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1.2권 합본) - 우리 소설로의 초대 4 (양장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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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뜻 서평을 하기가 아까울 정도로 깊은 감흥을 주는 책이 간혹 있다. '칼의 노래'도 그런 책이었다. 이 작품의 매력을 뭐라 말해야할까.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생생히 재구성해낸 역량? 주인공의 깊은 사유를 드러내주는 품격있는 문장? 특별한 기승전결 없이도 술술 풀려나가는 편안한 구성? 모두 다 높은 점수를 쳐주고 싶지만 무엇보다도 큰 매력은 작품 속에서 되살아난 '이순신'이라는 인간 자체일것이다. 아들의 죽음을 어린시절 토해낸 젖냄새로 기억하며 숨어 우는 아버지. 군량이 부족하여 처참하게 굶는 병졸들을 곁에 두고 밥상을 받아야하는 매끼니를 고통스러워하는 덕장.

품었던 여인을 적장의 배 안에서 주검으로 발견하고 남모래 한숨을 토하는 사내. 무수히 떠오른 적의 시체를 보며 그들도 한 가정의 아들이자 아버지였음을 고뇌하는 한 인간. 그래서 적 자체보다 '적의 개별성'을 더 큰 적으로 생각하는 철학자. 외강내유를 힘겹게 실천하는 이순신은 너무도 생생한 인간미를 가지고 있어 흠모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작가는 이 작품이 소설임을 견지하고 읽어달라 하지만 어느덧 내 속에서 광화문 네 거리의 동상, 나라의 수호신 이순신과 칼의 노래의 인간 이순신은 둘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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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요네즈 - 제2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전혜성 지음 / 문학동네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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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소설, 드라마, 영화에서 어머니의 모습은 대부분 정형화되어 있다. 가족과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끊임없는 사랑. 태어난 그 순간부터 어머니였던 것처럼 모성애로 점철된 그 모습이 현실에도 여과없이 적용될 수 있을까? 마요네즈는 기존의 소설과는 판이한 스타일의 엄마를 보여준다. 일찍이 철이 난 딸에게 세 살배기 아이처럼 묵직한 짐이 되는 철없는 엄마. 아버지 병구완은 일보는 아줌마에게 맡기고 머리에 마요네즈로 팩을 하는, 딸의 마음을 궁금해하고 아는체하면서도 한 번도 심중을 헤아려주지 않는 늙은 엄마.

그 성장기와 현재는 가족이 애정이 아닌 애증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가정이 때로는 견디기 힘든 심리적 압박의 원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일련의 과정들은 '여성'을 억누르고 배제해야만이 '어머니'로 거듭날 수 있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모순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기도한다. 여자이되 여자일 수 없는 '어머니'. 소설은 아무런 결말도 제시해주지 않는다. 한바탕의 카타르시스로 극적인 관계 개선이 되는 경솔함을 저지르지 않는것이다. 하지만 책을 덮고 곱씹어보면 그냥 깨닫게 된다. 가족이기에 그렇게 미워할 수 있고, 미워하면서도 사랑할 수 있으며, 또 보듬어 안을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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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토니 모리슨 지음, 김선형 옮김 / 들녘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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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배경음악으로, 조용한 커피숍에서 잔잔히 깔리는 음악으로, 재즈는 제법 우리 생활에 깊이 파고들어 있다. 곡의 분위기에 따라 때론 부드럽게, 때론 신나게 즐길 수 있는 편안한 음악 재즈. 그런데 지금 듣는 음악의 장르가 '재즈'라는 것을 각성한 순간 그 편안함은 간데 없이 사라지고 만다. '음...이게 재즈였구나. 제목이 뭐지? 노래는 누가 했나? 연주는? 허...이런 걸 무슨 장르라고 했더라...' 갑자기 학구적인(?) 자세가 되어 음악 자체의 느낌은 잊어버리기 일쑤이다.

음악을 들을 때와 똑같은 실수를 책에서도 저질렀다. 그냥 그 문장들에 편안하게 젖어들었으면 좋았을것을. '그래! 재즈처럼 읽고 감상해야된다 이거지!'하고 뻣뻣하게 신경을 곧추세우고 책을 노려보다보니 정말 문장이 전해주는 흥은 발견하지 못하고 지루하고 힘들게 책읽기를 마쳤다. 정작 그런 규정을 버린 자유로운 애드립이 재즈의 가장 큰 특성이건만...쩝.


이 소설이 영화화되었던가? 원작에 충실하게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다면 훨씬 즐겁게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도대체가, 죽은 소녀가 흑인인지 백인인지도 분간이 안되니...난감한 노릇이다.

이제 이 책을 접하려는 독자들에게는 강력히 권하고 싶다. 앞에 실린 서평은 절대 먼저 읽지 말 것. 선입견과 사전 정보는 싹 잊어버리고 더운 욕조에 들어앉은 듯 릴렉스... 듣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편안한 재즈 음악과 함께라면 더할 나위가 없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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商道 - 전5권 세트 상도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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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인물을 소설적 각색을 거쳐 되살려내는 일. 국내에서는 '동의보감', 국외에서는 '람세스'가 비슷한 분량과 과정을 거친 책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두 작품 모두 품격과 재미를 겸비한 훌륭한 책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뒤늦게 접하게 된 '상도'에 대한 기대도 컸다. 하지만, 5권의 마지막장까지 덮은 지금, 사람들의 열광과는 별개로 나의 평가는 싸늘해졌다. 이야기의 스케일과 실존 인물의 매력에 비해 작가의 문장이 너무 다듬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나의 소견.

국내 여성 작가들의 세련되고 깔끔한 문장에 너무 길이 들어있는 탓도 있겠지만, 상도의 문장들은 가끔 국문법엔 자신 없는 나도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읽어볼 정도로 아귀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신문 연재 소설도 아닌데 중간중간에 지루하게 삽입되는 줄거리 요약은 독자가 생각할 공간을 무너뜨리며 식상함을 더했다. 드라마 '상도'가 시작하기 전에 '지난 줄거리'를 해주는 것은 혹시 원작에 충실하기 위함인가? 하는 엉뚱한 생각마저 들었다.

더불어 소재가 빈곤한 것도 아니건만 몇 번이고 반복되는 문구들도 책읽기를 힘겹게 했다. 임상옥과 송이가 운우지정을 나누며 했던 대화는 송이가 등장 한 후 서너 번이 넘게 반복되어 나중엔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방대한 양의 고사와 진정한 상도, 인생에 대한 고찰을 주는 주제는 작가가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를 저절로 알게 한다. 하지만 옥석도 잘 다듬어야 그 빛을 발한다고 스스로 인용했지 않은가? 감히 평하건데, 반복되는 지루한 문장들을 쳐내고 다듬어 책의 분량이 한 두 권 줄어든다면 훨씬 더 가치있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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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 1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 1
키류 미사오 지음, 이정환 옮김 / 서울문화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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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데, 괜히 19세 미만 구독불가의 딱지를 붙이고 나타나서는 유난을 떤다. 구전동화, 특히 북유럽 지방의 동화들이 잔혹하다는 것은 이 책 이전에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보태져서 더욱 독특하게 각색되었다고 하기에 큰 기대를 가지고 읽었다. 그러나 새로운 내용은 책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작품의 품격을 포기했으면 재미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이야기들은 크게 엽기적이지도, 공포스럽지도 않은데다가 별 재미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책의 구성. 19세 미만 구독 불가라면 당연히 성인을 위해 만든 책일진데, 아동용 하드커버에 커다란 글자가 왠말인가?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작품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두 권으로 뻥튀기기라고 생각된다. 그냥 큰 기대는 갖지 말고 심심풀이로 읽으시길. 혹여 동화의 순수한 세계만을 들어온 독자에게는 신선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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