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를 사랑하는 법 - 자연에 대한 잠언 시집
류시화 엮음 / 나무심는사람(이레)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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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류시화'라는 이름은 내게 있어서 일종의 보증수표이다. 그의 손을 거친 책이라면 절대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다.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런 종류-정확하게 어떻다고 설명하기는 어렵지만-의 책은 요즘 부쩍 많이 쏟아져나온다. 유행인가? 그리고, 십중팔구는 엉성하다. 그냥 이것저것 잡다하게 그러모은 티가 역력하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정말로 자연을 사랑하는 이가, 네 잎 클로버를 고르듯이 하나하나 신중하게 추려놓은 시라는 것이 마음에 와 닿는다. 빡빡하고 매캐한 내 나는 요즘 같은 세상을 살면서, 풀냄새 나는 근사한 곳으로 소풍을 떠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민들레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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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 러시
유미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솔출판사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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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이전에도 '가족 시네마'나 '풀하우스'를 분명히 읽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뒤집어 말하자면 그만큼 '골드러시'가 준 충격이 더 컸고, 이 작품을 통해서야 유미리의 이름을 새롭게 각인했다고나 할까.

책에 몰입해서 실제로 그 사건을 체험하는 듯 여러 가지 감각을 느껴본 적은 많았지만, 촉각과 후각이 책의 감상을 대변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골드러시를 읽는 동안, 그리고 읽은 후 일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불쾌지수 높은 한여름처럼 끈적끈적한 땀냄새가 생생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지만, '엽기'가 넘쳐나는 요즘같은 때에 14살 소년이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사실은 그렇게 충격적이지 않았다. 도리어, 책을 읽고 나서 그가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될 것 같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다.

속물인 아버지, 비행소녀인 누나, 정신지체인 형, 자신을 버린 어머니...'불행'이라는 것이 점철된 듯한 가족구성원이지만, 결정적으로 그가 살인에까지 빠진 것은 그런 구성 자체가 원인은 아닐것이다. 형에게 책임감과 사랑을 느끼지만 타인이 자신을 사랑해준다고 확인받아본 적이 없는 그는 다른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토해내는 '사랑'이라는 것의 흐름이 꺾이고 막혀 그 안에서 터져버린 것이다.

소년이 가족사진을 보면서 느낀 감정을 '희망'의 코드로 읽는다지만, 나는 공감할 수가 없다. 다만, '이미 늦었다'는 실감과 계속되는 비참한 기분이 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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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달린다 - 개정판
요쉬카 피셔 지음, 선주성 옮김 / 궁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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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싫어하는 운동이 바로 달리기이다. 다리는 천근만근, 기관지에서는 쇳소리가 나고, 가슴이 타버릴 것 같은 그 고통... 하지만 무엇보다도 싫었던 것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달려야 한다는 점이었던 것 같다. 우선은, 뚱뚱보에서 멋진 초로의 신사로 변신한 피셔 장관의 모습이 너무 놀라워서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살이 빠져서이기도 했지만, 뭔가 그 사람을 감싸고 있던 기름지고 갑갑한 기운이 싹 가신 개운한 모습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달리면서 살만 빠진 것이 아니라, 인생이나 정신의 군살도 함께 뺀 것이었다.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러야 해탈할 수 있다더니, 그도 달리면서 어느결엔가 그런 경지에 다다른 것이 아닐까? '정치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그처럼 몸도 마음도 건강할 수 있고, 그 이유가 '달리기'때문이라는 것은 참 신선했다. 우리 나라 국회의원들도 몽땅 마라톤을 시키면 좋을텐데.

하지만, 난 아직 달리지 못하고 있다. 피셔는 조깅화만 신고 뛰어나가면 되니 얼마나 간단하냐고 했지만, 우리 집 근처에는 그렇게 근사한 마라톤 코스도 없고, 가뿐한 운동복과 신발도 사야하고, 시간도 부족하고...아직도 이런 푸념만 하고 있는 걸 보니, 책을 헛읽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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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열림원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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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문장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무언가 쓰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썼다고 한다. 어떤사람들은 열광했지만, 또 어떤사람들은 '이것은 소설이라고 볼 수 없다.'고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게...딱히 어려운 어휘도 나오지 않고, 치밀하거나 탄탄한 구성도 아니고...사실로 말하자면, 구성이랄것까지도 없다. 다른 사람에게 줄거리를 설명하기도 어렵다. 주인공의 생각을 따라 여기저기로 뛰어다니는 문장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전혀 산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포레스트 검프의 첫 화면에 나오는 깃털처럼. 'Girl from ipanema'의 보사노바 리듬처럼. 땅에 발이 닿지 않는 듯 가벼운 스텝으로 주인공의 감정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게 소설이라면, 나도 그 정도는 쓸 수 있겠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키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도 그럴것이라 생각한다. 껍데기가 비슷한, 이런 종류의 소설이라면 아무나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물이 쓰레기가 될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 바람의 노래가 될지는 열어봐야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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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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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덮고 나서의 느낌은 웬지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뭘까? 한동안 고민한 끝에 기억해 냈지요. 어린 시절 한창 유행했던 '큐브'를 맞춘 후의 느낌과 꼭 같다는 것을요. 큐브, 귀신같이 잘 맞추는 사람도 있더군요. 하지만 저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다 맞춰본 것이 두어번이나 될까? 몇 박 몇일을 끙끙거리며 이리저리 돌려보고, 신경질 나면 던져놓고 하다가 운 반 실력 반으로 큐브가 딱! 소리를 내며 맞춰졌을 때의 그 느낌! 정말, '죽인다'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죠.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세계의 끝'이라는 판이한 두 공간에서 펼쳐지는 각각의 이야기는 떼어놓고 봐도 손색 없이 완벽하게 진행되어가는 듯 합니다. 하지만 2권쯤 접어들면 순간순간 석연치 않은 기시감이 느껴지지요. 그 감정은 점점 커지면서 독자를 이유없는 흥분으로 끌고 가다가, 마지막 순간에 딱! 소리를 내면서 맞춰집니다. 굉장히 짜릿한 기분이예요.

저같이 머리 나쁜 사람은, 한 번 읽고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세 번째 읽는 지금에서야 '샤프링'이 뭔지 겨우 알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요. 하지만, 반복해서 읽어도 매번 다른 재미가 느껴집니다. 하루키의 팬이라면, '상실의 시대'만으로 하루키를 평가하고 계신다면, 꼭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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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이 2005-04-14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말이^^ 걸작이죠 걸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