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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ery Hungry Caterpillar (Board Book, 2nd Edition) - 느리게100권읽기 4색과정 (빨강) ㅣ 느리게100권읽기-1차추천도서
에릭 칼 글 그림 / Hamish Hamilton / 1994년 9월
평점 :
가끔 베스트셀러가 된 책 중에는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테디셀러는 정말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지요.
영어 조기교육 열풍이 그다지 달갑지가 않아...아니, 솔직히 게으른 엄마 때문에 우리 딸아이는 네 살인 지금 영어 책이 달랑 두 권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명신 선생님, 영어그림책 골라주세요>라는 책을 읽고는 영어 그림책이 단순히 영어 조기교육의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좋은 영어 그림책을 읽어 주는 것은 영어 조기해득 외에도 수많은 이득이 있을 것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구입한 책이 <배고픈 애벌레>입니다.
오랜만에 영어 그림책을 읽어 주자니 준비도 필요했습니다. 특히 문제는 독해가 아니라 발음이었지요. 인터넷 영어 사전을 뒤져 액센트와 발음을 연습했습니다.(daum의 영어 사전은 발음을 들을 수 있게 되어 있어 많은 도움이 되더군요.)
그리고는 처음으로 아이에게 읽어 주는데...한글 그림책만 보던 아이는 알아 듣지 못하는 영어가 답답한지 '엄마, 영어 말고 그냥 말로 읽어 줘~' 하고 조르더군요. 엥? 되도록이면 우리 말로 해석해주지 말라고 했는데! 혼란스러운 마음에 당황하다가 첫 날은 그렇게 갔습니다.
다음 날, 고심 끝에 아이에게 '이 책은 영어로 씌여진 책이니까, 오늘은 한 번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 들어 보자.'하고는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말 그림책을 읽을 때보다 다섯 배쯤 '오버'를 했지요.
첫 장에 알이 잎에 놓여 있을 때는 작고 신비스러운 목소리로, 애벌레가 깨어났을 때, 'tiny and very hungry caterpillar'에서는 살짝 애벌레를 짚어 주기도 하고, 'still hungry' 다음에는 책에는 없어도 'I'm hungry, I'm hungry'하며 기운 없이 배를 움켜 쥐었습니다. '어? 아직도 잘 듣고 있네?' 마지막 하일라이트는 토요일에 복통을 일으킨 장면이었지요. 'stomachache!'하며 배를 움켜잡고 구르다가 기절~~~
아이는 그야말로 좋아서 꼴깍 넘어가더군요. 그리고 신기한 것은, 그렇게 연기를 하다보니 엄마인 저도 절로 흥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감정이 고조되니 마지막 나비가 된 장면에서는 어떤 환희가 느껴지더군요. 아마 아이도 그랬겠죠.
영어그림책을 처음 시작할 때 대부분의 아이들은 생소한 언어에 대한 호기심은 잠시이고, 무슨 말인지 모르니 답답해 할 것입니다. 그럴 때 풍부한 억양으로 감정을 살리고, 몸짓을 많이 섞어 재미있게 표현해주면 책읽는 시간이 즐거운 놀이 시간으로 승화되겠죠. 그리고 점점 반복해 읽을수록 뜻은 자연히 이해되고, 결국 평이하게 읽어 줘도 가만히 듣고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참, 그리고 이 보드북은 튼튼하긴 한데 크기가 너무 작아 구멍에 아이의 손가락이 들어가질 않더군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모루'입니다. 보육사같은, 유치원 교구상에서 많이 팔거든요. 철사에 보송보송 털이 솟아 있는 건데요, 울룩불룩한 모양에 연두색 모루는 어찌 보면 애벌레 같기도 해요. 그래서 그걸로 구멍을 통과하며 아이와 논답니다.
아이가 영어그림책을 통해 영어 영재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저 영어를 낯설고 힘든 일이 아닌, 친숙하고 재미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면...그만큼 좋은 일이 또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