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F 우뚝 솟은 건물 현관 앞엔

당신들의 차량을 주차할 수 없습니다.

갓길 귀퉁이에 차량을 정차하시고

당신들의 등짐은 로비를 피해

2F 화물칸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운반하십시오.

여보쇼! 이 무거운 짐을 도로서부터

2F까지 들고 올라가라는 소리요?

네, 이 현관 앞바닥은 얼마 전

대리석으로 새로 단장하였습니다.

어디서 굴러먹었을지도 모를

당신들의 차바퀴 흔적을

남길 순 없습니다.

나 원 참, 더러워서. 좋소!

그럼 왜 1F 로비에 있는 엘리베이터는

이용할 수 없다는 거요?

보십시오. 로비는 아무런 짐 없이

정장을 입은 고객들을 위해

저희가 에스코트하는 장소입니다.

문지기인 우리도 정장을 입고 있습니다.

에이 시발 세상 더럽고 좆같네!

누가 고작 문지기인 당신들에게

아무런 짐 없이 정장을 입을

권리를 주었단 말이오?

 

 

 

 

 

2.

 

이제는 먼 이국인들의

한낱 봄 마실 거리가 되어버린

어느 찬란했던 왕조의 화원

그 문 앞을 어떤 사내가 서성거리고 있다.

완연한 봄빛에 물든 신록들이

바람에 잔가지를 털어내며

이름 모를 새들이 지지배배 울어대며

오직 노인들만은 자신들을 부르는

그 언어를 이해하고서

그 안 벤치 위로 자리를 틀고 있다.

미친 듯이 교미하거나 구애하고 싶은

비둘기 한 쌍도

노인들이 남긴 부스러기를 따라

탐욕스럽게 크르르르 울어대며

그 안 벤치 아래 자리를 틀고 있다.

짧은 다리로 앳되게 총총거리며

어떤 희망의 소식을 찾아 헤매고 있는

까치 한 무리들도

까악까악 까마귀처럼 울어대며

그 안 나뭇가지 위로 자리를 틀고 있다.

모두 그곳을 지나치거나

그 안 어딘가에 자리를 틀고 있다.

그러나 오직 그 어떤 사내 하나만은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모두

그곳으로부터 기인하고 있음을 직감한 채

그 문 앞을 서성거리고 있다.

 

‘누구든 들어오세요!

이곳은 과거라면 당신들이

꿈꿔보지도 못했을 왕의 화원입니다.

그러나 저에게 길을 묻진 마세요!

저는 오직 그 문 안에 들어설 수 없는

단 한 사람, 그 어떤 사내

이곳의 문지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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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병

 

가끔은 어느 몽환의

거리도 걸어보자꾸나

춤추는 다리 위에서

네 춤추는 다리 사이로

팔은 하늘을 향해

힘껏 뻗쳐도 보아라

네 그래도 머릿넋에

관통하는 상쾌함이 없거든

맘껏 몽환의 가시밭길에서

괴성을 지르며 달려도 보아라

순간 다리에 흥건히 젖은

네 피를 보거든

슬쩍 웃어 보이며 뒹굴어도 보자꾸나

네 심장에 네 머릿넋에

드디어 한 개 바람이 관통하면

맘껏 웃으며

이 네 피를 다 흘려보아라

마지막 한 줌의 피를 다 토하거든

순간 멎어버린 네 심장에

피 같은 눈물을 뿌리며 온 몸을 적셔

어느 몽환의 거리에서 뛰쳐나와

새벽의 언덕에 올라

그대로 영영 잠들어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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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성

 

어차피 파도에 휩쓸려

무너져 내릴 성이라고

내부 통로도 없이

창문 하나 달지 않고서

뾰족한 지붕만 가득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어차피 하나가 무너지는 것이

어려울 뿐

손 끝 닿으면 모두 무너져 내리는

도미노처럼

땅속에 박힌 뿌리도 없이

뼈대도 없이

 

만약 모두 무너지지 않고서

그 자리를 지켜낸다면

먼 바다 지켜내는 수평선 가리어

그 누구도 바라볼 수 없겠지만

 

너는 좀 더 배워야만 했다.

 

무너지는 법을

그리고 무너져 내려야 보이는

수평선이라는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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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잘이거나 음모이거나

 

 

심해의 산호에 감추어져

너는 도사리고 있었다.

나선형의 긴 촉수를

나른하게 늘어뜨리고선

검고 예리한 광채를

한순간 번뜩거리면서

핑크빛 陰府의 찌릿한

香, 이야기하면서

자석처럼 나를 빨아들여

삼키어 버렸다.

 

더 이상 꽃 되는 이야기

간지러워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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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터 - 불안은 영혼에 침잠한다

 

 

그대의 불꽃은 언제나 짧은 불꽃이었다.

궁정사우나, 까치호프, 팝콘안마,,,,,,,

때론 그 어떤 이름도 없이

발가벗은 나체의 여신의 모습으로

이 호주머니에서 저 호주머니로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 간단히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의미도

사랑도 될 수 없었던

그대의 불꽃은 언제나 짧은 불꽃이었다.

누군가의 애끓는 속을 달래주려고

번뇌로 지새우는 외로운 밤을 지켜주려고

쉴 새 없이 그대의 불꽃은 한밤을 밝히지만

너무 쉽게 흔들리는 그대!

오! 너무 위험한 그대의 자태!

그대의 불안한 몸짓이 허공에 사그라지고

나는 그대를 위한 향을 피운다.

불안이란 이름의 그대의 짧은 흔들림이

폐부 깊숙이 새까맣게 그을려

내 영혼에 오래도록 침잠하도록

 

그대의 불꽃은 언제나 짧은 불꽃이었다.

그러나 그대와의 짧은 입맞춤은

끝내 지울 수 없는 독한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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