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이 쓰는 말이 줄어들면 그만큼 세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도 줄어들 거라는 게 할아버지의 지론이셨다. 어느 땐가는 나한테만 몰래, 세상에는 으레 돼먹지 못한 멍청이들이 있게 마련이지만, 문제를 일으키는 것말고는 아무 쓸모도 없는 말들을 만들어내는 게 바로 그 멍청이들이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 일리 있는 말씀이었다. 할아버지는 말의 뜻보다는 소리, 즉 말투를 더 마음에 새겨들으셨다. 할아버지는 언어가 서로 다른 민족이라도 음악을 들을 때는 같은 것을 느낀다고 주장하셨다. 할머니도 할아버지와 같은 생각이셨다. 또 사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야기를 나누는 게 바로 이런 식이었다.
할머니의 이름은 보니 비(bonnie bee), '예쁜 벌' 이었다. 어느 늦은 밤, 할아버지가 "I kin ye, Bonnie Bee."라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 나는 할아버지가 "I love ye."(당신을 사랑해 - 옮긴이)라는 뜻으로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말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그랬던 것이다. 또 할머니가 이야기를 하다가 "Do ye kin me, Wales?"라고 물으실 때가 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I kin ye."라고 대답하신다. 이해한다는 뜻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사랑과 이해는 같은 것이었다. 할머니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랑할 수 없고, 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더더욱 없다, 신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 이해하고 계셨다. 그래서 두 분은 서로 사랑하고 계셨다. 할머니는 세월이 흐를수록 이해는 더 깊어진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보시기에 그것은 유한한 인간이 생각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것들 너머에 있는 어떤 것이었다. 그래서 두 분은 그것을 'kin'이라고 불렀다.
-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中 -
I kin ye, 보니 비.... I kin ye, 웨일즈.... I kin ye, 윌로 존.... I kin ye, 와인씨.... I kin ye, 작은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