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꿈을 꾼 것 같습니다. 책을 덮고 나니 사방이 조용해서, 모두들 나만 놔두고 어디로 가 버린게 아닌가...싶더군요. 제목 때문인지, 사과꽃 냄새가 여운으로 남는 것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꿈은 꿈일뿐, 깨고 나면 무안하고 허망한 것이죠. 이 책도 그렇습니다. 읽는 동안은 내내 한숨짓고 눈물 흘렸으면서도, 책을 덮고 나면 내가 느낀 감정들이 순간 무안해지지요. '감동'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뻔한 줄거리이고, 뻔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정원'의 뼈대에, '국화꽃 향기'의 로맨스와 '가시고기'의 눈물을 섞으면 꼭 이런 책이 한 권 더 나오지 않을까요. 잠시나마 사랑에 대해 꿈꾸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이 책을 읽어도 좋을 것입니다. 단, 깨고 난 뒤의 허무함을 감당할 수 있다면 말이지요.
윤대녕이란 이름은 '00 문학상', 'XX문학상'등의 책에 보아왔기에 눈에 익었다. 하지만, 문학상을 받은 작품을 모아 낸 책에서는 이상하게 작가의 향기나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몇 편 읽었음에도 기억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결국, 사슴벌레 여자로 윤대녕과 처음 만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어렵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 내포한 의미니, 상징이니를 따지자면야 굉장히 어렵겠지만, 줄거리 자체는 부담없이 술술 잘도 넘어갔다. 재미도 있었다. 딱히 뭐가 재미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캐릭터도 신선하고, 상황도 독특하고... 근데, 뭔가 결정적인 하나가 부족한 느낌이다. 다 좋은데 좀 싱겁다고나 할까. 마음을 확 끌어당기는 결정적인 뭔가가 부족한 것 같은데... 그게 뭘까? 그의 다른 작품도 두루 읽어본 후에야 답이 나올 것 같다.
이 책을 선물한 친구가, '너는 요즘 어떠한 때 가슴이 뛰니?'하고 물었지요. 엥? 당황한 저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아! 박효신의 목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막 뛰어!'라고... 엉뚱하기 그지없는 대답을 했습니다...쩝.이 책은, 보는 사람마다 제목이 멋지다고 칭찬을 하더군요.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 아주 근사한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가슴이 뛰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한다니, 정말 그렇게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책의 내용이 주는 감동은 제목 한 줄에서 받은 감동보다 더 약했습니다. 제가 세상에 너무 많이 닳아졌나봐요. 이야기 해주는 사람이 정말 외계인일까? 하는 쓸데없는 궁금증에만 정신이 쏠리더라구요. 하긴, 한 번 읽고 말 책은 아니니까요.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열심히 읽으면서 포스트잇도 껴 놓고, 마음이 힘들어질 때마다 펼쳐보면 위안이 되지 않을까요?
어쩌다 그리되었는지도 모르게, 속독이 버릇이 되어버렸다. 요즘들어서는 그 증상이 점점 심각해져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삼키는' 기분이 들 정도이다.평소 버릇대로 읽었더라면 10분도 길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책인데... 30분은 봐야하지 않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한 줄 한 줄을 열심히 노려보았다. 처음에는 무의미하다 싶을 정도로 답답했지만, 책의 절반이 넘어가니 순간순간 고개를 끄덕이고 잠깐씩 먼 곳을 바라보는 일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 고 앙징맞은 짧은 문장들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고, 그 이야기는 작가가 만들어낸것이 아닌 내가 그 문장에 부여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결국 다 읽는데는 며칠이 걸렸다. 이 책은 술렁술렁 책을 넘기는 증상의 치료제이며, 또한 대강대강 인생과 시간을 넘기는 증상의 완화제이기도 하다.
'야한 만화'는 꽤 여러 권 본 경험이 있습니다. 전등이 켜져 있는데도 침침한 기분이 드는 만화방에서, 혼자 얼굴 빨개지면서 본 그 성인 만화들. 스릴 만점의 흥분에 신나게 읽지만, 만화방 문을 나서면서는 웬지 아주아주 찝찝하고 텁텁한 기분이 들면서 '내가 왜 그런 만화를 봤을까...' 언제나 후회하고는 했지요.능력 있는(어떤 능력일까~^^) 남자 주인공과 몸매 빼면 별로 남는 게 없는 여자 주인공들이 전개해가는 이야기들은 현실감도 없을 뿐더러, 지독한 마쵸정신과 구성애 님이 본다면 펄쩍펄쩍 뛸만한 잘못된 성지식으로 가득차 있었거든요. 보고 있는 동안은 '재미'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그런 생각들이 불쾌한 뒷맛으로 한동안은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필링은 아주 특별하네요. 남자 주인공은 페미니스트라고 봐도 될 정도 여성을 존중할 줄 아는 딱! 미래의 공처가 감이고, 여자 주인공은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결정할 줄 아는 똑똑함을 지녔습니다. 줄거리 또한 기존의 성인만화에 비하면 평범하지요. 두 남녀가 만나고, 사랑을 이끌어가는 모습은 지금도 어디에선가 펼쳐지고 있을법한 현실감이 있습니다. 19세 미만은 볼 수 없는 성인 만화이고, 사실 또 많이 야하지만, 청소년들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박무직님은 그림을 어쩌면 그렇게 기가막히게 그리시는지,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너무너무 예뻐서 '야하다'는 생각보다 따뜻한 미소가 먼저 떠오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