아이의 '안목'이 저절로 높아지는 게 아닐까 혼자 생각하거든요.

누구 그림자일까?는 오프라인 서점에서 살펴보질 못했어요. 그래서 본 거라고는 표지뿐인데, 보시다시피 표지 그림은 그냥 단순하잖아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칭찬하는데도 구입하길 계속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받아보니, 와우! 그림이 정말 멋지네요. 미술 기법에 대해선 잘 몰라서 설명하기 어렵지만, 색채와 질감이 굉장히 고급스럽게 느껴져요.

저희 아이는 세 살인데, 이제 막 '그림자'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해서, 책의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그림자를 보고 매번 '검정색'하고 색깔을 말해요. 하지만 '나야나 박쥐'같은 말을 기억해서 따라하며 굉장히 좋아합니다. 조금 더 큰 아이들은 왼쪽 페이지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다음 질문의 힌트를 찾아낼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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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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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마음속에서 저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모모의 장르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는 아니지만,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깊은 감동과 교훈을 주는 점...모두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가져야할 덕목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유년기에 동화책으로 읽고 영화로도 봤던 모모이지만, 어렴풋이 떠오르는 건 진정한 블랙유머(?)를 펼치던 거북이 카시오페이아 정도였다.(그나마도 읽으면서 기억났다) 그렇게 까맣게 잊고 있었기에 모모와의 만남이 더욱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이정도로 정확한 은유는 시간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민화나 신화에서나 가능할 줄 알았는데. 미하엘 엔데라는 한 사람이 창조했다고 보기에는 시간 도둑과 호라 박사, 모모와 친구들은 모두 너무도 완벽한 상징을 담고 있다.

우리가 시간에 대해, 삶에 대해 잊고 있던 사실들-명징하기에 도리어 쉽게 잊혀지는-을 모모와 등장인물들이 나에게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그것은 모모가 시간의 꽃을 본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 일일이 말로 설명하기에는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어른이 되어 모모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게 여겨지는지 모른다. 아무래도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세상에는 모모라는 소녀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으니...회색도당들의 손에서 우리 자신을 구해내려면 어른들 모두가 이 책을 읽는 수 밖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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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ho 2004-04-27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이 읽고 실망한 대표적인 책인데..다들 저보고 정서가 메말라서 그런다더군요.ㅎㅎ 나중에 아이 낳아서 크면 읽혀야지하고 있어요. 님은 좋으셨나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