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전집 1 (양장) - 주홍색 연구 셜록 홈즈 시리즈 1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시드니 파젯 그림 / 황금가지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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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는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두번쯤 읽으면서 자랐을 것이다. 나 역시도 홈즈의 팬이었지만 고상한 순문학(?)에만 높은 가치를 두던 사회풍조 때문이었을까, 홈즈를 읽으면서는 언제나 질이 낮은 책을 재미로 읽는다는 죄책감이 동반되었다. 그러나 하지 말라는 것은 무엇이든 재미있지 않은가? 그런 죄책감은 책을 읽는 재미를 더욱 배가시켰다. 어쩌면 이리도 똑똑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냈을까, 마냥 신기할 뿐이었다.

이제 복고 바람을 타고 다시 떠오르는 홈즈. 하지만, 세상이 변한건지 어른이 된 내가 약아진 것인지... 그 명석해보이던 셜록 홈즈가 조금은 어설퍼 보인다. 특히 주홍색 연구에서는 별다른 추리도 없이 범인을 너무 수월하게 잡은 것 같은 느낌이다. 그만큼 극적인 반전이 없었다는 얘기. 바닥에 흥건하던 피가 코피이고, 흥분 상태에서 코피가 나올 정도면 몸에 피가 많은 사람이므로 혈색이 좋을 것이라니...맞는 얘긴가? 이 정도면 '추리'가 아니라 '추측', 혹은 '억측'이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후반부의 모르몬 교에 얽힌 사랑과 복수의 활극은 그런 단점을 많이 보완하여 덮을만큼 매력적인 구석이 있었다. 다음편, 그 다음편에서는 다시 명석한 홈즈에 대해 감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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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국의 딸들 - 나남창작선 29 나남신서 105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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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은 언제나 희극보다 더 강한 흡인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삶의 잔인한 속성에 언제나 한숨 짓고, 우울해지면서도 김약국의 딸들을 몇 번이고 되 읽게 되는 것은 그런 이유이리라. 아니, 몇몇의 다른 이유들도 있다. 조선의 나폴리라고 한다던가. 통영이 가진 아름다움을 맛깔나게 술술 펼치는 초반부의 입담과 끝까지 매력을 잃지 않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그 특유의 사투리. 한 때 아리랑에서의 전라도 사투리에 홀딱 반하여 경상도 사투리란 투박하고 거칠다고만 생각해왔던 나에게, 말 끝마다 감정이 뚝뚝 묻어나는 듯한 통영의 사투리는 더할나위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유교의 뒤끝자락, 근대사에서 아들들이 아닌 딸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지만 그 딸들이 모두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수난사는 이례적이라고 할 수 는 없다. 그렇지만 이례성이 반감되었다고 비범함마져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끝간데 없이 이어지고 겹쳐지는 비극이 작위적이라는 느낌 하나 없이 독자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다. 그 비극의 절정은 내가 볼 때는 용란보다는 용옥이다. 전형적인 한국의 여인상, 지은 죄 없이 벌을 짊어지던 용옥의 죽음은 슬픔보다도 분노를 자아낸다.

3대에 걸친 긴 가정사가 그리 길다고 할 수 없는 분량에 집약되어 있음에도 이 소설에서는 빈틈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작가의 경륜이라는 것이 우습게 볼 것이 아님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2~3년이 지나면 나는 다시 한 번 김약국의 딸들을 뽑아들고 읽게 될 것이다. 그러는 이유는 나 자신도 알 수 없다. 비극이 희극보다 흡인력이 강하다는 말을 다시 되풀이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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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학고재신서 1
최순우 지음 / 학고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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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요즘 세대들은 외국의 문화 예술에는 두루 해박함에 비해 한국 문화 예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기 십상이다. 나 자신도 한국의 예술 작품들은 그저 국사책에나 어울리는 고리타분한 것이라고만 생각해왔다.

수학여행지에서 둘러본 불국사며 석굴암, 고분에서 출토됐다던 각종 물품들은 왜 그렇게도 보잘것 없고 시시하게 느껴졌던지.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아무리 훌륭한 문화 예술도 그것을 보고 느끼는 능력을 갈고닦지 않으면 제 몫의 감흥을 불러일으키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가가 제일로 꼽는 한국미가 '담박한 간소미'인데 어린 나는 금칠은칠한 으리으리하고 화려한 것을 찾았으니 아귀가 어긋나도 한참을 어긋난 것이리라. 어디서 한 번쯤은 본 듯한 주요한 유물들을 대상으로 한 점은 다른 책들과도 다를바가 없지만, 그 접근방법은 매우 색다르다. 단순한 해설에 그치지 않고 작품을 감상하는 법과 그것이 우리의 문화 유물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은연중에 길러주는 것이다.

지금 다시 고적지나 박물관을 찾는다면 같은 작품에 대한 감상도 180도 달라질 것임을 느낀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도 우리 유물들이 어느 시대 어디서 어떤 기법으로 만들어졌는지나 달달 외우게 할 것이 아니고, 무량수전...에 수록된 글과 같이 그것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고 감상할 수 있게 가르쳐야할 것이다. 시대나 기법은 작품설명에 다 나와있는데, 굳이 외워야할 필요가 없지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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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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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사전지식도 없는 작가의 소설을, 실물은 곁눈으로도 보지 않고 선뜻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하게 된 것은 매력적인 서평들 때문이었습니다. 달의 궁전을 읽고 좋은 별점을 주신 분들의 서평을 찬찬이 읽다보니 하나같이 이 작품과 작가에게 깊이 매료되었다는 느낌을 진하게 풍기더군요. 좀 거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 정도의 좋은 문장으로 감상을 펼치시는 분들이 칭찬하실 정도라면...하는 것이 달의 궁전을 읽기 전 제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저 역시 폴 오스터의 팬이 될 것 같은 기분입니다.

MS의 방황이 펼쳐지는 초반부는 분명 나름의 매력은 있지만 조금 난해하고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홀든 콜필드가 대학을 간다면 그런 생활을 하게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에핑이 등장하면서부터는 마치 액션 영화를 보는 듯한 속도감과 흥분으로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재미와 품격' 진부하지만 이것은 모든 예술작품이 추구하는바라고 생각합니다. 달의 궁전은 바로 이 재미와 품격을 겸비한 작품입니다. 서부 영화 같은 황당한 줄거리가 펼쳐지고, 우연에 우연이 겹쳐도 결코 조악하거나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는 그 무엇. 삶에 대한 작가의 치열한 성찰이 그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어서 그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어지는군요.

참! 책을 구입해서 받아보신다면, 푸른색 겉표지를 한 번 벗겨보세요. 검은 양장에 강렬한 금빛 제목... 저는 이 속표지가 훨씬 더 마음에 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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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캐처 1
스티븐 킹 지음, 김현우 옮김 / 창해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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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재미있는 작품을 쓰는 대중 작가정도로만 생각해오던 스티븐 킹을 재평가하게 된 것은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를 읽고부터 였습니다. 그저 가볍게 한 번 읽고 말기에는 아까운 '뭔가'가 있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런 은근한 흠모는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으면서 강렬한 열정으로 바뀌었습니다. 문장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책이란 재미있어야한다고 당당히 주장하는 이 작가의 작가론, 소설론에 홀딱 반한것이지요. 드림캐처는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은 후 바로 읽기 시작한 스티븐 킹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책의 첫 장을 펼치자 즐겁고 신나던 기대감에 찬물을 쫘악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위, 아래, 좌, 우의 널찍널찍한 여백과 큼지막한 글씨는 독자를 편안한 독서로 이끌기 위한 배려라고 보기에는 너무 심했습니다. 총 네 권이나 되기에 오랜만에 스티븐 킹이 대작을 써 냈구나! 하고 감탄했건만은...총 분량은 두 권짜리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보다 결코 많아보이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책에 몰입해 들어가기 전에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기분을 망쳤습니다. 번역하시는 분은 자기가 어떤 내용을 번역하고 있는지 알고나 계셨는지... 주인공들의 이름이 자꾸 잘못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바비는 벌써 밖에 나가있는데 어떻게 바비의 발에 걸려 넘어질 수 있는지, 참내. 책의 도입부, 주인공들에 대한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꾸 그런 실수들이 반복되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 부분이 잘못된 것이 확실한지 계속 다시 읽어야 했고 그렇게 딴지가 걸릴 때마다 스티븐 킹 소설 특유의 속도감을 따라잡을 수 없어 작품에 몰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밖에도 따로 국어를 전공하지 않은 저도 확실히 알아채고 눈살을 찌푸릴만한 문맥의 오류도 군데군데 두드러졌습니다. 그저 매끈하지 못하다...정도가 아니라 이건 문법적으로 확실히 틀렸다!고 생각되어 접어 놓은 부분을 주인공 이름의 오류 때문에 접어 놓은 부분과 합해보니 한 권에 적어도 네댓번은 접혀있더군요.

드림 캐처 자체는 여러 면에서 스티븐 킹의 작품 중에 평작은 되는 편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의 팬이라도 그렇지... 성의 없는 번역과 상술이 들여다보이는 편집으로 흥이 깨지자 즐거운 독서는 커녕 불쾌하고 지루한 시간을 힘들게 버텼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가 문장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 작가인지를 확연하게 알 수 있었던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고 난 직후였기에 그런 불쾌감은 더 심해졌던 것이겠지요.

우선 제가 확인한 부분이라도 수정을 요구하는 메일을 출판사 측에 보낼 예정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성의 없는 번역이나 권 수 늘리기를 목적으로 한 뻥튀기 편집이 더이상 독자를 우롱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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