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4. 15.
★★★★★.....★
자꾸 일어나는 연우를 토닥이며, 흐릿한 수면등에 책을 들이대며, 책 한 권 읽기가 이리도 힘든가...한탄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 3때 몰래 한 잔 먹어보던 술이 너무도 맛있었던 일. 수업 시간 목 아프게 수그리고 들춰보던 만화책이 그리도 재미있었던 일. 사람은 천성이, 힘들 때 어거지로 하는 일이 더 즐겁고 신나지 않은가? 나중에 몇 년 후 아이들이 자라고, 내 손 갈 일이 한결 줄어 시간이 넘쳐날 때....지금은 소원인 그 시간이 오면, 책 한 권 읽는 일이 요즘처럼 재미있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보통 책의 평균 분량을 조금 상회하는데다, 밀려오는 단상들을 메모까지 하느라 책 읽기는 4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오늘 아침, 다이어리 가득 긁적여진 리뷰를 옮겨 치는데, 어제밤에는 그리도 격렬하던 감정의 글귀들이 환한 대낮에는 낯설고 생경키만 하다. 밤은, 그런 시간이다. 그래서 예전에, 친구에게 밤에 쓴 편지를 건네면서는 꼭, 밤에 읽어 달라고 당부하곤 했다. 물론 그런 당부를 받은 친구들이 지순하게 내 말을 들어줬을 거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도리어 가방에 넣고 잊을 법 한 편지도, 그 당부에 궁금해져서 나 몰래 얼른 펼쳐봤겠지. 다 안다. 나도 꼭 밤에 읽으라는 부탁이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나의 과잉된 감정과 언어를 감안해 달라고, 민망함을 눙치는 거였으니까.
<성에>의 리뷰도, 모두 밤에 읽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