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46
에밀리 브론테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199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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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은 여타의 세계명작(도대체 세계명작의 기준이 뭘까?)과 함께 언제나 '청소년 권장 도서'였다. 중학교에 들어간 나는 마치 어른이라도 된 듯 '더 이상 동화는 읽지 않겠다'는 근거 없는 투지(?)에 휩싸여 세계명작을 하루에 한 권씩 해치웠다. 말 그대로 해치운거다. 뼈도 남지 않게 몽땅. 그 당시 읽었던 숱한 세계명작들은 책을 읽은 시간과 함께 머리 속 깊은 곳 무의식의 한켠에나 쌓여있으려나...아무런 기억도, 아무런 감흥도 떠오르지 않는다. 권장 도서 리스트만 복사해줄것이 아니라, 책은 그렇게 읽는 것이 아니라고 누가 한 마디만 충고해줬어도 좋으련만.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폭풍의 언덕은 중학생에게 권하기엔 좀 어렵지 않은가?

성인이 되고, 사랑을 경험하고 결혼까지 한 지금에 다시 읽어도 어렵기만한데, 그 때의 나는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읽었을까? 아무래도, 진정 책을 읽었다기 보다는 단순히 '폭풍의 언덕'이라는 제목으로 뭉친 무수한 문장들을 읽었을게다.

음, 서론이 너무 길군.^^ 일차적으로 결혼 풍습이 생소해서 그들의 사랑에 몰입하기가 힘들다. 사촌간에 결혼을 하고, 그들의 자녀들이 또 결합하고, 이모, 고모, 삼촌, 외삼촌이 다 구별되게 교육받은 나의 사고방식으로는 이 무수한 족보의 얽힘이 상당한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자신을 파멸로 이끌면서까지 격렬한 사랑을 하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라는 인물은 시대를 뛰어넘어서도 빛바래지 않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집안의 내부 묘사와 사람들의 성격 설정도 상당히 뛰어나서 동 세대가 아님에도 머리 속에 그 모습들을 무리 없이 그려낼 수 있었다. 그런 점이 '명작'이라고 칭송되는 이유일까? 모르겠다.

어린 나이에 읽으면 또 그나름의 감흥이 있겠지만, 사랑에 대한 환상이 어느정도 정리되고 난 후에 천천히 읽는 것이 폭풍의 언덕을 제대로 읽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아직도 이 책이 어려운 걸 보면, 나는 사랑에 대한 환상이 정리가 안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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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홍신 엘리트 북스 67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 홍신문화사 / 199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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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위해 먹는가? 쉬운 것 같으면서도 한번쯤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화두이다. 슈호프에게 이 질문을 던지면 그는 뭐라고 답할까?

이 책을 처음 읽었던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대부분의 세계명작은 솔직히 재미는 없다.^^ 솔제니친이라는 낯설고도 거룩해보이는(?)이름에다가,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길고 발음하기 힘든 제목을 걸고 세계명작 문고판 시리즈 가운데 꽂혀있던 이 책에서 나는 손톱만큼의 재미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너무도 재미있었다. 다음 장이 너무도 궁금해서 수업시간에 책밑에 깔고 읽었을 정도였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밥걱정은 해본적이 없던 내가, 슈호프에게 그대로 씌어서는 한조각 빵에도 기쁨을 느끼고, 스프 건더기에 관심을 보였다. 그가 드디어 소세지 조각을 씹게 되었을 때는 얼마나 기쁘던지! 내 입에도 침이 고이는 듯 했다.

슈호프는 굉장히 운이 좋았다. 꽤 많은 먹거리를 손에 넣었으니까. 하지만 책을 덮음과 동시에 수용소에서 벗어나면 '운이 좋았다'라는 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생각이었는지를 심각하게 느끼게 된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처럼, 삶의 기본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충격적으로(게다가 재미있게) 던져주는 책이다.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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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3 - 루프
스즈키 코지 지음, 윤덕주 옮김 / 씨엔씨미디어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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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면만 따지면야, 링 시리즈 중에서는 1편 '바이러스'가 제일 뛰어났다. 하지만 단순하게 공포소설을 진짜 잘 쓰는구나...하고만 생각하던 스즈키 코지를 3편인 '루프'를 접하고는 재평가하게 되었다.

정말 대단하고 뛰어난 상상력이다. '이제까지의 공간은 모두 컴퓨터 프로그램 안에서 생성된 것이었다'라니,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때마침 13층이라는 영화도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었는데, 영화보다 더 개연성이 있고 밀도있는 묘사를 책은 머리아프지 않게 풀어내고 있다. 링 1편을 쓸 때부터 이러한 결론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일까? 작가의 머리속을 한 번 들여다보고 싶은 심정이다.

링 시리즈 4권은 일관성 있는 흐름을 깨지 않는 가운데서도 각자의 색깔이 뚜렷한 훌륭한 작품들이다. 아직 3편과 외전격인 링0 -버스데이-를 읽지 않은 독자가 있다면 모두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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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어주는 여자 명진 읽어주는 시리즈 1
한젬마 지음 / 명진출판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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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여자들은, 어떤 점에서는 불리하기도 하다. 도서대여점에서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한젬마의 예쁜 얼굴이 표지에 커다랗게 박혀있는 것을 보고는 대뜸 책의 내용물은 얼굴만큼 볼 것이 없을것이라는 뒤틀린 심사가 밀고 올라왔다. 하지만 양질의 종이에 그림들이 선명하게 실려 있는 것이 마음에 들어 '한 번 봐보지, 뭐'하는 심정으로 뽑아들었다.

나는 수필보다는 소설을 더 좋아한다. 물론 가끔은 심금을 울리는 감동적인 수필을 만나기도 하지만, 내가 접한 대부분의 수필들은 그냥 대단치도 않은 사적인 글장난같이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보면서도 글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관심은 많았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던 '미술'이라는 분야에 대해 약간의 조언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은 적당하고 좋은 책이다. 유명 화가들의 작품도 있었지만, 일반인들은 눈여겨 볼 기회가 없었던 좋은 그림들을 부담 없이 잘 선별해 놓았다. 사이즈가 작다 뿐이지 인쇄상태도 웬만한 화집 못지 않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나같은 문외한을 위해서 화가의 소개나 작품에 얽힌 에피소드에 대한 코멘트도 조금씩 더 해주었으면 좋았을걸,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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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타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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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은 책을 다 사기에는 언제나 용돈이 딸리기 때문에, 제가 사전정보 없이 책을 구입하는 것은 아주 드문일입니다. 사실은 사전정보 수준이 아니라, 대여점에서 대여해서 읽은 후에 정말 마음에 드는 책만 골라 사는 정도지요.

그런데 암리타를 서점에서 한 번 보고는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화려한 무지개빛 표지에 압도당했거든요. 게다가 뒤 표지에 아사히 신문의 평이 실려 있었는데, '소름돋을만큼 앞서나가는 작가의 감성' 어쩌고 하는 말에 홀딱 반해버렸습니다. '감성'이라는 단어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입니다. 나를 한 마디로 표현해보라고 하면 선뜻 대고 싶은 단어예요. 물론, 아무도 믿어주지는 않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작가에게 묘한 친근감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글솜씨가 아주 좋아서 소설을 썼다면 꼭 이렇게 쓰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실과는 별개로 마음속에 순간순간 일어나는 감정의 떨림이라고나 할까, 설명하기 쉽지 않은 미묘한 정서들을 최대한 알리고 싶어하는 간절함 같은 것이 줄간에서 읽혔습니다. 문득문득 '아...이런 기분 알 것 같아.'하는 아득한 느낌이 전해져왔어요.

한걸음 떨어져서 줄거리만을 살피면 참 얼토당토 않은데, 책을 읽는 동안은 어색하지 않게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여자 하루키'라고나할까요. 본인이나 바나나의 팬들은 그런 표현 싫어하겠지만요.

키친이나 하치의 마지막 연인들 같은 책도 구해서 읽어보고는 팬이 되어볼까... 생각중입니다. 한 번 읽어보세요. 하지만, 그전에 '소설이란 자고로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국어교과서같은 생각은 꼭 잊으셔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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