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씨가 내게 연필 한 자루를 주셨다. 기다랗고 노란 연필이었다. 연필 깎는 데도 요령이 있다. 연필심을 너무 가늘게 깎으면 안 된다. 심을 너무 가늘게 하면 금방 부러져버려 연필을 또 깎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쓰지도 않으면서 연필 길이만 점점 짧아져갈 뿐이다.

 와인씨는 나에게 가르쳐준 연필 깎는 방법을 절약하는 방법이라고 하셨다. 인색한 것과 절약하는 것은 다르다. 돈을 숭배하여 돈을 써야할 때도 쓰지 않는 일부 부자들만큼이나 나쁜 게 인색한 것이다. 그런 식으로 살면 돈이 그 사람의 신이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인생에서 어떤 착한 일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써야 할 때 돈을 쓰면서도 낭비하지 않는 것은 절약하는 것이다.

 와인 씨는 버릇은 또 다른 버릇을 만들어내게 마련이라서,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으면 결국 성격도 나빠진다고 했다. 그래서 돈을 낭비하는 버릇이 있는 사람은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그 다음엔 생각을 허술히 낭비하게 되며, 결국 나중에 가서는 모든 걸 낭비하게 된다. 정치가들은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허술해지면 권력을 쥘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정치가는 느슨한 사람들 위에 군림하다가 얼마 안 가 독재자로 변한다. 와인 씨는 절약하는 사람들은 절대 자기 머리 위에 독재자를 갖는 법이 없다고 하셨다. 옳은 말씀이었다.

-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中 -

 아하...요새 정치가들이 왜 그렇게 제멋대로인지 이제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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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2-16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와인을 별로 안좋아합니다. 마시면 머리가 아프거든요^^

하얀우유 2004-02-20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읽었어요...아메리카원주민들에 관한 이야기인데...정말 흥미롭게 읽었다는;;;
 

 세상 사람들이 쓰는 말이 줄어들면 그만큼 세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도 줄어들 거라는 게 할아버지의 지론이셨다. 어느 땐가는 나한테만 몰래, 세상에는 으레 돼먹지 못한 멍청이들이 있게 마련이지만, 문제를 일으키는 것말고는 아무 쓸모도 없는 말들을 만들어내는 게 바로 그 멍청이들이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 일리 있는 말씀이었다. 할아버지는 말의 뜻보다는 소리, 즉 말투를 더 마음에 새겨들으셨다. 할아버지는 언어가 서로 다른 민족이라도 음악을 들을 때는 같은 것을 느낀다고 주장하셨다. 할머니도 할아버지와 같은 생각이셨다. 또 사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야기를 나누는 게 바로 이런 식이었다.

 할머니의 이름은 보니 비(bonnie bee), '예쁜 벌' 이었다. 어느 늦은 밤, 할아버지가 "I kin ye, Bonnie Bee."라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 나는 할아버지가 "I love ye."(당신을 사랑해 - 옮긴이)라는 뜻으로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말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그랬던 것이다. 또 할머니가 이야기를 하다가 "Do ye kin me, Wales?"라고 물으실 때가 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I kin ye."라고 대답하신다. 이해한다는 뜻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사랑과 이해는 같은 것이었다. 할머니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랑할 수 없고, 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더더욱 없다, 신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 이해하고 계셨다. 그래서 두 분은 서로 사랑하고 계셨다. 할머니는 세월이 흐를수록 이해는 더 깊어진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보시기에 그것은 유한한 인간이 생각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것들 너머에 있는 어떤 것이었다. 그래서 두 분은 그것을 'kin'이라고 불렀다.

 -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中 -

I kin ye, 보니 비.... I kin ye, 웨일즈.... I kin ye, 윌로 존.... I kin ye, 와인씨.... I kin ye, 작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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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우유 2004-02-20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니비라는 이름 정말 특이했습니다. 키다리웨일즈 할아버지는 정말 지혜로운것 같구요;;

즐거운 편지 2004-02-24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도 울었다구요.. 지금 가서 리뷰 다시 보고 이 글을 씁니다. 챙피해서 말하지 않으려다..^^ 어느 서재에서 봤었는지 보관함에 담아두었던 책이거든요. 차고 넘친 보관함 정리하다 도서관에서 빌려 볼 목록으로 분류해 놓고 밀리고 있었지요. 그러다 여기서 다시 보고 찜!! 좀 전에 다 봤습니다. 근데 눈물이 왜 그리도 흐르는지.. 지난번 '완전한 사랑' 때만큼이나 꺼이꺼이...^___^
많이 울었지만 덕분에 가슴 따뜻하고 행복했답니다.^^
책보면서 이런 느낌으로 그림책이 있다면 좋을 텐데 생각이 들더군요. <시애틀 추장>은 아직 어렵고 인디언 이야기로 본 책 중 이거다 할 만한 책을 지금 까진 만나지 못해서요..
조금 다르지만 영어그림책으로 본 이누크 이야기로 'Mama, Do You Love Me?'가 오랜만에 생각나더군요. 푸근하고 따뜻한 이야기에 그림도 독특하고 엄마와 딸아이의 대화에 사랑이 넘칩니다. 울 아들과 저도 마냥 행복해지던 책이랍니다.
 

2004. 2. 15.

★★★★

읽기 시작한 지 굉장히 오래 됐는데...오늘에야 마지막 장을 넘겼다. 남들도 그러나? 나는 대부분, 폴 오스터의 책은 전반 1/3을 넘어가는 것이 힘들다. 1/3은 며칠, 혹은 몇 달에 걸쳐서 하루에 한 두장 읽다가 덮고, 잊어버려서 처음부터 읽다가 덮고...하다가, 어느 경계인가를 넘어가면 미친 듯이 단숨에 읽어낸다. 오늘이 그 미친듯한 독서의 날이었다. 읽으면서 놀아달라는 연우에게 하도 머리를 쥐어뜯겨서, 두피가 다 일어난 것 같다.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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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2-16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오스터의 책은 분량도 항상 두껍고, 양장본으로 나오더라구요. 이 책은 안읽어봤지만 님이 고전하셨다니 당분간 안읽으렵니다.
 

2004. 2. 14.

★★★★★

진부하다는 이유로 베스트셀러를 경계하다보면, 가끔, 이런 진짜 베스트셀러를 놓치기도 한다. <감동>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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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卵 2004-02-18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호주에 이 책을 들고 갔었는데 홈스테이를 같이 한 파트너도 이 책을 가지고 있어서 신기했었는데^^ 둘 다 "정말 맞는 말만 골라서 하고, 편안한 것이 너무 멋진 책이야!!"하며 마음을 같이 했었죠. 끝에 가서 다 죽인다고 작가를 원망하기도 하고;;
개정판이 나왔는지 제 책과는 표지가 다르네요. 참 조고마하고 조용한 것이 귀엽네요^^ 옛날 표지의 책도 다른 모습으로 참 귀엽답니다.
 

2004. 2. 13.

★★☆

인상깊은 점 - 이외수의 추천사, 감탄스러운 종이 질, 광수생각과 파페포포의 중간 어디쯤인 듯 한 예쁜 색감.

그 외엔...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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