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이유

 

 

작고 귀찮은 모기 하나가

주위를 윙윙 거리며

나를 좀먹으려 하고 있었다.

그저 살아있기에

살아있으려고만 했던 나에게

모기는 분노를 가져다주었고

그 잔혹한 지겨움에 발버둥 치며

불을 켰다.

 

 

아귀에 꽉 들어찬 이글거리는 힘들이

샘솟고 있었다.

강렬한 스피드와 무게가

에너지를 발산하였고

모기는 이 내 피를 다 흘려내도록

압사 당하였다.

시간은 정지한 듯

적막 속에 멍한 존재의 망각이

불을 껐다.

 

 

숨어있던 모든 모기들이

여기저기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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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위한 기도

 

 

한 영혼의

가엾이 흔들리는 자태를

한없이 바라만 보았다.

 

 

손 끝 하나

닿은 떨림에

휘청거리며 견디는

그의 가녀린 발 끝 저림을

머리 자올 하나

가만히 흔들림을

견딜 수 없어 소스라치고 마는

그의 시린 등 뒤를

다가설 수 없었기에

그저 한없이 바라만 보았다.

 

 

바라보았음에

그저 한없이 바라보았음에

단 한 밤 너를 지켜내기를

기도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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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01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촛불...인듯..!
멋진 시입니다.
눈앞에
있는듯 느껴지니 말예요.

몽원 2015-01-11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종의 추억팔이 같은 읊조림인데.. 촛불로 승화시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꾸벅~
 

 

 

 

달팽이

 

 

아직 한 번도 날개를

펴 보지 못한 나비,

시린 한 겨울 지켜주던

허물을 벗으려

힘겹게 얼굴을 내밀고

발을 내밀고

버둥버둥 날개를 펴려다 그만

단단히 굳어버린 허물에 갇혀

하늘 꿈 버리고서

바닥을 기기 시작한다.

꿈틀꿈틀 느릿느릿..

그래도 지렁이처럼

느물느물해 질 순 없어

행여 닿으면

단단한 허물 안으로 숨어

산산이 부서지는 꿈, 꿔보지만

아무도 모르고 아모도 몰라

하늘빛 그리움으로 길게

목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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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날 묻다

 

 

눈이 내린다.

하얗게 흩어지는 벚꽃처럼

봄날을 가장하며 눈이 내린다.

동네 꼬마 녀석들이 모두

밖으로 나온다.

강아지 새끼들도 신이 나

꼬리를 흔든다.

어여쁜 아가씨들도 좋아라고

미소를 띠운다.

그러나 모두 알고 있는 걸까?

정말로 모두 알고 있는 걸까?

이 날들이 다 지나가고 나면 반드시

지독히도 추워져

밟히고 밟힌 눈발은 단단히 굳은 채

검게 물들어 버린다는 사실을!

그 위로 지나가던 바로 그네들이

모두 미끄러져 내리고

자신 때문에 추악해진 눈발에

가혹한 침을 뱉어버린다는 사실을!

그렇게 스스로 녹아져 나리는 꿈

버리고서 나려지는 나락이라는 사실을!

그런 슬픔이라는 사실을

.

.

.

 

 

그러나 그 모든 슬픔이 이토록

황홀히 아름다운 것은

내.어.쩔.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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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짧은 문장

 

 

그대의 구들장 밑 감춰진 오래도록 해묵은 잿더미들을

나는 매일 들춰내 닦아줄 수 없다.

그러나 군불로 지펴진 뜨거운 아랫목 같은 그대 가슴에

연일 고단히 내려앉은 흙먼지들을

나는 매일 샅샅이 핥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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