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김호영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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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구분지어 말하자면, 전 장 자크 상페의 글 보다는 그림의 팬입니다. 글도 좋지만, 그림이 없는 그의 글은 상상이 안 되는걸요. 아무렇게나 쓱쓱 그려낸 것 같이 자유와 기지가 느껴지는 오밀조밀한 삽화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언제나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고물거리고 있는 아기의 주먹을 펼쳐보는 기분이 들어요.

동심의 흐름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적절한 순간에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은 아무에게나 있는 것이 아닐겁니다. 특히나 나이 먹어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능력을 유지하기는 정말 어렵겠지요. 하지만 꼬마 니콜라를 처음 봤을 때의 감동이 얼굴 빨개지는 아이에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을 보면, 상페는 그 어려운 일을 어찌어찌 해나가고 있는 것 같네요. 책을 다 덮고 나면, 잠시 푹 쉬었다는 개운함이 느껴지는 참 예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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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문학사상 세계문학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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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심, 그렇게 높이 평가할만한 심리상태는 아니다. 지적인 허영심도 역시, 남부끄러워 해야할 특성일까? 독서에 있어서는 잡식성이지만 내겐 '빌려 읽을 책'과 '사서 읽을 책'의 목록이 별개로 구성된다. 그 경계를 결정짓는 가장 큰 기준이 바로 그 지적 허영심일 것이다. 서가에 꽂혀 있는 게 남부끄럽지 않을 만한 책. 지하철에서 누군가 읽고 있으면 그 사람 자체가 왠지 다시 보이는 책.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그런 나의 지적 허영심을 200% 자극하는 책이었다. 들어본 적 없는 저자와 특이한 제목, 내가 평소 굳게 믿어마지않는 문학사상사 출판, 게다가 읽어본 사람들이 '나름대로 재미있다'라고 평가하는 책. 인터넷 서점에서 얻은 사전지식이 전부인 상태로 덥썩 구입했다.

하지만 결과는 2/3를 읽고 지지부진, 진도가 없다. 근대의 일본 사회라는 배경 자체에 대한 아무런 관심이나 흥미가 없을 뿐더러,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의 행태와 언어가 매력적으로 다가오질 않았다. 게다가 그 고양이, 고양이치고는 되게 고리타분한 녀석이다. 짜식이 조금만 더 기발하고 재미있었어도 독서를 중간에 중단하진 않았을텐데.

한 수 배웠다. 멋져보인다고 관심도 없는 분야의 책을 덥썩 사지 말 것. 하지만 내 책꽂이에 꽂혀 있는 이상, 언젠가는 심호흡을 한 번하고 다시 덤벼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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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ho 2004-04-27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너무나 지루하게 읽었어요. 초반까진 잘 읽다가 중간부턴 슬 지겹고 끝엔 책 값에 아가워서 읽었지만 읽고나니 뿌듯하더군요

두심이 2004-05-03 0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과 같은 동기로 구입했죠. ㅋㅋ..아직 부끄럽게도 읽지못하고 있습니다. 님의 글을 읽으니, 헉! 어쩐다...

진/우맘 2004-05-03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어요 님...책은, 누구에게나 다른 느낌으로 다가가잖아요. 즐거운 독서경험이 될 수도 있으니, 너무 선입견은 갖지 마시길.^^;
 
달과 6펜스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25
서머셋 몸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199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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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릭랜드는, 보통의 기준으로 평가하자면 분명히 악인이다. 아내와 가정을 무책임하게 버렸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친절하게 대할줄을 모르며, 은인의 아내를 빼앗아 자살에까지 이르게 했다. 하긴, 마지막 문장은 조금 더 고려해보아야겠다. 빼앗으려는 의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여하튼 분명히 그는 좋은 사람의 범주에는 들기 힘들며, 이야기를 끌어나가고 있는 화자에게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소설을 읽고 있으면 어느새 그에게 매료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기이한 행적들이 이해되거나 매력적으로 비친 것도 아닌데도 스트릭랜드, 그에게 빠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감정은 나만이 느낀 것은 아닐성싶다.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화자 역시도 기이한 인간성의 탐구라는 단순한 흥미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애정(이라고 표현하기엔 조금 낯간지럽지만)으로 변모했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그런 화자의 자연스러운 감정 변화에 나도 편승했을지도 모를 일이고.

단순한 고갱의 일대기가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이 많이 가미된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책을 덮은 지금 내 머릿속에서는 스트릭랜드와 고갱이 다른 인물이라고 나뉘어지질 않는다. 욕망이 배제된 순수한 열정이 느껴지는 고갱의 작품들이 책을 읽는 내내 눈 앞에 전개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스트릭랜드의 마지막 작품, 오두막의 벽화도 마치 본듯이 그려낼 수 있을 것 같다. 강렬한, 기이한 생명력으로 가득찬 그림. 스트릭랜드의 도움을 받아 고갱을 바탕으로 창조된 나만의 그림. 그 뿌듯한 감동이 책의 재미를 더욱 배가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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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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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엔 책에서 교훈을 얻어야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사실 나는 책을 '즐기기위해' 읽는다. 교훈적인 책들은 한결같이 따분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진작부터 책꽂이에 꽂혀 있었던 '모리...'를 미적거리며 읽기를 미뤘던 것도 교훈적일 것 같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나의 예감은 적중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정말 교훈적이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아주 재미있었다!

그저 단순히 '재미'라고 칭하기에는 경박스러운 감이 없지 않다. 진부하지만 감동적이라는 표현을 쓸 수 밖에. 이 늙고 병든 노교수는 내가 살아가면서 의문스러워하던 문제의 대부분을 쉽고도 간결하게 해결해주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남들 하는대로 살아가면서 내가 너무 진부하게 삶을 꾸리는 것이 아닌가 항상 의심스러웠다.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도 아이가 내게 주는 기쁨보다는 아이때문에 누리지 못하는 자유와 시간에 언제나 갈급했다.

'사람들이 자식을 낳아야 되느냐 낳지 말아야 되느냐 물을 때마다, 나는 어떻게 하라곤 말하지 않네. '자식을 갖는 것 같은 경험은 다시 없지요'라고만 간단하게 말해. 정말 그래. 그 경험을 대신할만한 것은 없어. 친구랑도 그런 경험은 할 수 없지. 애인이랑도 할 수 없어. 타인에 대해 완벽한 책임감을 경험하고 싶다면, 그리고 사랑하는 법과 가장 깊이 서로 엮이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자식을 가져야 하네.'

그 몇 줄의 문장으로 모든 의문은 사라졌다. 언제나 자식을 위해 희생한다고만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아이는 내게 이제껏 배우지 못한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학교였던 것이다. 내가 아이에게 사랑을 준다고 하지만, 사실 아이가 내게 주는 것과 같은 절대적이고 순수한 신뢰와 사랑을 어디에서 경험할 것인가?

모리는 책의 마지막 장까지 나를 북돋아 격려해주고, 이끌어 가르쳐주었다. 내가 이제껏 읽어왔던 어떤 책보다도 많은 교훈을, 그것도 살아있는 교훈을 준 것에 깊이 감사한다. 심지어 이제껏 없던 좌우명이라는 것도 생겼다. '사랑이야말로 유일하게 이성적인 행동이다!' 으로는 누구보다도 이성적인 사람이 되려고 애쓸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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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루 속의 뼈 -상
스티븐 킹 지음, 한기찬 옮김 / 대산출판사(대산미디어)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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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었던 스티븐 킹의 작품들 중 최고의 작품은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 그 다음은 '유혹하는 글쓰기', 그리고 뒤이어 '자루속의 뼈'를 추가하기로 했다. 한창 스티븐 킹에 빠져있는 내게 조악한 번역과 편집으로 찬물을 끼얹은 '드림 캐쳐', 그 실망했던 마음을 자루속의 뼈가 충분히 위로해 주었다.

'공포'라는 면에서는 그의 이전 단편들보다는 조금 뒤쳐진다. 아니, 뒤쳐진다는 표현은 적합치 않다. 질이 다르다고나 할까. 짜릿할 정도로 오싹한 두려움을 주던 기존의 공포와는 달리 자루 속의 뼈에서는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별장 '웃는 사라'를 둘러싼 알 수 없는 기운처럼 음울하고 묵직한 공포가 전면에 걸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모자란 스릴을 채우고도 남을만큼 멋진 사랑이야기가 있다. 부록으로 스티븐 킹 자신의 느낌이 강하게 와닿는 작가론까지. 마이클 누난의 모델이 본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죽은 아내 조애너와 그에 대한 사랑도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그려졌던 스티븐 킹의 아내와 닮은 구석이 많다.

매티와 행복한 해피엔딩을 이루었다면 내 마음이야 말할 수 없이 뿌듯했겠지만, 그녀가 죽고 난 후 키라를 지키기 위한 극적인 사투의 속도감은 즐길 수 없었을테니 아쉬움을 접을 수 밖에. 그런 진부함을 살짝 비켜가는 재치 때문에 더욱 스티븐 킹에게 빠져들게 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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