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들 보르헤스 전집 2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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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를 현대문학의 거장 반열에 오르게한 작품이라는 <<픽션들>>. 짧지만 쉽지 않은 단편들. <<불한당들의 세계사>>에 이어 두번째로 읽고 있는 단편집이다. 여전히 말장난처럼 이어지는 허구와 사실에서 언어라는 실을 자아내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서 옷을 지어내듯 한 편, 한 편 창조해내는 솜씨는 어렵지만 특별함이 묻어난다.


문득 '이상'의 <<건축무한육면체>>라는 시가 떠오른다.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 의내부의사각형."이라는 문구로 기괴하게 시작되는 시는 개인적으로 언어만으로 회화적 조형미의 극한을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시'였음에도 미로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까지 했으니.


보르헤스의 작품은 수수께끼와 같은 언어들의 나열과 구성을 통해 토끼 굴을 통해 '이상한 나라'로 향하는 '앨리스'와 같은 심정이 되게 한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은 1940년대에 쓰여진 작품임에도 하이퍼텍스트의 개념이 나온다. 독자의 선택에 의해 달라지는 결말을 가진 가상의 작품이 등장하는데 바로 PC통신 시절 '천리안'을 통해 소개된 MUD 게임 '주라기공원'의 소설판이랄까? 텍스트 기반의 이 게임이 등장한게 1994년이니까 50년 전에 이미 이런 개념을 소재로 작품화했다는게 놀라울 뿐이다.



'필립 K. 딕'의 소설도 정도 이상으로 난해한데, 보르헤스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이상'과 '필립 K. 딕'을 떠올리게 되는건 나뿐인가?


덜컥 '보르헤스 전집' 5권을 구매해둔 내 자신을 탓하게 될런지, 새로운 문학의 지평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런지... 아직은 수준높은 글을 읽고 있다는 뿌듯함만 있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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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HOW TO READ 니체 How To Read 시리즈
키스 안셀 피어슨 지음, 서정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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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었다."라고 니체는 선언한다. 워낙 유명한 인용문이라 '니체' = '무신론자'라는 공식이 머리에 박혀 있었다. 하지만 '니체'의 철학을 조금씩 알아갈수록 '니체'의 싸움은 '종교'나 '신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에 있는 것 같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삶의 본질을 치열하게 알기위해 니체는 '신'마저 부정하고 이성과 지성을 무기삼아 평생을 외로이 싸워나간 철학자이다.


더 쉬운 길을 찾고 안이하고 헤이해지기 쉬운 인간들에게 '초인'의 의지와 고뇌를 강조하며, 삶이 고단하고 단단히 막혀버린 느낌일 때조차 신에 기대어 변명꺼리나 핑계꺼리를 찾기보다는 스스로 더 치열하게 답을 찾아야 한다는 안타까움이 묻어난 촉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완전무결한 '초인'이 이끌어가는 세상을 바란게 아니라 무의미하고 안이한 삶에 안주하지 않는 '초인'에 이르는 고되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이성과 지성을 추구해 가기위한 단련을 끊임없이 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 것이리라.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어보겠다고 '책세상'에서 출간한 '니체 전집' 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아침놀>> 등 3권을 구매해서 10년째 책꽂이에 고이 모셔만 두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용기를 내서 <<차라투스트라~>>에 다시 도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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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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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컨택트(arrival)의 원작 소설로 작년에 도서관에서 전자책으로 빌려서 읽었던 책이다. 영화에서는 극적 효과를 살리기 위해서인지 좀 다르게 각색되었었는데 영상미와 연기가 뛰어났을 뿐 내용은 어딘가 살짝 지루했고 좀 모호했었다.

장편 소설인줄 알았었는데 여러 단편을 묶어서 출간한 단편집의 제목이자 그 속의 단편 제목이었다. 첫 장을 넘기자마자 독특한 소재의 신선함과 매혹적인 이야기에 폭 빠졌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의 이야기 같다고 할까. 테드 창의 소설은 SF물이면서 철학책 같은 느낌이었다. 첫번째 단편 '이해'는 약물에 의해 궁극까지 강화된 두 지성의 충돌을 다뤘는데 궁극의 지성을 갖게 되었을 때 과연 무엇을 추구하게 될까, 그리고 그 두 지성이 맞부딪치게 된다면 결과보다는 어떤 전개로 싸움이 진행될지를 사고실험처럼 다루고 있다. 사실 '래리 니븐'의 소설 <<링월드>> 시리즈에 등장하는 궁극의 진화체인 '수호자'가 살짝 연상됐었는데, <<링월드>>의 수호자 역시 배타적이어서 수호자끼리는 공존이 불가능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류츠 신'의 소설 <<삼체>>에서도 외계의 지성간 만남은 어느 한 쪽의 멸망으로 결론이 나리라는 전제로 외계인의 침략 위기를 풀어가는 내용이 나온다.

영화로 그려진 'Story of your life'의 경우 언어(정확히는 문자)의 힘에 의해 선형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평행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언어학자의 이야기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는 중력이 고차원의 세계로 진입해 선형적 시간의 흐름을 깨뜨리지만, 테드 창의 단편에서는 '언어(문자)'가 고차원의 시간 흐름을 인지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면에서 분명 과학적이라기 보다는 형이상학적인 철학적 면모가 깊게 깔려 있다.


'바빌론의 탑'과 '지옥은 신의 부재'의 경우 성경의 이야기에서 차용을 해왔는데, '지옥은 신의 부재'의 경우 '욥의 고난'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되는건 너무 비약인가?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에서는 차별에 대한 고민뿐만 아니라 단순히 차별을 없애는 것으로 선에 이르게 되는 것인가라는 색다른 성찰도 하게된다.

이 밖에도 흥미롭고 재미있으면서 다양한 생각을 갖게 하는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책. 바로 '당신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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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메모수첩 2018-06-20 0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빌론의 탑, 네 인생의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었어요. 딸의 죽음이란 미래를 ‘기억’하고도 딸을 낳을 결심을 저라면 할 수 있었을까, 미래를 안다는 것은 삶에 책임감이 더 늘어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네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정신질환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 한국 스켑틱 Skeptic 2018 Vol.14 스켑틱 SKEPTIC 14
스켑틱 협회 편집부 지음 / 바다출판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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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부터 꾸준하게 구매해서 읽고 있다. '건전한 과학적 관점'이란 모토가 마음에 들었고, 그에 걸맞는 기사는 실망스러움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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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세븐이브스 1 - 달 하나의 시대 세븐이브스 1
닐 스티븐슨 지음, 성귀수 옮김 / 북레시피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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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폭발했다. 이렇다 할 원인도, 전조도 없었다. 한창 차오르는 중이었고, 만월을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05:03:12 UTC. 훗날 이 순간은 A+0.0.0 또는 그냥 제로(0)로 표시될 터였다."

처음에는 7조각으로 파괴된 달이 점차 수많은 파편으로 쪼개져서 결국 하드레인이라는 이름으로 지상을 불태우게 될 것임이 드러난다. 남은 시간은 불과 2년. 인류의 종말이 될 재앙을 앞두고 인류를 이어갈 전 지구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언젠가 SF영화에서 하늘에 거대한 달이 조각난 상태로 떠 있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참 멋진 장관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달이 파괴되서 조각이 나면 거기서 끝나는게 아니라 파편화가 기하급수적으로 발생해서 중력에 의해 지상으로 끝어당겨지고 대기권을 불태워 말 그대로 불지옥을 만들게 될 수 있다니, 과학은 역시 판타지가 아닌가보다.

흥미진진한 내용과 달리 줄거리를 따라가기 위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는 느낌이라 과학적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쉽게 진도가 나갈 것 같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과학분야의 잡학서를 즐겨읽고 하드SF 장르를 좋아해서 재미있게 단숨에 읽어나갔지만, "빌 게이츠가 추천한"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재미있는 소설이려니 생각했다간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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