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게임
리처드 바크만 지음 / 반도기획 / 199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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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 멀지 않으리라고만 추측되는 미래의 어느 시간, 미국은 군부 독재 국가가 되어 있다. 이 나라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가 있으니, 바로 '롱 워크'. 말 그대로 오래 걷기이다. 18세 이하의 건강한 소년들만 참가 신청을 할 수 있고, 체력과 정신력을 테스트하여 통과된 소년들 중에도 추첨을 통해 100명만이 이 경기에 나가게 된다. 끝까지 오래 걸어 남는 1명에겐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이라는 어마어마한 포상이 주어진다.

그저 오래 걷기에 이런 포상이 따르고,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것이 의아하지 않은가?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경기에서 패하는 자는 모두 '죽음'이라는 댓가를 받게되는 것이다. 시속 4마일 이하로 떨어지면 경고를 받게 되고, 한 시간을 경고 없이 걸으면 1회의 경고가 없어진다. 그러나 경고를 없애기 전에 3개의 경고가 누적되고 마지막 4번째 경고를 받게 되면...해프트럭을 타고 뒤따르던 군인들의 기관총에 사살되는 것이다.

이런 얼토당토 않은! 줄거리만 보고는 누구나 그렇게 말할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누구인가. 바로 스티븐 킹이 아닌가. 그의 귀기어린 글솜씨는 이런 얼토당토 않은 상황을 공포와 스릴이 가득 넘치는, 심지어는 현실감마저 느껴지는 사건으로 뒤바꾼다. '걷는다'라는 사실 하나를 바탕으로 편집증이 느껴질만큼 몰입하는 그의 글재주에는 누구든 매료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역시도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들었다가 새벽이 되어 결말을 확인할 때까지 책을 덮지 못했다.

기대한 것보다는 허무한 결말이었지만, 사실 그 허무함이 있기에 이 소설이 그저 시간 때우기용 소설에 그치지 않고 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게 만드는 것 같다. 어이 없을 정도로 기발한 발상, 그 발상의 힘을 끝까지 잃지 않고 끌고나가는 필력...스티븐 킹,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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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1
김형경 지음 / 문이당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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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상 학교 다닐 때는 교육 심리학을 배웠고, 요즘 들어서는 미술 심리치료를 공부하고 있던 터라 정신분석이 주가 되는 이 책을 접하자 자꾸 분석하고 어의를 따져보는 학구적인(?) 자세를 버리지 못하겠더군요. 2권의 중반 이후부터서야 그런 불편한 힘을 빼고 편안하게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세진에게서, 인혜에게서 나와 비슷한 점을 발견해내고 그녀들의 감정에 이입할 수 있더라구요.

결국은 다른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두 사람이지만, 중간 단계까지의 세진과 인혜를 양 극단에 놓고 굳이 하나를 골라내라면, 저는 인혜쪽에 더 가깝습니다. 인혜가 사랑을 대하는 일반적인 태도, 다 겪고 다 초월해서 개념정리까지 완료된 듯 한 차분함, 자신의 상황에 맞추어 합리적인 결론으로 사랑을 끌어다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스스로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히는 어리숙한 구석...표면은 조용하고 차분한데, 그 내면 무의식은 드글드글 끓고 있는 인혜의 행동거지들을 보며 이 여자는 참 나와 비슷하구나 하고 자주 떠올렸습니다.

세진은...나라면 그렇게는 살지 않겠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녀의 착한 여자 컴플렉스에는 많은 부분 공감했습니다. '친절한 사람을 주의하라...'는 구절에 가슴이 뜨끔하더군요. 친절이 저의 모토거든요. 티 타임에 차를 타거나, 다른 사람이 귀찮아하는 심부름을 맡아하는 등 사소한 친절을 내세울 수 있는 일. 그런 일들을 언제나 진심으로 즐겁게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술자리에서 술을 따르는 것이 왜 여성들에게 치욕스러운지를 마음에서 느껴본 적이 없고, 대학 초년생때는 심지어 담배를 집어드는 선배들에게 담배불을 대주려고 하다가 '정숙한 여자는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아니다'라고 질책을 받기도 했습니다.

세진의 상담과정을 따라가며 그런 것들이 다, 과잉친절을 베풀고 그만큼의 보상으로 사랑받기를 원하는 내밀한 욕망, 자기연민에서 비롯된 것임이 느껴졌습니다. 또한 세진이 경호에게만은 잔인했던 것처럼, 가장 가까운 남편에게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가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밖에서는 아무리 자잘한 심부름도 기꺼이 나서서 처리하면서, 집에서는 꼼짝 않고 알게모르게 남편을 부릴 기회만 호시탐탐 노립니다. 어떤 가부장적인 집에선 남편이 누워서 '재털이, 리모콘' 한다던데, 저희집에선 도리어 제가 앉은 자리에서 '오빠~ 휴지 한 장만, 오빠~ 나도 물~'하고는 하죠.

가장 믿는 이,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사랑해줄거라는 오만이 그런 사소한 상황 뒤에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스스로 놀랐습니다. 계속 인혜를 동일시하고, 그녀의 시각에서 세진을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결국 세진과 함께 정신분석의 과정을 거친 것입니다. 싸우지 않는 부부가 건강치 못한 부부라는 말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책장을 덮고는 진지하게 고민해봅니다. '한 번 본격적으로 싸워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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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지음 / 은행나무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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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그 사람을 보여주듯, 글 또한 쓴 사람의 모습이 어느정도 묻어나게 되어 있다. 영원한 리베로의 글들도 그러했다. 요만큼의 오버도 없이 담담하고 성실한 글. 화려한 기교는 없지만 기본에 충실한 글. 쉽게 읽히지만 마음에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그 글들은 홍명보가 잔디 위에서 보여주던 든든한 플레이와 무척 닮아있다.많은 선배들이 계신데 내가 이런 책을 펴내도 될 지 모르겠다며 머뭇거리는 그의 겸손함도 진솔한 글들을 한층 더 가치 있게 하였다.

크게 자극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별 지루함 없이 끝까지 읽어내릴 수 있었던 것은 문장 하나하나에 진실함이 배어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좋은 질의 종이에 보기 좋은 사진들이 적소에 배치된 편집도 한 몫 했다. 홍명보의 귀여운 아기 사진같은 것도 재미있었지만, 중간에 크게 들어간 황선홍의 미소도 정말 압권이다.

결정적으로 적시에 출간된 책이다. 국민 모두가 월드컵이라는 축제에 홀려 있는 요즘, 축구, 게다가 우리의 우상이 된 축구 선수의 자서전이라니...누가 찬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도 5월 출간 직후에 이 책을 읽었다면 이 정도로 칭찬을 늘어놓지는 않았을 것이 자명한 일이다. 별도 한 두 개쯤은 뺐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련다. 오랜만에 기분 좋은 사람냄새에 푹 취한 이 기분을, 그런 어설픈 냉철함으로 깨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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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에 대하여 - 여성학자 박혜란 생각모음
박혜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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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큰 기대 없이 한가할 때 펴들기 좋은 책이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만한 얘기, 그것도 자신이 나이먹어가며, 살아가며 체험한 얘기들을 술술 풀어놓는 저자의 입담은 제법 구수하다. 하지만 그냥 '공감'에서 끝나고 만다. 책 한 권에서 늙어감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묵직한 화두 하나쯤은 던져주어도 좋으련만.

그리고, 수필집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 책 또한 용두사미격이다. 이것 저것 제목과 걸맞는 담론을 풀어 내는 것 까진 좋았는데, 왜 마무리가 저자가 해외에 다니면서 여성학을 강의한 사례와 느낀점으로 매듭되는지? 제목과 흐름을 깨는 애매한 결말이 책을 읽으면서 그나마 느꼈던 사소한 고민마저 흐릿하게 휘저어 놓는다.

노전 생활이 없듯이, 노후 생활이라는 것도 없다...사람은 어느 순간 노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나이 먹어가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쉽게 엮어낸 점은 참 좋았는데... 덮고 나서는 책보다는 박혜란이라는 사람 자체에 대해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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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양장)
이케다 가요코 구성, C. 더글러스 러미스 영역, 한성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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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에 대한 사전지식은 있었지만, 분량에 대한 사전지식은 없었던 관계로...처음엔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책을 사서 버스를 기다리는 10분 동안에 다 읽어버렸거든요. 메일 한 통 분량이 책 한 권으로 꾸며지다니...책을 읽는 시간 자체를 즐기는 편이라, 함량 미달의 내용을 상술로 펴낸 것이 아닌가 잠시 불쾌했습니다. 하지만 내용을 반추해보고, 이야기 책이라기 보다는 한 권의 시집이거나 그림동화책이라고 생각하니 그제서야 책이 조금은 달리 보이더군요. (하이쿠 모음도 책이 되는데 뭘...)

책이 담고 있는 메세지는 당연히 '사랑'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제목과 책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거창한 세계애나 인류애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자기애'가 주요 메세지라고 느껴지는군요. '나는 먹을 것 입을 것 걱정이 없으니 참 행복한 사람이로구나...어, 내가 세상 사람들의 1/100 안에 해당되는 것을 누리고 있다니...대단한걸.' 하는 조금은 이기적인 쾌감, 거기에서 비롯된 자기애가 세상에 대한 애정보다는 우선해서 느껴지니까요.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런 자기애야말로 더 넓고 많은 대상을 향한 애정들의 기본이 아닐까요.

'20명은 영양실조이고 1명은 굶어죽기 직전이고 그러나 15명은 비만입니다' 상당한 충격을 전해주는 문장입니다. 이제까지는 세계 각지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네~'하고 태연하기만 했거든요. 하지만 이 한 줄의 문장이 그 어떤 캠페인보다도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들의 굶주림은 나랑 상관 없는 일이라던 무심함이 부끄러워지고, 그들의 먹을 것을 빼앗아 먹고 살이 오른 듯 제 자신이 굉장히 탐욕스러운 속물로 느껴지더군요.

무심함과 부끄러움, 그 둘 사이엔 굉장히 큰 차이가 있겠죠. 지금 당장 굶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보탬이 못 될지라도, 점차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시간이 더 흐른다면 결과는 분명히 달라질 것입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표지에 박힌 책들은 별로 달가와하지 않는 편입니다. 내가 동심을 버리고 속물이 된 건지, 잘 팔리니까 급조한 가짜가 많은 건지, 그런 책들을 읽고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거든요. 세계가...를 읽고도 솔직히 굉장히 감동했다던가, 세계관이 바뀌었다던가 하는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메일 자체가 원체 발상의 전환을 유도하는 참신한 내용이고, 책의 구성이나 편집이 깔끔하고 예뻐서 그런대로 괜찮았다...싶네요.

'중학교에 다니는 우리 큰딸아이의 담임선생님은...'하고 책이 시작되죠. 정말 중학생 정도의 친구들, 예민한 마음이 세상에 자꾸 상처 입는 시기의 친구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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